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호 들썩이 소금창고'

<연재>소금창고를 복원하다

최영숙 | 기사입력 2008/11/10 [00:33]

'34호 들썩이 소금창고'

<연재>소금창고를 복원하다

최영숙 | 입력 : 2008/11/10 [00:33]

 

▲ 무리진 코스모스 속의 '들썩이' 소금창고     ©최영숙


2005년 가을 생태공원 안에 코스모스가 만발하게 피었다. 제일 앞 줄에 선 ‘들썩이‘  소금창고가 코스모스와 어우러진 풍경을 만났다. 그 뒤의 아파트 모습들이 아스라이 보였다.  아름답고 조화로운 풍경이었다.
 
초등학교 다닐 때 학교에서는 학생들을  동원해서 학교에서부터 마을 입구까지 신작로 옆으로 코스모스를 심게 했었다.  요즘 같으면 인터넷에 바로 뜰 상황이었지만 그 당시는 송충이를 잡는 일이나 삐라를 주워오는 일처럼 그저 일상적인 일이었다. 우리들이 직접 손으로 심었다는 뿌듯함에 가을 운동회 즈음  무리 지어 피어나는 코스모스들을 보면 마음이 좋아졌었다. 그 후로  코스모스를 바라보는 일은 색다른 느낌을 가지게 했었다. 이곳에서 코스모스 뒤로 아련히 피어는 소금창고를 바라보는데 마음에 뜨거운 무엇인가가 올라오는 느낌이었다. 그 느낌이 좋았었다.   올해도 생태공원 안에는 코스모스가 지천으로 피었다. 그러나 같은 장소를 가도 이제는 소금창고와 어우러진 창고를 만날 수 없었기에 코스모스를 바라보는 기쁨보다는 소금창고들이 모두 사라졌다는 상실감이  들었다.
 
 

▲ 포동 새우개 당집에서 바라본 풍경     ©최영숙


포동 새우개 당집에서 내려다 본 창고들의 모습이었다. 앞서거니 서거니 서 있던 소금창고들의 모습을 보았다 .  지금은 이것 역시 모두 사라진 풍경이었다.

변하지 않은 풍경은 없었다.


▲ 가을의 끝자락에 서 있는 '들썩이' 소금창고     © 최영숙


가을비가 오는 날 막다른 길에 서 있는 '들썩이' 소금창고를 다시 만났다.  가을비가 내리는 날 만나는 창고는 창고의 모습과 함께 처연한 마음을 들게 하는 어떤 힘이 있었다. 세월이 묻어나는 창고에서만이 느끼는 어떤 느낌일 것이다. 
 
이 창고를  처음 만났을 때  소금창고 지붕 위로 한쪽이 기울어 있는 모습이 어깨를 들썩이며 서 있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들썩이’ 창고가 되었다.  사물도 자주 바라다보게 되면 처음의 느낌과 달라질 때가 있다. 사람의 첫인상과 오래 사귄 뒤의 인상이 달라지는 것과 같았다. 처음에는 가볍게 들썩이는 창고로 보였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무너지기 전의 마지막 춤사위처럼 가슴이 무너지는 듯한 비장함을 느끼게 하였다. 상대를 제대로 알아간다는 것은 오랜 시간 상대를 지긋이 바라보는 일이었음을 알았다. 


▲ 비오는 날 풍경     © 최영숙


 
'들썩이' 소금창고 앞에서 바라본 태산 아파트는 깊은 가을에 묻혔다. 타일들이 가장 아름다울 때는 빗물에 씻긴 타일과 타일을 뚫고 나오는 그 강인한 식물들의  생명력, 석양, 각양각색의 문양을 만든 타일까지 많은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었다.  빗물에 반질대는 타일과 말뚝, 태산 아파트까지 이곳에 비가 내리고 있는 느낌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 족제비 싸리나무 꽃 피다     © 최영숙


족제비싸리 뒤편으로 ‘들썩이’ 소금창고가 보였다. 어린 시절에는 그냥 ‘싸리나무’라고 불렀다. 그러나 나무를 잘 아시는 지인과 ‘쉽게 찾는 우리 나무’에서 찾은 정확한 이름은 ‘족제비싸리’였다. 알고 있는 것과 정확한 명칭은 틀리는 경우가 많았다.
 
이 나무의 새순을 따면 붉은 물이 나왔다. 족제비싸리에 새순이 돋으면 소꿉동무들과 새순을 따서 서로의 손톱에 물들여 주던 생각이 났다. 어린 시절 놀았던 기억은 나이가 들어도 똑같은 상황이 돌아오면 어린 날처럼 똑같은 놀이를 하는 자신을 만날 수 있었다.   함께 손톱을 물들이던 소꿉친구는 멀리 떨어져 살아도 추억 속에서 함께 숨 쉬고 있었다.

시골에서 자랐다는 것이 큰 행운이라는 생각을 했다. 나이가 들어도 시골 정서에 맞는 추억의 창고는 마르지 않기 때문이었다. 

 

▲ 들썩이 소금창고에 함박눈 내리다     ©최영숙


함박눈이라도 내리면 이곳의 풍경은 슬쩍 바뀌었다. ‘들썩이’ 창고 조차도 눈에 덮여 들썩이는 어깨의 선이 보이지 않았다. 함박눈이 내리면 소금창고의 풍경들은 지금까지와 다른 모습으로 입을 쓱 닦고 있었다. 

 

▲ 노을지다     © 최영숙



석양이 지고 있었다. 낮게 깔린 구름 뒤로 그날의 석양이 지고 있었다. 포동의 벌판이 진정 아름다웠던 것은 소금창고와 어우러진 그곳의 자연 경관이었다. 바람이라도 불면 사각사각 갈대들이 부딪는 소리와 역광을 받고 있는 갯벌의 생동감 넘치던 질감까지 그곳에 가면 늘 새로운 풍경을 만나게 되었다. 

사진을 담으면서 석양을 담는 일이 얼마나 간결한 찬란함과 긴 쓸쓸함을 남기는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느 순간 해가 떠오르는 순간처럼 붉은 모습을 천지 간에 펼쳐 보이다가 잠시 후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세상은 서서히 어둠에 갇혔다. 달이 떠오르기까지  그 스산한 어둠을 만나게 되었다. 그나마 흐린 날에는 온전한 어둠을 만나야 했었다. 시간이 한참 흐른 뒤에야 그 시간들이 쓸쓸 달콤한 시간이었다는 것을 알았다. 쓸쓸한 시간이 많았다는 것은 온전히 자신을 만났던 시간이 많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 농부의 자전거     © 최영숙


'밤새 안녕'이라고 소금창고에 가면 불에 탄 잔해만 남겨진 창고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리고  시간이 조금 지나면 누군가 그곳에 농사를 지었다. 불탄 창고들을 보면서 불가사의하게 느낀 것은 그 불탄 자리의 정확함이었다. 갈대밭에서부터 불이 났다면 갈대밭에 불탄 자리라도 남겨졌을 법한데 정확히 소금창고만 불탄 것을 보면 누군가 고의적으로 소금창고들을 불태운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곤 했었다. 

▲ '들썩이' 소금창고 가을풍경     ©최영숙


들썩이 창고 앞으로 33번째 ‘무너짐’ 창고가 보였다. 소금창고들의 운명을 생각하면 사람의 생처럼 많은 변수들에 의해 변했다는 생각을 했다. 무너지고, 불에 타고, 파괴되고, 생태공원 안에 있어서 살아남고, 포클레인이 들어갈 수 없어서 남겨진 월곶 창고까지 각자 정해진 운명에 따라 남겨지고 사라지고 했다. 

11월 6일 소금창고복원추진위원회를 개최했다는 보도를 접했다. 

“시는 경기도에 개발제한구역 관리 계획 변경 승인 신청을 통해 소금창고 20개동을 2,950㎡ 에 한해서 건립할 수 있도록 승인됨으로써 소금창고 복원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다만 생태미술관, 전시관, 학습장 등 다른 용도로의 활용은 불가능한 상태로 이후 용도변경 등을 통해 시설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으로 고려중이라고 설명했다.”라고 한다.

앞으로 시흥시와 성담, 소금창고복원추진위원회 등에서 소금창고 복원을 위해서는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산적해 있지만 밑그림이 보인다고 생각하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늘어선 소금창고 풍경     © 최영숙

  
소금창고를 생각하면 늘어선 소금창고들의 경관이 가장 인상적이고 아름다웠다. 방산대교에서 바라보면 갯벌과 더불어 늘어선 소금창고들은 경관을 이루고 있었다. 복원되는 소금창고들이 자연 풍광과 어우러진 모습으로 복원되기를 바란다. 이 독특한 풍광은 세상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다. 소금창고들의 이 이국적이고 독특한 풍경을 다시 세워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좀 늦어지더라도 철저한 고증을 거쳐  최선을 다해 복원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기업은 당연히 참여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어디서 소 풀 뜯어 먹는 소린가 하겠지만  문화유산과  자연에 투자하는 기업은 어느 사회에서나  존경과 신뢰를 얻는다. 그로써 기업은 보이지 않는 더 큰 시너지 효과를 보기 때문이다. 이미 부숴버린 일을 다시 복원하는  결정을 내리기는 힘들겠지만 어려운 결정을 함으로써 결자해지에 최선을 다했던 기업은  지역사회에서 잠시 잃었던 신뢰를 받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 들썩이 창고에 싸리눈 내린 날     ©최영숙


들썩이 창고에서 싸리 눈 내리는 날  ‘들썩이’ 창고에서부터 늘어선 두 개의 창고를 바라보았다. 뚝뚝 떨어져 있지만 서로 의지하고 있는 듯했다. 그러한 소금창고들이 하나씩 둘씩 사라지고 이제 빈터만을 바라보게 되었다.  새삼 세상 일의 빠름을 알 수 있었다.
 

▲ 당당히 서 있는 소금창고     ©최영숙

  
2004년도에 당당하게 서 있는 ‘들썩이’ 창고를 다시 만났다. 5년 전의 풍경을 바라보면 세월은 모든 것을 변하게 했다. 이곳의 변화는 금방 드러나지 않았지만  썰물 때 발밑에서  모래가 빠져나가듯이 그렇게 어느 순간 바라보면 생경한 모습을 보이곤 했었다.
 
 

▲ 소금창고 사라지다     ©최영숙


많은 이야기를 간직했던 '들썩이' 소금창고도 예외없이 불에 타고 잔해만이 남겨져 있었다.  
 

▲ 구름이 몰려오다     © 최영숙

 
늘어섰던 소금창고들이 모두 사라졌다. 이제 구름만이 두둥실 떠다니는 포동의 벌판에 소금창고들이 복원되어 우뚝우뚝 솟아나서 이곳에 새로운 기운을 일으키기를 기원한다.
 
 

▲ 코스모스와 '들썩이' 소금창고     ©최영숙


우리는 분명 소금창고라는 귀한 문화유산을 잃었고, 이제 다시 그것을 복원하려고 한다. 우리의 후대들에게 파괴되는 것은 막지 못한 미안함과 함께 그래도 다시 여러 사람들이 힘을 모아  소금창고를 반드시 복원하여 최선을 다한 모습을 남겨주기를 바란다. 소금창고를 복원하는 일은 후대의 사람들에게 우리 모두가 무슨 일을 했는지를 말해주는 일이다. 후대에 부끄럽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바램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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