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호 기록 소금창고'

[연재] 소금창고를 복원하다

최영숙 | 기사입력 2009/10/14 [23:34]

'41호 기록 소금창고'

[연재] 소금창고를 복원하다

최영숙 | 입력 : 2009/10/14 [23:34]

 

▲ 41번째 기록 소금창고     © 최영숙


 사전은 ‘기록(記錄)’을 ‘남길 필요가 있는 사항을 적음, 또는 그런 글’이라 정의한다. 41호 창고에 ‘기록 소금창고’라는 이름이 붙은 이유는 천장 기둥에 새겨진 구체적인 수치 때문이었다.

▲ 기록 소금창고 천장엥 붙어있는 이곳의 규모를 적은 기록판     © 최영숙

 

'41호 기록 소금창고' 벽면에는 창고의 크기가 상세히 적혀 있었다. '장(長) 13.60, 폭 8.20, 고(高) 4.20'이라는 숫자가 이 건물의 규모를 증명한다. 사진으로 남긴 45동의 소금창고 중 이렇듯 규모가 기록된 곳은 단 두 동뿐이었다.
  

▲ 23번째 아치형 소금창고에 적인 표시     © 최영숙


   또 다른 기록은 23호 ‘아치형’ 소금창고의 대들보 위에서 발견되었다. 그곳에는 '장 13.40, 폭 8.00, 고 3.70'이라 적혀 있었다. 두 창고를 비교해 보면 41호 기록 창고가 23호 아치형 창고보다 조금씩 더 컸음을 알 수 있다.

 

사진을 찍으며 이런 새로운 발견을 할 때면 늘 가슴이 설넸다. 규모를 적어둔 창고를 만난 것은 반갑고 흥미로운 일이었으나, 시간이 흐를수록 반가움 뒤편으로 안타까움이 밀려왔다. 창고가 세워진 시기까지 기록되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랬다면 ‘70여 년 전’이라는 막연한 표현 대신 더 정확한 역사를 말할 수 있었을 것이다.

 

▲ 2007년 건축물 배치평면 및 계획 (안)에 적힌 실윽현황     © 최영숙


 2007년 실측 자료에 따르면 이 창고의 크기는 장 13.68m, 폭 8.17m였다. 70여 년 전 기둥에 기록된 수치와 비교해도 오차가 각각 0.08m와 0.03m에 불과했다. 과거의 기록과 현재의 실측치를 비교하는 작업은 기록가로서 매우 의미 있는 경험이었다.

▲ 2004년 소금창고     © 최영숙

 

2004년 ‘기록’ 소금창고의 모습에서 현재의 세련된 창고를 유추하기란 쉽지 않다. 2009년 시흥시 마을 답사 중 모갈에 거주하는 이금노(81) 어르신으로부터 귀한 증언을 들을 수 있었다. 어르신에 따르면, 해방되던 해에도 일본인 감독관 마시모도의 지휘 아래 포동의 소금창고들은 이미 완공된 상태였으며, 군자염전에서는 창고 건설이 계속되고 있었다고 한다.

 

1945년 해방과 함께 마시모도 감독관은 가족과 일본으로 떠났다. 그 당시 이미 완공된 상태였다면, 현재 남은 소금창고들은 적어도 80년(작성 시점 기준 62년 이상)이 넘은 역사를 지닌 셈이다. 어쩌면 벽면의 수치 기록도 마시모도의 지시에 의해 쓰인 것일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해본다. 마을 어르신들의 흥미진진한 옛이야기를 통해 소금창고 건설에 종사했던 이의 생생한 증언을 접할 수 있다는 것은 무척 설레는 일이었다.

 

▲ 기록 창고에서 만난 못     © 최영숙

 

창고 안에서 발견한 못은 사진 속에서도 마치 살아 움직이는 듯 날카로웠다. 이 사진을 보고 있으면 한용운 시인의 '님의 침묵' 중 한 구절이 떠오른다.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指針)을 돌려놓고 뒷걸음쳐서 사라졌습니다. 나는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멀었습니다.”

 

70여 년의 세월을 건너온 못이 여전히 서슬 퍼런 날카로움을 간직한 모습에서 시의 구절이 맴도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다른 창고의 못들이 세월을 털어낸 듯 허허로운 모습이었다면, 이곳의 못은 영원히 떠나지 못할 운명처럼 가슴에 깊이 박히는 시린 풍경을 자아냈다.

 

▲ 2004년 빛이 들어오던 기록 소금창고     © 최영숙


수리 전인 2004년의 41호 창고는 지붕 사이로 비집고 들어오는 햇살이 눈부시게 아름다운 곳이었다. 당시만 해도 방치된 상태였기에 옛 소금창고의 원형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지금은 수리를 거쳐 창고와 사무실로 쓰이고 있어 내부가 어떤 모습으로 변했을지 알 길이 없다.

 

▲ 2005년 소금창고     © 최영숙


   2005년의 기록이다. 내만 갯벌로 바닷물이 가득 차오르고, 그 너머 왼쪽으로 41호 기록 소금창고가 보인다. 오른쪽에 있던 ‘게’ 소금창고는 2007년 6월 4일 철거되어 사라졌다. 함께 있어 더 풍성했던 그 풍경은 이제 다시 볼 수 없는 기록이 되었다.

 

▲ 41번째 기록 소금창고 불곷놀이     © 최영숙


  2006년 시흥갯골축제 당시, 화려한 불꽃놀이 속에 남겨진 두 동의 소금창고는 마치 서로를 위로하듯 마주 보고 있었다.

▲ 가을풍경     © 최영숙


   2007년 9월, 소금창고 앞에서 고추를 말리는 정겨운 풍경을 만났다. 사무실과 창고로 용도가 바뀌면서 일반 가정의 마당 같은 친근한 모습이 더해졌다. 세월은 풍경뿐 아니라 공간의 쓰임새마저 바꾸어 놓는다.

 

▲ 소금창고 바라보다     © 최영숙

 

 그러나 조금 떨어져 바라본 창고의 이미지는 황량한 사막 같기도 했다. 타일을 걷어낸 염전 자리에는 칠면초만이 듬성듬성 자라고 있었다.

 

 

▲ 소금창고     © 최영숙


가을 벌판은 풍성했다. 달뿌리풀, 모새달, 사데풀, 산조풀 등 습지 식물들이 군락을 이루었다. 시간이 흐르고 염기가 빠져나가는 '천이(遷移) 현상'에 따라 이곳의 풍경도 조금씩 옷을 갈아입고 있었다.

▲ 해바라기 피다     © 최영숙

 

.창고 앞에서 피어난 해바라기는 가속화되는 환경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

 

▲ 얼음을 지치는 어른들     © 최용숙

 

유일하게 남은 두 동의 소금창고는 이제 자전거를 타는 아이들과 썰매를 타는 어른들을 지켜보고 있다. 그 많던 동료 창고들은 사라졌지만, 남은 창고들은 이곳의 변화를 묵묵히 응시한다. 기록하는 일이 두렵게 느껴지는 것은 바로 이런 변화의 속도 때문이다.

 

겨울이 되면 창고 앞은 천연 얼음판으로 변한다. 염전 체험장 앞 얼음 위에서 어른들은 아이가 된 듯 썰매를 지친다. 시흥갯골축제 안내판을 옆구리에 낀 소금창고는 변함없이 그 자리에 서 있지만, 주위의 풍경은 끊임없이 교체된다.

 

▲ 기록 소금창고     © 최영숙

 

 

 

▲ 제3경인고속도로 공사중인 소금창고     © 최영숙

 

 새로 건설되는 제3경인고속도로의 성토 작업이 진행되면서, 이제 특정 지점에서는 창고의 모습을 더 이상 볼 수 없게 되었다.

 

▲     © 최영숙

 

비슷해 보이는 소금창고들이었지만, 그 안에는 저마다 다른 기억이 깃들어 있었다. 지난 6년 동안 그 사소하고 미세한 다름을 기록해 왔다. 앞으로 이곳이 어떻게 변하든 나의 기록은 계속될 것이다. 수많은 이의 기록이 모여 풍부해질수록 후대 사람들은 이곳의 역사를 더 깊이 이해하게 될 것이다. 그렇기에 늘 부족함을 느끼며 조급한 마음으로 셔터를 눌러왔다.

 

▲ 석양이 지다     © 최영숙


  41호 소금창고 뒤로 해가 저문다. 내일 다시 태양이 떠오르면 나는 또다시 '오늘'을 기록할 것이다. 그 오늘들이 모여 내일의 소중한 기록이 될 것임을 믿기 때문이다.



닉네임 패스워드 도배방지 숫자 입력
내용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을 사용하는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 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소금창고, 시흥갯골생태공원 관련기사목록
주간베스트 TOP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