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명이요" 그대는 숭례문과 광화문의 대들보가 되시오!

<연재>최영숙의 발길따라 가는 풍경

최영숙 | 기사입력 2008/12/11 [02:11]

"어명이요" 그대는 숭례문과 광화문의 대들보가 되시오!

<연재>최영숙의 발길따라 가는 풍경

최영숙 | 입력 : 2008/12/11 [02:11]

 

▲ 2008년 2월 10일 숭례문 불나다     © 최영숙


2008년 2월 10일, 방화로 국보 제1호 숭례문이 전소되었다. 있어서는 안 될 일이 발생했다. 이후 2008년 12월 10일 오전 7시 30분경, 삼척 준경묘에서 숭례문과 광화문 복원에 쓰일 재목으로 금강송을 벌채한다는 인터넷 기사를 접했다. 광화문과 숭례문을 복원하며 조선 태조 이성계의 5대조인 이양무 장군의 묘역에서 자란 금강송을 사용함으로써 역사성과 정통성을 확보한다는 취지였다.

▲ 준경묘에서 금강송 고유제를 지내다     ©최영숙

 
고유제를 지내는 시간은 명기되어 있지 않았다. 만약 오전 10시에 시작한다면 도저히 도착할 수 없는 시간이었다. 잠시 갈등이 생겼으나 언제 시간을 계산하며 다녔던가 싶어 무조건 7시 50분에 출발했다. 도착하니 오전 11시, 다행히 행사는 그때부터 시작이라고 했다. 운 좋게 준경묘 입구에서 기자들을 태우고 들어가는 마지막 차량에 몸을 실을 수 있었다.

▲ 준경묘에서 고유제를 지내다     © 최영숙


전주이씨 대동종약원 준경묘 봉향회 이승복 회장의 주관으로 고유제가 거행되었다. 광화문과 숭례문 복원에 사용될 금강소나무를 벌채하기에 앞서 작업의 안전을 기원하는 제례가 전례에 맞춰 경건하게 진행되었다.

 

▲ 벌채목 산신제를 지내다     © 최영숙


준경묘 고유제에 이어 문화재청과 광화문 목수 팀이 주관하는 벌채목 산신제 및 벌목 행사가 이어졌다. 중요무형문화재 제74호 신응수 대목수가 첫 잔을 올렸고, 뒤이어 관계자들이 차례로 절을 올렸다.

▲ "어명이요" 벌채목을 베다     © 최영숙


우선 벌채 대상인 금강송 20그루의 밑동 껍질을 벗긴 뒤, 그 자리에 "산(山)"이라는 검인을 찍었다. 이어 “어명이요! 어명이요! 어명이요!”를 세 번 외친 벌목자가 도끼로 나무를 베는 장면을 재현했다.

▲ 나이테를 세다     © 최영숙


전통 방식의 벌목 시연 후 기계톱을 이용해 본격적인 벌채가 시작되었다. 몰려든 취재진 사이로 광화문 목수 팀이 나무의 나이테를 세고 있다. 이곳의 금강소나무는 과거 경복궁 중수 때도 자재로 쓰였다고 한다. 이번에 벌목된 소나무들은 그늘에서 말리는 건조 과정을 거친 후, 광화문에 10그루, 숭례문에 10그루씩 기둥이나 창방 등으로 쓰일 예정이다.
 

▲ 신응수 대목수 설명하다     © 최영숙

 

신응수 대목수가 벌목된 금강송에 대해 설명했다. “수령은 110년 정도 되었고 송진이 꽉 찼다. 삼척 나무는 질기고 부러지지 않아 좋다. 숭례문과 광화문의 기둥이나 창방으로 쓰기에 손색이 없다.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를 지녔으며, 국가의 상징으로서 수천 년을 견뎌줄 나무다.”

 

문화재청 하선웅 씨(36)는 "준경묘 산림 보호를 위해 벌채 수량을 20본으로 제한했으며, 봉향회와 마을 주민 등 관련 기관의 입회하에 나무를 선정했다"고 밝혔다. 베어진 소나무들은 헬기로 운반될 예정이며, 숭례문은 발굴 조사를 마친 뒤 2010년부터 본격적인 공사에 들어간다고 한다.

 

수령 110년에 지름 74cm, 높이 30m의 금강소나무 한 그루가 쓰러졌다. 고종 광무 3년(1899)에 묘소를 수축하고 제각과 비각을 건축했다는 기록이 109년 전의 일이니, 이 숲도 그 당시에 조성된 것이 아닐까 짐작해 본다. 적어도 수령이 2~300년은 되었을 거라 생각했는데 110년이라는 말을 듣고 보니, 그 어린 것들이 숭례문의 무게를 짊어져야 한다는 생각에 걱정이 앞섰다. 또한 우리 숲이 생각보다 젊다는 사실을 깨달으며, 지금부터라도 녹화 사업에 힘쓴다면 100년 후 우리 후손들도 이토록 울창한 소나무 숲을 만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준경묘의 금강송     © 최영숙


베어진 금강송, 산신제를 지내고 허리에 북어와 실을 차고 있는 나무, 그리고 3번이라는 번호표를 달고 있는 나무까지. 복원을 위해 목숨을 내놓은 소나무들을 보며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방화로 불탄 자리를 메우려 벌목되는 저 나무들이 기둥이 된들 ‘고맙다’ 말할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훗날 복원된 숭례문과 광화문에 가게 되면 삼척에서 100년 넘게 살던 이 소나무들의 자취를 찾을 것이다. 그때 가만히 미안하고 고마웠노라고 기둥을 한번 쓸어줘야 할 것 같다.

▲ 점식식사들을 하다     © 최영숙


산신제를 마치고 준경묘 아래 공터로 내려오니 식사 대접이 한창이었다. 제를 모셨으니 이제는 산 자들이 먹을 시간인 것이다.
 

▲ 준경묘 뒤 쪽의 금강송들     © 최영숙

 

뒤늦게 내려왔음에도 음식이 남아 있어 도시락을 받아 준경묘 위쪽으로 올라갔다. 세 그루의 소나무가 서로를 의지하고 있는 이곳은 내가 준경묘에 올 때마다 들르는 아늑한 장소다. 점심을 먹고 잠시 누워 하늘을 바라보았다. 소나무 가지들이 서로를 보듬고 있는 하늘을 보고 있자니 더없이 행복해졌다. 이곳의 적막을 지긋이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평온해졌다.
 

▲ 준경묘 금강송 고유제와 산신제 벌목행사 끝남     © 최영숙


누군가 올라오는 소리에 평화롭던 적막이 깨졌다. 자리를 털고 내려오니 벌써 많은 사람이 떠난 뒤였다. 사진을 더 담다 보니 들어올 때처럼 나갈 때도 마지막 차량을 타게 되었다.
 

▲ 준경묘, 영경묘 재실     © 최영숙

 

내려오는 길에 준경묘와 영경묘의 재실을 들렀다. 봉향회 며느리들이 마지막 정리를 하고 있었다. 재실 뒤편으로 올라가 보니 멀리 마을과 준경묘로 향하는 길이 보였다. 참으로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 준경묘 가을     © 최영숙

 

준경묘는 '아름다운 숲'으로 선정될 만큼 훌륭한 경관을 자랑한다. 그런데 문화재청 직원에 따르면 마을 주민들과 종친회에서 이 길을 시멘트로 포장해달라고 요구한다고 한다. 그 말을 들으니 아득해졌다. 이 숲길이 진정 아름다운 이유는 자연스러운 흙길이기 때문이다. 준경묘를 열 번이나 찾아도 늘 새로운 것은 이런 소소한 자연의 변화 덕분이다.

 

관광객의 이기적인 마음이라 할 수도 있겠지만, 이곳은 교통이 원활하지 않고 길이 가파른 탓에 평소에는 늘 문이 잠겨 있다. 관리하시는 분 말씀으로는 문화재청 사람들도 소나무 보호를 위해 소장님조차 꼭 걸어서 올라간다고 한다. 1년에 한두 번 제향 때나 사람이 몰릴 뿐인데 무엇이 그리 급해 포장을 하려 하는가.

 

월정사 상원사 길은 4km에 달하는 흙길을 유지하기 위해 가뭄에는 물차를 동원하고 장마 후에는 다시 흙을 깐다. 그 번거로움을 기꺼이 감수하는 것은 자연과 하나 되는 풍경의 가치를 알기 때문이다. 준경묘만이 간직한, 자연과 천천히 동화되며 걷는 이 여유로운 풍경이 부디 어그러지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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