'43호 현수막 소금창고'

<연재> 소금창고를 복원하다

최영숙 | 기사입력 2009/11/30 [02:40]

'43호 현수막 소금창고'

<연재> 소금창고를 복원하다

최영숙 | 입력 : 2009/11/30 [02:40]

 

▲ 43번째 '현수막' 창고의 모습     ©최영숙

 
옛 염전 소금창고  /  임경묵 

  -  최영숙 선생님께


포동 옛 염전 소금창고가
얼마 전부터 간판사업에 손을 댔다
무담보 싼 이자 긴급자금대출 간판이
간밤에 허물어진 입구로 들어앉더니
아파트형 공장도 분양한다고
플래카드가 온종일 모가지를 꼰다
푸른 페인트칠 된 전화번호들은
제 몸을 비틀면서 서로 키 재기 하듯
소금창고 바람벽을 바락바락 오르며
풍어豊漁를 그리다 지친 새우개 마을로
한밤중 불쑥 이웃 다방을 불러들이고
만선滿船처럼 빨간 피자 통을 풀어놓는데
증발의 기억이 새겨진 녹슨 타일만이
목울대 꺾인 갈대숲을 달랜다
소금창고는 비쩍 마른 기둥을 후비던
서투른 못대가리도 제 살로 보태놓고
바람벽을 빌려주고 벌어들인 돈으로
밤마다 처마 밑에 쓰러진 함초를 일으킨다
구름 사이로 드러난 달빛을  끌어들여
오래전 바다에서 올라와 무너진
밀물의 그림자를 가만히 어루만진다
상처 난 물 주름을 펄 속에 부비던 갯골도
제 투명한 속살을 보려고 달빛에 젖는데
그 환한 달빛에 놀라
탁,
탁,
탁,
숭어 떼처럼 뛰어오르는 소금의 유충들


*2007년 6월 시흥 옛 염전에 남아있던 40여개 애틋한 소금창고가 갑자기 눈앞에서 사라졌습니다. 무지한 개발논리와 이기주의는 십 수 년의 애환과 소금기 묻은 추억들을 하루아침에 무참히 무너뜨렸습니다. 눈시울 붉히며 멍멍한 가슴으로 텅 빈 그 자리에 맑은 술 한 잔 부었을, 오랫동안 소금창고와 한몸이었던 시흥의 사진작가 최영숙 선생님께 이 부끄러운 시를 드립니다. 

수주문학상을 수상한 소래문학회 소속 임경묵 시인이 《수주문학》 2007년 제4호에 발표한 시이다. 소금창고를 무참히 떠나보낸 뒤 이 시를 마주하며 고마움과 미안함이 교차했다. 창고를 지켜주지 못한 채 외사랑만 해온 이에게 시인이 건넨 위로는 면목 없고 무안할 만큼 과분했기 때문이다. 2007년 6월 4일, 소금창고들이 파괴되었을 때 사진으로 그들을 기록하던 이들은 한동안 어찌할 바를 몰라 깊은 실의에 빠졌다.

 

▲ 소금창고들이 파괴되기 전의 모습들     © 최영숙

 

▲ 소금창고들이 파괴되고 난 후의 모습     ©최영숙

 

▲ 소금창고들 파괴되다     © 최영숙

 

▲ 파되된 소금창고들에 한 잔 술을 붓다     © 최영숙

 
내상은 깊었다. 그 참담한 심정을 담아 2007년 6월 9일, 나는 다음과 같은 글을 썼다.


[삶의 한 부분이 무너졌다.] 

최영숙

한 시절이 갔다는 것
이제는 정말 끝났다는 것
더 어찌해볼 수 없다는 것
기대할 것이 추억밖에 없다는 것
너와의  시절이  내 삶에서 빛이었다는 것
그리하여 행복했다는 것

그것을
늘 가슴속 깊이 알고 있었다

그러나
네가 무참히 부질 때
나는 잠을 잤고
네가 무참한 생을 마감한지도 모르고
관광버스에 있었다는 것

그것이
너의 사랑에 대한 나의 답이었다

네게 술을 부었다

내게 영원히 남겨진 것은
사람도
친구도
소금창고도
모두  생명을 다한 뒤였다

이것이 내 삶의 진정한 슬픔이었다

소금창고 너를 평생 기억하고
사진 속에서나마 너의 아름다움을 다시 확인하고
너의 부재가 불러오는 아쉬움과 절망감을 다시 확인하는 일
내게 남겨진 숙명이며 업보이다

진정 사랑했다
정말 미안하다
지켜주지 못해서


오랜 시간 정들었던 소금창고들이 한순간에 사라졌다는 사실은 도무지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삶의 한 귀퉁이가 통째로 무너져 내린 기분으로 한동안 깊은 우울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 43째 '현수막' 소금창고의 모습     ©최영숙


방산대교를 건너기 전 마주하게 되는 이 창고는 광고 효과를 노린 부동산 업자들이 현수막을 걸어두곤 했다. 처음엔 한 장뿐이던 현수막이 나중에는 주렁주렁 매달려 창고 전면을 도배하다시피 했다. 임경묵 시인 역시 월곶으로 향하는 길에 이 43호 ‘현수막’ 소금창고를 만났던 모양이다. 시인에게는 시로, 사진가에게는 사진으로 그 흔적이 남겨졌다.

▲ 1번 소금창고에 걸린 현수막     ©최영숙

 
현수막이 걸린 것은 비단 이 창고뿐만이 아니었다. 반대 방향인 1번 소금창고에도 현수막이 어지럽게 붙어 있었다. 쓸쓸한 만년을 보내는 것도 서러운데, 마치 몸 벽에 좌판을 벌여 놓은 것 같아 보는 마음이 몹시 편치 않았다.


▲ '현수막' 창고 갈대 앞에 서다     © 최영숙

 

임경묵 시인의 시에 대해 유영자 평론가는 《수주문학》에서 다음과 같이 평했다.

“사라져가는 것, 낡은 것들에 대한 비애가 인다. ‘간판사업’, ‘긴급자금대출’, ‘아파트형 공장 분양’ 등의 시어와 플래카드가 상징하는 거센 자본의 물결을 객관적 시각으로 전개하다가, ‘증발의 기억이 새겨진 녹슨 타일만이 / 목울대 꺾인 갈대숲을 달랜다’는 대목에서 시의 정조는 급격히 쓸쓸해진다. 새로운 개발의 물결 앞에 낡은 가치들은 속수무책으로 무너진다. 시인은 정신적 가치를 이어줄 소금창고를 잃은 분노를 ‘숭어 떼처럼 뛰어오르는 소금의 유충들’로 표현하며, 소중한 것을 지켜내지 못하는 현실을 깨우고 있다.”

 

▲ 207년 7월의 창고가 있던 자리 모습     © 최영숙


2007년 7월, 이곳은 나뒹구는 잔해들만이 이곳이 소금창고였음을 간신히 말해주고 있었다.

▲ 2009년 11월 43번째 '현수막' 창고 앞자리     © 최영숙

 

2009년 11월의 풍경은 더욱 변해 있었다. 다른 창고 부지들은 무너진 장소나마 보존되었으나, 이곳은 완전히 매립되어 운동장처럼 평평해졌다. 갈대와 생명들이 사라진 자리에는 컨테이너들이 들어섰고, 그 위에는 ‘분양사무실’이라는 글자가 선명히 박혀 있었다.

▲ 2009년 11월의 43번째 창고의 옛자리     © 최영숙

 

이제는 송전탑만이 이곳이 43호 ‘현수막’ 소금창고가 있던 자리임을 외롭게 알리고 있을 뿐이다.

 

임경묵 시인의 〈옛 염전 소금창고〉를 읽으며, 70여 년을 버텨온 세월 위에 현수막을 덧씌워 그 역사를 외면하려 했던 인간의 이기심을 생각한다. 하지만 창고와 함께 70년을 보낸 갈대숲과 타일, 달빛은 서로를 비비며 위로하고 있었다.

 

시란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힘이 있음을 다시금 깨닫는다. 파괴된 창고뿐 아니라 그것을 지켜보며 내상을 입은 사람의 마음까지도 가만가만 다독여주는 시를 만나 고맙고 감사한 마음이다. 시가 시인의 손을 떠나 독자의 몫이 되었을 때, 나는 나의 방식대로 이 시를 따라가며 위로받고 싶다. 귀한 시를 써주신 임경묵 시인에게 다시 한번 깊은 감사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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