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수환 추기경 2009년 2월 16일 선종하다 © 최영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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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2월 16일 오후 6시 12분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이 향년 87세로 하느님 곁으로 돌아갔다.
▲ 명동성당을 중심으로 건물을 몇 겹 두른 조문 행렬 © 최영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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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환 추기경은 시대적 격변과 정권의 탄압, 계층간의 갈등이 많은 우리사회에서 종교, 계층을 초월해 모든 국민의 존경을 받은 큰 어른이었다. 강한 자에게 강하고 약자에게는 한없이 약한 마음을 가진 시대의 어른이었다.
그분을 떠나 보내는 깊은 아쉬움은 사람들을 명동성당으로 모이게 했다. 김수환 추기경의 조문행렬은 3시간에서 4시간을 기다리게 하는 3km가 넘는 줄을 만들었다. 명동의 건물들을 사람들이 둘러싸고 인파로 이어진 길들은 다시 겹쳐졌다.
한 사람이 이렇게 많은 조문객을 부르는 힘은 무엇일까 생각하게 했다.
▲ 고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을 조문하기 위해 온 김 마리아 ©최영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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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에서 온 김점숙 마리아(57)는 “너무 쓸쓸하고 허전하다. 천국에 가셨지만 너무나 섭섭하다”며 묵주기도를 하며 돌아가신 분을 위해 기도했다. 수원에서 올라왔다는 김모니카(75)는 “추기경님은 말로 표현 할 수 없을 정도로 위대하신 분이시다. 아쉬운 것은 편한 마음으로 떠나지 못하게 나라가 어수선할 때 돌아가셔서 마음이 아프고 좀 더 우리와 함께 계셨으면 좋았을텐데 너무 아쉽다”고 말했다.
또한 해남에서 올라온 개신교 장로라고 자신을 소개한 최형윤(63) 씨는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조문을 표하는 것이 “정당하다. 그분의 생애는 위대하다.”라고 했다. 올해 미대를 들어갔다는 20대 청년에서 부모님을 따라 온 10대 자녀들까지 연령의 구분없이 많이 사람들이 앞으로 앞으로 명동 성당으로 발길을 옮겼다.
▲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 선종을 알리는 조기가 명동성당에 걸리다 © 최영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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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파를 따라 도착한 명동성당에는 김수환 추기경의 조기가 걸렸다.
2월 추위에 3시간에서 4시간을 기다린 참배객들이 김수환 추기경의 시신이 안치된 명동성당 안으로 들어섰다.
참배를 끝낸 사람들은 너무 아쉽고 마음이 허전하다는 말들을 했다. 1시간마다 거행되는 미사와 조문을 위해 명동성당으로 들어서는 사람들의 긴 줄은 좀처럼 줄어들 줄 몰랐다.
시간이 지나면서 오후들어 인파들이 점점 늘어나자 경찰기동대들의 인원도 더욱 보강되었다.
그러나 인파가 많은 것에 비해 조문행렬은 지극히 조용하면서도 질서가 있었다. 기도를 하면서 가는 사람들, 책을 보는 젊은 사람, 가위바위보를 하고 가는 어린이들까지 마치 오랜 세월을 함께 살았던 할아버지를 보러 가는 사람들 같았다.
“혜화동 할아버지”라고 불렸던 생전의 당신의 모습이 보이는 듯했다. 사람들은 경건했고 차분했다. 번잡함속에서도 차분한 질서가 주는 평화로움마저도 느낄 수 있었다.
명동성당에 가기 전에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이 잠들 천주교 용인공원 묘역을 다녀왔다.
▲ 김수환 추기경이 잠들 천주교용인공원묘지 성직자 묘역 © 최영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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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20일 오전 10시 명동성당에서 장례미사를 봉헌한다. 장지는 천주교용인공원묘지 내 성직자 묘역으로 정해졌다. 2009년 2월 18일 미리 찾은 김수환추기경이 잠들 용인 공원묘지는 고요했다.
특이하게 이동 통신 차량들이 각 회사별로 있었다. 이유를 물어보니 이곳은 휴대폰이 열리지 않는다고 했다. 20일 김수환추기경의 장례에 통신장애가 없게 이동 통신 차량들이 임시 기지국을 열고 있었다. 이동 통신차들이 있는 것 외에는 아직 이곳은 고요하고 평화로웠다.
용인공원묘지의 성직자묘역에서 김수환 추기경이 잠들 오른쪽의 빈 묘역을 바라보았다.
한 사람의 생애를 제대로 말하려면 생을 마쳤을 때를 봐야 한다고 했다.
종파를 초월한 종교계 인사들과 정치인과 경제인들 조문과 3시간 4시간을 기다리고도 묵묵히 김수환 추기경의 마지막을 배웅하려는 종교, 나이, 계층을 초월한 사람들의 조문행렬은 그분이 어떻게 살았는지를 말없이 말해주고 있었다.
민중이 힘들 때 그들과 함께했고 떠나는 순간까지 빈손이었던 분, 마지막 가는 길에 자신의 각막을 기증하여 두 사람이 세상 빛을 보게 하고 훌훌 이 세상을 떠나 하느님의 품으로 돌아갔다.
▲ 두 손을 모은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의 모습 © 최영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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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는 내가 남에게 ‘밥’이 되어줄 때 이뤄진다”라고 했던 김수환 추기경의 마지막 말은 “고맙습니다”였다. 당신이 함께 살아감으로 고마움을 느낀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을텐데 정작 당신은 세상 사람들에게 “고맙습니다”라고 했다. 세상 떠나면서 “고맙습니다”라고 한다면 그 사람이 살았던 생은 진정 아름다운 삶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붉게 물들어가는 저녁 하늘을 보면 마음이 편해진다. 어릴 때 행상 나간 어머니는 산등성이를 기우는 석양을 등지고 돌아오실 때가 많았다. 하늘나라에 가면 보고 싶은 어머니도 만날 수 있을 것 같아 기대된다.” [추기경 김수환 이야기 중에서] 고 말했다.
세상 소풍을 끝낸 김수환 추기경은 평소 꿈꾸던 기대대로 천국에서 어머님을 뵙고 아름다운 석양을 보고 있을 듯했다.
이렇게 모든 국민이 존경할 수 있었던 어른이 있었다는 것이 질곡이 많은 우리의 현대사에서 그나마 얼마나 고맙고 다행한 일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고맙습니다" 김수환 추기경의 마지막 말씀이 계속 머리속을 맴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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