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속 취재] 천년의 바람, 만백성의 숨결을 품다... 2014년 군자봉성황제 현장을 가다천 년을 이어온 군자봉 성황제를 다녀오다
지난 11월 24일 오전 11시, 시흥의 영산(靈山)이자 오랜 신앙의 터전인 군자봉 정상에서 천년을 이어온 ‘군자봉성황제’가 거행되었다.
군자봉은 행정구역상 경기도 시흥시 군자동과 장현동, 능곡동 사이에 가로누운 높이 199m의 나지막한 산이다. 비록 산세는 높지 않으나 이 산 정상에서 오래전부터 성황제를 지내왔음은 조선 전기에 편찬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과 조선 후기의 『여지도서(與地圖書)』 등 국가 공식 기록물에 이미 선명히 규정되어 있다. 이처럼 군자봉성황제는 국가가 주목할 만큼 역사적 안목과 대중성을 고루 갖춘 전통 민속 의례이다.
군자봉 성황당에서 모시는 주신(主神)은 신라의 마지막 왕인 경순왕(김부대왕)이다. 우리나라에 성황 신앙이 본격적으로 전래된 고려시대부터 이미 경순왕을 성황신으로 모시기 시작했을 것으로 추측되는데, 이러한 배경은 군자봉성황제가 천년의 세월을 관통해 온 유서 깊은 전통 문화유산임을 웅변해 준다.
예부터 구지정(군자동) 주민들은 군자봉 정상 성황당에 경순대왕을 모셔두고 매년 섣달(음력 12월)이 되면 당주와 함께 산에 올라 정성껏 제를 올렸다. 제가 끝나면 대왕님을 친히 마을로 모시고 내려와 집집마다 복을 빌어주는 ‘유가(돌기)’ 행렬을 벌였고, 이듬해 봄 삼월삼짇날(음력 3월 3일)이 되어서야 다시 군자봉 성황당으로 배웅해 모셨다.
특히 추수가 끝난 음력 10월 3일에는 거대한 성황제를 통해 한 해의 풍작과 마을의 안녕에 감사드리고, 의례가 끝나면 온 마을 주민이 하나로 어우러져 화합과 번영을 기원하는 전형적인 ‘대동제(大同祭)’를 성대하게 벌여왔다.
정원철 시흥문화원장은 이날 축사를 통해 “고려시대 이래 천년의 맥을 이어온 군자봉성황제는 민초들의 소박한 기원과 정성이 담겨 있는 우리 시흥시의 가장 소중한 역사이자 문화적 자산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 모두가 한마음으로 모여 이웃 간의 화합을 다지고 넉넉한 인정을 나누며, 개인의 건강과 시흥의 번영, 나아가 국가의 안녕을 함께 기원해 주신 시민 및 내빈 여러분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라고 인사를 전했다.
이번 2014년 군자봉성황제를 이끌어간 주역들은 다음과 같았다. 굿을 집전하는 연행(무녀)으로는 고현희 당주를 비롯해 조광현, 김순중, 승경숙, 서미애, 윤희숙, 김기철, 변순애 씨가 참여했으며, 현장의 흥과 격을 돋우는 악사로는 이한복, 문종호, 강차욱, 이희선, 노일환 씨가 나섰다.
아울러 축제의 뼈대를 지탱해 온 군자봉성황제연구보존회의 한정현 회장, 이도수·황정학 부회장, 표용환 사무국장을 필두로 당행복, 김은태, 표장환, 이상선, 강재모, 이상목, 이상걸, 이흥렬, 이상화, 이명열, 최보근, 당승상, 황기종, 정세훈 회원 등이 서낭대를 메었다.
이날 군자봉성황제는 대왕님모시기(산청올림)를 시작으로 부정거리, 도당불사, 산신맞이, 별상거리, 산신장거리, 산대감거리, 산창부거리, 뒤전 순으로 격식 있게 이어졌다.
첫 순서로 보존회원들과 함께 ‘대왕님모시기(산청울림)’를 거행했다. 산청울림은 거대한 대왕님장대기를 앞세우고 마을 풍물패와 무녀들이 굿을 시작하기 전, 신령스러운 풍악을 울리며 대왕님을 굿판으로 정중히 모셔 들이는 서막이었다.
이어 김순중 무녀가 굿판의 부정한 기운을 깨끗이 씻어내고 도당을 정화하는 ‘부정거리’를 신명 나게 집전했다.
세 번째로 고현희 당주가 집전하는 ‘도당불사(산불사거리)’가 이어졌다. 산불사님과 산칠석님, 산제석님을 지극정성으로 청배하여 시흥 지역 주민들의 수명장수와 무사고를 기원하는 의례로, 신자들은 단 아래서 연신 허리를 굽히며 영신의 축복을 바랐다.
다섯 번째 순서로는 승경숙 무녀의 ‘산신장거리’가 흥을 돋웠다. 무녀가 화려한 다섯 색깔의 오방기를 펼쳐 들고 오방신장님을 청배하여 동서남북과 중앙에서 치고 들어오는 모든 액운을 무서운 기세로 막아내는 거리였다.
여섯 번째로 승경숙 무녀가 ‘별상거리’를 집전했다. 국경을 수호하는 나라별상들을 청배하여 모진 질병과 불의의 재해사고를 막아달라 기원했으며, 가져온 제물을 날카로운 삼지창 위에 중심을 잡아 똑바로 세우는 영험한 의식을 성공시키며 관객들의 탄성을 자아냈다.
이어 승경숙 무녀가 ‘산대감거리’를 행했다. 산을 다스리고 조정의 복을 관장하는 대감신들을 청배하여, 주민들에게 재물 번성의 복을 내리고 손재수는 철저히 막아 삶의 풍요를 안겨주는 신명 나는 거리였다.
여덟 번째로 고현희 당주가 무대에 올라 ‘산창부거리’를 행했다. 인간 세상의 12가지 흉액과 1년 365일의 온갖 횡수를 다정하고도 단호한 노랫가락으로 막아주는 의례였다.
마지막으로 고현희 당주의 ‘뒷전거리’를 끝으로 성황제의 모든 거리가 마무리되었다. 굿이 끝난 뒤 혹여나 잔존해 있을지 모를 나쁜 잡귀나 기운이 주민들의 삶을 침범하지 않도록 멀리 내쫓는 마감 의식이었다. 당주는 굿판에 참석한 시민들에게 오색 헝겊을 찢어 나누어 주며 집에 돌아가는 길의 액막이를 도왔다.
모든 성황제를 무사히 마친 고현희 당주와 무녀, 악사 등 출연진들이 무거운 의례복을 정돈한 채 긴장이 풀린 몸으로 천천히 하산하기 시작했다.
군자봉성황제연구보존회 회원들과 황정학(69세) 부회장은 성황제의 상징이자 대왕님의 신체(神體)인 거대한 서낭대를 받들어 메고 산을 내려왔다. 수십 킬로그램에 달하는 묵직한 나무 기둥임에도 불구하고, 내려오는 발걸음은 마치 바람을 탄 듯 가볍고 휘휘 경쾌했다.
황정학 부회장은 서낭대를 가만히 만지며 미소를 지었다. “이게 워낙 무겁고 중심 잡기가 힘들어서 젊은 사람들도 몇 분 들면 나가떨어지는 서낭대야. 하지만 내가 어릴 때부터 이어온 지극한 정성으로 잡으면 신기하게도 무게가 하나도 안 느껴져. 서낭대를 딱 쥐는 순간 발걸음이 저절로 떼어지고, 내 몸 어디선가 설명할 수 없는 신비로운 힘이 솟구쳐 나온다니까. 예전에는 사방에서 나무들을 내다 쓰느라 지금처럼 산이 수풀로 우거지지 않았어. 그래서 이 긴 서낭대를 하늘 높이 꼿꼿이 세운 채 장엄하게 산을 내려오곤 했지.”
거모동에서 온 이상익(59세) 씨는 이날 성황제에 쓰인 무거운 통돼지와 제물들을 오직 나무 지게 하나에 의지해 정상까지 운반해 낸 숨은 주역이었다.
“요즘 세상에 지게 지을 줄 아는 젊은 사람들이 어디 있나. 그래서 5~6년 전부터 내가 다시 지게를 지고 이 가파른 산길을 오르내리고 있지. 내가 군자봉성황제 때 처음 지게를 지고 올라간 게 고작 17살 소년 시절이었어. 그땐 몸집이 좋으니까 동네 어른들이 '어이구, 장사네 장사야!' 하고 칭찬해 주는 게 어찌나 신나고 재미있던지, 내 몸 만한 엄청나게 큰 통돼지를 지게에 지고 단숨에 정상까지 올라갔었지. 당시 일반 하루 품삯이 120원~150원 하던 시절인데, 힘들고 기특한 일 한다고 무려 800원이라는 큰돈을 받았던 기억이 선해.
그 시절 군자봉성황제는 그야말로 온 시흥군 전체의 거대한 잔치였어. 성황제를 하는 날이면 여기 군자봉 입구부터 저 아래 진머리 고갯길까지 전국에서 구경꾼과 신자들이 몰려와 발 디딜 틈이 없었지. 행사를 치르기 3~4일 전부터 어른들이 마실 막걸리 통을 몇 번씩 지게에 지고 산을 올랐고, 동네 꼬마들은 신기한 굿판 구경하는 재미에 신나서 쫄래쫄래 쫓아왔었어. 당시엔 동네의 역사 깊은 연배 어르신들이 책임감을 느끼고 주관하셨는데, 지금은 세상이 바뀌어 돈이 어떻게 주어지는지는 잘 몰라. 그저 내 고향, 내 동네 일이니까 돈 생각하지 않고 순수한 돕는 마음 하나로 지게를 진다”며 땀을 닦았다.
산에서 내려온 서낭대는 전통 예법에 따라 구지정 마을에 위치한 고현희 당주의 집 대문 밖에 웅장하게 세워졌다.
당주 집 마당에는 투명한 물을 가득 채운 ‘천종항아리’가 놓였다. 주민들은 항아리 앞에 서서 산에서 무사히 내려온 서낭대를 신성하게 맞아들이는 유서 깊은 가정 의식을 거행했다.
서낭대가 안착하자, 당주의 집 내부 신당에서는 마을과 단골들의 개인적인 축원을 위한 두 번째 굿판이 신명 나게 시작되었다.
이렇듯 구준물(군자동) 주민들에게 군자봉성황제가 갖는 민속적·역사적 의미는 실로 각별하고 끈끈했다.
황정학 부회장은 과거 마을의 황금기를 떠올리며 회고에 잠겼다. “우리 군자동 일대에 전기가 주변 다른 동네보다 유독 빨리 들어왔어. 그게 1969년도 경의 일인데, 그때 군자봉성황제를 대대적으로 치르고 나니 전국에서 모여든 신자들이 낸 쌀과 돈이 창고에 정말 엄청나게 쌓였거든. 우리 주민들은 대왕님이 주신 그 소중한 재물을 개인적으로 쓰지 않고, 온 마을에 전기를 끌어오는 가설 공사 비용으로 몽땅 내놓으며 공사를 시작했지.
당시 성황제는 현재 고현희 당주의 친정어머니이신 고(故) 김순덕 당주께서 도맡아 하셨는데, 그분은 평생을 오직 마을 주민들을 위한 순수한 봉사 정신으로 굿을 집전해 주셨어. 굿판에서 들어온 쌀 한 톨, 돈 한 푼도 개인 주머니에 넣지 않고 전부 마을 공동 재산으로 내놓으셨지. 이미 고인이 되셨지만, 참으로 훌륭하고 좋은 일을 많이 하신 위대한 어른이었어. 내가 이 나이가 되도록 무릎이 아파도 서낭대를 놓지 않고 끝까지 잡는 것도, 이웃집에서 갓난아기 때부터 이쁘게 자라는 걸 보아온 고현희 당주가 '아저씨, 어머니 때처럼 제발 저를 도와 서낭대를 꼭 잡아주세요' 하고 간곡하게 당부했던 그 오랜 신뢰와 약속이 가슴에 남아있기 때문이야. 아직은 위대했던 어머니 고 김순덕 당주의 깊은 연록에는 조금 못 미칠지 몰라도, 대를 이어 우리 고향의 신을 모시는 고현희 당주를 보면 대견하고 정말 굿을 잘한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전통의 단절을 걱정하는 현대 사회에서 ‘군자봉성황제연구보존회’가 이토록 끈끈하게 유지되고, 고현희 당주가 가업을 이어 군자봉성황제의 매서운 횃불을 대를 이어 켤 수 있는 배경에는, 이렇듯 수십 년간 쌓여온 마을 주민들과의 깊은 인연과 무언의 약속이 단단한 주춧돌로 버티고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차가운 겨울의 길목에서 만난 천년의 굿판. 다가오는 내년에도 이 유서 깊은 군자봉성황제가 한층 더 발전하여, 흩어진 실향민들의 마음을 안아주고 온 시흥 시민의 상생과 화합을 도모하는 위대한 대동 축제로 거듭나기를 간절히 기원해 본다. <저작권자 ⓒ 시흥장수신문(시민기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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