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광 광부도, 영화배우도, 가정주부도, 독립을 향해 온몸을 던진 독립운동가 포상
- 직산 광산의 광부로 천안 입장면 만세 시위를 이끌다 순국한 김영호 선생,
항일영화 배우로 명성을 떨친 김덕린 선생 등 독립유공자 283명 포상
건국훈장 애국장 19명, 애족장 46명, 건국포장 29명, 대통령표창 189명
- 1949년 최초 포상 이후 총 1만 9,059명 포상... 건국훈장 1만 1,999명, 건국포장 1,600명, 대통령표창 5,460명
국가보훈부는 제81주년 광복절을 맞아 충남 천안에서 직산 광산 광부로 만세 시위를 이끌다 순국한 김영호 선생(애국장), 중국 상해에서 항일영화 배우로 명성을 떨친 김덕린 선생(애족장), 김구 선생의 부인으로 대한민국 임시정부 활동을 지원한 최준례 여사(애족장) 등 283명을 독립유공자로 포상한다고 밝혔다.
김영호·김세철(애국장)·남기석 선생(애국장)은 일제강점기 충남‧경기 남부권에서 금광으로 잘 알려진 충남 천안군 입장면 소재 직산 광산에서 광부로 일하던 중 1919년 3월 동료 광부 100여 명을 이끌고 입장면 양대리 소재 헌병주재소로 쇄도하며 만세 시위를 이끌다 일본 헌병의 총격으로 현장에서 순국하였다. 3·1운동이 지식인의 독립 선언에 그치지 않고 민족 전 구성원의 주도로 이루어진 거족적 독립운동임을 보여준다.
‘김염’이라는 이름으로 더 익숙한 김덕린 선생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외무총장 김규식 선생의 처조카로, 중국에선 ‘영화 황제’로 불린 신화적 인물이다. 1924년경 중국 상해에서 고모부 김규식이 운영하는 민족교육기관 남화학원에 재학하며 항일의식을 키우고, 이후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배후 지원하였다. 또한, 일본의 대륙 침략이 본격화된 1930년대 항일의식을 고취하는 다수 영화에 주연 으로 열연하여 자유와 평화를 갈망하는 한‧중 국민에게 큰 용기를 심어주었다.
최준례 여사는 김구 선생의 부인으로, 1904년 김구 선생과 결혼한 이래 1911년 조선총독부가 황해도에서 활동하는 독립운동가들을 탄압하기 위해 ‘안악사건’을 날조하여 남편 김구 선생을 체포하자 4년간 옥바라지에 나서는 한편 안악군 소재 안신여학교 교사로 여성 계몽 활동에 앞장섰다. 또한, 1920년 중국 상해 망명 이후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인인 남편의 활동을 지원하면서 일본으로부터 ‘불온한 조선인’으로 지목되어 감시를 받기도 하였다.
이번 독립유공자 포상은 국가보훈부의 3·1운동시 피살자 명부, 범죄인명부 등 독립운동 자료의 수집과 더불어 현지 조사를 통해 일궈낸 결실로평가된다. 또한, 그간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던 문화 인물, 여성, 노동자 등을 포상함으로써 한국 독립운동사를 좀 더 입체적으로 조명할 수 있게 되었다.
올해 제81주년 광복절을 맞아 포상된 283명 중 건국훈장은 65명(애국장 19, 애족장 46), 건국포장은 29명, 대통령표창은 189명이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올해 광복절까지 총 1만 9,059명이 독립유공자로 포상되었고, 이 가운데 건국훈장 1만 1,999명, 건국포장 1,600명, 대통령표창 5,460명이다.
권오을 국가보훈부 장관은 “제81주년 광복절을 맞아 독립을 위해 헌신한 분들을 독립유공자로 포상할 수 있게 되어 매우 뜻깊게 생각한다”면서 “국가보훈부는 앞으로도 한 분의 독립운동가라도 더 찾아내어 포상함으로써, ‘특별한 희생, 특별한 보상’이라는 기조 아래 독립을 위해 일신을 돌보지 않고 온몸을 던진 선열의 숭고한 희생정신이 국민과 미래세대에게 온전히 기억·계승될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하겠다”라고 밝혔다.
제81주년 광복절 계기를 맞아 포상될 주요 인물의 독립운동 공적은 다음과 같다.
❖ 직산 광산 광부로 입장면 만세 시위를 이끈 김영호·김세철·남기석 선생(애국장)
(공적) 세 분은 모두 본적이 미상이고, 1919년 당시 충남권에서 금광으로 유명했던 직산 광산에서 광부로 일하였다. 1919년 3월 28일 동료 광부 100여 명을 이끌고 충남 천안군 입장면 양대리 소재 헌병주재소 앞으로 쇄도하며 만세 시위를 주도하다 일본 헌병의 총격으로 현장에서 순국하였다.
(의미) 열악한 환경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광부로, 일본군의 무자비한 탄압이 목전에 임박한 상황에서도 시위 대열을 이끈 사실은, 3.1운동이 지식인의 선언에 머물지 않고 민족 전 구성원의 주도 아래 이루어진 거족적 독립운동임을 다시금 일깨워준다. 한편, 지금으로부터 70여 년 전인 1950년 양대초등학교 앞에서는 김영호 선생 등 순국자 3인의 영령을 위로하고 독립 정신을 기린 기념식이 열린 것으로 확인되어 지역민들의 남다른 역사의식을 보여준다.
(포상) 충남 지역 향토사 연구자 임명순 씨가 포상을 신청한 이후 국가보훈부가 3.1운동시 피살자 명부에서 세 분의 성명과 공적을 찾아냄으로써 포상의 단서를 발견했고, 현지 주민 구술 채집 및 현지 전문가 자문도 거쳤다. 정부는 광부 시위를 이끌고, 현장에서 피살 순국한 공로를 인정하여 김영호‧김세철‧남기호 선생을 건국훈장 애국장에 포상하였다.
❖ 교사로 학생과 노동자들에게 항일의식을 설파한 김경출 선생(애국장)
(공적) 김경출 선생은 경남 울산 출신이다. 1933년 4월경 부산에서 부산공립보통학교 교사 재직 중 동료들과 비밀결사 ‘적색 교육 노동자 협의회’에 가입하여 보통학교 아동들에게 작문 시간을 이용하여 조선총독부가 발행한 교과서 내용과 달리 식민지 현실의 참혹함을 설명하고, 자택에서 등사판을 이용해 공장 노동자들의 항일의식 고취를 위한 선전물 약 400부를 인쇄한 후 배포하다 체포되어 징역 2년 6월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의미) 이 사건은 경남 각지 보통학교 소속 현직 교사 13명 등 20여 명이 재판에 넘겨진 사건이었다. 식민지 한국의 초등 교육계에선 처음 파악된 대규모 항일교육 비밀결사로, 조사에 참여한 경찰들도 실체를 알고 아연실색할 정도였다. 선생은 교사로서 자신의 학생들에게 식민지 현실을 낱낱이 알리고 자택에선 선전물 제작을 주도할 정도로 핵심 인물로 활약하였다. 또한, 1936년 출옥 이후에도 독립운동의 뜻을 굽히지 않아 1943년 재차 신사상을 전파하다 체포됨으로써 독립운동 세력에게 가장 엄혹했던 시기에 교사라는 안정된 직업에 안주하지 않고 독립운동 최전선에 뛰어든 인물로 평가된다.
(포상) 국가보훈부 발굴로 포상이 이루어졌다. 정부는 교육 및 노동 현장에서 식민지 현실을 타개하기 위한 활동을 주도하고 장기간 옥고를 치른 공로를 인정하여 김경출 선생을 건국훈장 애국장에 포상하였다.
❖ 유치장 흙벽에 ‘조선 독립 만세!’라고 새기고 장렬히 순국한 이천홍 선생(애국장)
(공적) 이천홍 선생은 서울 출신이다. 선생은 1944년 10월 일본 히로시마에서 미츠비시 중공업 히로시마조선소 공원(工員)으로 강제 동원되자 일본의 전쟁 패전이 한국의 독립을 실현할 최적의 길이라고 판단하고 같은 처지에 있는 한인 동료 공원들과 독립운동 방안을 협의하다 1945년 4월 체포되었고, 같은 해 6월 경찰서 유치장에 간수가 순찰하는 틈을 타 유치장 흙벽에 “조선 독립 만세”, “경성, 미츠비시 조선소에 강제 동원된 사상범 국본천홍(선생의 창씨명)”이라고 새기고 자결 순국하였다.
(의미) 일본 교토에서 상업학교를 졸업하고 도쿄에서 주오(중앙)대학 예과에 입학한 수재로, 일본이라는 폭력적인 제국이 명령하면 따라야 하는 식민지의 한계를 자각했음에도, 식민지인의 현실을 비관하기보다는 독립운동을 통해 식민지 장애를 타파하고자 적극 노력하였다. 험난했던 생애를 끝내고 생을 마감하는 순간 ‘독립’이란 두 글자를 가슴 속에서 꺼냈다는 점은, 일제강점기 한국인에게 ‘독립’이 허구적 이상이 아닌 실존적 생명이었음을 다시금 일깨워준다.
(심사) 국가보훈부(독립기념관) 발굴로 포상이 이루어졌다. 정부는, 일본에 강제 동원된 열악한 처지에도 역시 강제 동원된 동료들과 구체적인 독립운동 방안을 협의하고, 체포 이후 생의 마지막 순간 독립을 향한 강한 열망을 당당하게 밝히고 순국한 공로를 인정하여 이천홍 선생을 건국훈장 애국장에 포상하였다.
❖ 항일영화에서 열연하며 독립정신을 전파한 ‘영화 황제’ 김덕린 선생(애족장)
(공적) 김덕린 선생은 ‘김염’이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서울 출신으로 중국 상해에서 활동하였다. 1924년경 중국 상해에서 고모부인 김규식 선생이 운영하던 남화학원에 재학하며 항일의식을 키우고, 이후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배후 지원하였다. 1930년대 일본의 대륙 침략이 본격화되자 다수의 항일영화에 주연 배우로 열연하여 한중 양국인에게 독립정신을 전파하였다.
(의미) 선생은 중국에서 ‘영화 황제’로 불린 신화적인 배우였다. 수려한 외모와 뛰어난 연기로 중국인들을 열광케 하였다. 무엇보다 1931년 만주사변 개시로 일본의 대륙 침략이 본격화되자 다수의 항일영화에 주연 배우로 열연하여 자유와 평화를 갈망하는 한‧중 국민에게 용기를 불어넣었고, 일본군의 상해 점령 기간에는 일본군의 홍보 영화 출연 강요에도 일절 응하지 않음으로써 불굴의 항일의식을 보여주었다.
(포상) 외종손녀 박규원 씨가 포상을 신청하고, 국가보훈부가 일본‧중국 소재 자료를 대거 발굴하였다. 정부는 중국 상해에서 남화학원에 재학하며 항일의식을 키우고, 이후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배후 지원하였으며, 1930년대 다수의 항일영화에 출연해 한중 양국의 독립운동 연대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하여 김덕린 선생을 건국훈장 애족장에 포상하였다. 앞으로도 다양한 영역에서 이루어진 독립운동가의 포상에 심혈을 기울일 계획이다.
❖ 여성 계몽운동에 앞장서고 임시정부 활동을 지원한 최준례 여사(애족장)
(공적) 최준례 여사는 황해도 신천 출신이다. 1904년 김구 선생과 결혼하고, 1911년 남편 김구 선생이 ‘안악사건’으로 투옥되자 4년간 옥바라지를 하는 한편 안악군 소재 안신여학교 교사로 재직하며 여성 계몽운동에 앞장섰다. 또한, 1920년 중국 상해 망명 이후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인의 부인으로 독립운동을 측면 지원하였으며, 일본 외무성으로부터 ‘불온한 조선인’으로 지목받았다.
(의미) 여사는 1920년 네 살 난 어린 아들을 데리고 중국으로 건너가 남편의 독립운동을 돕다 1924년 폐렴으로 “파란 많은 일생”을 마감하였다. 1920~1924년은 임시정부의 전성기이자 남편 김구의 정치적 입지가 높아진 시기인 만큼 여사가 감당해야 할 책무도 커졌다. 1924년 여사의 사망 직후 남편 김구 선생은 검소한 장례를 희망했으나, 동지들의 강한 권고와 후원으로 비교적 성대한 장례가 치러졌다. 임시정부를 지탱한 여성과 부녀자들의 드러나지 않은 고투에 대한 임시정부 지도자들의 ‘무언(無言)의 찬사’로 이해할 수 있다.
(포상) 국가보훈부 발굴로 포상이 이루어졌다. 국가보훈부는 최근 독립운동을 지원한 여성에 대해서도 포상을 확대하여 앞서 이혜련(안창호 부인), 허은(이상룡 손부), 박순부(김동삼 부인) 여사 등을 포상한 바 있다. 정부는 여성 계몽 활동에 앞장서고 남편 김구 선생의 임시정부 활동을 지원한 공로를 인정하여 최준례 여사를 건국훈장 애족장에 포상하였다.
❖ 경남 진주에서 3.1운동 2주년 기념 만세 시위를 기획한 최경진 선생(건국포장)
(공적) 최경진 선생은 경남 진주 출신이다. 1920년 8월경 진주에서 20세 안팎의 학생과 청년이 조직한 비밀결사 진주소년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1921년 3월 진주소년운동회가 새롭게 결성되자 동참하였다. 특히 3.1운동 2주년인 음력 2월 18일(양력 3월 27일) 10대 후반의 학생으로 3.1운동 2주년 기념 만세 시위를 기획하다 체포되어 징역 7월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의미) 진주소년회와 진주소년운동회가 3.1운동 2주년 시위를 준비한 사실에서, 3.1운동 이후 학생과 청년의 독립에 대한 열망이 커지면서 청년의 권익 향상과 민족의 독립을 추구하는 청년운동이 활발히 진행되었고, 경남 지역의 중심지 중의 하나인 진주에서도 예외가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선생은 중국 상해의 대한민국 임시정부로 망명하여 독립운동을 지속할 방안을 논의하는 등 국내의 청년운동은 국외의 독립운동과 연결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포상) 국가보훈부(독립기념관)의 발굴로 포상이 이루어졌다. 정부는 10대 후반의 어린 나이에도 3.1운동 2주년 시위를 기획하고 중국 망명을 통해 독립운동을 시도한 공로를 인정하여 최경진 선생을 건국포장에 포상하였다. 아울러 같은 활동으로 김경홍 선생을 건국포장, 박우삼세 선생을 대통령표창에 포상하였다
정부 포상자 명단(283명)
□ 건국훈장 애국장 (19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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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용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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郭龍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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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항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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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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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庚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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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항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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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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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奎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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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주방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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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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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瑞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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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방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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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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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世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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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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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여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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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汝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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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령방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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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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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永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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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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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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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洙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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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항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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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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南基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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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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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종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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安鍾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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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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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병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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劉秉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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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방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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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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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允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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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주방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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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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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俊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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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주방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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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천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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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天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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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방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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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종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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張鐘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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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주방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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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석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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鄭錫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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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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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일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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崔壹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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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항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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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봉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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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奉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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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방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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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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許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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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방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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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국훈장 애족장 (46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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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명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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康命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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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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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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姜貞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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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주방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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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희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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姜喜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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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령방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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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수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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孔壽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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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항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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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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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基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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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방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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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덕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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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德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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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방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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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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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東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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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방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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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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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相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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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방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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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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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殷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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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방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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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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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泰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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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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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상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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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尙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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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항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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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성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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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成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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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방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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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순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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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順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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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주방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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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용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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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庸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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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항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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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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朴경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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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령방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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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득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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朴得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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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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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신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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朴信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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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방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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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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朴容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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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방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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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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朴應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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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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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응포
|
朴應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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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방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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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창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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方昌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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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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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진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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白鎭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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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주방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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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수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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孫壽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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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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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태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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宋太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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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방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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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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吳榮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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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방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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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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禹寅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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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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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중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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禹重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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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주방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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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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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泳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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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항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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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금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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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金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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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주방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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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봉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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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鳳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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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방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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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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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元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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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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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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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宗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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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방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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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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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鍾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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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시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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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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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千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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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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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홍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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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弘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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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항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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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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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化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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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방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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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필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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鄭必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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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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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주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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曺柱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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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방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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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선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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朱先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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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항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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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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蔡又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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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항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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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동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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崔東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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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방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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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준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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崔遵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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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시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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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창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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崔昌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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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방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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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철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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崔鐵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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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항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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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용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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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用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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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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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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黃炳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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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항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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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국포장 (29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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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승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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權昇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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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시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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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정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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權政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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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주방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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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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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敬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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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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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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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道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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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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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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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聖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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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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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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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永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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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방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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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영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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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英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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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방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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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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朴守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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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주방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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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의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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朴義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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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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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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朴載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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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주방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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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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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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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방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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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학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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白學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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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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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명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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宋明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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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항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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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화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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安和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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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령방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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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건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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嚴建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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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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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철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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吳喆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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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주방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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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우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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劉禹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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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령방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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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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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德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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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주방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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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면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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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冕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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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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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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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益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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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주방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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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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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才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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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항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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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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鄭載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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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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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경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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崔景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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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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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규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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崔圭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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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방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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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동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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崔東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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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방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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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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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舜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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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주방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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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주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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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鑄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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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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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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許萬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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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주방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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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규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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黃奎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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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방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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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통령표창 (189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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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달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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姜達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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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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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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姜方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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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방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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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송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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姜松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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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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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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姜壽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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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주방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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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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姜信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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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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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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姜貞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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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항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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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광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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高光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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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항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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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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高命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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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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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원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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高元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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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방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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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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高在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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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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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도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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孔道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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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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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명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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郭明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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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항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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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익삼
|
郭益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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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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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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具耆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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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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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남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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權南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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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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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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權寧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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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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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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權載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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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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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용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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琴鏞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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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
|
|
김경문
|
金京文
|
(노령방면)
|
|
김공칠
|
金珙七
|
(국내항일)
|
|
김귀영
|
金貴榮
|
(3.1운동)
|
|
김귀용
|
金貴用
|
(국내항일)
|
|
김기선
|
金基旋
|
(노령방면)
|
|
김기옥
|
金基玉
|
(국내항일)
|
|
김동철
|
金東鐵
|
(3.1운동)
|
|
김두현
|
金斗鉉
|
(3.1운동)
|
|
김봉쇠
|
金奉釗
|
(3.1운동)
|
|
김상래
|
金尙來
|
(일본방면)
|
|
김수보
|
金洙甫
|
(3.1운동)
|
|
김영빈
|
金永敎
|
(일본방면)
|
|
김영준
|
金永俊
|
(국내항일)
|
|
김원초
|
金元初
|
(3.1운동)
|
|
김유성
|
金有成
|
(국내항일)
|
|
김재곤
|
金在坤
|
(3.1운동)
|
|
김재동
|
金在錬
|
(3.1운동)
|
|
김재석
|
金在石
|
(3.1운동)
|
|
김재운
|
金在雲
|
(국내항일)
|
|
김점돈
|
金占敦
|
(3.1운동)
|
|
김종만
|
金鍾萬
|
(만주방면)
|
|
김진호
|
金鎭鎬
|
(국내항일)
|
|
김창호
|
金昌鎬
|
(국내항일)
|
|
김쾌성
|
金快成
|
(3.1운동)
|
|
김태문
|
金泰文
|
(3.1운동)
|
|
김한수
|
金漢洙
|
(만주방면)
|
|
남상억
|
南相億
|
(3.1운동)
|
|
남상윤
|
南相胤
|
(3.1운동)
|
|
남칠현
|
南七鉉
|
(학생운동)
|
|
노진국
|
盧鎭國
|
(미주방면)
|
|
명훈식
|
明薰植
|
(학생운동)
|
|
민영두
|
閔泳斗
|
(3.1운동)
|
|
박경문
|
朴敬文
|
(미주방면)
|
|
박관옥
|
朴寬玉
|
(3.1운동)
|
|
박광렬
|
朴光烈
|
(국내항일)
|
|
박성광
|
朴星光
|
(3.1운동)
|
|
박순영
|
朴淳榮
|
(일본방면)
|
|
박순이
|
-
|
(미주방면)
|
|
박억쇠
|
朴億釗
|
(3.1운동)
|
|
박영업
|
朴榮業
|
(국내항일)
|
|
박용수
|
朴龍水
|
(국내항일)
|
|
박우삼세
|
朴又三世
|
(국내항일)
|
|
박원오
|
朴元五
|
(국내항일)
|
|
박종란
|
朴鍾蘭
|
(학생운동)
|
|
박찬성
|
朴燦星
|
(3.1운동)
|
|
배동희
|
裵東希
|
(일본방면)
|
|
백곤차
|
白곤차
|
(미주방면)
|
|
백선기
|
白善基
|
(3.1운동)
|
|
서정표
|
徐廷杓
|
(3.1운동)
|
|
송명심
|
宋明心
|
(국내항일)
|
|
송옥헌
|
宋玉憲
|
(학생운동)
|
|
송홍구
|
宋洪九
|
(일본방면)
|
|
신만조
|
申萬祚
|
(3.1운동)
|
|
심삼만
|
沈三萬
|
(3.1운동)
|
|
심의태
|
沈宜台
|
(3.1운동)
|
|
안순보
|
安順甫
|
(3.1운동)
|
|
안용균
|
安容均
|
(국내항일)
|
|
안인순
|
安仁淳
|
(3.1운동)
|
|
양붕진
|
梁鵬進
|
(국내항일)
|
|
어인손
|
魚寅孫
|
(국내항일)
|
|
오동업
|
吳同業
|
(국내항일)
|
|
오정환
|
吳貞煥
|
(3.1운동)
|
|
오철영
|
吳哲泳
|
(3.1운동)
|
|
오호근
|
吳浩根
|
(국내항일)
|
|
오화근
|
吳華根
|
(3.1운동)
|
|
우홍기
|
禹洪基
|
(만주방면)
|
|
유삼두
|
兪三斗
|
(국내항일)
|
|
유용호
|
劉龍好
|
(3.1운동)
|
|
유재하
|
劉在夏
|
(3.1운동)
|
|
유진권
|
兪鎭權
|
(3.1운동)
|
|
육유종
|
陸有鍾
|
(3.1운동)
|
|
윤경의
|
尹敬誼
|
(국내항일)
|
|
윤덕수
|
尹德洙
|
(3.1운동)
|
|
윤수병
|
尹守炳
|
(일본방면)
|
|
은숙정
|
殷淑貞
|
(국내항일)
|
|
이건우
|
李建祐
|
(3.1운동)
|
|
이경렬
|
李景烈
|
(3.1운동)
|
|
이광하
|
李光夏
|
(3.1운동)
|
|
이기춘
|
李起春
|
(3.1운동)
|
|
이민승
|
李敏承
|
(3.1운동)
|
|
이봉수
|
李鳳秀
|
(미주방면)
|
|
이사득
|
李士得
|
(3.1운동)
|
|
이석도
|
李碩道
|
(3.1운동)
|
|
이석범
|
李錫範
|
(3.1운동)
|
|
이석영
|
李錫永
|
(학생운동)
|
|
이순광
|
李順光
|
(3.1운동)
|
|
이순학
|
李順學
|
(3.1운동)
|
|
이영선
|
李英善
|
(3.1운동)
|
|
이용산
|
李龍山
|
(3.1운동)
|
|
이원석
|
李元石
|
(3.1운동)
|
|
이위도
|
李渭道
|
(국내항일)
|
|
이이석
|
李利錫
|
(3.1운동)
|
|
이인곡
|
李仁谷
|
(일본방면)
|
|
이종석
|
李鍾錫
|
(3.1운동)
|
|
이종엽
|
李鍾燁
|
(국내항일)
|
|
이종오
|
李鍾五
|
(3.1운동)
|
|
이종은
|
李鍾殷
|
(3.1운동)
|
|
이종태
|
李種泰
|
(3.1운동)
|
|
이창식
|
李昌植
|
(3.1운동)
|
|
이춘원
|
李春元
|
(3.1운동)
|
|
이현찬
|
李鉉璨
|
(학생운동)
|
|
이형일
|
李炯一
|
(일본방면)
|
|
이화순
|
李和順
|
(3.1운동)
|
|
임봉두
|
林鳳斗
|
(국내항일)
|
|
임성기
|
林成基
|
(미주방면)
|
|
임창배
|
林昌培
|
(3.1운동)
|
|
장억규
|
張億奎
|
(일본방면)
|
|
장후경
|
張厚敬
|
(미주방면)
|
|
전백삼
|
田伯三
|
(3.1운동)
|
|
전성필
|
全晟弼
|
(3.1운동)
|
|
전호봉
|
田浩鳳
|
(3.1운동)
|
|
정광숙
|
鄭光淑
|
(3.1운동)
|
|
정남도
|
-
|
(미주방면)
|
|
정대림
|
丁大林
|
(3.1운동)
|
|
정동순
|
鄭東順
|
(3.1운동)
|
|
정병희
|
鄭秉喜
|
(3.1운동)
|
|
정영서
|
鄭永瑞
|
(미주방면)
|
|
정은경
|
鄭殷景
|
(3.1운동)
|
|
정인주
|
鄭仁柱
|
(3.1운동)
|
|
정지학
|
鄭址學
|
(학생운동)
|
|
정한보
|
鄭漢甫
|
(3.1운동)
|
|
정한희
|
鄭漢熙
|
(국내항일)
|
|
정흥봉
|
鄭興鳳
|
(미주방면)
|
|
정희신
|
鄭喜信
|
(3.1운동)
|
|
제재환
|
諸在煥
|
(일본방면)
|
|
조덕규
|
趙德奎
|
(3.1운동)
|
|
조덕희
|
趙德熙
|
(3.1운동)
|
|
조순교
|
趙順敎
|
(3.1운동)
|
|
조영옥
|
曺永玉
|
(국내항일)
|
|
조용정
|
趙容貞
|
(3.1운동)
|
|
조용조
|
趙用祚
|
(국내항일)
|
|
조운옥
|
曺雲玉
|
(국내항일)
|
|
조종학
|
趙鍾學
|
(3.1운동)
|
|
조준이
|
趙俊伊
|
(국내항일)
|
|
조창교
|
趙昌敎
|
(3.1운동)
|
|
조하영
|
趙夏英
|
(학생운동)
|
|
주병권
|
朱秉權
|
(국내항일)
|
|
지명한
|
池明漢
|
(국내항일)
|
|
진갑선
|
陳甲先
|
(학생운동)
|
|
차봉구
|
車鳳九
|
(3.1운동)
|
|
최병일
|
崔炳一
|
(3.1운동)
|
|
최선경
|
崔先敬
|
(3.1운동)
|
|
최성춘
|
崔成春
|
(3.1운동)
|
|
최윤호
|
崔潤好
|
(3.1운동)
|
|
최오섭
|
崔五燮
|
(3.1운동)
|
|
최재훈
|
崔在勳
|
(3.1운동)
|
|
최정렬
|
崔定烈
|
(3.1운동)
|
|
최준홍
|
崔俊洪
|
(국내항일)
|
|
최한종
|
崔漢宗
|
(3.1운동)
|
|
최홍주
|
崔鴻周
|
(만주방면)
|
|
하일청
|
河一靑
|
(미주방면)
|
|
한계성
|
韓繼聖
|
(3.1운동)
|
|
한금동
|
韓今同
|
(3.1운동)
|
|
한만봉
|
韓萬封
|
(3.1운동)
|
|
한명석
|
韓明錫
|
(3.1운동)
|
|
한병철
|
韓秉喆
|
(3.1운동)
|
|
한봉교
|
韓鳳敎
|
(3.1운동)
|
|
한윤희
|
韓允熙
|
(학생운동)
|
|
한일영
|
韓壹永
|
(3.1운동)
|
|
허인오
|
許仁五
|
(일본방면)
|
|
허천손
|
許天孫
|
(3.1운동)
|
|
현상학
|
玄相學
|
(미주방면)
|
|
현수명
|
玄壽命
|
(3.1운동)
|
|
홍종필
|
洪宗弼
|
(3.1운동)
|
|
황군성
|
黃君成
|
(3.1운동)
|
|
황옥동
|
黃玉東
|
(3.1운동)
|
|
황옥석
|
黃玉石
|
(3.1운동)
|
|
황인배
|
黃仁培
|
(국내항일)
|
|
황인채
|
黃仁采
|
(국내항일)
|
|
황종석
|
黃宗錫
|
(3.1운동)
|
|
황태하
|
黃泰夏
|
(국내항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