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소금창고 안에서 무슨 일들이 벌어졌는가? [1]

최영숙 | 기사입력 2005/12/02 [00:00]

이 소금창고 안에서 무슨 일들이 벌어졌는가? [1]

최영숙 | 입력 : 2005/12/02 [00:00]

 

포동 폐염전에 가면 볼 때마다 마음이 아프면서도 그냥 스쳐 지나가지 못하는 장소가 있다. 알 수 없는, 그러나 아픈 사연을 추측하게 만드는 소금창고 안으로 오늘도 들어섰다.

 

지금도 이 소금창고를 처음 만났을 때의 기억이 선명하다. "어, 로마 시대의 원형 경기장 같네."라며 다가섰었다. 지붕이 모두 날아간 채 기둥과 몸통만 남은 모습이 원형 경기장과 비슷했다. 마치 유적지에 서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미 지나간 세월의 흔적 위에 서 있다는 생각에 왠지 모를 쓸쓸함이 묻어났다. 바람이 불면 문짝은 삐걱거리는 소리를 냈다. 스산했다.

 

잠시 후 햇살이 비쳐 들었다. 햇살이 들었다는 것만으로도 건물에 따스한 기운이 도는 듯했다. 그러나 건물 안은 여전히 어둡고 음습했다. 소금창고 안이 궁금해졌다. 안으로 들어서니 뭔가 어지럽게 흩어진 물건들이 보였다.

 

다가가 물건을 확인한 순간 숨이 멎고 소름이 확 돋았다. 그것은 여자들의 흩어진 속옷들이었다. 어디선가 다급한 여자의 비명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자신을 소중하게 감싸주었던 속옷들이 저렇게 버려져 있다면, 이곳은 범죄의 현장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이나 동물이나 때가 되고 인연을 만나면 사랑을 나눈다. 서로를 존중하며 나누는 사랑만큼 숭고하고 아름다운 것은 없다. 그러나 누군가에게 강압적인 관계를 요구받고 상처받는 것은 평생 씻을 수 없는 아픔이 된다. 누군지 알 수 없는 가해자에게 불 같은 분노가 일었다. 분노와 아픔, 그리고 참담한 심정이 동시에 찾아들었다. 어딘가에서 살고 있을 그녀들이 그 깊은 상처에서 벗어났기를 간절히 빌었다.

 

순간, 지금 이곳에 나 혼자 있다는 사실이 깨달아졌다. 나 또한 누군가에게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 서둘러 소금창고 밖으로 나왔다. 그러나 바깥 풍경은 창고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시침을 뚝 떼고 있었다. 겉과 속은 이토록 다른가 싶었다. 로마의 원형 경기장 같다고 무심히 들어섰던 소금창고의 무너진 한 귀퉁이에는 또 다른 얼굴이 있었다. 세상은 참으로 이중적이다.

 

그 뒤로 폐염전에 갈 때면 저 장소를 그냥 지나치지 못했다. 볼 때마다 아픔이 묻어났지만, 다시 한번 들여다보고 쓰다듬듯 토닥이며 지나갔다. 인연이란 묘한 것이다.

 

폐염전을 사진에 담는 일은 '아주 오래된 흔적 찾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방금 지나간 흔적은 찾기도 쉽고 명확하다. 하지만 싱싱하게 살아 숨 쉬던 시절의 폐염전 모습을 나는 알지 못한다. 스러진 지금의 모습이 내가 바라보는 현재일 뿐이다. 직접 보지 못한 세월의 뒤편을 찾아보는 것은 예전에 이미 남겨진 흔적들을 추적하는 일이다.

 

처음을 모르기에 흔적을 찾는 일은 모호하고 다중적이며, 개인의 내력과 추측에 의존하게 된다. 어쩌면 그것이 본질에 가장 근접하는 방법일 수도 있고, 전혀 엉뚱한 자신만의 세계에 빠지는 우를 범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저 소금창고에서 실제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나는 알 수 없다. 단지 남아 있는 '흔적'을 보고 추측할 뿐이다. 그러나 그 흔적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내게는 깊은 상처가 되었다.

 

사진에 담는다는 것은 현재의 역사를 기록하는 일이다. 또한 현재의 이 모습 역시 머지않아 스러지고 난 뒤 과거의 역사가 될 것이다. 과거의 기록은 현재를 거쳐 미래까지 연결된다. 미래의 과거가 될 이 '현재'를 충실히 기억하고 남겨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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