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월 4일 창문을 여니 세상이 온통 하얗다. 소나무는 눈을 머리에 가득이고 서 있었다.
시흥생태공원으로 나섰다. 쌓이는 눈과 미끄러운 도로사정으로 차량들은 생각보다 적었다.
시청 방향은 엉금엉금 기어갔다. 반대편 차선은 아예 오지 못하는 버스를 기다리다 지친 사람들이 걸어서 출근하고 있었다. 오는 차량은 없고 사람들이 도로 위를 걸었다. 위험해 보였다.
오지 않던 차량들은 조그만 언덕길에서 계속 밀리고 있었다. 제설작업을 하는 사람들은 쏟아지는 눈과 밀리는 차량들 사이에서 쌓여만 가는 눈들을 밀어내고 있었다. 쌓이는 눈들을 어쩔 수 없었다.
시청방향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은 힘겹게 오고 있을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포동배수펌프장 앞 갯벌에 도착했다. 갯벌이 커다란 새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 가슴안쪽에 새들이 옹기종이 모여 있었다. 이 차가운 날씨 속에 따스함이 느껴졌다.
이곳까지 한 시간이 걸렸다. 두 시간 만에 온 적도 있어서 예상보다 빨리 온 것이었다. 뭔가 특별한 일이 생기면 가장 생각나는 곳이 이곳 포동벌판이다. 구름이 좋다거나, 흐들벅지게 함박눈이라도 내릴라치면 가장 가고 싶은 곳이 이곳 포동벌판이다. 이곳은 한번도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늘 새롭고, 아름다웠다.
늠내길 제2코스 갯골길을 표시하는 솟대들이 서 있었다. 아무도 걷지 않은 새로운 눈길을 걷는 기분은 늘 새롭고 상쾌했다.
▲ 36번째 '거인' 소금창고에 서다 © 최영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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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번째 ‘거인’ 소금창고를 만났다. 여전히 눈 속에 강건히 서 있었다. 흔적이라도 간직하고 있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 생태공원 안의 바람개비 조형물 앞에 서다 © 최영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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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흥생태공원 안으로 들어섰다. 이곳의 바람개비 조각품은 이 공원과는 맞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흥교 위의 나무다리 위에 있는 바람개비들이 삐그덕 거리면서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면 마음이 불편했다.
시흥생태공원 안은 고요했다. 배 한척 만이 떠 있었다.
▲ 40번'불꽃놀이'소금창고, 41번'기록' 소금창고 눈에 쌓이다 © 최영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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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흥생태공원 안에 있었기에 남겨졌던 40번 ‘불꽃놀이’ 소금창고와 41번 ‘기록’ 소금창고가 서 있다. 이제는 이 너른 벌판에 유일하게 남겨진 소금창고들인 것이다.
▲ 소금창고 앞에서 '백호'를 만나다 © 최영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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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 안쪽으로 들어섰다. 사진을 담다가 깜짝 놀랐다. 두 동의 소금창고를 뒤로 두고 백호 한 마리가 떡 서 있었다. 자세히 보니 평범한 돌이었는데 눈들이 쌓이면서 백호의 형상을 한 것이었다. 글방이라도 확 달려들 기세였다. 보이는 형상이 재미있어서 백호를 바라보면서 한참을 서성였다.
생태공원에 놀러온 두 여인이 즐겁게 사진들을 담고 있었다. 오늘의 이 순간들을 오래도록 추억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42번째 '월곶' 소금창고에 눈내리다 © 최영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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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을 들고 방산대교 방향의 42번째 ‘월곶’ 소금창고로 갔다. 눈이 오면 자동으로 이곳에서 만나 사진을 담던 사람들은 없다. 우리들이 간직했던 추억들은 이제는 사진속에만 남겠다는 허전한 생각이 들었다.
이 방향도 사람의 발자국은 없다. 이 아름다운 세상 속 정원을 오롯이 혼자 바라본다는 것이 고맙고 미안했다.
▲ '천개의시선'소금창고가 있던 곳에 새들이 날다 © 최영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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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방향으로 오면 반드시 오게 되는 6번째 ‘천개의시선’ 창고에 다시 왔다. 천개의 시선 벽도 창고도 없지만 변함없이 한자리를 지켜주고 있는 함수통을 만났다. 뱀, E.T 등 여러 형상을 가지고 있는 이곳의 함수통 위로 새들이 날랐다. 오늘은 유난히 새들의 이동이 많았다. 폭설에 먹이를 찾아 이동하는 듯했다.
이곳도 늘 변했다. 이곳이 늠내길 제2코스 갯골길이 되면서 오래도록 걸은 이들이 쉴 수 있는 의자가 놓여 있었다.
칠면초와 개벌이 한 모습을 이루고 있었다. 붉게 타오르던 칠면초에 눈에 덮였다.
작은 갯골길을 만들고 있는 물길들을 만났다. 어린왕자가 여우를 만난 듯했다. 이곳은 염기가 많아서 다른 곳보다 눈이 녹는 속도가 빠르지만 오늘은 내리는 눈의 양이 워낙 많고 날씨도 적당해서 눈의 양이 많았다.
2010년 1월 1일 해맞이를 했던 방산대교 위에서 오늘은 눈맞이를 하고 있었다. 어느 풍경을 보던지 이곳은 아름다운 갯벌들을 높은 곳에서 내려다 볼 수 있어서 풍광이 좋았다.
오전 10시에 집을 떠나 4시에 돌아왔다. 돌아와 뉴스를 보니 4일 서울의 신적설량(새로 와서 쌓인 눈의 양)은 오후 2시께 관측 사상 최대치인 25.8cm에 이르렀다고 했다.
서울의 예전 최고 강설 기록은 1969년 1월28일의 25.6cm였다고 한다. 인천은 이날 22.3cm의 눈이 내려 1973년 12월22일의 30cm에는 미치지 못한 역대 2위였다고 했다.
집에 돌아와서 장독대에 있는 눈을 재어보니 19cm였다. 근래에 보기 힘든 대설이었다.
쌓이는 눈길 속을 다니는 것은 힘들었지만 아름다운 풍광들을 보는 행복으로 힘들었던 하루를 잊을 수 있었다.
▲ '백호'의 모습을 한 돌을 만나다 © 최영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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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호해의 첫눈을 제대로 맞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일 출사 나갈 일이 다시 걱정되지만 세상 밖의 그 흰 풍경에 빠진다면 그 번거로움과 교통지옥 또한 기꺼이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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