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2008년 11월 25일 '거인' 소금창고 ©최영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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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메멘토》는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이 독특하다. 전직 보험 수사관이었던 레너드는 단기 기억상실증에 걸려 10분 이상을 기억하지 못한다. 자신의 아내를 죽인 범인이 '존 G'라는 사실만 기억할 뿐이다. 10분 뒤의 일을 망각하는 그는 자신의 몸에 새겨진 문신과 메모에 의지해 시간을 역순으로 거슬러 올라가며 범인을 찾아 나선다.
‘거인’ 소금창고의 시간들을 《메멘토》의 방식처럼 역순으로 짚어보았다.
2008년 11월 25일, ‘거인’ 소금창고를 카메라에 담았다. 이 방향의 모든 소금창고가 불에 타고 파괴되었지만, 오직 이 창고만이 유일하게 예전에 이곳이 소금창고였음을 증명하고 있었다. ‘거인’ 소금창고는 ‘콜로세움’이라는 이름으로 전시되기도 했다. 이곳에 서 있으면 마치 오래된 유적지에 온 듯한 기분이 든다. 불에 탄 창고들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이다.
원형경기장을 생각하면 콜로세움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5호 소금창고의 이름이 ‘원형경기장’이었기에 이미지가 중첩되었다. 흥미로운 점은 정작 이 창고를 보면서는 콜로세움이라는 느낌을 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같은 이름인데도 다른 이미지로 받아들여지는 것은 특이한 경험이었다.
어느 어둑어둑해지던 날, 이 창고를 보고 있자니 커다란 거인이 무뚝뚝하게 서 있는 듯했다. 그 순간 전해진 느낌이 무척 선뜩하고 강렬했다. 모두 사라져도 목석처럼 제 자리를 묵묵히 지켜내고 있는 거인의 모습이었다.
2008년 6월 3일, 소금창고 파괴 1주년에 즈음해 소금창고가 있던 자리들을 다시 담았다. '거인 소금창고'의 잔해들은 형태가 온전히 남아 있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 ▲ 2008년 2월 10일 눈 내린 '거인'소금창고 ©최영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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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2월, 눈이 내렸다. 이 방향의 창고들은 모두 사라졌지만, 불탔던 당시의 모습을 간직한 '거인' 창고를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내게는 위안이 되었다.
| ▲ 2007년 8월 19일 '거인' 소금창고와 구름 ©최영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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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8월, 구름이 맑았다. 구름을 거느린 '거인' 창고는 또 다른 풍경을 자아내고 있었다. 마지막 남은 흔적마저 사라져가는 이곳에서 옛 모습을 보는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창고가 불탔을 때, 앞에 있던 '달빛' 소금창고의 자리는 거의 흔적조차 없어졌다. 그래서 이 창고에서 바라보는 풍경이 더없이 고마웠다.
2007년 6월 10일, 소금창고가 파괴되고 일주일 후 다시 이곳을 찾았다. 사진동호회에서 온 듯한 사람들이 촬영에 열중하고 있었다. 이곳은 사진가들에게 보석 같은 장소였다. 갈대밭과 소금창고는 최적의 촬영 조건을 갖추고 있었기에 뮤직비디오나 영화에도 자주 등장했다. 영화 《비열한 거리》와 이정현의 뮤직비디오도 이곳에서 촬영되었다.
사진을 찍으러 온 사람들은 하루아침에 사라진 소금창고들로 인해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 많던 창고들이 사라졌으니 그럴 법도 했다. 사람들이 겨우 소금창고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이곳을 찾아낸 듯했다. 불에 타 사라져가는 창고에 기대어 사진을 담는 사람들을 바라보는데 마음이 씁쓸해졌다.
| ▲ 2005년 5월 27일 비 내리다 ©최영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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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5월, 비가 내렸다. 하늘로 치솟아 오르는 듯한 기둥들을 바라보았다. 불에 탄 소금창고의 폐허 속에서 비를 맞으며 마주하는 풍경은 사람을 참으로 처연하게 만든다.
| ▲ 2006년 3월 15일 불탄 소금창고를 처음 만나다 ©최영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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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3월, 이 창고에 왔을 때 이곳이 불에 타 사라졌음을 처음 알게 되었다. 불에 탄 창고들을 마주하자 덜컥 가슴이 내려앉던 기억이 생생하다.
| ▲ 2006년 3월 15일 '거인' 소금창고 불탐 ©최영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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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얼마 전까지 멀쩡하고 웅장하던 창고는 사라지고 기괴한 형태만이 남겨져 있었다. 이곳의 풍경이 바뀌는 것은 그야말로 ‘밤새 안녕’이었다. 불탄 창고 너머로 '달빛' 소금창고가 멀리 보였다. 남겨진 자와 불탄 자의 모습이 묘한 대조를 이루고 있었다.
| ▲ 2006년 2월 7일 '거인' 소금창고의 현존했던 마지막 모습 ©최영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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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2월 7일, '거인' 소금창고의 마지막 모습이다. 함박눈을 맞고 있던 이 모습을 끝으로 소금창고는 다시 만날 수 없었다. 이 사진은 이 창고가 가장 아름다웠던 시절의 마지막 기록이 되었다. 한 달 뒤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 채, '거인'은 벌판에서 묵묵히 눈을 맞고 있었다.
| ▲2006년 2월 7일 포동 벌판 길 위에 서다 ©최영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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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밟지 않은 눈길을 걷던 그 싱그러운 기억과 알싸한 바람을 기억한다. 이 길을 반대로 돌아가면 소금창고들이 늘어선 길로 들어설 수 있었다. 모두가 그 자리에 있어 아름다웠던 풍경을 떠올리며 잠시 그 시절로 돌아가 본다.
| ▲ 2006년 1월 8일 쥐불을 놓다 ©최영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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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1월, 거인 창고 앞 논에서 농부가 쥐불을 놓았다. 내년 풍년을 위해 논두렁과 볏짚을 태우는 모습을 보며, 저 불길 속에 있는 또 다른 생명들이 죽어가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연하게 행해지는 일상의 의식이 얼마나 많은 생명의 생사를 쥐고 있는지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
| ▲ 2005년 10월 29일 가을 소금창고 ©최영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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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1월, 거인 창고 앞 논에서 농부가 쥐불을 놓았다. 내년 풍년을 위해 논두렁과 볏짚을 태우는 모습을 보며, 저 불길 속에 있는 또 다른 생명들이 죽어가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연하게 행해지는 일상의 의식이 얼마나 많은 생명의 생사를 쥐고 있는지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
2005년 8월, ‘거인’ 소금창고는 건재했다. 여름날 이 갈대밭에 들어서면 무더위에 숨이 턱 막히곤 했다. 소금기가 그득한 공기는 더위를 더욱 진하게 느끼게 했다. 사진을 보니 그 뜨거웠던 열기가 다시 확 달려드는 듯하다
| ▲ 2005년 6월 23일 울퉁불퉁한 길과 '거인' 소금창고 ©최영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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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6월, 보디빌딩을 하는 청년의 팔뚝처럼 길들이 제 근육을 자랑하는 듯했다. 이곳의 길들은 언제나 '날것'의 매력을 지니고 있었다.
| ▲ 2005년 5월 8일 포동벌판과 '거인' 소금창고 ©최영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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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5월, 어둠이 내리고 있었다. ‘거인’ 소금창고를 필두로 이곳 벌판은 수많은 창고를 거느리고 있었다. 넉넉한 대지는 그 모든 창고를 포용하고 있었다.
| ▲ 2005년 5월 8일 '거인' 소금창고 기둥 © 최영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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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인' 창고의 기둥에서 못들이 스멀스멀 밖으로 나오고 있었다. 서로를 강하게 이어주던 못들이 이제는 자신의 근본을 드러내고 있었다. 세월을 버텨온 결속을 풀어내고 있는 풍경은, 서로를 자유롭게 놓아주는 시간처럼 보였다.
2005년 1월과 3월, 눈이 내렸다. 함박눈이 내려앉은 이곳의 풍경은 단정한 숙녀 같았다.
| ▲ 2005년 1월 31일 눈 내리다 ©최영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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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눈이 휘날리는 이곳의 풍경은 펄펄 살아 움직이는 야성적인 매력이 있었다. 휘날리는 눈발을 보고 있으면 쓸쓸함과 동시에 마음이 후련해졌다. 저 휘몰아치는 눈길에 마음을 풀어놓으면 세상의 모든 근심이 흩어져 버리는 듯했다. 하늘이 구물거리기만 해도 소금창고로 향했던 것은, 너른 벌판에서 눈을 맞을 때의 황량함과 영혼이 자유로워지던 그 느낌을 잊지 못해서였다. 올해도 그 습성을 버리지 못하고 소금창고 벌판에 섰다. 지난 시간을 돌아보는 일은 참 쓸쓸한 일이었다.
| ▲ 2004년 11월 2일 칠면초 붉다 ©최영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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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11월, 깊어가는 가을에 ‘거인’ 소금창고를 만났다. 칠면초와 갈대가 포동 벌판을 장식하고 있었다. 계절은 그 시점에 가장 어울리는 가장 빛나는 풍경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포동 벌판의 팔색조 매력은 언제 보아도 새롭게 빛을 발했다.
| ▲ 2004년 10월 8일 '거인' 소금창고와 자물쇠 ©최영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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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10월 8일, ‘거인’ 소금창고의 문은 굳건히 닫혀 있었다. 자물쇠를 잠그고 나무판으로 못질까지 했지만, 세월은 소금창고의 대문을 허물고 속내를 드러내게 했다. 단단히 닫혀 있던 그 시절은 어디로 가고, 이제는 모두에게 허허롭게 제 몸을 내어주는 시절을 마주했나 싶었다.
2004년 9월 9일, ‘거인’ 소금창고 뒤로 석양이 지고 있었다.
| ▲ 2004년 8월 21일 소금창고와 아이들 ©최영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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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8월 21일, 딸과 그 친구를 데리고 이곳에 왔었다. 아이들은 비석치기를 하며 놀았다. 세월은 그 아이들을 어느덧 대학 3학년의 숙녀로 성장시켰다.
| ▲ 2004년 8월 14일 '거인' 소금창고 모습 ©최영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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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8월 14일, 소금창고는 당당히 서 있었다. 창고 정면의 철판도 제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고, 창고 옆 나무는 친구처럼 곁을 지키며 자라고 있었다. 사대풀과 나무 기둥, 창고와 나무가 어우러져 이곳의 풍경을 완성하고 있었다. 시간이 역순으로 흐르며 점점 젊어지는 ‘거인’들을 바라본다.
| ▲ 2004년 8월 14일 '솔장다리' 피어나다 ©최영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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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8월 14일, 해안 모래땅에서 자라는 ‘솔장다리’ 꽃에 둘러싸인 ‘거인’을 만났다. 언제 이런 호시절이 있었나 싶게 자신을 치장한 풍경을 마주한다. 이제 점점 결말로 다가서고 있다. 이미 불타 사라진 풍경을 아는 내게, ‘거인’의 아름다운 시절을 보는 일은 더 큰 안타까움으로 다가온다. 지금의 잔해를 콜로세움이나 거인이라 부른다 한들, 제 모습을 온전히 갖추고 있던 이 시절의 아름다움에는 비할 바가 못 되기 때문이다.
| ▲ 2004년 7월 24일 상양산 아래의 '거인' 소금창고의 첫 사진 ©최영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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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7월 24일, 상양산 아래 ‘거인’ 소금창고는 흐트러짐 없이 서 있었다. 역순으로 올라가 만난 ‘거인’의 가장 첫 풍경이다.
영화 《메멘토》는 '자신이 기억하는 것이 모두 진실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아내를 죽였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못한 채 범인을 찾아 헤매는 레너드의 왜곡된 기억. 인정하고 싶지 않은 사실을 부정하며 자신에게 거짓 기억을 강요하는 주인공이 비단 영화 속 인물뿐일까 생각했다.
나는 소금창고를 기억하고 기록한다. 기록된 사진들을 다시 들여다보면 가끔 착각했던 부분들을 발견하곤 한다. 그럴 때마다 수정을 거듭하며 다시 시작한다. 아무리 조심해도 나도 모르게 진실을 왜곡하고 있지는 않은지 늘 두렵고 조심스럽다.
| ▲ 2008년 11월 25일 '거인' 소금창고 불빛을 받다 ©최영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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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1월 25일의 ‘거인’ 소금창고의 모습이다. "기억은 우리를 일깨울 뿐이다." 영화 《메멘토》의 마지막 대사다. 일깨워진 기억조차 보고 싶은 대로 변질될 수 있다는 사실에서 인간의 이기심과 자기애를 본다. 우리가 진실이라 믿는 모든 기억이 사실은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이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거인’ 소금창고와의 첫 만남은 사진에 담기던 그 시점부터 기억된다. 사진을 찍기 전에도 수없이 창고들을 바라보았건만, 뇌리에 박힌 시점은 셔터를 누르던 찰나였다.
| ▲ 2008년 11월 25일 거인 소금창고 ©최영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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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기억은 왜곡되거나 희미해질 수 있지만, 사진을 찍던 그 시점의 진실은 부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2008년 11월 25일에 담은 마지막 사진이 현재를 가장 잘 말해주고 있듯이 말이다.
앞으로의 기록에는 더 깊은 주의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각자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소금창고들이 모여 하나의 거대한 이미지를 만들어가겠지만, 엄밀히 말하면 사진 또한 수많은 이미지 중 내가 선택한 시선일 뿐이다. 한 사물에서 다양한 얼굴을 찾아내는 일은 설레면서도 한없이 어려운 일이다. 더 깊은 시선으로 다가가는 것은 기쁨인 동시에 두려움이다.
《메멘토》를 보며 왜곡되는 기억에 대해 생각했다. 나의 소금창고 기록들이 이곳에 존재했던 소중한 가치들을 이해하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더 많은 이미지를 담고 싶다. 이미지가 쌓일수록 우리는 본질에 더 가까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콜로세움', '거인', '메멘토'... 수많은 수식어를 낳았던 36호 '거인' 소금창고는 언제나 새로운 모습으로 다가오던 멋진 친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