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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호 기록 소금창고' 벽면에는 창고의 크기가 상세히 적혀 있었다. '장(長) 13.60, 폭 8.20, 고(高) 4.20'이라는 숫자가 이 건물의 규모를 증명한다. 사진으로 남긴 45동의 소금창고 중 이렇듯 규모가 기록된 곳은 단 두 동뿐이었다.
사진을 찍으며 이런 새로운 발견을 할 때면 늘 가슴이 설넸다. 규모를 적어둔 창고를 만난 것은 반갑고 흥미로운 일이었으나, 시간이 흐를수록 반가움 뒤편으로 안타까움이 밀려왔다. 창고가 세워진 시기까지 기록되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랬다면 ‘70여 년 전’이라는 막연한 표현 대신 더 정확한 역사를 말할 수 있었을 것이다.
2004년 ‘기록’ 소금창고의 모습에서 현재의 세련된 창고를 유추하기란 쉽지 않다. 2009년 시흥시 마을 답사 중 모갈에 거주하는 이금노(81) 어르신으로부터 귀한 증언을 들을 수 있었다. 어르신에 따르면, 해방되던 해에도 일본인 감독관 마시모도의 지휘 아래 포동의 소금창고들은 이미 완공된 상태였으며, 군자염전에서는 창고 건설이 계속되고 있었다고 한다.
1945년 해방과 함께 마시모도 감독관은 가족과 일본으로 떠났다. 그 당시 이미 완공된 상태였다면, 현재 남은 소금창고들은 적어도 80년(작성 시점 기준 62년 이상)이 넘은 역사를 지닌 셈이다. 어쩌면 벽면의 수치 기록도 마시모도의 지시에 의해 쓰인 것일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해본다. 마을 어르신들의 흥미진진한 옛이야기를 통해 소금창고 건설에 종사했던 이의 생생한 증언을 접할 수 있다는 것은 무척 설레는 일이었다.
창고 안에서 발견한 못은 사진 속에서도 마치 살아 움직이는 듯 날카로웠다. 이 사진을 보고 있으면 한용운 시인의 '님의 침묵' 중 한 구절이 떠오른다.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指針)을 돌려놓고 뒷걸음쳐서 사라졌습니다. 나는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멀었습니다.”
70여 년의 세월을 건너온 못이 여전히 서슬 퍼런 날카로움을 간직한 모습에서 시의 구절이 맴도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다른 창고의 못들이 세월을 털어낸 듯 허허로운 모습이었다면, 이곳의 못은 영원히 떠나지 못할 운명처럼 가슴에 깊이 박히는 시린 풍경을 자아냈다.
그러나 조금 떨어져 바라본 창고의 이미지는 황량한 사막 같기도 했다. 타일을 걷어낸 염전 자리에는 칠면초만이 듬성듬성 자라고 있었다.
.창고 앞에서 피어난 해바라기는 가속화되는 환경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
유일하게 남은 두 동의 소금창고는 이제 자전거를 타는 아이들과 썰매를 타는 어른들을 지켜보고 있다. 그 많던 동료 창고들은 사라졌지만, 남은 창고들은 이곳의 변화를 묵묵히 응시한다. 기록하는 일이 두렵게 느껴지는 것은 바로 이런 변화의 속도 때문이다.
겨울이 되면 창고 앞은 천연 얼음판으로 변한다. 염전 체험장 앞 얼음 위에서 어른들은 아이가 된 듯 썰매를 지친다. 시흥갯골축제 안내판을 옆구리에 낀 소금창고는 변함없이 그 자리에 서 있지만, 주위의 풍경은 끊임없이 교체된다.
새로 건설되는 제3경인고속도로의 성토 작업이 진행되면서, 이제 특정 지점에서는 창고의 모습을 더 이상 볼 수 없게 되었다.
비슷해 보이는 소금창고들이었지만, 그 안에는 저마다 다른 기억이 깃들어 있었다. 지난 6년 동안 그 사소하고 미세한 다름을 기록해 왔다. 앞으로 이곳이 어떻게 변하든 나의 기록은 계속될 것이다. 수많은 이의 기록이 모여 풍부해질수록 후대 사람들은 이곳의 역사를 더 깊이 이해하게 될 것이다. 그렇기에 늘 부족함을 느끼며 조급한 마음으로 셔터를 눌러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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