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0년 수호신 ‘길빵나무’ 아래 피어난 화합… 2015 장곡대동제 열려

개발 위기 딛고 지켜낸 측백나무, 원주민과 이주민을 하나로 잇는 정신적 지주가 되다

최영숙 | 기사입력 2015/09/03 [22:43]

400년 수호신 ‘길빵나무’ 아래 피어난 화합… 2015 장곡대동제 열려

개발 위기 딛고 지켜낸 측백나무, 원주민과 이주민을 하나로 잇는 정신적 지주가 되다

최영숙 | 입력 : 2015/09/03 [22:43]
▲ 2015년 8월 29일 장곡동 102번지 길빵나무 아래에서 장곡대동제를 지내다     © 최영숙

 

2015년 (월일 미정) 오전 10시, 시흥시 장곡동 102번지에 위치한 길빵나무(측백나무) 아래에서 '2015년 장곡대동제'가 거행되었다.

 

이 자리에는 함진규 국회의원, 한충수 전 의원, 윤태학 시의회 의장, 김태경·조원희·김찬심 시의원, 장경창 위원, 이재윤 장곡동장, 채화기 장곡동 주민자치위원장, 주영경 <장곡타임즈> 대표, 이명렬 영응대군 종손, 심우일 소래고등학교 교사, 성훈창 씨, 조흥연 아파트연합회장, 이강수 씨를 비롯한 내빈들과 마을 주민 70여 명이 참석해 자리를 빛냈다.

 

▲ 길빵나무 아래에서 길놀이풍물패 공연을 하다     © 최영숙

 

장곡대동제의 본 제례를 지내기에 앞서, 길빵나무 아래에서는 축제의 흥을 돋우는 길놀이 풍물패의 신명 나는 공연이 펼쳐졌다. 공연이 끝난 후 이희수 추진위원장이 강단에 올라 인사말을 전했다.

 

"무덥던 삼복더위도 한풀 꺾이고 아침저녁으로는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초가을에 내빈 여러분을 모시고 대동제를 지내게 됨을 진심으로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본래 장곡동 대동제는 지난 음력 단오에 제를 지내기 위해 모든 준비를 마쳤으나, 뜻하지 않은 메르스(MERS) 사태로 인하여 연기되었다가 오늘에서야 제를 지내게 되었습니다. 대동제는 장곡동의 수호신이신 이곳 길빵나무(측백나무) 아래에서 제를 올림으로써 주민들의 안녕을 빌고, 나아가 이 자리를 통해 이웃 간에 단합하고 화합하여 살기 좋은 마을로 발전시키는 데 큰 몫을 해왔습니다."

 

▲ 길빵나무(측백나무)의 모습     © 최영숙

 

이어 이희수 추진위원장은 길빵나무(측백나무)에 얽힌 유서 깊은 내력을 설명했다.

 

"병자호란 당시 저희 선조분들이 이곳을 피난처로 삼아 숲속에 숨어 지내시던 중, 적군의 군마를 빼앗아 타고 전쟁에 참여하셨습니다. 치열한 전투 중 한쪽 귀가 잘려 나가는 부상을 입으면서도 끝내 적을 물리치셨고, 그 공로를 인정받아 인조 임금으로부터 벼슬을 하사받으셨습니다. 가문의 영광과 전승을 기념하기 위해 심은 나무가 바로 이 길빵나무라는 전설이 구전으로 내려오고 있습니다. 이후 이 길빵나무는 나라에 큰 어려움이 닥치면 시름시름 시들어 가다가도, 나라가 안정을 되찾으면 다시 잎이 번성하고 푸르게 살아났다는 영험한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가족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야 할 주말임에도 소중한 시간을 내어 참석해 주신 내빈 여러분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비록 차린 음식은 소찬(素饌)이나 맛있게 드시고 정겨운 시간 나누시길 바랍니다"라고 환대의 인사를 전했다.

 

▲ 장곡대동제를 지내다     © 최영숙

 

이날 장곡대동제는 전주이씨 영응대군 흥선부정지파 장곡종친회의 주최로 정성스럽게 봉행되었다. 또한 축제의 원활한 진행을 위해 장곡청년회, 진말사랑회, 5060, 향우회, 통장협의회, <장곡타임즈>, 장곡동 새마을협의회 부녀회, 장곡발전협의회, 아파트연합회 등 지역의 수많은 자생 단체들이 힘을 보탰다.

 

▲ 장곡대동제를 지내는 동안 아래에서는 마을주민들이 지켜보았다.     © 최영숙

 

이번 장곡대동제를 통하여 도시 개발로 인해 이제는 사라진 옛 마을의 원주민들과 새로이 자리 잡은 현재의 입주민들이 한마음 한뜻을 이루었다. 과거와 현대가 아름답게 화합하는 순간이었다.

 

▲ 길빵나무에게 술을 붓다     © 최영숙

 

경건한 제례를 모두 마친 후, 장곡동의 안녕을 기원하며 축문을 태우고 수호신인 나무 아래에 정성스럽게 술을 올리는 음복 의식이 이어졌다.

 

▲ 제를 끝나고 음식을 나누다     © 최영숙

 

장곡대동제의 본 행사가 끝난 후, 참석한 주민들은 한자리에 모여 준비된 음식을 나누어 먹으며 이웃 간의 정을 다졌다.

 

▲ 단체사진을 담다     © 최영숙


 이곳이 장현택지개발지구로 편입되면서, 400년의 세월 동안 장곡동 진마루를 지켜왔던 수호신은 한때 잘려 나갈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고향의 뿌리를 지키고자 장곡청년회가 주축이 되어  '나무 살리기 운동'을 전개했고, 그 간절한 노력 끝에 마침내 '원형 존치'라는 값진 결정을 이끌어냈다. 참으로 다행스럽고 가슴 벅찬 결과였다.

▲ 마을주민들이 음식을 준비하다     © 최영숙


장곡대동제는 온 동네가 어우러지는 따뜻한 마을 잔치였다. 부녀회 회원들은 이른 아침부터 소매를 걷어붙이고 동네 어르신들에게 대접할 음식을 정성껏 장만했다. 현대 도시 사회에서는 참으로 오랜만에 마주하는 가슴 따뜻한 풍경이었다.

 

▲ 마을로 돌아가다     © 최영숙

 

. 잔치가 모두 끝난 후, 마을 주민들은 축제 추진위원회에서 감사의 마음을 담아 선물한 기념 수건을 한 장씩 받아 들고 행복한 표정으로 집으로 돌아갔다.

 

▲ 위용이 넘치는 길빵나무     © 최영숙

 

 현장에서 만난 이경열(62년생) 장곡청년회장은 “어릴 적 늘 이 나무 아래가 우리들의 놀이터였다. 마을 입구 길가에 우뚝 서 있는 나무라고 해서 우리끼리는 다정하게 ‘길빵나무’라고 불렀다. 이 나무는 특유의 독특한 향이 있어서 주변에 해충이나 벌레가 꼬이지 않았다. 덕분에 옛날 어르신들은 논에서 고된 일을 하시다가도 이 나무 그늘 아래 모여 점심을 먹고 시원하게 낮잠을 청하곤 하셨다”라며 옛 기억을 더듬었다.

 

이어 그는 “장곡대동제를 지내기 바로 전날, 엘에이치(LH) 공사로부터 이 길빵나무(측백나무)와 인근의 역사적 유산인 노루우물이 마침내 개발 지구 내에 그대로 존치된다는 최종 통보를 받았다. 우리 마을의 수호신과 정신적 뿌리가 훼손되지 않고 이 자리에 온전히 남을 수 있게 되어 얼마나 다행스럽고 기쁜지 모른다”라며 감격 어린 소회를 밝혔다.

 

400년이라는 기나긴 세월 동안 마을의 역사를 묵묵히 지켜본 고목의 힘은 실로 위대했다. 도로가 뚫리고 아파트 숲이 들어서는 거대한 개발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이 나무 한 그루가 지닌 상징성 덕분에 옛 원주민들과 새로 이사 온 아파트 입주민들이 이질감 없이 '장곡동 주민'이라는 이름으로 하나가 될 수 있었다. 나무를 살려내겠다는 간절함이 흩어져 있던 마을 공동체의 마음을 단단하게 연결해 주는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해낸 것이다.

 

앞으로 이곳에 새로 들어설 아파트의 주민들 역시, 이 길빵나무를 바라보며 400년을 이어온 마을의 깊은 역사적 전통과 숨결을 고스란히 물려받게 될 것이다. 진마루의 길빵나무(측백나무)는 오늘도 거센 바람 속에서 수많은 역사적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주고 있다.

 

이 위용 넘치는 나무는 주민들의 사랑 속에서 여전히 살아있는 전설을, 그리고 새로운 역사를 도시에 아로새기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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