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호 무너짐' 소금창고'

<연재>소금창고를 복원하다

최영숙 | 기사입력 2008/10/22 [01:04]

'33호 무너짐' 소금창고'

<연재>소금창고를 복원하다

최영숙 | 입력 : 2008/10/22 [01:04]

 

▲ 33번째 '무너짐' 소금창고 방향에 눈이 내리다     ©최영숙

 

2008년 10월 20일 자 《시흥시민뉴스》에서 “장곡동 18홀 골프장, '조건부 건립' 논의”라는 기사를 읽으며 소금창고의 운명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소금창고 복원에 대한 대안은 제시되지 않은 채 골프장 건립만을 내세우고 있었다.

 

'33호 무너짐 소금창고' 앞의 눈들이 바람에 이리저리 휩쓸려 갔다. 요즘 들려오는 소식들이 불안해서인지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채 휘날리는 눈길이 더욱 스산해 보였다. 어디로 휩쓸려 갈지 모르는 지금의 상황을 말해주는 듯했다. 똑같은 풍경이어도 사물을 바라보는 것은 그것을 바라보는 '현재의 마음'이라는 생각을 했다.

 

▲ 32번째 소금창고와 33번째 소금창고     © 최영숙

 

2004년 가을, 소금창고를 찾았다. '울타리 소금창고' 뒤로 '무너짐 소금창고'가 보였다. 이곳의 가을은 풍성했다. 그 풍성함을 돋보이게 했던 것이 드문드문 서 있던 소금창고들이었다는 사실을, 그것들이 모두 사라지고 나서야 더욱 확연히 느낄 수 있었다.
    

▲ 33번째 '무너짐' 소금창고     © 최영숙

 

 

포동의 소금창고 사진들은 모두 비슷해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분명한 차이가 있었다. 소금창고의 이름이 불현듯 떠오르는 것은 어느 날 마주했던 강렬한 모습을 기억하기 때문이었다.

 

이 소금창고는 내게 그저 '울타리' 다음에 있는, 무덤덤한 창고일 뿐이었다. 그러나 2006년 5월 봄, 이쪽 소금창고에 들어섰을 때 세상사 모든 것이 부질없다는 듯 푹석 무너져 내린 창고를 만났다. 털썩 무너져 내린 모습은 강한 충격으로 다가왔고, 그때부터 이 창고의 이름은 ‘무너짐’ 창고가 되었다.

 

▲ 33번째 '무너짐' 소금창고 길을 지나는 차들을 만나다     © 최영숙

 

 

'무너짐 소금창고'가 건재하던 시절, 지붕이 들썩이던 '34호 들썩이 소금창고' 뒤로 두 대의 차가 지나가고 있었다. 이제 사진 속에만 존재하는 순간들을 바라보는 일은 마음을 처연하게 만든다. 시간은 무심하게 흘러갔고, 세월은 지난 풍경을 모두 지운 채 그저 바람만을 남겨놓았다.

▲ 33번째 '무너짐' 소금창고의 가을 풍경     ©최영숙


이 소금창고는 무너져 내리기 전까지 특별한 기억이 많지 않던 곳이었기에, 당시의 감정과 느낌을 더 많이 복원해 내려 사진을 바라보는 시간이 좀 더 길어졌다. 사람의 기억력은 집중하면 잊혔던 어느 날의 풍경을 시간대별 감정까지 불러일으키는 힘이 있다. 그것이 뭐 그리 대단한 일일까 싶다가도, 적어도 70년을 한자리를 지키고 있던 소금창고들의 모습을 누군가는 기억해 줘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 33번째 '무너짐' 소금창고 옆선     ©최영숙

 

옆선에서 '무너짐 소금창고'를 바라보았다. 포동 갯벌 위로 새롭게 길이 만들어진 것은 사람들의 편의를 위해서였다. 게를 잡기 위해 통발을 설치한 사람들의 차량이 들어서는 곳이 길이 되었다. 길을 따라 들어섰으나 통발을 늘어놓은 곳에서 길은 끊겼다. 차량 위로 올라서서 소금창고들을 사진에 담았다. 이 방향에서는 어디서든 태산아파트가 보였다. '비열한 거리 소금창고' 방향에서 보이던 주찬양교회처럼, 내가 현재 서 있는 위치를 말해주고 있었다.

 

▲ 가을비를 맞고 있는 '무너짐' 소금창고     © 최영숙

    

가을비를 맞고 있는 '무너짐 소금창고'가 더욱 쓸쓸해 보였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 소금창고에 가면 마치 상갓집 개처럼 후줄근하게 서 있는 모습들을 만날 수 있었다. 처음에는 그 모습이 보기 싫었다. 사랑하는 대상은 늘 근사하길 원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소금창고들과 정이 소록소록 들 즈음에는 그 모습 또한 사랑하게 되었다. 정이 든다는 것은 본질을 사랑하기에 겉모습이 어떠하든 바라보는 눈길이 편안해졌음을 의미한다. 후줄근하게 서 있는 풍경을 보면 안쓰러운 마음과 함께, 비를 저렇게 맞으면 무너짐이 더 빨라질 텐데 싶어 걱정이 앞서곤 했다.

 

또한 창고 안 양철지붕 위로 떨어지던 빗방울의 경쾌한 소리가 잊히지 않는다. 눈으로 보아 기억되는 것만큼 소리에 대한 기억도 오래도록 남는다는 생각을 했다. 후줄근함과 경쾌함, 밝음과 어둠을 동시에 지니고 있는 것이 소금창고의 다양한 얼굴이었다.

 

▲'울타리' 소금창고에서 바라본 '무너짐' 창고     © 최영숙


'32호 울타리 소금창고'에서 건너편을 바라보았다. 시간이 흘러 '울타리 소금창고' 또한 많이 무너졌는데, 앞의 창고는 아예 주저앉은 풍경이었다. 동시다발적으로 무너져 내리던 창고들을 보며 무너짐의 속도가 너무 빨라 마음이 다급해졌었다. 이곳 풍경도 담았지만, 차량이 들어갈 수 없어 걸어 다녀야 했던 '천 개의 시선' 방향으로 발길이 자주 닿았던 것은 어쩌면 빠르게 스러져가던 풍경을 보며 느꼈던 조급함의 결과였을 것이다.
 

▲ '무너짐' 소금창고에서 바라본 34번째 '들썩이' 소금창고     © 최영숙


시간이 지나자 이제 소금창고의 지붕을 덮던 철판들조차 모두 바람에 날아갔다. 무너진 창고 너머로 '들썩이 소금창고'의 당당한 모습이 보였다. 저 당당함조차 언젠가 사라지는 것, 그것이 이곳의 세월이었고 세상은 별일 없다는 듯 그렇게 흘러갔다. 자신의 절실함이 타인에게는 그저 일상이듯이, 이곳의 풍경은 그렇게 스러지고 사라져 갔다.

▲ 가을 추수의 벌판과  늘어선 소금창고들     © 최영숙


2004년 가을, 추수를 끝낸 벌판 뒤로 소금창고들이 일렬로 늘어서 있었다. 이 방향에서 보이던 '못 창고'부터 '달빛 창고'까지 늘어선 풍경은 새로웠고, 그 풍경을 바라보는 일은 참 즐거웠다.
 

▲ 사라진 소금창고들     ©최영숙



즐비하게 늘어서 있던 소금창고들이 이제는 하나도 없다. 그 많던 소금창고들은 모두 어디로 사라졌는가? 2007년 6월 4일 소금창고가 파괴된 직후인 6월 8일부터 [소금창고 무단 철거에 대한 비상시민대책] 활동을 시작으로 이마트 항의 시위 등을 이어갔었다.

 

시흥시의회, 시흥시청, 시흥예총, 시흥문화원 등 각 사회단체에서 파괴에 대한 성토와 복원 대책 회의를 가졌고, 그 결과 2008년 3월 19일 '시흥갯골생태공원 소금창고 복원 타당성 및 활용방안에 대한 전문 연구용역 최종 보고회'가 열려 다양한 문화적 활용 방안이 제시되기도 했다.

 

그러나 7개월이 지난 뒤, 복원을 위해 힘썼던 이들의 입장도, 시민이 원하지 않는다면 골프장을 짓지 않겠다던 성담 측의 반응도 모두 바뀌었다. 지난 10월 15일 보고회에서 시의원들은 지역 경제 활성화 차원에서 골프장 건립이 필요하며, 규모를 더 키울 수는 없는지 건의하기까지 했다고 한다.

 

▲ 2007년 8월 17일 갯골축제 '소금창고복원위원회' 선언문   발표 © 최영숙

 

2007년 8월 17일, 제2회 시흥갯골축제에서 시흥시, 시흥시의회, 시민단체, 전문가 등 각계 인사들이 폭넓게 참여하는 ‘시흥 소래염전 소금창고 복원 추진위원회’(이하 소금창고 복원 추진위)가 발족되었다. 앞으로의 활동을 다짐하는 ‘공동선언문’ 발표는 갯골축제 개막식에서 1만여 명의 시민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되었다.

 

그간 관여했던 사람들이 선거를 통해 바뀐 것도 아닌데, 정작 소금창고 복원 추진위를 발족했던 그 누구도 이제는 소금창고 복원에 대하여 말하지 않는다.

 

소금창고 복원을 위해 힘을 모으던 시흥시의 입장은 1년 만에 바뀌었다. 시는 "진입로는 (주)성담 측이 50%를 부담하도록 할 계획이며, 소금창고 복원 문제는 (성담 측이) 이미 부순 뒤 다시 복원하는 것에 난색을 표명하고 있는 만큼 장학 재단 쪽으로 유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또한 "18홀 기준으로 골프장 준공 시 50~80억 원의 취·등록세와 150여 명의 고용 창출 등 세수 확보 및 지역 일자리 창출에 기여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등록문화재로 지정될 수도 있었던 소금창고를 어느 날 갑자기 허물어 버리고, 장학 재단에 장학금만 내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는 식으로 사안을 끌고 가는 것은 우리의 후대에게 커다란 오류를 범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33번째 무너짐 소금창고 기둥만 남다     ©최영숙


파괴되고 스러진 소금창고들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안들이 나오자 예전에 보았던 풍경들이 더욱 스산한 마음으로 다가왔다. 뭔가 명쾌한 답변과 계획이 없이 개발로만 치중되는 모습을 보기 때문일 것이다.
 
지난겨울에 갔을 때 이제 무너짐 창고는 이제 기둥 몇 개만을 남겨 놓고 있었다. 

5년 동안 소금창고 사진을 담으면서 사진으로 남겨진 소금창고는 모두 45동이었다. 지금은 45동의 소금창고들 중에서 3동만이 존재한다. 5년 동안 42동의 소금창고들이 사라진 것이다.

앞으로도 45동의 소금창고들을 기억하는 사람은 우리가 잃은 빛나던 포동의 소금창고들을 기록해 나갈 것이다.

▲ 함박눈을 맞은 '무너짐'소금창고     ©최영숙

 

소금창고들을 한 동씩 기록하며 우리가 진정 무엇을 잃었는지를 생각했다.

 

소금창고가 파괴될 당시, 열화와 같이 들끓으며 이곳을 사랑한다 말하던 그 많던 사람들은 지금 모두 어디에 있는지 다시 한번 자문하게 된다.

 

▲ 2007년 6월 22일 이마트 항의 시위     ©최영숙


 
한마음으로 결집했던 소금창고 복원을 위한 노력을 다시금 기울여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하여 소금창고를 복원하고, 후대 사람들이 그 복원된 창고를 통해 결자해지를 위해 노력했던 '성담'이라는 기업과 사라진 소금창고를 되살리려 한마음으로 힘을 모은 시흥의 수많은 사람을 기억하게 되기를 바란다.

 

그 풍요로웠던 소금창고들을 기억하는 이들에게는 현재 이곳에서 진행되는 모습들이 마음에 얹힌 돌 하나처럼 무겁게 느껴질 것이며, 그 답답함은 쉽게 가시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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