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무속 신앙의 안식처, 2013년 군자봉성황제 현장을 가다

최영숙의 발길따라 가는 풍경

최영숙 | 기사입력 2013/11/14 [06:06]

역사와 무속 신앙의 안식처, 2013년 군자봉성황제 현장을 가다

최영숙의 발길따라 가는 풍경

최영숙 | 입력 : 2013/11/14 [06:06]


 

▲ 산신거리를 하는 고현희 당주     © 최영숙

 

천년의 전통을 가진 군자봉성황제가 지난 5일(음력 10월 3일) 오전 11시 군자봉 정상에서 열렸다.

 

군자봉은 행정구역상 시흥시 군자동과 장현동·능곡동 사이에 위치한 높이 199m의 산이다. 군자봉이라는 이름은 조선조 제6대 임금인 단종(端宗)이 안산 능안(陵內, 당시 안산시 목내동)에 있는 생모 현덕왕후(顯德王后)의 묘소에 참배하러 가는 길에, 봉우리가 연꽃처럼 생겨 군자의 모습과 같다고 한 것에서 유래되었다는 설이 유력하다.

 

이 산에서 성황제를 지냈다는 기록은 조선 전기에 편찬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 이미 나타나 있다. 또한 조선 후기에 편찬된 《여지도서(與地圖書)》를 통해서도 그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군자성황제가 조선 초기 국가의 공식 기록물에 언급될 정도로 당시에 널리 알려졌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러나 언어학자들은 군자봉이 '굿봉'에서 유래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 산 정상에 있었던 성황사(城隍祠)에서 오래전부터 굿을 했던 역사적 사실에 연유한 것으로 보인다. 민간 무속 신앙에서는 영험한 영산(靈山)으로 꼽히며, 산 정상에는 수백 년 수령의 거대한 느티나무가 자리를 지키고 있다.

 

군자봉 성황제는 군자봉 인근의 구지정 마을 주민들이 중심이 되어 지내온다. 구지정(九井) 마을의 이름은 아홉 개의 우물에서 비롯됐다. 구지정 주민들은 군자봉 정상의 성황당에 경순대왕을 모셔놓고 매년 섣달(음력 12월) 당주와 마을 주민들이 올라가 제를 지낸다. 이어 경순대왕을 마을로 모시고 내려와 집집마다 유가(遊街, 신대를 메고 마을을 도는 의식)를 돌고, 이듬해 삼월삼짇날(음력 3월 3일)이 되면 다시 군자봉 성황당에 모시는 전통을 이어왔다.

 

마을 주민들은 한 해 추수가 끝난 음력 10월 3일, 성황제를 통해 풍작과 마을의 안녕에 감사를 드리고 제의가 끝나면 매년 평안하기를 기원하는 대동제를 성대히 벌인다.  

 

▲ 서낭대를 모시고 군자봉으로 출발하다     © 최영숙

 

올해 군자봉 성황제는 5일 오전 9시 30분, 고현희 당주의 집에서 군자봉성황제 보존회 회원들이 대왕님 장대기를 모셔 내리는 것으로부터 시작됐다. 군자봉성황제 보존회는 한정현 회장을 필두로 이도수·황정학 부회장, 표용환·당행복·김은태·표창환·이상선·강재모·이상목·이상걸·이흥렬·이상화·이영열 회원 등으로 구성되어 전통의 맥을 잇고 있다.

 

황정학 부회장을 비롯한 군자봉성황제 보존회 회원들이 영험한 서낭대를 단단히 잡고 군자봉을 올랐다. 서낭대 뒤편에서는 힘찬 북소리가 울려 퍼지며 행렬의 흥을 돋우었다. 곧이어 군자봉 정상에 대왕님이 엄숙하게 모셔졌다.

 

▲ 김윤식 시흥시장 인사를 드리다     ©최영숙

 

정원철 시흥문화원장은 “군자봉성황제는 시흥에 전해오는 가장 유서 깊은 민속행사입니다. 1993년에는 경기도민속경연대회에 출전하여 '발굴상'을 받는 등 여러 어려움 속에서도 시흥시 향토민속예술로 지정받기 위한 발판을 꾸준히 다져나가고 있습니다. 고려시대 이후 천년의 전통을 간직한 군자봉성황제는 백성들의 소박한 기원 풍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우리 시흥시의 소중한 역사이자 문화적 자산입니다”라고 강조했다.

 

한정현 군자봉성황제보존회장은 인사말을 통해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 세대부터 이어온 군자봉성황제는 일제강점기의 가혹한 탄압과 압박 속에서도 동네 어르신들의 하나 된 마음, 당주의 헌신, 그리고 주민들의 단합 덕분에 지금까지 어렵게 명맥을 이어올 수 있었다”라며 “앞으로도 군자봉성황제에 시민 여러분의 많은 성원과 뜨거운 격려를 부탁드린다”라고 전했다.

 

고현희 당주는 “일제강점기에도 목숨을 개의치 않고 군자봉성황제를 지켜온 저의 외증조할머니(곽명월)와 그 뒤를 이은 외할머니(김부전), 어머니(김순덕)에 이어 저(고현희)까지 4대째 오랜 전통과 많은 분의 뜻을 이어받아 명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천년의 전통을 가진 이 문화적 자산이 앞으로도 온전히 전승되어 향토전통예술로서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주민들과 관계자 모든 분의 지속적인 관심과 아낌없는 성원을 부탁드립니다”라고 간곡히 청했다.

 

김윤식 시흥시장은 “이번 군자봉성황제를 통해 소중한 전통문화유산의 의미를 다시금 깊이 되새기고, 시민 여러분께서도 이러한 소중한 전통문화가 더욱 활성화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참여해 주시길 바란다”라고 당부했다.

 

▲ 고현희 당주와 무녀들이 대왕님모시기(서낭거리)를 하다     © 최영숙

 

고현희 당주와 무녀들이 '대왕님모시기(서낭거리)'를 진행했다. 서낭거리란 대왕님 장대기를 들고 성황당에서 마을 풍물패와 무녀들이 본격적인 굿을 하기 전, 풍악을 울리며 대왕님을 정중히 모셔 들이는 과정으로 전체 굿의 시작을 알리는 의식이다.

▲ 부정거리를 하는 김순종 무녀     ©최영숙


김순중 무녀가 사방의 부정한 기운을 깨끗이 소멸시키는 '부정거리'를 행했다.

▲ 산불사거리를 하는 조광현 중요무형문화제 98호 보존회장     © 최영숙


조광현 국가무형문화재 제98호 보존회장이 '산불사거리'를 진행했다. 산불사거리는 산불사님, 산칠석님, 산제석님을 청배(請拜, 신을 불러옴)하여 시흥 지역 주민들의 수명장수와 무사고를 기원하는 거리다. 현장의 많은 참가자가 경건한 마음으로 잔을 올렸다.

 

▲ 산신거리를 하는 고현희 당주     © 최영숙


고현희 당주가 '산신거리'를 이어나갔다. 산신거리는 군자봉성황의 본향과 그 부근의 도당, 그리고 팔도의 모든 산신령을 청배하여 나라의 안녕과 번영, 만백성의 무사안녕을 간절히 기원하는 의례다.  

 

▲ 별상거리를 하는 승경숙 무녀     © 최영숙

 

승경숙 무녀는 나라의 별상신들을 청배해 모진 질병이나 재해, 사고 등을 막아달라 기원하며, 주민들이 가져온 제물을 삼지창 위에 꼿꼿이 세워 올리는 '별상거리'를 용맹하게 선보였다.

 

▲ 신장거리를 하는 승경숙 무녀     © 최영숙


이후 '신장거리'가 흥겨운 가락 속에 이어졌다. 다섯 색깔의 깃발을 활짝 펴서 오방신장님을 청배한 뒤 동·서·남·북·중앙에서 드는 모든 액운을 막고, 성황제를 찾은 손님들에게 직접 기를 뽑게 하여 저마다의 길흉화복을 점쳐 주는 소통의 시간이었다.

 

▲ 대감거리를 하는 승경숙 무녀     ©최영숙


다음으로 승경숙 무녀의 '대감거리'가 진행됐다. 산과 조정을 관할하는 대감신들을 청배하여 가외의 손재(損財)를 막고, 백성들에게 재물 번성과 삶의 풍요를 아낌없이 점지해 주기를 기원하는 거리다.

 

▲ 창부거리를 하는 고현희 당주     © 최영숙


고현희 당주가 인간 세상의 12가지 흉액과 1년 내내 닥쳐올 모든 액운을 든든히 막아주는 '창부거리'를 행했다.
 

▲ 뒷전거리를 하는 고현희 당주     © 최영숙


마지막으로 고현희 당주가 '뒷전거리'를 주관했다. 큰 굿이 모두 끝난 뒤, 혹여나 남아 있을 나쁜 기운이나 잡신들이 인가에 침범해 우환을 일으키지 않도록 사방으로 풀어 먹여 내쫓는 마지막 정화 의례였다.

 

▲ 성황제가 끝나고 무녀들 군자봉을 내려오다     © 최영숙


군자봉성황제의 산신 제례가 모두 마무리되자, 의식을 마친 무녀들이 천천히 군자봉을 내려왔다.  

 

▲ 서낭대 내려오다     ©최영숙

 

군자봉에서의 의식이 끝나고, 군자봉성황제 보존회 회원들이 영험한 서낭대를 들고 다시 마을을 향해 하산했다. 19세 때부터 평생 서낭대를 잡고 지켜왔다는 보존회원 황정학(69) 씨는 지나온 군자봉 성황제의 풍경을 다음과 같이 애틋하게 회상했다.

 

“예전에는 군자봉 성황제가 열리고 서낭대가 마을로 내려올 때면, 온 동네 주민들이 그 영험한 기운을 한 번이라도 더 받으려고 길가에 구름처럼 모여들었습니다. 기가 지나가면 남녀노소 할 것 없이 고개를 숙여 깊은 경의를 표하곤 했지요. 옛날 어른들은 참 엄격했습니다. 정월 그믐날 신을 내려 모셔 정성껏 옷을 입혀드리고, 당시에는 서낭대를 하늘 높이 똑바로 세운 채 군자봉 가파른 길을 오르내렸습니다. 지금은 길목마다 전봇대와 전선이 가로막고 있어 어쩔 수 없이 대를 뉘어서 모시고 갑니다.

 

과거에는 유가행렬의 규모가 정말 대단했습니다. 정월 초사흗날부터 유가를 돌기 시작하면 이 마을 저 마을에서 서로 먼저 모시려고 초청했고, 그 행렬이 멀리 서울까지 이어지기도 했습니다. 어디를 가나 대우가 아주 극진했지요. 온 동네가 밤새 음식을 나누고 풍물을 치며 놀다가 다음 마을로 이동하곤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시대가 바뀌어 그런 낭만적인 풍경들이 모두 사라져 참 아쉽습니다. 군자봉 꼭대기에 굳건히 서 있던 오래된 당집(堂屋)도 40여 년 전 군대에서 제대하고 와 보니 허망하게 무너져 있더군요. 밤중에 누군가 몰래 와서 당집 벽돌 밑동을 허물어뜨렸다는 가슴 아픈 이야기를 전해 들었습니다.”

 

안현동에서 온 최경옥(76) 씨 역시 “예전에 군자동에서 우리 동네로 시집온 사람들의 집에는 매년 군자봉성황제의 신명 나는 유가행렬이 찾아왔던 기억이 생생하다. 친정 동네의 신령이 먼 길을 찾아와 시집간 딸 집안의 안녕과 행복을 정성껏 빌어주는 따뜻한 의식이었다”라며 옛 기억을 떠올렸다.

 

▲ 고현희 당주 집에 서낭대를 모시다     © 최영숙


마을을 거쳐 서낭대가 마침내 고현희 당주의 집에 당도했다. 신성한 천존항아리에 맑은 물을 채우고 서낭대를 정중히 안치하는 의식이 경건하게 거행됐다. 당주 집 대문가에 푸른 서낭대가 위엄 있게 세워지자, 성황제에 이어 당주 집 안마당에서 다시 한 번 신명 나는 대동굿이 펼쳐졌다.  

 

▲ 고현의 당주집에서 굿을 하다     ©최영숙

 

당주는 붉은 치마폭을 넓게 펼쳐 들고 단골(무속 신앙의 정기 신도)들에게 올 한 해의 복을 아낌없이 몰아 주었다. 보통 1년에 서너 번씩 거르지 않고 당을 찾는다는 오랜 단골들에게 공수(신의 말을 전함)를 내리는 당주의 모습은 무녀와 신도의 관계를 넘어 마치 오랜 세월을 함께한 가족처럼 따뜻하고 정겨웠다.

 

기록사진을 담으며 작년 이 현장에서 만났던 얼굴들을 다시 마주하니 가슴 한구석이 뭉클하고 반가웠다. '단골'이라는 단어가 지닌 진정한 연대의 의미가 무엇인지 어렴풋이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다.  

 

▲ 집안의 안녕을 위해 기원하는 어머니     © 최영숙

 

어머니가 올리는 기도의 깊이는 언제나 깊고 간절하다. 도일시장에서 발걸음을 했다는 정은예(82) 씨는 “오늘 마침 군자농협에서 단체로 좋은 곳에 놀러 간다고 해서 다들 떠났는데, 나는 거기 가지 않고 일부러 이곳을 찾았다. 시어머니가 살아계실 때부터 대를 이어 정성껏 다니던 소중한 곳이다. 매년 칠석날과 대동치성(10월 3일), 그리고 정월에 닥쳐올 모든 재액을 미리 막아주는 홍수매기(홍수막이) 때마다 거르지 않고 찾아온다. 여기 와서 마음을 쏟고 나면 신기하게도 온 마음이 편안해진다”라며 미소를 지었다.

 

황성천(73) 씨는 “지금은 돌아가신 전임 당주(김순덕)의 수양아들이다. 어제 정성을 다해 서낭대에 새 옷을 입혀드리는 작업을 도왔다. 옛날에는 자그마치 42벌의 오색 옷을 겹겹이 입혀드렸는데, 이번에는 28벌을 정성껏 입혔다. 예전에는 서낭대의 높이도 지금보다 훨씬 높고 웅장했다. 또 동네에서 이름난 상쇠와 꾁과리, 징, 회적(피리 부는 악사)까지 전부 동네 주민들이 쌍을 이뤄 풍물을 쳤으니 온 마을이 들썩일 정도로 축제 분위기였다”라고 옛 시절을 아쉬움 속에 회고했다.

 

▲ 군자봉성황제에 제물을 차리다     © 최영숙

 

도도한 세월의 흐름 속에 천년을 이어온 군자봉 성황제도 조금씩 그 모습을 달리해가고 있다. 예전에는 시흥과 안산, 수원을 거쳐 서울까지 광범위하게 유가를 돌며 만백성의 복을 빌었지만, 현재는 구준물 마을 일대만을 도는 것으로 축소되었다. 급격한 시대 변천과 현대화 속에서 어쩌면 자연스러운 변화일지도 모른다. 예전처럼 주민들만의 순수한 자생적 힘으로만 지탱하기 어려워진 지금은 시흥문화원과 군자봉성황제 보존회, 그리고 시흥시와 시흥시의회의 아낌없는 행정적·재정적 지원에 힘입어 전통의 맥을 든든히 유지하고 있다.

 

시대에 따라 서 있는 위상과 형태는 조금씩 달라졌지만, 현대의 군자봉 성황제는 가족의 건강과 사업 번창, 승진과 합격의 염원을 오색 희망 풍선에 실어 하늘 높이 날려 보내는 마을 주민들의 따뜻한 잔치이자, 시흥시 전체가 함께 어우러지는 활기찬 전통문화 축제로 진화해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바람 속에서도 천년의 시간을 묵묵히 버텨온 군자봉 성황제가 앞으로도 우리의 소중한 향토 전통 문화유산으로서 더욱 안정적인 기반 위에서 지속적으로 계승되고 발전하기를 마음 깊이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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