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개의 시선'[1]

최영숙 | 기사입력 2006/05/15 [00:00]

'천개의 시선'[1]

최영숙 | 입력 : 2006/05/15 [00:00]

 

‘천개의 시선’이라는 이름으로 전시회를 마치고 새로운 주인을 찾아 떠나는 나의 분신들과, 새 주인을 찾지 못하고 거울을 보는 누이의 모습 그대로 제 주인에게 다시 돌아온 사진들을 보면서, 그간 사진들에 쏟았던 애정만큼 하나씩 이름을 불러줘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천개의 시선’이라는 이 사진을 보면서 세월이 거슬러 올라가는 느낌이 들었다. 늘 같은 곳을 다녔던 소금창고 벽, 무심히 지나쳤던 그곳에서 어느 날 ‘천개의 시선’을 만났다. 50~60년 전에 박았던 못들은 저마다 하나의 눈이 되어 있었다. 또한 눈 하나하나가 서로 다른 표정들을 가지고 있었다. 못 자국과 나이테들이 여우, 곰, 원숭이, 돼지 등 온갖 형상을 담고 있는 소금창고의 벽을 보고 숨이 멎었다. ‘천개의 시선’이라는 사진전의 이름을 나는 이 사진에서 따왔다. 포동의 폐염전은 얼마나 무수한 시선들을 품고 있을까? 무궁무진한 보물창고에 나는 발을 디뎠고, 숨은 보물들을 보듬으며 계속 찾을 것이다.

 

소금창고 안에서 밖을 내다보았다. 안쪽의 어둠에서 밝음으로 나아갔다. 돋아나는 생명력에 이끌려 밖으로 쓱 나섰다. 하늘은 맑았고, 바람은 부드러웠다.

 

눈 내린 날, 바람은 불었고 눈은 렌즈 속으로 흩날렸다. 전시를 보러 왔던 초등학생 기훈이가 말했다. “사진 속에 상어가 있어요.” 흥미로운 발견이었다. 눈 사진에서 조스를 찾아내는 어린이의 맑은 눈은, 또 다른 시선으로 보는 즐거움을 주었고 입가에 웃음이 머물게 했다.

구릉을 넘어서는 붉은 칠면초 물결은 펄떡이며 힘차게 뛰는 심장을 생각나게 했다. 강한 생명력으로 포동 염전을 펄펄 살아 있게 하는 칠면초는 스러짐의 풍경이 있는 폐염전에서 그 쓸쓸함을 잠시 잊게 해주었다.

 

바람에 흔들리는 풀잎들의 일렁임을 보면서 가벼운 멀미를 느꼈었다. 부드럽던 바람은 사진을 찍으라 재촉하지 않고, 한숨 쉬었다 가라는 듯했다.

 

갈대들이 아침 햇살을 한 알씩 베어 물고 있었다. 가을이 깊다.

 

‘결연하다’. [마음가짐이나 행동] 결의에 찬 꿋꿋한 태도가 있다는 사전적 해석이다. 눈꽃을 보면서 굉장히 전투적이라는 느낌을 받았기에 사진의 이름을 ‘눈꽃, 결연하다’라고 지었다. 사진을 본 한 분은 “이 사진을 보면 이순신 장군의 병사들이 투구를 쓰고 창을 들고 집결해 있는 느낌이 든다”고 했다. 다른 한 분은 “사진 속 눈꽃들이 멀리서 양떼들이 바글바글 몰려 있는 느낌”이라고 하셨다. 같은 사진을 두고 나와 같은 느낌으로 본 분과 양떼로 본 분을 보면서, 사진을 보는 시선도 사람의 개성만큼이나 다양하다는 생각을 했다.

 

어쩌면 그래서 세상사는 맛이 배가 되는 것 아닐까. 하나의 사진을 보는 시선이 다르듯, 서로 다른 사람들이 맞춰가는 세상은 그만큼 생각의 폭이 넓고, 타인의 시선이라는 창을 통해 내가 보지 못했던 세상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확연히 달랐던 시각차는 ‘나와 같음과 다름’에 대해 깊이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선물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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