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4년39번째 '생태공원 2번 소금창고' 모습 © 최영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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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8월 시흥갯골생태공원을 찾았을 때 '40호 불꽃놀이 소금창고'에서 바라본 '39호 생태공원 2번 창고’ 의 모습이 보였다. 시흥시 장곡동 724-2번에 세워졌었던 이 창고는 다음에 갔을 때는 그린벨트 훼손으로 철거되어 볼 수 없었다. 2004년 당시에는 시흥갯골생태공원이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곳이어서 찾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
시흥갯골생태공원 입구에서 바라본 ‘생태공원 2번’ 소금창고의 모습은 옛 소금창고의 정취는 별반 느껴지지 않았다. 아쉬웠다.
소금창고를 복원할 때 적어도 이런 모습의 소금창고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색하고 어둡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옛 소금창고의 모습과 가장 맞게 복원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 시흥갯골생태공원 조성공사 기공식 © 최영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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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7월 22일 시흥갯골생태공원 조성 공사 기공식이 있었다. 소금창고는 시흥갯골생태공원 조성과 함께 복원되어야 한다는 의견 접근으로 논의가 활발하다는 기사를 접했지만 정작 조성 공사 기공식에서는 소금창고 복원에 대한 어떠한 언급도 없었다. 소금창고복원추진위원회도 해체되지 않았는데 어떤 의견들이 논의되고 있는지 확정된 사안은 무엇이 있는지 궁금했다.
▲ 시흥장곡대중골프장 조성 주민설명회 ©최영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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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6월 19일 시흥 장곡 대중골프장 조성 주민설명회 열렸었다. 이날 성담에서 철거한 소금창고의 복원은 어떻게 할 것이냐는 질문에 “복원은 불가능하니 원상 복귀 대신 복원비용을 장학금 제도를 도입하거나 시의 발전 기금으로 후원하겠다”라고 답변했다
(주)성담은 시흥시교육발전진흥재단에 2560만 원의 장학금을 기탁하여 2009년 2월 23일 시청 대회의실에서 시흥시 관내 32명의 학생이 1인당 80만 원의 (주)성담의 장학금을 받았다.
기업이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하는 것은 귀중하고 의미 있는 일이다. 그러나 등록문화재 심의 3일 전에 정신적인 유산인 소금창고를 파괴한 (주)성담이 복원 대신에 물질적인 장학금으로 대신하겠다는 발상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가.
(주) 성담은 장학금 지급 대신에 소금창고 복원에 중추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파괴하고 복원하는 일에 발을 들여놓는 일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주) 성담은 이미 시흥에 오래도록 근거를 둔 기업이다. 손을 잡고 가는 길에는 소금창고 복원이 반드시 이뤄져야 할 것이다. 힘들기에 그것을 할 수 있는 기업은 또한 (주) 성담 밖에 없을 것이다. 결단이 필요한 부분이다.
▲ 2004년 인천의 소래습지생태공원의 소금창고 모습 © 최영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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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창고 복원이 한창 무르익을 때 복원이 된다면 어떤 모습을 지니게 될까 생각했다.
시흥시와 인접한 인천의 2004년도 소래습지생태공원에 있는 소금창고 모습이다. 시흥의 구염전에서 느끼는 광활함과 자연스러운 소금창고들의 모습에 익숙했던 사람은 이곳의 창고를 만나고 나면 옛 풍취와 갯골이 별로 없는 풍경에 다시 발길이 닫지 않았다.
▲ 2009년 소래습지생태공원의 소금창고 모습 © 최영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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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5월 다시 소래습지생태공원을 찾았다. 세월이 지나고 다시 보이는 풍경이 있다.
2004년도에 어설퍼 보였던 소래습지생태공원의 풍경이 시흥의 소금창고들이 파괴되고 2년이 지나고도 지지부진한 복원 과정을 지켜보는 시점에 보았을 때는 시선이 달라져 있었다.
소래습지생태공원에서 소금을 생산하고 계시는 염부 임재남(67) 씨에 의하면 뒤의 소금창고는 옛 창고가 무너져 다른 소금창고를 그대로 옮겨놓은 것이라고 했다. 소금창고의 지붕만 다시 만든 것이라고 했다.
‘소래 옛 모습 전시관’의 모습이 보였다. 문이 잠겨 있어서 들어가서 볼 수는 없었다. 이곳의 창고 또한 옆면은 옛 창고의 벽면을 사용하고 지붕과 문만을 다시 만들었다. 양철지붕을 보면서 70년 전의 옛 창고의 지붕이 이렇지 않았겠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 소래습지생태공원내에 있는 소금창고 © 최영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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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래습지생태공원에서 만난 옛 소금창고의 모습이다. 위의 지붕이 세월이 더 흐르면 녹이 슬고 지금 보고 있는 지붕의 모습이 보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2004년 슬쩍 와서 보고 별 감흥을 못 느꼈던 소래습지생태공원은 새로움으로 다가섰다.
▲ 소래산, 갈대, 풍차, 자전거풍경 ©최영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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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풍차와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 멀리 소래산이 보였다. 방산대교를 가면서 바라보았을 때 소금창고와 빨간 풍차가 어색했었다. 남의 옷을 입혀놓은 듯했기 때문이었다. 바라보는 위치에 따라 풍경도 바뀌는 것인지 소래습지생태공원 전시관 위에서 바라본 풍경은 달라 보였다. 바람에 나부끼는 갈대들과 소금창고, 소래산과 어우러진 빨간 풍차의 풍경이 이국적이면서도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래습지생태공원 전시관 위에서 바라본 왼쪽 풍경을 보면 소금창고가 대한 현대식 건물로 시작해서 점점 멀어지면서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었다. 소래습지생태공원은 자신들이 가진 것에서 최선의 아름다움을 찾으려고 애썼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곳의 풍경을 보면서 시흥의 그 아름답던 소금창고들의 모습이 다시 생각났다. 아, 이곳과 비교도 되지 않을 멋진 풍광을 가졌었는데 하는 아쉬움이 밀려왔다.
▲ 2004년 39번째 '생태공원 2번 창고'모습 © 최영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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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창고를 복원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얼마나 복원 옛 소금창고에 맞게 복원되어야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소금창고를 복원하는 것이 단순한 것이 아닌 우리가 잃었던 문화유산을 다시 찾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40호 ‘불꽃놀이 소금창고’가 보였다. 저 모습이 남겨진 소금창고들이 원형이다. 저 창고도 원형에는 조금 어긋나는 부분이 있었다. 원형에 최대한 맞게 복원하는 것이야말로 그렇게 지난하게 끌어온 소금창고 복원에 대한 응당한 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2009년 1월 39호 소금창고가 철거되고 화장실만이 이곳에 창고가 있었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새들은 무심히 날았다.
2009년 8월 6일 소래고등학생들의 도보순례가가 있었다. '40호 불꽃놀이 소금창고
를 보고 나서는 학생들이 39호 창고가 있던 곳을 지나고 있었다. 예전에 있던 화장실은 사라지고 현대식으로 다시 들어서 있었다. 또한 앞쪽으로는 시흥갯골생태공원 조성 공사를 위하여 펜스가 둘러졌다.
▲ 3번째 소금창고에서 찍은 학생들의 단체사진 © 최영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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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흥갯골생태공원 조성 공사와 함께 소금창고 복원 또한 조속히 이뤄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우리의 학생들이 복원된 소금창고에서 단체사진을 담는 풍경을 사진에 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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