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레이 책 소개 요청을 받고 그동안 읽었던 책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마음 한구석을 밝혀주었던 책들을 기억해 내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그러나 행복도 잠시, 막막함이 밀려왔다. 무척 좋아하고 늘 생각하던 책이었건만, 막상 쓰려니 ‘그냥 좋다’는 말이 가장 정확한 표현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저 좋았던 [천국의 열쇠]를 나름의 방식으로 풀어보려 한다.
A. J. 크로닌 박사는 의사 출신의 소설가다. 1896년 스코틀랜드에서 태어나 고학으로 글래스고 대학교에서 의학을 공부했다. 이후 소설가로 활동하다 1981년 85세의 나이로 타계했다. [천국의 열쇠]라는 제목은 신약성경에서 예수가 베드로에게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라고 말한 대목에서 인용했다고 한다.
주인공 프랜치스 치첨 신부의 끊임없는 용기와 인내, 사랑, 그리고 깊은 통찰에서 우러나오는 유머 감각과 누구도 꺾을 수 없는 자유사상가로서의 삶을 따라가다 보면 늘 눈시울이 붉어지곤 했다. 줄거리는 거의 잊었어도 마음속에 영원히 각인된 대목이 있다. 바로 치첨 신부가 베로니카 수녀에게 건넨 말이다.
파격적인 말이었다. 식인종이라도 성실한 인간이라면 구원받을 수 있다는 말은 자칫 이단처럼 들릴 수 있지만, 내게는 원죄에 대한 중압감과 종교라는 이름의 무거운 짐에서 벗어나게 해 준 해방의 메시지였다.
[천국의 열쇠] 하면 떠오르는 또 다른 기억이 있다. 시댁은 불교 집안이었다. 결혼을 결정했을 때 가톨릭 신앙생활을 어떻게 이어갈지 고민이 많았다. 당시 성당의 주임 신부님이셨던 정일우 신부님의 강론은 늘 활기찼다. 지금도 기억에 남는 말씀이 있다. “성당 일 한다고 가족에게 라면 끓여주고 나오지 마라. 신앙의 기초는 가정에서 이루어진다.”는 말씀이었다. 내가 고민을 털어놓자 신부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집안과 불화하면서까지 꼭 성당에 나와야 한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하느님은 어느 곳에나 계십니다. 늘 마음속으로 화살기도를 하세요. 그러면 때가 되어 자연스럽게 성당에 나오게 될 겁니다.”
가정의 화합이 먼저이며, 성당에 오가는 행위보다 스스로 믿는 마음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일깨워 주신 것이다.
세월이 흘러 다시 [천국의 열쇠]가 읽고 싶어졌다. 예전에 읽었던 성바오로 출판사의 책을 찾을 수 없어 다른 출판사의 책을 구했는데, 아무리 읽어도 그 감명 깊었던 구절이 보이지 않았다. 나중에야 번역자가 자신의 종교적 성향과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그 부분을 임의로 삭제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작가의 글을 제멋대로 탈락시키는 것은 번역가의 자격이 없는 일이다. 독자가 읽고 판단할 권리를 가로챈 것이기에 화가 났다. 예전에 성바오로 출판사 판본을 읽지 않았더라면 이 핵심적인 부분을 영영 놓쳤을 것이다.
결국 청목에서 나온 상·하권 세트를 사면서 이 부분이 포함되었는지부터 확인했다. 내게 이 구절은 치첨 신부의 일생과 사상을 대변하는 핵심이다. 양심에 따라 성실히 살았다면 신자든 무신론자든 천국의 열쇠가 주어질 수 있으며, 인류는 종교를 초월해 화합할 수 있다는 사상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구교와 신교의 갈등 속에 부모를 잃은 치첨은 외할아버지의 자유사상을 이어받았고, 중국 선교 시절에는 공자와 노자의 사상까지 흡수했다. 그는 모든 사상을 스펀지처럼 받아들였지만, 그렇다고 신앙이 무뎌지지는 않았다. 오히려 낮은 자세의 겸손과 자부심마저 내려놓은 그 순수한 마음은 강철 같은 타인의 마음까지 단숨에 무장해제 시켰다.
사제로서 청빈과 용기, 사랑으로 일관된 삶을 살았음에도 치첨은 교회 조직 내에서는 인정받지 못한다. 오히려 세속적인 친구 밀리가 출세를 거듭한다. 하지만 치첨 신부는 권력에 관심이 없다. 그저 밀리는 그 자리에 어울리는 사람이라고 여길 뿐이다.
중국에서 돌아온 늙은 치첨 신부는 먼 친척인 어린 안드레아를 만난다. 아이가 자신의 어린 시절처럼 불우한 환경에 놓이자, 그는 아이를 돌보기 위해 고향의 사제직에 머물기를 원하며 평생 처음으로 이기적인 기도를 올린다.
“오, 주여. 평생 단 한 번의 소원입니다. 당신의 뜻이 아니라 저의 뜻을 제발 이루어 주옵소서.” 주님은 이번에도 그의 손을 잡아주셨다.
마지막 구절을 읽으며 그가 보여준 진정한 용기와 순결한 삶을 떠올렸다. 글을 쓰는 지금도 치첨 신부가 지혜로운 눈빛을 띤 채 굽은 등을 하고 저벅저벅 걸어 나올 것만 같다. 그의 깊은 세월을 내 글에 온전히 담아내기엔 역부족임을 느낀다.
덕분에 나는 살아가며 종교 문제로 타인과 다툴 일이 없었다. 어느 곳에 있어도 마음이 편안했다. 사찰에 가면 오래된 옛집에 온 듯 고요하고 절제된 공간의 향기가 좋았다. 가끔 생각한다. 믿음은 천주교에 두되 마음이 편한 곳은 사찰이고, 굿판에 가면 그 흥에 빠져드는 내 모습이 어쩌면 주관 없어 보일지도 모른다고.
하지만 세상의 진리는 결국 하나이며, 그곳으로 향하는 길만 다를 뿐이라고 생각한다. 각자 자신의 성향에 맞는 믿음을 가지면 될 일이고, 서로는 그저 지켜봐 주면 된다. 이런 여유로운 종교관은 젊은 날 만났던 고집불통이지만 따뜻했던 치첨 신부에게서 배운 삶의 한 자락이다.
다음으로 책을 소개해 주실 분은 내가 존경하는 이종전 목사님이다. 목사님을 뵈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참 따뜻하고 너그러워 마음이 편안해진다. 우리 옛 문화를 사랑하시는 분이기도 하다. 수필집으로 [철없는 백로], [서 있는 바람]이 있으며, 현재 대한신학대학원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시다. <저작권자 ⓒ 시흥장수신문(시민기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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