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호 불꽃놀이 소금창고'

<연재>소금창고를 복원하다

최영숙 | 기사입력 2009/09/22 [02:37]

'40호 불꽃놀이 소금창고'

<연재>소금창고를 복원하다

최영숙 | 입력 : 2009/09/22 [02:37]

▲ 2006년 제1회 시흥갯골축제 불꽃놀이     © 최영숙

 

 

소금창고와 불꽃놀이의 만남은 흔치 않은 풍경이다. 지난 2006년 ‘제1회 시흥갯골축제’ 당시 70여 년 소금창고 역사상 처음으로 불꽃놀이가 열렸다. 축제의 대미를 장식하는 불꽃놀이 소식에 나는 카메라를 들고 소금창고로 달려갔다. 익숙한 공간의 낯선 이면을 기록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붉게 타오르는 불꽃 아래 선 소금창고의 모습은 경이로웠다.

 

사진을 찍다 보면 이율배반적인 감정이 들 때가 많다. 화려한 불꽃에 놀랄 갯벌 생명들에 대한 걱정과 새로운 풍경을 마주한 설렘이 공존하는 마음은 무엇이라 설명해야 할까. 이어지는 2007년 제2회 축제에서는 한층 몽환적인 불꽃놀이가 펼쳐졌다.

 

인적 없는 어둠 속에서 셔터를 누르던 그날이 선명하다. 멀리 행사장에서는 관중들의 환호성이 들려왔고, 갯벌의 모기와 쐬기(쐐기)에 물린 상처는 며칠이 지나도록 가라앉지 않아 병원 치료를 받아야 했다. 지금도 그때의 사진을 보면 온몸이 가려워지는 착각이 들 정도다. 각인된 기억은 사진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이토록 생생하게 되살아나곤 한다.

 

▲ 2008년 제3회 시흥갯골축제 불꽃놀이     © 최영숙

 

40호 소금창고가 ‘불꽃놀이 소금창고’라는 별칭을 얻은 것은 2006년부터 기록해온 이 불꽃놀이 사진들 덕분이었다. 그러나 2008년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불꽃놀이 사진을 담을 수 없게 되었다. 이듬해 축제 규모가 축소되었기 때문이다. 아쉬운 마음 한편으로 이곳의 생명들이 평온을 되찾았으리라는 안도감이 교차했다. 다시 시작된 이율배반이었다.
 

▲ 2007년 시흥갯골축제에 당나귀와 소금창고     © 최영숙

 

2007년 축제 때는 당나귀가 관람객을 실어 나르기도 했다. 40호 소금창고는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는 것만으로도 주변의 변화에 따라 끊임없이 새로운 풍경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이 창고의 또 다른 특징은 외벽에 설치된 안테나였다. 보존과 편의의 상충을 보여주는 듯해 어색함을 지울 수 없었다. 단 두 동 남은 소금창고가 자꾸만 원형과 거리가 먼 모습으로 바뀌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아주 사소한 부분까지도 원형을 따르는 것이 보존의 기본이기 때문이다.

 

▲ 2004년 40번째 소금창고 안     © 최영숙

 

 

 2004년 당시의 모습으로 지금의 소금창고를 상상하기란 쉽지 않다. 38호와 39호 소금창고가 철거되면서 새로운 소금 저장 공간이 필요해졌고, 이에 기존의 창고 2동을 개조해 현재의 소금창고를 조성하게 된 것이다.

 

창고의 벽과 지붕은 이전에 존재했던 소금창고에서 자재를 가져와 덧붙였다. 덕분에 외형상으로는 원형에 가깝지만, 인위적인 보수 과정을 거치며 본래의 모습에서 다소 변형되기도 했다. 소금창고들이 철거될 당시, 그 오랜 세월을 견딘 나무 벽과 지붕들이 쓰레기로 처리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울분을 금치 못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소금창고는 전체적인 형상도 아름답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나무 벽면이 지닌 고유의 문양과 낡은 양철지붕의 색감이 주는 깊은 미학이 있다. 사진을 찍으며 그 아름다움에 매료되면서도, 자재들이 제 자리에 있을 때 비로소 가장 빛난다고 믿어왔다. 그런 보물 같은 기록들이 폐기물로 취급받았을 때의 마음은 참담함 그 자체였다. ‘그때 조금이라도 거두어 보관해둘 걸 그랬나’ 하는 뒤늦은 후회가 밀려오기도 했다.

 

이제 생태공원 내에 위치하여 철거의 위기를 면한 이 창고들마저 언젠가 수리가 필요해질 텐데, 그때가 되면 이토록 귀한 옛 벽면과 낡은 양철지붕을 어디서 다시 구할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선다.

 

마침 한 아주머니가 소금을 담고 있었다. 시흥갯골생태공원에서 생산되는 소금은 지하에서 끌어올린 해수로 만든다. 이곳은 어린이들을 위한 체험 학습장으로 활용되며, 방문객들에게는 직접 만든 소금을 선물로 나누어 주기도 한다. 이곳의 소금은 깨끗할 뿐만 아니라 맛이 달 정도로 품질이 우수하다. 이처럼 '40호 불꽃놀이 소금창고'는 단순히 과거에 머물지 않고, 오늘날까지 생생하게 살아 숨 쉬는 유일한 소금창고로서 그 가치를 증명하고 있다.

 

▲ 2008년 연날리기 기네스북 도전     © 최영숙

 

2008년 '제3회 시흥갯골축제' 기간 중에는 광복절 기념 연날리기 세계 기네스북 도전이 있었다. 당시 김형인(52) 님은 30여 명의 자원봉사자들과 합심하여 2.5m 크기의 연 555개를 하늘로 띄워 올렸다. 총 길이 1,387.5m에 달하는 연줄이 하늘을 수놓으며 기네스북 도전에 성공했다. 모두가 하나 되어 목표를 이루는 모습은 현장의 관객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선사했다. 이후에도 40호 ‘불꽃놀이 소금창고’ 앞마당에서는 수많은 행사가 이어졌다.

 

축제 기간 중에는 한국화가 심봉진과 설치미술가 이남근의 행위예술 ‘삶-갯골’ 공연도 펼쳐졌다.

 

▲ 2008년 시흥갯골축제에서 심봉진과 이남근 행위예술을 하다     © 최영숙


심봉진 화가는 이번 작품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시흥 갯골은 우리나라에 얼마 남지 않은 내만 갯골입니다. 사라져가는 갯골을 추억하고, 그곳에 터를 잡고 살아가는 생물들에 대한 고마움과 미안함을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온몸에 하얀 칠을 한 행위자와 우산, 안경 등은 현실을 상징하며, 갯골을 한 바퀴 도는 행위는 자연에 대한 그리움을 나타냅니다. 또한 장승과 솟대, 몸에 바르는 머드는 갯골의 원초적인 사랑을, 연꽃은 자연으로의 회귀를 의미합니다.” 시흥을 깊이 사랑하는 작가의 진심이 느껴지는 대목이었다.

▲ 김문수 도지사 방문하다     © 최영숙


이곳을 기억하는 이는 예술가뿐만이 아니었다. 이연수 전 시장의 안내로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도 소금창고를 방문했다. 대다수의 소금창고가 이미 파괴된 뒤에 이루어진 방문이라, 당시 어떤 대화가 오갔을지 자못 궁금했다. 이곳의 보존 대책은 늘 한 박자씩 늦는다는 생각을 지우기 어려웠다.

▲ 공연하다     © 최영숙


소금창고 앞 특설 무대에서는 성악가 김동규의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가 울려 퍼졌다. 수많은 소금창고가 사라진 후에야 이곳이 메인 무대로 주목받게 된 현실에, 옛 풍경의 아름다움을 기억하는 이로서 씁쓸한 감정을 감출 수 없었다.

 

▲ 장곡동 방향에서 들어서다     © 최영숙


과거 장곡동 시흥경찰서 쪽에서 섬산 방향으로 들어서면 곧게 뻗은 농로를 만날 수 있었다. 멀리 태산아파트와 학미산이 보이고, 그 아래로 40호와 41호 소금창고가 나란히 자리하고 있었다.

 

▲ 제3경인고속도로 관통하는 공사를 하다     © 최영숙


2007년 10월, 제3경인고속도로 공사가 한창이었다. 이른 아침부터 덤프트럭들이 흙을 쏟아붓고 있었다. 고속도로가 건설되면서 장곡동에서 바라보던 풍경은 가로막혔다. 도로의 높이가 소금창고를 덮어버린 탓에 공간은 두 개의 권역으로 완전히 나뉘었고, 시흥갯골생태공원과의 단절감은 더욱 깊어졌다.


▲ 제3경인고속도로 공사현장에서 바라본 소금창고    © 최영숙



▲ 2008년 제3경인고속도로 도로가 성토되어 월곶 도로 방향에서 보이지 않는다     © 최영숙


2009년 8월, 도로 위에서 바라본 풍경은 사뭇 달랐다. 이제 어느 방향에서도 소금창고의 온전한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높게 쌓인 도로 탓에 장곡동에서 바라보던 조망권은 완전히 상실되었다. 도로가 개통되면 그 단절감이 더욱 심화하리라는 걱정이 앞섰다. 그런 변화 속에서도 두 동의 소금창고는 깊어가는 가을 코스모스를 배경으로 묵묵히 옛 염전터를 지키고 있었다.

 

▲ 멈춰선 수차     © 최영숙


겨울이 찾아오자 수차도 가동을 멈췄다. 날이 따뜻해지면 다시 아이들이 올라타 수차를 돌릴 것이다. 수차는 아이들의 해맑은 웃음소리를 가만히 품고 있다가, 여름 햇살 아래 한껏 터뜨릴 준비를 하는 듯 보였다.

▲ 갈대산책로와 소금창고     © 최영숙

 

소금창고의 문도 굳게 닫혔다. 겨울은 소금창고에도 휴업의 계절이다. 새들만이 허공을 날고, 가끔 산책이나 운동을 즐기는 시민들만이 이곳을 스쳐 지나갈 뿐이다.

▲ 소금창고 눈내리다     © 최영숙


최근 들어 소금창고 주변에 인위적인 치장이 많아졌다. 창고가 파괴된 뒤에야 그 소중함을 깨달았다는 반증이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소금창고의 진정한 아름다움은 오롯이 홀로 있을 때 빛난다고 생각한다. 과한 장식은 때로 본질을 가리고 시선을 방해하기 마련이다.
 

▲ 2009년 8월 6일 소래고 시흥도보순례중에 소금창고를 드르다     © 최영숙

 

2009년 8월 6일, 소래고등학교 시흥 도보 순례단이 40호 소금창고를 찾았다. 학교를 출발해 관곡지, 호조벌을 거쳐 시흥시청에서 해산하기까지, 밝은 미소로 길을 걷는 학생들의 모습이 더없이 아름다웠다. 몸소 체험하며 걷는 일이야말로 자신이 딛고 선 땅에 대한 사랑을 깊게 새기는 방법이다. 학생들이 시흥의 아름다움을 가슴에 담기를 바라는 한편, 45개의 창고 중 단 2동만을 남긴 기성세대로서 미안한 마음이 깊게 남는 날이었다.

 

밤이 깊어 달이 뜨면 소금창고는 가장 평온하고 안정된 모습을 보여준다. 외부인들이 모두 떠나고 차분해진 이 시간이야말로 소금창고가 온전히 자신을 드러내는 시간이다.

 

▲ 불꽃놀이     © 최영숙


언젠가 소금창고들이 복원되는 날이 오면, 포동의 넓은 벌판에서 시민들과 풍물패가 신명 나게 어우러지는 잔치가 열리기를 꿈꾼다. 그날 밤하늘에는 화려한 불꽃이 다시 한번 피어올랐으면 좋겠다. 그날 하루만큼은 갯벌의 뭇 생명들에게 시끄럽게 굴어 미안하다는 사과를 잠시 미루어두어도 괜찮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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