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취재] 600년 역사를 베어내려 하는가... 둔터골 회화나무의 눈물

둔터골 회화나무를 베는 것은 600년 역사를 베는 것

최영숙 | 기사입력 2014/09/06 [20:41]

[기획 취재] 600년 역사를 베어내려 하는가... 둔터골 회화나무의 눈물

둔터골 회화나무를 베는 것은 600년 역사를 베는 것

최영숙 | 입력 : 2014/09/06 [20:41]
▲ 2009년 둔터골 뒷산에서 바라본 마을과 복사꽃에 묻힌 회화나무     © 최영숙

 

시흥시 광석동 둔터골 마을에 들어서면 ‘아, 시흥에 아직도 이토록 아름다운 곳이 남아 있었는가’ 싶어 절로 감탄이 나오곤 했다.

 

▲ 2008년 마을 어르신들이 회화나무 아래를 지나고 있다.     ©최영숙


둔터골 회화나무의 나이는 600여 년에 이른다고 한다. 오랜 세월 마을의 수호신이었던 이 나무는 주민들에게 단순한 식물이 아닌 경외의 대상이었다. 예부터 마을에서 당고사를 지내려면 먼저 우물을 깨끗이 치우고 이곳 회화나무 앞에 제를 올린 후에야 비로소 당고사를 지낼 수 있었다. 심지어 회화나무의 가지가 부러져 땅에 떨어져도 결코 땔감 등으로 집에 가져가지 못했을 만큼 신성시되던 나무였다.
 

▲ 2009년 복사꽃 사이로 보이는 둔터골 회화나무     ©최영숙

 

둔터골은 지난 2004년 7월 장현택지개발지구로 지정되었다. 개발의 바람이 불어 닥치기 전인 2009년 봄, 복사꽃이 흐드러지게 피어난 마을 풍경 사이로 회화나무는 어김없이 푸른 새싹을 밀어내고 있었다.

 

▲ 2008년 11월 둔터골 느티나무의 가을 풍경     ©최영숙

 

가을이 찾아오면 둔터골은 오색 단풍과 함께 또 다른 서정적인 풍경을 만들어냈다.

 

▲2009년 둔터골 회화나무로 가는 길에서 노는 어린이들     ©최영숙

 

하얀 눈이 내린 겨울이 찾아왔다. 어린이들은 오랜 세월 마을을 지켜온 회화나무가 멀리 내다보이는 눈 덮인 마을 길에서 천진난만하게 뛰어놀았다.

 

▲2008년  회화나무 아래에서 빨래를 하시는 어르신     © 최영숙

 

둔터골이 장현택지개발지구로 본격 지정되면서 평생 정들었던 고향을 떠나야 했던 주민들은 회화나무만큼은 제자리에 온전히 보존되기를 간절히 염원했다. 자신들이 태어나 자라고, 혹은 이곳으로 시집와 삶의 인연을 맺어온 이 나무는 주민들의 인생이자 마을의 역사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한 시대를 살아낸 역사를 고스란히 함께 지켜본 나무에 대한 주민들의 애정과 경외심은 남달랐고, 그렇기에 보호수목으로 지정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2010년  둔터골 회화나무에 보호수목이라는 띠를 달아주고 공사를 하다     ©최영숙

 

마을 철거와 공사가 시작될 무렵, 둔터골 회화나무의 허리에 드디어 ‘보호수목’이라는 명찰이 붙었다. 오랜 청원이 이루어진 듯하여 마을 주민들은 그나마 불행 중 다행으로 여기며 위안을 삼았다.

 

▲2010년  둔터골 마을에서 공사가 시작되다     © 최영숙

 

그러나 위안도 잠시, 주민들이 한 집 두 집 정든 고향을 떠나 이주하기 시작하면서 마을은 급격히 파헤쳐졌고 삭막한 공사가 본격화되었다.

▲2010년  쓰러진 명자꽃과 회화나무     ©최영숙

 

둔터골 회화나무 한 그루만을 제외하고 마을의 골목길을 지키던 다른 나무들은 모두 뿌리째 뽑혀 나가거나 잘려 나갔다. 600여 년의 시간 동안 천천히 들어앉았던 집들과, 대를 이어 가며 집집마다 쌓아 올렸던 수많은 장소와 기억들은 포크레인 날 끝에 한순간에 무너져 내렸다. 회화나무 아래에서 주민들의 목을 축여주던 깊은 우물마저 차디찬 흙으로 메워졌다.

▲ 2014년 주민들이 모두 떠나고 남겨진 회화나무는 꽃을 피워내고 있었다.     ©최영숙

 

마을 주민들이 모두 떠나고 이곳에 살던 집들도 모두 사라졌다. 이곳에 남겨진 것은 회화나무뿐이었다. 홀로 외롭게 묵묵히 서서 사라진 옛 마을의 터를 지키고 있었다.

 

사람들이 떠나고 세상의 관심이 멀어지자, 나무 허리에 둘러져 있던 ‘보호수목’이라는 이름표마저 슬그머니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최근, 들려오지 말아야 할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전해졌다. 택지개발을 진행하는 LH공사에서 단지 조성의 효율성을 이유로 이 회화나무를 결국 베어내기로 결정했다는 소식이다. 회화나무가 그 자리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고향을 잃고 뿔뿔이 흩어진 둔터골 주민들에게는 언제든 돌아와 위로받을 수 있는 마지막 심리적 구심점이었는데, 불현듯 나무마저 잘려 나간다는 소식에 주민들의 상실감과 불안은 걷잡을 수 없이 증폭되고 있다.

 

지난 2009년도에 촬영한 사진을 보면 회화나무의 굵은 가지가 오른쪽으로 길게 기울어져 있었다. 공사 차량들이 무수히 드나들며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오른쪽 가지를 쳐내자, 회화나무는 신기하게도 잘려 나간 오른쪽으로 새로운 가지들을 더욱더 뻗어 올렸다. 척박한 공사판의 환경 속에서도 스스로 균형을 잡으며 자신을 오롯이 지켜내고 있었던 것이다.

 

품위 있고 당당하게 제자리를 지켜온 이 나무를 베어내는 것은 시흥의 600년 역사를 단칼에 베어내는 것과 다름없다. 둔터골 주민들과 영욕의 세월을 동고동락했던 회화나무는, 향후 이 땅에 들어설 새로운 아파트와 도시에 살게 될 미래의 주민들과도 만나 역사의 연속성을 전해주어야 마땅하다. 만약 현 위치 보존이 정 어렵다면, 향후 이 일대에 들어설 예정이라는 문화예술회관이나 문화원 부지 앞으로 정중히 이식하여 상징물로 삼아야 하지 않겠는가.

 

둔터골 주민들에게 회화나무는 단순한 나무가 아니다. 부러진 가지 하나 함부로 대하지 않을 만큼 신성시해 온 마을의 신목(神木)이다. 나무에 조그만 생채기라도 생길까 주민들이 이토록 걱정하는 것은, 600년이라는 아득한 시간 동안 인연을 맺어오며 영혼 깊숙이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미 주민들은 과거 범배산 터널이 뚫리고 마을의 또 다른 신목이 베어졌을 때, 마을에 불행한 일들이 연이어 발생하며 깊은 심적 고통과 부담을 겪은 바 있다. 이러한 역사적 기억과 심리적 상흔을 그저 미신이나 토속종교의 맹신으로 치부해 버려서는 안 된다.

 

토지 보상 절차를 마쳤다고 해서 LH공사가 개발 기업으로서의 사회적 책무를 다했다고 볼 수는 없다. 모진 공사 속에서도 스스로를 지켜낸 회화나무를 보존하는 것은, 유서 깊은 고향을 떠나야 했던 실향 주민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자, 이 마을에 새로이 둥지를 틀 다음 세대에게 뿌리를 찾아주는 가교 역할을 하는 일이다.

 

공사를 시작할 때 약속대로 보호수목 명찰을 달아주었다면, 공사가 끝난 후에도 당연히 보호수목으로 당당히 살아남아야 한다. 새롭게 건설될 둔터골의 미래 주거지 한가운데서도 이 나무는 푸른 이파리를 틔우며 대대손손 살아 숨 쉬어야 한다.

 


▲ 2009년 회화나무 아래 고양이 두 마리가 사부작거리며 지나가고 꽃을 피워내고 있었다.     ©최영숙


사라져가는 둔터골의 풍경과 회화나무를 가슴으로 노래한 임경묵 시인의 시를 여기에 옮겨 적는다.

 

둔터골* 회화나무

  • 임경묵

웅숭깊은 우물가에 회화나무 한 그루. 얼마나 많은 바람과 햇살이 회화나무 푸른 이파리 사이를 헤엄치다가 우물 속으로 떨어졌을까요? 이끼처럼 납작 엎드려 우물에 반짝이는 햇살의 잔해를 가만히 헤아려 봅니다. 참나무 고갯길 넘어 개나리봉으로 달맞이 다녀온 아낙들의 웃음소리, 들깨밭 머리에도 자줏빛 싸리꽃 피었더라며 두레 파작을 끝낸 사내들이 꽹과리, 장구를 내려놓고 왁자하게 등목하는 소리가 지금도 들릴 것만 같습니다.

 

갯바위 따개비처럼 옹기종기 모여있는 집들은 막다른 골목일수록, 산에 가까울수록 벌써부터 하나, 둘 지워지고 있었습니다. 사진 한 장 찍으려고 우물가 삼거리를 서성이다가 회화나무 붉은 외피 하나를 주웠습니다. 오래된 햇살 무늬가 촘촘히 새겨져 있습니다. 햇살에 달궈진 푸른 이파리들을 식히려는 것일까요? 후두두두 소나기 긋고 지나갑니다. 나는 카메라 셔터를 누르다 말고 우물 쪽으로 조금 비켜서서, 너무 많은 꽃을 이고 있는 늙은 회화나무를 오랫동안 바라보았습니다.

 

*경기 시흥시 광석동 자연부락

 

 

 

            

 

쌀사랑 17/03/21 [13:16] 수정 삭제  
  작가님덕분에 .사라저간 마을관경을보니,기분이새롭네요 항상 애서주시는 최작가님에게 광석동주민을대표해서감사드림니다 항상,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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