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시흥시 장곡동 724-10번지 일원 약 0.71㎢(약 21만 평)가 2012년 2월 17일 자로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되었다는 기사를 읽었다.
2004년부터 이곳의 사진을 담아왔던 지난 9년간의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낡은 소금창고들이 끝없이 늘어서 있던 2004년도의 풍경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이곳에서 사진을 담았던 이라면 누구나 처음 만났을 때의 소금창고들과 광활한 포동 벌판을 흔들던 바람 소리를 결코 잊지 못한다. 이곳 구 염전이 가장 빛나고 아름다웠던 순간들이었다.
그러나 2007년 6월 4일, 그 많던 소금창고는 단 세 동만 남겨진 채 모두 파괴되었다. 근대문화유산 지정을 위한 문화재청의 심사를 얼마 앞두고, 소유주인 (주)성담에 의해 무참히 철거되었던 것이다. 그 후 소금창고의 복원을 위해 지역의 여러 단체가 뼈를 깎는 노력을 기울였지만, 현재까지도 복원은 요원한 상태였다.
시흥갯벌은 경기도에서 유일하게 육지 안쪽으로 굽이쳐 들어오는 내만 갯벌이다. 수많은 우여곡절과 어려움 끝에 마침내 '시흥갯벌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되었다는 소식을 접하고, 설레는 마음으로 다시 시흥갯벌로 향했다.
방산대교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평소 굳게 닫혀 있던 철문이 열려 있었다. 안으로 들어서자 요란한 기계음이 들렸다. 현장은 공사 중이었다. 커다란 굴삭기가 오랜 세월 자리를 지켜온 수문을 철거하고 있었다. 염전에 바닷물을 끌어들이던 유서 깊은 수문이 힘없이 부서지고 있었다. 현장 관계자는 기존의 수문 4개를 모두 파괴하고 새로 설치하는 중이라고 했다.
좀 더 안으로 들어갔다. 예전에 있던 '천개의 시선 소금창고'를 지나서 있던 수문도 이미 모두 파괴되었다. 공사에 쓸 자재들이 어지럽게 앞에 놓여 있었다.
다시 되돌아 나왔다. 현장 공사를 하던 인부들은 잠시 자리를 비웠는지 보이지 않았다. 이제 뒤쪽이 모두 허물어진 수문은 겨우 앞모습만 간신히 남겨두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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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소금창고들이 힘없이 파괴되었을 때처럼,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서늘한 슬픔이 밀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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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갈 때는 급한 마음에 미처 보지 못했던 공사 안내판이 눈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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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사명: 시흥 장곡·월곶동 수문 재설치 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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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사내용: 염전 제방 수문 재설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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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사개요: 배수통문 4개소, 수문(자동문비) 4개소, 수문(인양식) 4개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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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사기간: 2012년 2월 1일 ~ 2012년 3월 31일
| ▲ 2007년 19번째 '수문'창고 모습 ©최영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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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두 동이 남겨진 소금창고 방향에 있던 19번째 '수문창고'는 안전한지 걱정스러운 마음이 들어 그쪽 방향으로 서둘러 걸어갔다
| ▲ 19번째 '수문'창고 자리에 있던 수문이 파괴 되고 다시 만든 수문 © 최영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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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사이 벌판 위로 어둠이 짙게 내렸다. 2007년도까지 멀쩡하게 보존되어 있던 옛 수문은 간데없고, 이곳 역시 차가운 콘크리트로 새로 벽을 다지고 있었다. 이 무모한 공사를 발주한 곳이 대체 어디인지는 알 수 없으나, 지역의 근대문화유산을 대하는 거칠고 무지한 방식에 깊은 분노가 일었다.
80여 년이 넘은 수문이 노후화되어 기능상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점은 충분히 이해한다. 그렇기에 제방의 안전을 위해 수문을 재설치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진정으로 역사를 생각했다면, 기존의 오래된 수문은 그 자리에 역사적 사료로 보존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는 것이 당연했다. 옛 수문은 원형대로 보존하고, 기능적인 수문은 그 옆에 따로 설치하면 될 일이었다. 굳이 이 소중한 유산을 저토록 철저하게 부수고 흔적을 지워내는 것은 명백히 잘못된 행정이었다.
2007년 6월 4일, 우리의 소중한 근대문화유산인 소금창고들이 허무하게 파괴된 곳이 바로 이곳이었다. 이제 이곳이 과거 거대한 염전이었다는 사실을 증명해 주는 시각적 시설물은 거의 남아있지 않다. 그러하기에 바닷물의 통로였던 '수문'은 염전의 역사를 증언할 더욱 중요하고 귀한 유산이었다. 한 번 파괴된 문화재는 결코 되살릴 수 없다. 막대한 돈을 들여 다시 복원한다 한들, 이미 옛 모습을 완전히 잃어버린 복제물은 진정성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시흥갯벌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된 이후, 이곳은 머지않아 제2의 순천만처럼 수많은 이가 찾는 생태의 성지가 될 것이다.
그때 찾아오는 이들에게 이곳의 역사와 염전의 흔적을 설명할 때, 이 수문들은 가장 생생하고 중요한 교육적 역할을 했을 것이다. 소금창고들이 파괴되었을 때 얻었던 그 뼈아픈 교훈을 벌써 잊었단 말인가. 게다가 공사 안내판에는 가장 기본적인 공사 발주처가 표시되어 있지 않았다. 법적인 공사 안내판에 발주처가 명시되지 않은 공사라는 것 자체가 도저히 이해되지 않았다. 도대체 어느 기관이 이 파괴를 주도했는지 의문이다. 수문을 완전히 철거하는 행위는 소금창고 파괴에 이은, 참으로 무지하고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또 다른 파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로써 이제 이곳이 염전이었다는 것을 말해주는 상징물들이 완전히 지워지게 되었다. 사방을 둘러보니 예전에는 흔하게 보았던 함수통(소금기 있는 물을 저장하던 통) 하나가 쓸쓸하게 보였다. 주변의 소금창고들이 사라지고 갯벌이 매립되는 과정에서 수많은 함수통 또한 함께 묻혀버렸다. 이 벌판에 위태롭게 남겨진 함수통들이라도 현재 간신히 보존된 소금창고 앞으로 시급히 옮겨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또한 머뭇거리다가는 언제 매립되거나 파괴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파괴하는 속도가 보존하려는 속도보다 늘 한 발짝 앞서는 듯하여 마음이 몹시 조급해졌다.
내일 아침이면 저 굴삭기는 다시 굉음을 내며 움직일 것이다. 답답한 심정으로 현장을 바라보며, 기록하는 자로서 어찌 이 파괴 앞에 아무것도 할 수 없는가 하는 깊은 무력감이 온몸을 짓눌렀다. 2007년 6월 4일, 소금창고들이 모두 무너지던 그날의 암담하고 캄캄했던 심정으로 다시 돌아간 듯 가슴이 시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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