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호 수렁 소금창고'

<연재> 소금창고를 복원하다

최영숙 | 기사입력 2009/12/27 [22:38]

'44호 수렁 소금창고'

<연재> 소금창고를 복원하다

최영숙 | 입력 : 2009/12/27 [22:38]

 

▲ 2004년 '수렁'소금창고     © 최영숙


 2004년 12월 처음 만난 '44호 수렁 소금창고'는 이미 무너져 있었다. 방산대교를 건너기 전, 사람들의 시선에서 비껴난 곳에 자리 잡고 있어 오랫동안 잊혔던 곳이다.
 

▲ 44번째 '수렁' 소금창고의 묻혀진 모습     © 최영숙


2007년 6월 4일, 소금창고들이 대거 파괴된 후 예전 창고들의 위치를 다시 확인해 보았다. 분명 길 위에서도 보이던 무너진 창고가 시야에서 사라져 있었다. 현장에 직접 내려가 보고서야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주변 부지가 매립되면서 지대가 높아져, 길 위에서는 그저 평평한 땅처럼 보였던 것이다. 몇 번을 다시 찾은 끝에야 간신히 그 위치를 확인할 수 있었다.
 

▲ 수렁에 잠긴 44번째 '수렁' 소금창고     © 최영숙


 매립 작업으로 주위가 높아지자 비가 내려도 물이 빠지지 못했다. 결국 창고는 깊은 수렁 속에 잠기게 되었고, 그때부터 ‘수렁 소금창고’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5년 넘게 소금창고를 기록하며 수많은 마지막을 보았다.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쓰러진 창고, 화재로 소실된 창고, 그리고 처참히 파괴되어 사라진 창고들까지. 하지만 세월의 무상함에 무너지는 모습보다 사람의 손길에 무참히 파괴되는 광경은 훨씬 더 깊은 상처로 남았다.

 

세월의 무상함을 넘어 갯벌 속에 산 채로 묻혀가는 창고를 마주하니 사람의 손길이 참으로 매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서히 수렁으로 침잠하는 소금창고를 바라보고 있자니 내 마음까지 수렁 속으로 깊이 빠져드는 기분이었다.

 

▲ 매립되고 있는 창고     ©최영숙


 매립된 흙들이 빗물에 씻겨 내려오며 소금창고를 덮어버렸다. 창고가 점점 깊은 곳으로 가라앉는 풍경은 차마 눈 뜨고 보기 힘들 만큼 참담했다.
 

▲ 44번째 '수렁' 소금창고에 거미줄치다     © 최영숙


 인간의 비정한 공사 현장 속에서도 생명들은 제 삶을 이어가고 있었다. 햇살이 스며드는 무너진 창고 그늘에서는 거미들이 집을 짓고 있었다. 가느다란 거미줄이 출렁이며 작은 벌레들을 낚아챘다. 거미들에게 이 창고는 마지막까지 훌륭한 보금자리이자 사냥터가 되어주었다.

▲ 수렁에 잠긴 소금창고 모습     © 최영숙


철저히 버림받은 채 묻혀가는 '수렁 소금창고'를 보며, 차라리 한순간에 불타 산화하거나 포클레인에 파괴되는 것이 덜 고통스럽지 않을까 하는 모진 생각이 잠시 스치기도 했다.

▲ 소금창고 매립되다     © 최영숙

 
 2009년 3월 다시 찾은 이곳은 또 변해 있었다. 수렁 속에 겨우 형체만 유지하던 창고는 이제 기둥 몇 개만 남긴 채 흙에 덮였다. 누구의 관심도 닿지 않는 틈을 타 생매장하듯 묻어버린 것이다. 이곳에 터를 잡았던 거미와 작은 생명들의 생태계도 함께 매몰되었다.


▲ 소금창고 매립되다     © 최영숙

 

 이곳에 창고가 있었다는 증거는 흙 위로 겨우 고개를 내민 잔해들뿐이었다. 밀려드는 흙더미 속에서 소금창고가 살려달라고 아우성치는 듯한 환청이 들리는 듯했다.

 

등록문화재로 지정되기 전, 45동 중 단 3동만을 남긴 채 사라져간 창고들. 근대문화유산으로서 충분한 가치를 지녔던 44호 '수렁 소금창고'의 끝은 이토록 무참했다.

 

▲ 매립된 44번째'수렁' 소금창고 위로 자전거 타다     © 최영숙


 2009년 12월, 다시 찾은 현장은 역설적이게도 평화로웠다. 이곳에 소금창고가 묻혀 있다는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사람들은 자전거를 타고 유유히 그 위를 지나갔다. 이곳의 역사를 증언하는 것은 이제 카메라에 담긴 기록뿐이다.

▲ 잔해들 남다     © 최영숙


 듬성듬성 흩어진 벽면과 지붕의 파편들만이 이곳이 '수렁 소금창고의 무덤'임을 말해주고 있었다. 조만간 이 흙들마저 평평하게 다져지면, 이곳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말끔한 얼굴로 변할 것이다. 70여 년의 세월을 견뎌온 창고는 땅속으로 사라지고, 그 위로는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질 것이다.

 

▲ 매립되는 함수통     © 최영숙


 창고의 뒤를 이어 위험에 처한 것들이 또 있었다. 화약의 원료로 쓰이던 고염도의 간수를 모아두던 ‘함수통’마저 땅속으로 매립되고 있었다. 번쩍 들어 올릴 수만 있다면 우리 집 마당에라도 옮겨놓고 싶은 심정이었다.

 

이 귀한 근대문화유산들을 시흥갯골생태공원 등 안전하게 보호할 수 있는 곳으로 조속히 옮겨야 한다. 한 번 땅속에 묻히면 그 위치조차 찾기 힘들기 때문에 조속한 조치가 절실하다.

 

▲ 구염전 자리들을 매립하기 위해 들어서는 트럭들     © 최영숙


  구염전 자리들을 매립하는 차량들이 줄지어 들어서고 있었다.

▲ 매립되는 갯벌     © 최영숙


네덜란드 같은 선진국에서는 매립했던 갯벌에 다시 바닷물을 끌어들여 생태계를 복원하고 더 큰 부가가치를 창출한다는데, 우리는 여전히 생태계의 사멸을 무릅쓰고 매립에만 급급하다. 후대에게 부끄럽지 않으려면 좀 더 거시적인 시야가 필요하다. 다른 나라의 사례를 타산지석으로 삼아 생태계를 살리며 공존하는 방향을 모색해야 한다.

 

▲ 44번째 '수렁' 소금창고가 있던 자리     © 최영숙

 

 수렁에 빠져 허우적대던 44호 창고는 이제 흙 속에 완전히 파묻혔다. 영화 〈수렁에서 건진 내 딸〉처럼 누군가 건져내 주길 바랐으나, 우리는 그저 무기력하게 지켜만 보았다. 근대문화유산이었던 소금창고는 그렇게 땅속으로 사라졌다.

 

소금창고를 집어삼킨 벌판 위로 오늘도 무심한 바람이 분다. 아무것도 지켜내지 못한 채 그 벌판에 선 이의 가슴으로, 가벼운 미풍조차 날카로운 통증이 되어 스치고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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