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년 고사를 지내다 보니 바다가 육지가 되었구나"

[우음도 당제]를 다녀오다

최영숙 | 기사입력 2009/03/08 [14:35]

"300년 고사를 지내다 보니 바다가 육지가 되었구나"

[우음도 당제]를 다녀오다

최영숙 | 입력 : 2009/03/08 [14:35]

 

▲ 우음도 당제     © 최영숙

 
2009년 3월 7일 오전 10시부터 화성시 우음도에서 300년 넘게 뱃길의 안녕과 마을의 평안을 위하여 매년 음력 3월 전에 각시당과 군웅당 일대에서 지내왔던 우음도 당제가 열렸다

▲ 우음도 마을 풍경     © 최영숙

 
경기도 화성시에 있는 우음도는 공중에서 보면 섬의 모습이 소가 누워있는 형상이며 소가 우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고 해서 우음도라고 했다고 한다. 이 섬에서는 특히 소가 잘 번식된다고 했다.
 

▲ 우음도 마을 입구의 장승     © 최영숙

 
우금도 마을입구에 들어서자 장승과 동그라미가 표시된 주택이 먼저 반겼다. 요즘은 장승이 세워진 마을이 드물어서 반가웠다.

▲ 우음도 당제 윤영배 보존회장 잔을 바치다     © 최영숙

 
점심식사가 끝나고 1시부터 본행사인 군웅당 굿이 시작되었다. 예전에는 마을 주민들이 돌아가면서 당주를 했지만 이제는 우음도 당제 보존회장 윤영배 씨가 맡아서 한다. 당주가 제주를 올리는 것으로 우음도 당제가 시작되었다.

▲ 전영분(81) 님 잔을 바치고 기원하다     © 최영숙

 
박수 무당 김진섭 씨가 군웅거리 굿을 진행했다. 군웅거리는 땅에 남아 헤매고 다니며 사람들을 괴롭히는 죽은 이의 혼백을 위로하고 원혼을 풀어주는 거리라고 한다.  마을에서 당제에 참석한 최고령자인 전영분(81) 할머님이 깊은 절을 드렸다.

▲ 군웅거리     ©최영숙

 
박수무당 김진섭 씨가 신장거리를 하면서 오방산정기를 펼치면서 하늘로 치솟았다. 사람들은 기를 뽑아 올해의 운세를 점쳤다. 

운을 점치면서 마을을 위해 기원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300년 고사를 지내다 보니 바다가 육지로 되었구나. 도당님이 우음도 사람들 보상 많이 받게 하시고 어디로 가든지 모두 잘 살게 빌겠다”며 축원을 했다. 해학 넘치는 박수무당의 말을 들으면서 세상사 모순이라는 생각이 스쳤다. 

▲ 화성면장 술잔을 받다     ©최영숙

 
송산그린시티와 유니버셜테마파크가 들어서면 이곳 우음도는 공원으로 개발 될 것이라고 한다. 세상이 천지개벽해서 바다가 육지가 되었는데 정작 우음도 당제를 지낸 이곳 주민들은 모두 떠나고 외지사람들의 공원이 되는것이다. 
 
이곳은 풍부한  자원을  간직한 바다를  메우고  육지가 되었다.  개발이라는 미명 하에  시대를 엇나간 곳이 이곳 우음도가 아닌가 싶었다. 그 와중에 밀려나는 것은 300년 고사를 지낸 이곳 주민들이었다.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었다.

이때  누군가 "아니, 마을 사또가 왜 안 나와" 며 화성면장을 불렀다.  생각은 다시 굿판으로 향했다.

▲ 경기 민요를 듣다     © 최영숙

 
우음도 당제는 독특했다. 중간 중간에 개량한복을 입은 경기민요 57호 전수자 허지숙, 안광숙 씨의 민요가 이어졌다. ‘창부’는 광대의 신을 말하며 ‘창부거리’에서 어리고 아름다운 무녀를 골라 한 판 노는 것에서 유래한  것이 창부타령이다. 이제는 무녀 대신 경기민요 57호 전수자들이  ‘창부타령’, ‘태평가’, 뱃놀이‘등을 불러서 흥을 돋았다. 

방금 전까지 신장거리를 하면서 신명난 굿판을 열었던 박수무당 김진섭 씨는 개량 한복을 입고 당주와 춤을 추면서 흥을 돋았다. 다른 곳에서는 잘 볼 수 없는 우음도 당제의 모습이었다.

이렇게 변한 것은 2년 전부터라고 했다. 마을주민들과 어울리는 것도 좋았지만 앞서 치뤄진 우음도 당제의 모습을 보지 못하고 이 풍경만 보면 그냥 어느 마을 노인잔치에 온 느낌이 들었다. 조심스러운 부분이었다. 
 
'우음도 당제 보존회'까지 있는 우음도 당제는 격식에 맞게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겨진 자료들과 생존해 계신 어른들의 자문을 구해서 최대한 옛격식에 맞게 해야 옳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이 더욱 보존되어야할 가치와 당위성을 스스로 획득하는 것이다.
 
좀 더 세심하게 신경써야 할 부분이다.

▲ 무덤가에서 쉬어가는 사람들     © 최영숙

 
우음도 당제가 잠시 쉬는 동안에는 참석한 사람들은 삼삼오오 무덤가에서 따스한 봄볕을 쬐면서 한담을 나누었다. 무덤과 함께 있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의 인생은 잠시 소풍 나온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인생이 따스한 봄볕이길 바라는 것은 인지상정일 것이다. 이 따스한 곳에 묻힌 저 무덤 속 주인들의 생은 어땠을까.
 

▲ 대감거리를 하다     © 최영숙

 
대감놀이는 박수무당 고성주씨가 맡아서 했다. “한평생 이곳에 살아서 손때 안 묻은 데 없고 자리 없건만 이제는 나라의 법도대로 다른 곳으로 떠나야 한다니, 이제 언제 이 당주들을 만날 건가. 부디 이 당제가 문화예술로 발전하여 당주님, 계주님, 당원들 그리고 모두 애쓰는 분들 다시 뵙고 모두들 소원성취하시라”고 기원했다.

▲ 우음도 당제에 참석한 사람들 풍경     © 최영숙

 
박수무당 고성주 씨는 당제에 참석한 사람들에게 한잔씩 술을 나눠주며 축원을 했다. 흥겹게 춤을 추고 있는 차영인(55) 씨와 복채를 내놓은 사람, 술을 따르는 이와 술잔을 건네는 이가 섞인 이 우음도 당제는 올해 마지막 당제이면서도 마을 사람들을 하나로 엮어갔다.


▲ 우음도 당제의 선왕거리     © 최영숙

 
선왕거리를 마지막으로 우음도 당제는 끝났다. 

▲ 우음도 당제를 마침     © 최영숙

 
산불을 염려해서 약식으로 한 장만 태우고  남은 소지가  북채에 그대로 걸려 있었다. 이제는 바다도 육지에 모두 갇히고,  주민들은 떠나고,  배 한 척 없이 진행하는 오늘날의 우음도의 당제를 보는 듯해서 씁쓸했다.

▲ 우음도 당제 접수자 명당     © 최영숙

 
우음도 당제에 접수된 명단을 보면 현재 이곳 우음도의 현재 상황이 보이는 듯했다.

‘고정 이장 장희석 5만’, ‘경기남부지사제일감정평가법인 10만’, ‘이주대책위원장 윤성준 5만’, ‘궁평어촌계 정승만 5만’, ‘경기남부수협조합장 조성원 20만’, ‘화성리 농민회 5만’ 등 이곳 마을과 현재 민첩하게 연결된 단체나 사람들의 관계가 보였다. 


▲ 거모동까지 배들이 늘어섰다고 설명하는 최영식(50) 씨.    ©최영숙

 
우음도에 태어나고 자라  우음도에 깊은 애정을 갖고 있는 최영식(58) 씨를 따라 마을의 옛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었다.

예전에 우음도 당제를 지내면 충청도 당진과 강화도 배들도 가던 길을 멈추고 이곳에서 당제를 지냈다고 한다. 배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우음도 당제를  할 때는 이곳 우음도에서 지금의 시흥시 거모동까지 배에서 배로 건너서 갈 수 있었다고 손으로 가리키며 설명했다. 이제는 갈대 밭으로 변한 옛날 저 너른 바다에 배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었을 풍경은 상상만으로도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 우음도 당집 모습     © 최영숙

 
우음도 당집인 이곳에는 주위에 향나무들이 그득했지만 군부대가 주둔할 당시 향나무들을 모두 베어서 다른 것들을 만들었다고 했다. 그런데 얼마 후그 향나무를 베었던 사람들의  나쁜 소식들이 전해졌다. 그래서 이곳에서는 함부로 나무를 베지 못했다고 한다.

▲ 콩깍지에 숨어 물고기 길을 망보던 곳     © 최영숙

 
이곳은 물고기를 찾는 곳이라고 한다. 뱃길에 나가기 전날  밤, 이곳에서  귀신이 침범하지 못한다는 콩깍지 속에 들어가 바다를 보고 있으면 도깨비불이 깜빡깜빡하고 돌아다니다가 멈추는 곳이 고기가 많은 곳이라고 한다. 다음 날 바다에 나가서 그 장소를 찾으면 생선을 많이 잡았단다. 찰흑같은 밤에 콩깍지 속에서 바다를 보고 있었을 어부의 모습이 보이는 듯했다. 마치 전설따라삼천리를 듣는 느낌이었다.

마을이야기를 들으면서 이 마을에 살았던 분의 증언이 얼마나 귀한 것인가를 생각하게 했다
 

▲ 군인막사가 흑염소 목장이 되다     © 최영숙

 
당집을 조금 내려오면 예전에는 군 막사로 쓰였던 곳이 군인들이 철수하고 흑염소 목장지로 바뀐 곳이 있다. 이곳이 군부대였다는 것은 철조망과 얼룩으로 표시된 군막사의 모습뿐이었다. 시간이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거꾸로 흐르는 느낌이 들었다.
 

▲ 우음도에서 보이는 각시당     © 최영숙

 
멀리 보이는 검은 섬이 각시당이라고 했다. 이 각시당에는 우물이 하나 있다고 했다. 바가지 우물이라고 하는데 바람이 안 불어도 물이 흔들리고 한 바가지 떠내면 다시 차는 신묘한 우물이 있었다고 했다. 그러나 군초소가 들어오면서 지금은 파괴되었다고 했다. 그 마을의 문화를 세세히 모르는 사람들이 무심히 파괴하는 전설속의 장소들이 얼마나 많을까 싶었다.
 

▲ 철거 표시된 마을의 주택들     © 최영숙

 
동그라미가 그려진 건물들은 철거대상이라는 표시였다. 아라비안나이트를 읽는 기분이 들었다. 알리바바와 40인의 도둑에서 집에다 표시했던 동그라미 표식이 이곳에서는 철거를 표시했다. 이제 곧 이 주택들은 철거될 것이고 이곳에 뿌리를 내리고 살았던 사람들은 모두 이곳을 떠나라는 표시였던 것이다.  이곳에 대대로 살아왔던 사람들에겐 서슬퍼런 표시였다.
 

▲ 고정초등학교 분교     © 최영숙

 
총 47회 119명의 졸업생을 배출한 고정초등학교 분교는 1997년 9월 3일 고정초등학교 통폐합으로 이미 폐교된지 오래되었다. 그 어린이들은  자라서 어디서 살아가고 있을까 궁금해졌다. 이곳은 이주 대상이어서 오순도순 살던 사람들이 뿔뿔이 흩어져야한다.  심란한 생각이 들었다. 
 

▲ 우음도 당제를 지내다     © 최영숙

 
올 때는 단순히 우음도 당제를 보러왔다.  하지만 최영식(58) 씨와 마을 사람들에게서  살아 숨 쉬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우음도가 서서히 정이 들어갔다. 무언가를 알아간다는 것이 그 대상을 사랑하게 되는 첫걸음이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 섬이었다. 어디선가 소의 울음이 들리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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