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호 구름을 몰고 오다 소금창고'를 지나면 생태공원으로 연결되는 곳에 부흥교가 나왔다.
단기 4289년 3월에 준공되었다는 표시가 되어 있었다. 지금부터 70년 전인 1956년에 만들어진 다리였다. 포동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던 이종전(53) 씨의 증언에 의하면 이 다리에는 사연이 많았다고 한다. 시집살이가 힘겨웠던 새댁이 조수가 가장 높이 들어오는 한사리 때 이 다리에서 몸을 던졌다는 것이다. 고된 삶이나 견딜 수 없는 마음의 상심이 깊어질 때, 사람들은 때때로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던져버리고 싶을 때가 있다. 2004년에 만난 한가한 다리 풍경을 보면 그 속으로 뛰어들었을 알 수 없는 젊은 새댁의 모습은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오래된 풍경이 주는 반가움만이 존재할 뿐이었다. 세월은 한 개인사의 슬픔을 이야기 속에 남기고 그냥 무심히 지나간다.
이 다리 위에서 갯골을 바라본 풍경이다. 갯골 바닥에 남겨진 물속에 나무가 자신의 모습을 거울로 비춰보듯, 우리도 자신을 자주 들여다본다면 세상사 후회할 일이 적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금창고의 모습들이 서서히, 혹은 어느 순간 사라지듯이 이곳의 다리 풍경도 세월에 따라 변해갔다. 2006년 제1회 시흥갯골축제를 열면서 이 다리를 통해 참석하는 시민들의 안전 문제가 제기되었다. 한사리 때 가득 차오르는 갯골의 바닷물은 충분히 위협적이었다. 당시 시흥시에서는 부흥교에 난간을 만들고 바닥에는 붉은 아스콘을 깔았다.
| ▲ 2007년 새롭게 놓여진 다리와 옆의 부흥교 © 최영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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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제2회 시흥갯골축제에는 부흥교 옆으로 새로운 다리를 만들었다. 시흥갯골축제의 규모가 커지면서 이곳으로 연결되는 다리들도 변하고 있었다. 이제는 난간을 만들어 시민들의 안전을 보호할 수 있을 듯했다
2008년 6월, 인천에서 배를 타고 시흥 갯골로 들어왔다. 갯골에서 바라보는 부흥교와 새로 만든 다리의 모습은 또 다른 느낌이었다.
시흥갯골생태공원은 사계절 각기 다른 풍경을 자아낸다. 봄에는 유채꽃이 노란 물결을 이루고 있었다. 멀리 태산아파트와 학미산이 보였다.
가을이 되었다. 코스모스가 지천이다. 여인들은 유유히 걷거나 사진을 담기에 바빴다.
봄의 유채꽃과 가을의 코스모스를 지나 겨울이 다가오면 이곳은 또 다른 풍경을 만든다. 고즈넉한 겨울 풍경은 이곳의 또 다른 아름다움이었다. 자신을 온전히 드러내는 겨울 풍경은 비움의 미학을 보여주었다.
2004년 7월 2일, 2003년부터 시흥갯골생태공원 조성 사업이 추진되면서 예전의 소금창고 자리에 새롭게 지은 소금창고 두 동을 만났다. 소재지는 시흥시 장곡동 724-2번지로 표시된 창고였다. 그러나 옛 소금창고의 아름다움을 알기 시작할 무렵이어서, 이 창고는 그냥 어쩌다 스쳐 가는 건물에 불과했었다. 정이 들어야 이름을 짓고 서로의 관계를 기억할 텐데, 그럴 마음조차 생기지 않았다. 그저 '생태공원 1번, 2번 창고'가 이름이 되었다.
2004년 8월 27일, 좀 더 가까이에서 소금창고를 만났다. 그러나 이 창고도 다음에 갔을 때는 파괴되어 사라지고 없었다.
일간지 기사에 의하면 “시흥시는 2003년 당시 시장 공약사업인 개발제한구역 내 시흥갯골생태공원 조성 사업을 추진하면서 토지 형질 변경 등을 통해 개발제한구역을 훼손했다. 이로 인해 당시 시장과 관련 공무원들은 2004년 경기도 자체 감사와 경찰 수사 등을 통해 기관 경고와 벌금형을 받았다.” (파이낸셜뉴스 경제)
시흥갯골생태공원 조성 사업을 추진했던 당시 시흥시장이 토지 형질 변경을 통한 그린벨트 훼손으로 불구속 기소되었다. 소금창고 또한 그때 철거되었던 것이다.
| ▲ 갯골축제를 즐기는 어린이와 시민들 © 최영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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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시흥갯골축제가 펼쳐지고 있었다. 파라솔을 펴놓은 곳이 예전에 '생태공원 1번, 2번 창고'가 있던 자리였다. 창고는 사라졌지만 시민과 어린이들이 놀이에 열중하고 있었다.
| ▲ 갯골생태공원 내 소금창고 복원 및 문화적 활용 방안 용역을 하는 관계자들 © 최영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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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6월 4일, 남겨졌던 소금창고들마저 단 세 동만을 남기고 모두 파괴되었다. 그 뒤 소금창고를 복원해야 한다는 사회 각층의 합의가 모여 복원 추진위가 발족되었고, [갯골생태공원 내 소금창고 복원 및 문화적 활용 방안]에 대한 용역이 진행되었다. 연구원들이 ‘조성 계획 조감도’를 들고 복원될 창고들에 대해 의논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들이 현재 어떻게 진척되고 있는지는 알기 어렵다. 좀 더 공개적인 공감대 형성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38호 생태공원 1번 소금창고'를 보면서 사진 기록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이제는 사라진 이 소금창고와 그 뒤로 보이던 예전 주찬양교회의 빨간 지붕을 보며 그 시절을 기억하게 된다. 당시 이 창고에 별 매력을 못 느껴 사진을 많이 찍지 않았었는데, 그때 지나치며 찍었던 몇 장의 사진이 유일한 기록이 되었다.
“사진으로 기록하지 말고 기억을 담아보세요.” 누군가 내게 말했다. 귀한 지적이었다. 소금창고, 사라지는 마을, 무덤 등 기록적 성격이 강한 대상을 담으며 답답함을 느꼈을 때 들은 말이었다.
“기록이 기억을 만들기도 합니다.” 나는 대답했었다. 불국사를 중학교 수학여행 이후로는 한 번도 가지 않았다고 믿었었다. 그래서 30여 년 만에 다시 갔을 때의 감회는 남달랐다. 그런데 어느 날 사진을 정리하다 보니 20대 초반에 불국사에서 친구와 웃으며 찍은 사진이 나오는 게 아닌가. 그때의 당황스러움은 컸다. 하지만 기록된 사진을 가만히 바라보자 잠깐 짬을 내어 들렀던 그날의 일들이 선명히 떠올랐다. 기록이 잊혔던 기억을 꺼내주었던 것이다.
시흥갯골생태공원의 2007년, 어느 구름 좋았던 날을 기록하고 기억한다. 기억을 자주 잊게 되는 요즘, 기록에 더욱 마음을 쓰는 나를 발견한다.
4.29 시흥시장 보궐선거를 앞둔 4월 16일, 여성회관 대강당에서 첫 합동 토론회가 열렸다. 기사를 보니 옛 염전 개발 계획과 관련하여 후보들 간에 미묘한 입장 차이가 보였다.
누군가는 시장이 될 것이다. 시장이 모든 일을 할 수는 없겠지만, 새로 선출될 시장은 우리가 후대에 무엇을 남겼을 때 그들이 가장 귀하게 여길지를 깊이 고민해 주었으면 좋겠다. 그것은 세상 어디에도 없는, 오직 이곳 시흥에만 존재하는 것을 지키고 보존하는 일이 아닐까.
이곳이 앞으로 또 어떻게 변할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이곳에서 절실히 깨달은 것은 '내일은 없다'는 사실이었다. 오늘 이 순간이 가장 아름답고 충만하다는 것을 포동 벌판에서 느낀다. 오늘의 소금창고는 내일이면 무너지고 또 다른 풍경이 된다.
남겨진 시간 동안, 사라져가는 이 풍경들을 묵묵히 기록하고 기억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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