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염전에서 바라보았던 아름다운 교회를 기억한다

최영숙 | 기사입력 2005/07/31 [00:00]

폐염전에서 바라보았던 아름다운 교회를 기억한다

최영숙 | 입력 : 2005/07/31 [00:00]

    요즘 들어서 문득 사람의 기억이란 집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인상에 깊이 남은 어떤 사물에 대한 기억은 그 대상의 모습이 바뀌었음에도 기억은 예전의 모습을 더듬어 찾았다.

 처음 폐염전의 사진를 찍을 때는 드넓은 폐염전에 들어서면 방향 감각을 잃기 십상이었다.  변하지 않는 대상을 기준점으로 삼기로 했다.  빨간지붕의 아름다운 교회가 보였다.  그곳으로 정했다. 내가 어느곳에 서 있는가를 알려면 빨간지붕의 교회를 찾으면 되었다. 
 
  그 뒤부터 작고 예쁜 빨간지붕의 교회를 바라보면 알 수 없는 안도감이 느껴졌다.

지난 여름,

 능소화가 소담스럽게 피었을 때 교회를 찾았다.  교회의 이름은 주찬양교회였다.
 교회는 멀리서 본것처럼 역시 아름다웠다.
 능소화가 종탑을 휘감아 올랐다.능소화의 그 무성함이 교회의 오랜 역사를 말해주는 듯했다.

 종탑이 보였다.

 이곳에서 교회 종을 치면 저 포동의 벌판에서도 은은하게 들렸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종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시계가 귀하던 시절에는 교회에서 울리던 종소리로 아침을 시작하고 석양이지는 염전에서 저녁기도를 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찬양교회는 바라보기만 해도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교회였다.

 언제 많이 와 봤었던 느낌은 늘 폐염전에 보아온 풍경이 익숙랬기에 낮설지 않고 마치 내가 오래도록 함께 있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눈길 아래에 있는 것들이 사진 담기에는 좋았다.  높이 있는 능소화는 손에 닿기가 힘들었다.  그러나 그 능소화의 생명의 시작점은 땅 속부터였다.   눈길이 머무는 곳에서 생명의 근원 가까이에서 숨쉬는 생생한 꽃을 만날 수 있다.  위와 아래는 한 뿌리로 만난다.  꽃에도 각자의 색깔이 있다. 능소화를 보면 긴장이 된다.  피어있는 동안 조금도 흐트러짐 없이 말쑥하게 자신을 보는 사람을 바라보는 듯했다.  지는 모습은 또한 얼마나 당당한지 일절의 망설임도 없다.  아무런 미련도 없다는 듯 '툭' 하고 떨어져 내린다.  옷자락 잡고 매달리는 연인의 잡은 옷자락을 베고 떠나는 무사 같았다.
 
지난 겨울, 주찬양교회를 찾았다.

 사진을 찍으면서 느끼는 것은  어느 정도 그 장소에서 제대로 된 느낌을 알려면 적어도 한 장소를 10번은 가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계절마다 느낌이 다르고, 눈, 비,바람이 불면 다르고, 시간별로 다르기 때문이다.
 그저 부지런해질 수 밖에 없다.
 겨울에 만난 주찬양교회의 능소화는 꽃이 필 적에 왔을 때와 느낌이 완연히 달랐다.
 그때는 무심히 보아 넘겼던 교회로 이어진 흰계단이 눈이 띄었다.
  저 문을 열고 들어서면 나이 지긋한 목사님과 이곳 포동의 오랜 세월을 살아온 할머님이 기도드리고 있을 듯했다.
 이처럼 오래된 교회가 있다는 것은  예전에 젊었던 시절을 보내신 어른신들에게 교회는 하느님의 성전인 동시에 자신에 살아온 세계가 아닐 듯싶었다.
 자녀들이 세례를 받고 주일학교를 보내고, 결혼을 하고, 손주들이 오고...
모든 추억이 함께 살아 숨쉬는 그런 곳이 아닐까 싶었다.

 우리가 어느 한 순간에 세월을 뛰어넘는 경우가 있다. 누군가 함께 했을 때, 음악을 듣는 다거나 익숙한 장소를 간다는 것은 그것이 단순한 음악이나 장소는 아니게 된다.
 각자, 추억의 시간에서 멈춰지는 어떤 순간이 되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이 교회에서 얼마나 많은  신도들이 그분들 나름의 추억들을 이곳에서 만들었을까 싶었다.
 
 층계를 올라섰다. 숨이 멈췄다.

 
 능소화가 휘감아 올랐던 종탑에서 하늘로 오르는 사다리를 만났다.
  지난 여름, 저 종탑의 능소화가 얼마나 화려하고 단호했던가!  그러나 그 또한 치장에 불과했다.
 본질은, 모든것을 벗어 버렸을 때에 만날 수 있다.
 꽃도, 잎도, 모두 떨궈진 능소화가 있을 때에야 명쾌히 하늘로 오르는 사다리에 오를 수 있는 것이다.
 우리를 감싸고 있는 그 많은 이름의 명패들과 치장된 웃음들, 꽃에 불과했다.
  그곳에 서 있으니 누군가 단호히 본질을 보이라고 했다. 나를 감싸고 있던 꽃과 잎들을 떼어냈다.  본질을 마주 본다는 것이 가장 두렵다.
 추위가 몰려왔다.  오래 견딜수가 없다.
 남의 옷도 오래도록 입고 있으면 몸에 착 붙듯이 오히려 태초의 몸으로 돌아가는 것이 더욱 힘들었다. 주섬주섬 다시 화려한 꽃으로 화장을 하고 잎으로 옷을 가려 입었다.  

  하늘 종탑으로 이르던 사다리는 모든것을 버리라고 했다. 훌훌 떨쳐버렸을 때의 전 단순함과 지순함을 보라고 했다. 진정 완전한 순간은 가장 외롭고 뼈속을 휘도는 추운 순간이라고 일깨워 주었다.그러나, 아직 멀고 멀었다.  겨우, 잠시 잠깐 몰아치던 추위속에서 느껴지던 차갑게 정화되는 느낌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어느날 눈에 익은 건물이 사라지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올 봄, 포동을 지나면서 주찬양교회쪽을 바라보았다. 
뭔가 이상했다. 붉은 지붕대신 새로운 건물이 들어서 있었던 것이다.  주기적으로 포동폐염전을 가기에 건물이 바뀐것조차 모른것에 당황스러웠다. 안으로 급히 들어갔다. 새로운 교회건물이 들어서 있었다. 마침 일요일이어서 교회안에서는 찬송가가 들려왔다. 준 공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인지 화환들이 교회안에서 보였다.

   마음의 보석상자를 잃은 듯한 허탈감이 밀려왔다. 괜히 속이 상해서 얼른 교회를 빠져나왔다.
 며칠이 지나고 다시 찾았다. 그때야 보였다. 새 교회의 꼭대기에 달려있는 예전의 종이보였다. 
 
 생각해보았다. 남의 교회가 새로지었으면 축하는 못해 줄 망정 속이 상했던 이유가 무었이었을까? 그것은 나의 이기심과 욕심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 교회시설이 낡아서 고생했을지도 몰랐을 교인분들보다는 어떤 아름다운 풍경만을 생각한게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 교회에 오래 다니셨던 분들이면 나보다 더 이 교회를 사랑하시는 분들이셨을 것이기 때문이다.  능소화를 심었던 분들과 종을 울리셨던 분들이 더 사랑하지 않겠는가? 그분들도 추억이 있는 교회를 부수고 다시 짓는 일에 즐겁고 행복하지만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새 교회의 꼭대기에 상징적으로 매달려 있는 옛 종의 모습이 빨간지붕과 흰 계단, 능소화가 아름답던 옛 교회의 추억을 잊지 않으려는 그분들의 마음이 아닐까 싶었던 것이다.
 

포동 폐염전에서 바라다 본 교회의 모습이다. 그동안 익숙했던 빨간지붕의 교회에서 흰색의 현대식 건물로 바뀐 교회를 바라보는 마음은 여러모로 돌려봐도 아쉬움이 많고 바라보는 시선은 서툴다.

 요즘 능소화가 주위에서 피자 주찬양교회의 능소화가 가장 먼저 생각났었다. 어느 신도의 집 정원에서 살아는 있을까? 걱정이 되었다.  그러나,  적어도 누군가 한 사람은 능소화를 살려냈을 거라는 믿음이 있다.

 내겐 아주 특별한 능소화로 기억된 주찬양교회의 뚝뚝 떨어지던 그 사무라이 같던 꽃덩이들...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었던 종탑으로 이르던 겨울 사다리 풍경을 다시는 만날 수 없다. 
 
살면서 얼마나 많은 풍경들을 이렇게 속수무책으로 떠나 보내야 할까 싶다.

 그러나, 앞으로도 끝없이 떠나 보내야 할 것이다. 사물이나, 사람과의 인연도  종내는 모두 헤어질 것이다.  떠나는 연습을 잘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떠나는 연습의 한 과정 일 것이다. 삶이 한없이 가볍고,  집덩이 돌을 어깨에 지고 있듯이 한없이 무겁게 느껴졌다. 그러나 삶을 깃털처럼 가볍게 하는것과 어깨에 돌을 얹어 놓는것은  살면서 얼마나 짐을 부리고 갈 수 있느냐에 달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도 어깨가 뻐근하다. 세상에서 가지고 가고 싶은것이 부지기수다. 허튼 욕심일 뿐이다. 이제부터라도 천천히 버리는 연습을 해야겠다. 자신이 살아온 삶 외엔 어느것도 가져갈 수 없기에 가볍게 떠날 긴 여행의 준비를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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