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할아버지 무덤이 따뜻해”

고 (故) 김수환 추기경 무덤에서 꼬마 성자를 만났다

최영숙 | 기사입력 2009/02/23 [01:42]

“아빠, 할아버지 무덤이 따뜻해”

고 (故) 김수환 추기경 무덤에서 꼬마 성자를 만났다

최영숙 | 입력 : 2009/02/23 [01:42]

 

▲ 천주교 용인공원 성직자묘역에서 추도미사를 드리다     ©최영숙

 
2009년 2월 22일 낮 12시, 경기도 용인 천주교 공원에서 고(故)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의 추도 미사가 열렸다. 이번 미사는 서울대교구 염수정 주교의 주례로 전통 장례 의식인 삼우제 형식에 맞춰 진행되었다.

▲ 고 김수환 스테파노 묘소에 꽃을 놓다     © 최영숙

 
고(故)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의 묘소에는 참배객들이 정성스레 가져다 놓은 꽃들이 가득했다.

▲ 추모미사 참석중이 수녀님과 신자들     © 최영숙

 
추모 미사가 진행되는 동안 묘소 뒤편에서는 수녀님들과 신자들이 전례에 맞춰 성가를 불렀다. 성가 소리는 성직자 묘역에 경건하게 울려 퍼졌다.

▲ 추도미사를 드리는 신자들     ©최영숙

 
서울, 안산, 대구 등 전국 각지에서 모인 참배객들은 이곳에서 모두 한마음으로 추도 미사를 봉헌했다.
 

▲ 추도미사를 드리다     ©최영숙

 
사람들은 진지하고 경건한 모습으로 미사에 임했다.

▲ 영성체를 모시는 성체의 시간이 되었다     © 최영숙


서울대교구 염수정 주교의 주례로 성찬 전례가 시작되었다.

▲ 영성체를 하는 신자들     ©최영숙

 
신자들은 경건한 마음으로 영성체를 모셨다. 영성체는 예수가 제자들과 마지막 만찬을 나눌 때 빵을 주며 "이것은 내 몸이다", 포도주를 주며 "이것은 내 피다"라고 말씀하신 행동을 기념하는 천주교의 핵심 미사 전례이다.
 

▲ 고 김수환 추기경 엽서를 읽다     © 최영숙

 

서울대교구에서는 추기경님의 장례 미사를 위해 먼 길을 찾아준 참배객들에게 묵주와 열쇠고리, 엽서 등을 선물로 나누어 주었다. 염수정 주교가 엽서에 적힌 내용을 낭독했다.

 

“추기경님은 찾아오는 이마다 고맙다는 정표로 늘 무언가를 주셨습니다. 천당 문을 열라고 열쇠고리를 건네시면서 '한 표 부탁한다'고도 하셨습니다. 오늘 찾아오신 여러분께는 당신의 좌우명이 새겨진 묵주를 드립니다. 그 어른을 위한 평화의 기도를 청합니다. 하늘나라에서 이 나라를 위하여 함께 기도해 주실 것입니다.”

 

▲ 할머니의 미소     © 최영숙

 

이어서 “형제, 자매 여러분, 여러분의 기도와 사랑, 희생과 봉사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저도 여러분을 진심으로 사랑하며 기도로써 보답하겠습니다. 추기경 김수환”이라는 대목을 읽어 내려갔다.

 

추기경님이 생전에 남기신 엽서 내용을 들으며 신자들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피어났다. 이 세상을 떠나서도 사람들의 마음을 이토록 평화롭게 어루만질 수 있는 힘은, 생전에 당신이 가진 모든 것을 베풀고 떠난 큰 어른의 은덕이 아닐까 싶었다.

 

▲ 서울대주교 염수정 주교 예를 표하다     © 최영숙

 
미사가 끝나고 염수정 주교를 시작으로 묘소에 조의를 표하는 예절이 시작되었다. 1,000여 명의 신자가 추기경님께 마지막 인사를 드리기 위해 묘소 앞으로 모여들었다. 취재진의 열띤 보도 경쟁으로 잠시 소란해지기도 했으나, 참배객들은 침착하게 차례를 지키며 경건하게 조의를 표하고 돌아갔다. 한 할머니는 추기경님의 묘소에 손을 얹고 간절히 기도를 드렸다.

▲ "할아버지 무덤이 따뜻해"라고 말하는 어린이     © 최영숙

 
.“아빠, 할아버지 무덤이 따뜻해.” 아빠에게 안긴 어린이가 묘소를 만지며 말했다.

 

순간 사진을 찍던 손이 멈칫했다. 세상에, 무덤을 따뜻하다고 느끼다니! 마치 꼬마 성자를 만난 기분이었다. 순진무구한 아이의 마음으로 세상을 보셨던 추기경님이 무덤 속에서 친구가 왔다며 반기시는 것만 같았다.

 

선종 후 많은 분을 인터뷰했지만, 묘소가 따뜻하다는 이 어린아이의 말만큼 큰 울림을 주는 것은 없었다. ‘할아버지’, ‘따뜻해’라는 말이 주는 온기가 추기경님의 평생의 삶과 맞닿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어린이의 시선으로 세상을 본다면 삶의 본질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 꽃 속에 파묻히다.     ©최영숙

 

'바보'를 자처하며 다른 사람의 '밥'이 되어주고, 세상 만물에 고마움을 느끼며 하느님을 사랑했던 큰 어른은 신자들이 바치는 연도 소리와 국화꽃 향기 속에 또 다른 세계로 향하셨다.

 

추도 미사가 모두 끝났다. 사진에 담긴 온화한 미소들과 "할아버지 무덤이 따뜻하다"던 아이의 목소리가 내내 마음을 울렸다. 남녀노소, 빈부, 종교를 초월해 모두를 하나로 묶어준 힘, 그리고 우리에게 고마움과 사랑의 의미를 다시금 일깨워준 것이 그분이 남기신 마지막 선물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은 비록 죽음으로 우리 곁을 잠시 떠나셨을지라도, 당신의 삶을 기억하는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영원히 부활하셨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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