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군자봉성황제에서 고현희 당주 도당불사를 하다 ©최영숙 |
|
2014년 11월 24일 11시 군자봉 정상에서 천년을 이어온 군자봉성황제가 열렸다.
군자봉은 행정구역상 시흥시 군자동과 장현동·능곡동 사이에 위치한 높이 199m의 산이다.
이 산에서 성황제를 지냈다는 것은 조선 전기에 편찬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 이미 나와 있다. 또한 조선 후기에 편찬된 '여지도서(與地圖書)'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군자성황제가 조선 초기 국가의 공식 기록물에 언급될 정도로 당시 널리 알려졌다.
군자봉에서 모시는 성황신(城隍神)이 김부대왕, 즉 신라의 마지막왕인 경순왕이라는 점은 우리나라에 ‘성황신앙(城隍神仰)’이 전래된 고려시대에 이미 시작되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이러한 점에서 군자봉성황제는 천년의 전통이 깃든 유서 깊은 행사이다.
구지정 주민들은 군자봉 정상에 있는 성황당에 경순대왕을 모셔놓고 매년 섣달(음력12월) 당주와 마을주민들이 올라가 제를 지낸다. 이어 경순대왕을 마을로 모시고 내려와 집집마다 유가를 돌고 삼월삼짇날(음력3월3일)이 되면 다시 군자봉 성황당에 모신다.
마을 주민들은 추수가 끝난 음력 10월3일 성황제를 통해 풍작과 마을의 안녕을 감사드리고 제가 끝나면 매년 편안하길 기원하는 대동제를 벌였다.
정원철 시흥문화원장은 인사말을 통해 “고려시대 이래 천년의 전통이 있는 군자봉성황제는 백성들의 소박한 기원풍습이 담겨 있는 우리 시흥시의 소중한 역사, 문화적 자신입니다. 2014년 군자봉성황제에 모두 한자리에 모여 즐겁게 이웃과 화합하고 넉넉한 인정을 나누며 나의 건강, 이웃의 기쁨, 시흥의 번영과 국가의 안녕을 기원하는 자리를 함께하신 시민 및 내빈 여러분께도 감사를 드린다.”고 했다.
2014년 군자봉성황제 출연자는 다음과 같았다. 연행(무녀)으로는 고현희 당주, 조광현, 김순중, 승경숙, 서미애, 윤희숙, 김기철, 변순애 씨였다. 악사는 이한복, 문종호, 강차욱, 이희선, 노일환 씨였다. 또한 군자봉성황제연구보존회의 회장 한정현, 부회장 이도수, 부회장 황정학, 사무국장 표용환, 회원 당행복, 김은태, 표장환, 이상선, 강재모, 이상목, 이상걸, 이흥렬, 이상화, 이명열, 최보근, 당승상, 황기종, 정세훈 씨였다. 또한 군자봉 올라 성황제를 지켜본 내빈과 시민들이 함께 했다.
| ▲ 1번- 대왕님모시기(신청올림)을 하다 ©최영숙 |
|
군자봉성황제의 순서는 대왕님모시기(산청올림)- 부정거리- 도당불사- 산신맞이- 별상거리- 산신장거리- 산대감거리- 산창부거리- 뒤전 순으로 이어졌다.
군자봉성황제연구보존회원들과 함께 대왕님모시기(산청울림)을 했다. 산청울림은 대왕님장대기를 들고 성황당에 마을풍물패와 무녀들이 굿하기 전 풍악을 울리며 대왕님을 모셔들이는 것이다. 굿의 시작을 알리는 것이었다.
김순중 무녀가 부정한 것을 소멸시키는 부정거리를 했다.
| ▲ 3번-고현희 당주 도당불사를 하다. 주민이 기원하다 ©최영숙 |
|
도당불사(산불사거리)는 산불사님, 산칠석님, 산제석님을 청배하여 시흥지역 주민들의 수명장수 무사고를 기원하는 것이다.
| ▲ 4번 - 고현희 당주 산신맞이를 하고 군자봉성황제연구보존회 회원들 단에 올라 각자의 소망을 기원하다 ©최영숙 |
|
고현희 당주가 산신맞이(산신거리)를 했다. 이 굿은 군자봉성황의 본향님과 그 부근의 도당님, 팔도의 산신령님을 청배하여 나라의 안녕과 번영, 만백성의 무사안녕을 기원하는 굿이었다.
| ▲ 5번-승경숙 무녀 산신장거리를 하다 ©최영숙 |
|
승경숙 무녀의 산신장거리가 이어졌다. 다섯 색깔의 기를 펴서 오방신장님을 청배하여 동,서,남,북,중앙에 드는 액운을 막고, 성황제에 온 손님들에게 기를 뽑게 해 길흉화복을 점쳐 주는 것이다.
| ▲ 승경숙 무녀의 산신장거리에서 기를 뽑아 길흉화복을 점치는 사람들 ©최영숙 |
|
사람들은 기를 뽑아서 한 해의 길흉화복을 점쳤다.
| ▲ 6번-승경숙 무녀가 별상거리를 하다 ©최영숙 |
|
승경숙 무녀는 나라별상들을 청배하여 나쁜 질병이나 재해사고 등을 막아 달라 기원하며 가져온 제물을 삼지창에 세워 올리는 별상거리를 행했다
| ▲ 7번-승경숙 무녀가 대감거리를 했다 © 최영숙 |
|
승경숙 무녀가 산대감거리를 했다. 산을 조정으로 대감들을 청배하여 사람들에게 재물번성은 돕고 손재는 막아 풍요를 기원하는 거리이다.
| ▲ 8번- 고현희 당주 산창부거리를 하다 ©최영숙 |
|
고현희 당주가 12가지 흉액과 1년의 액운을 막아주는 산창부거리를 했다.
| ▲ 9번- 고현희 당주 뒷전거리를 하고 참석했던 사람들에게 헝겊을 찢어 액을 막게 하다 © 최영숙 |
|
마지막으로 고현희 당주가 뒷전거리를 했다. 굿이 끝난 뒤 나쁜 기운이 침범하는 우환이 없도록 내쫓기 위한 마지막 거리였다.
| ▲ 군자봉성황제를 마치고 산을 내려오다 ©최영숙 |
|
군자봉성황제를 마치고 고현희 당주를 비롯한 출연자들이 하산했다.
| ▲ 군자봉성황제가 끝나고 서낭대 내려오다 © 최영숙 |
|
군자볻성황제영구보존회원들과 부회장 황정학(69) 씨 등이 군자봉성황제가 끝나고 서낭대를 들고 내려오는데 바람처럼 가볍게 휘휘 내려왔다.
황정학(69) 씨는 “젊은 사람들도 힘들다는 서낭대를 잡는 것은 내 정성으로 한다. 서낭대를 잡으면 힘이 하나도 안 들고 걸음이 떼어진다. 나도 모르게 힘이 나온다.”며 "예전에는 나무들을 해서 지금처럼 산이 우거지지 않아서 서낭대를 꼿꼿이 세우고 내려왔다."고 했다.
거모동에 사는 이상익(59)씨는 지게로 제물들을 운반했다. “지금은 지게를 지는 사람들이 없어서 5-6년 전부터 다시 지게를 지고 있다. 내가 처음 군자봉성황제 때 지게를 지고 올라간 게 17살 때 갔다. 어려서 노인들이 장사라고 하는 소리에 칭찬받는 재미로 엄청 큰 돼지를 지고 갔다. 당시 품삯이 150원인데 800원을 받고 했다. 그 당시는 시흥군 잔치였다, 성황제를 하면 여기부터 잔머리까지 발 딛을 틈이 없었다. 그 당시 행사는 3-4일전부터 막걸리도 몇 번 지고 올라가고 동네 어린이들은 구경하는 재미로 갔다. 주관은 연배들이 한참인 분들이 했다. 지금은 얼마 통장에 넣는지 모른다. 동네일이니까 돈 생각하지 않고 돕는다는 마음으로 한다.” 고 했다.
서낭대가 고현희 당주의 대문 밖에 세워졌다.
천종항아리에 물을 담고 서낭대를 맞아 들이는 의식을 했다.
당주의 집에서는 다시 굿이 시작되었다.
고현희 당주가 단골에게 공수를 내렸다.
구준물에서 군자봉성황제가 갖는 의미는 각별했다.
황정학(69) 씨는 “군자동에 전기가 빨리 들어 온 것도 1969년도 경에 군자봉성황제를 했는데 쌀과 돈들이 많이 들어왔다. 그때 들어온 것을 모아서 공사를 시작했다. 당시는 현재의 당주 고현희 친정엄마 고 김순덕 씨가 맡아서 했는데 마을을 위해서 봉사로 굿을 해줬다. 그때 들어온 돈이나 쌀 등은 모두 마을에 내놨다. 돌아가신 그분도 좋은 일을 정말 많이 했다.”고 회고했다.
"지금까지 서낭대를 잡는 것도 이웃집에서 어릴 때부터 보던 고현희 당주가 '아저씨가 서낭대를 잡아주세요'하는 당부를 들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아직은 엄마 고 김순덕 당주에게는 못 미치지만 정말 잘한다."고 했다.
군자봉성황제연구보존회가 이렇게 유지되고 고현희 당주가 군자봉성황제를 대를 이어 하는 것도 이렇듯 오랜 인연들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년에도 더욱 발전되고 한마을을 어우르는 축제가 되기를 기원했다.
 |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을 사용하는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 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