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 깊은 새우개 나무들을 만났다

최영숙 | 기사입력 2006/03/30 [00:00]

뿌리 깊은 새우개 나무들을 만났다

최영숙 | 입력 : 2006/03/30 [00:00]

 

▲ 새우개 당집과 은행나무와 느티나무     © 최영숙

 

유서 깊은 마을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반기는 것이 있다. 마을 어귀에 서 있는 그늘 깊은 나무들이다. 지나는 나그네에게는 땀을 식혀줄 그늘을 제공했고, 마을 어르신들에게는 담소와 내기 바둑이나 장기를 두는 사랑방 같은 기능을 했다. 요즘도 무더운 여름이면 나무 아래 목침을 베고 주무시는 분이나 장기를 두는 어르신들을 뵐 수가 있다.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에서 잠시 멈춰 선 듯한 정자나무 아래 풍경은 먼 옛날로 거슬러 올라간 듯 편안한 눈길을 머물게 한다.

 

시흥시 포동의 새우개 당집 앞에 있는 은행나무와 느티나무를 만나러 처음 갔던 날, 단풍이 곱게 들었던 풍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포동 폐염전에서 사진을 찍으면서 바라본 나무들의 첫인상은 '참 잘났다!'는 느낌이었다. 눈에 어른거리면 언젠가는 만나게 된다.

 

가까이에서 만난 당집의 나무들 풍경은 환호성을 지르게 했다. 낙엽에 발이 푹푹 빠졌다. 당집이 있어서인지 사람의 인적이 없는 그곳은 오롯이 깊은 가을이 가득했다. 혼자 뒹굴고, 눕고, 신나게 사진을 찍었다. 뭔가 발밑에서 뭉클한 느낌이 든 듯도 했지만 개의치 않았다.

 

그러나 사진을 다 찍고 내려오는 길에서야 뭔가 알 수 없이 쫓아오던 구린내의 근원을 알 수 있었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좋은 점이 많다. 예전 같으면 더럽다고 호들갑을 떨었을 텐데, 어린 날 가끔 그랬듯이 쓱쓱 흙과 풀에 닦고 돌아왔다. 옛날 어르신들은 말을 지혜롭게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똥을 밟으면 재수가 좋다"거나 "상여나 상주를 보면 재수가 좋다"라고 해서, 상을 당해 슬픈 유족들을 피하지 않고 생의 마지막을 다시 한번 생각하는 마음으로 만날 수 있도록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옛 어른들의 말은 맞았다. 그날 나는 아름다운 풍경을 만날 수 있었던, 재수가 아주 좋은 날이었다.

 

오이도에서 밀려오는 액운을 막기 위해 심었다는 500년 수령의 은행나무와 400년 수령의 느티나무는 오랜 세월 아래 세상이 바뀌는 것을 보았을 것이다. 염전이 들어서기 전 바닷물이 가득했을 새우개 앞의 포구와, 바닷물을 막고 염전을 만들어 양철 지붕이 번쩍이는 소금창고가 가득했을 시절, 그리고 소금밭을 일구던 염부들의 땀방울까지 모두 기억할 것이다. 세월은 흘러 이제 바닷물도, 염부들도 모두 떠나고 폐염전이 되어 소금창고에 바람만이 들락거리는 풍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을의 풍경 또한 급격히 바뀌고 있었다. 이제는 공장들이 가득했고, 곧 아파트가 들어선다는 말을 들었다. 나무들 앞을 막고 서 있을 아파트들을 상상하는 것만으로 가슴이 답답해졌다.

 

정월과 7월에 당제를 지냈지만 이제는 끊겼다고 한다. 그러나 여름에 간 그곳에는 당제를 지낸 흔적은 아닌 듯한데, 칼들과 흰 소지를 꽃처럼 매단 은행나무, 삼색으로 곱게 싼 북어까지 만날 수 있었다. 무속 신앙의 흔적처럼 보였다.

 

매미가 껍질을 벗고 나간 허물들이 나무에 달라붙어 있었다. 땅속에서 6년에서 7년을 애벌레로 보내고 땅 위로 나와 한여름 보름에서 스무 날쯤 살다 죽게 된다는 매미의 일생은 생명의 존귀함을 느끼게 했다. 땅속에서의 인고의 세월을 보내고 나와서도 날개를 달기 위해 그 짧은 생 동안 다섯 번 정도 허물을 벗는다니, 매미들의 치열한 생에 경의를 보내고 싶었다. 또한 그들의 생에 부러움을 느꼈다. 생의 찬란함은 짧을수록 빛이 강하다. 요즘은 가로등 불빛 때문에 잠도 없이 종일 울어대는 매미들 때문에 '매미 소음'이라는 말도 들리지만, 그들의 치열하고 짧은 생을 생각하면 질끈 귀를 막아줘야 하지 않을까 싶었다.

 

눈이 흠뻑 내리던 날 새우개 나무를 찾았다. 눈을 고스란히 받고 서 있는 나무들은 또 다른 모습이었다. 이렇게 400년, 500년을 눈비 맞으며 이곳을 지키고 있었구나 싶었다. 내가 땅속에서 깊이 잠들어 있을 때도 이와 같은 풍경으로 또 그렇게 서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긴 세월을 이겨낸 굳건한 나무들을 가만히 만져보았다.

 

폐염전 소금창고 안에서 나무들을 바라보았다. 이곳에서 바라본 나무들은 변한 것은 내가 아니고 그저 밖의 풍경일 뿐이라는 듯 무심했다. 그렇게 담담히 세상을 바라볼 수 있을까 생각했다. 외부의 풍경이 바뀔 때마다 자신이 먼저 흔들리며 살아왔던 생을 돌아보았다. 포동의 나무들에게서 삶을 배운다. 말없음이 더욱 깊은 울림을 전할 수 있다.

 

뿌리가 깊다. 드러나지 않은, 더 깊은 뿌리들을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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