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2번째 울타리 소금창고에 함박눈 내리다 © 최영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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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영탑 소금창고'를 지나면 자신들의 경계를 보호하겠다는 듯 울타리를 친 곳을 만날 수 있었다. 울타리란 담 대신에 풀이나 나무 따위로 둘러막거나 최소한의 경계를 구분 짓는 것이다. 마치 목장의 울타리 같았다. 울타리 너머로 33호 소금창고가 보였다. 이 풍경을 바라보면 목장을 떠올려서 목장 창고, 울타리 창고라고 불렀지만, 울타리라는 이름이 더욱 가깝게 느껴졌다.
▲ 온갖 야채들이 심겨져 있는 울타리 소금창고 ©최영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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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타리 안에 무엇을 두느냐에 따라 달라졌다. 울타리 안에 집이 있으면 담장이 되고 짐승들이 있다면 목장의 울타리들이 되는 것이었다. 이곳에서 경계를 만들면서 가르고 있는 것은 고추, 고구마, 깻잎, 콩 등의 온갖 야채들이 울타리 안에 있었다. 흥미로운 풍경이었다.
▲ 울타리 창고에서 바라본 새우개 당집과 나무들 ©최영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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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해 가을 새우개 당집에 갔었다. 겨울새 소금창고와 종이학 방향의 소금창고들을 내려다보았다. 세상 풍경들은 보는 방향에 따라 달라진다. 포동의 벌판에서 바라다 보이는 새우개 당집이 궁금했다. 새우개 당집을 나와서 포동 벌판으로 들어섰다. 이곳 울타리 창고에 도착해서 소금창고 기둥사이로 새우개 당집을 바라보았다. 멀찍이 소래산이 보이고 당집은 나무에 가려 보이지 않았지만 은행나무와 느티나무만이 저곳이 새우개 당집이 있는 곳이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새우개 당집은 마을에서 높은 지대에 있어서 포동 벌판 어디서든 바라다보였다. 신령스러운 존재를 두는 곳은 늘 사람들의 눈높이 보다 높다. 어디서도 보인다는 것, 그 방향성과 상징성으로 인해 어떤 장소에 대한 신성함과 경외로움이 생긴다는 생각을 하게 했다. 멀리 있어도 지긋이 내려다보고 있는 당집과 나무들을 바라보면서 옛사람들은 간절히 원하는 것을 기원하고 마음의 지향점을 두었을 것이다.
▲ 비 내리는 가을날 칠면초 붉게 피던 날의 울타리 창고 ©최영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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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는 가을에 이 창고를 다시 만났다. 울타리 창고 앞에는 온갖 푸성귀들을 가둔 울타리가 있었지만 뒷면에는 칠면초들이 붉게 피어나고 있었다. 아름다웠다. 어느 가을의 멋진 풍경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풍경도 천이 현상이 일어나면서 칠면초들은 점차 줄어들고 갈대들이 자리를 잡게 되었다.
▲ 상양산과 수리미산이 보이는 포동의 벌판 ©최영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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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늘어서 있는 '종이학 소금창고' 방향들 너머로 왼편의 상양산과 수리미 산이 손을 잡고 있었다. 눈길이 아득해졌다. 멀리 점점 일렬로 늘어서 있는 창고들을 보면서 이곳의 너른 벌판과 잘 어울리는 풍경이라는 생각을 했다.
▲ 울타리 창고 너머로 새들은 날아 오르다 ©최영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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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흥갯골생태공원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또 달랐다. 갈대밭 넘어 저 새떼들이 날아오르는 방향에 울타리 창고가 살짝 숨겨져 있었다.
봄이 되자 옥수수대처럼 날카롭게 뻗어난 갈대가 소금창고를 슬쩍 가리고 있었다. 세상 밖 풍경들이 모두 그렇듯, 이곳 봄의 풍경은 늘 경쾌하고 밝게 시작되었다.
울타리 창고 안으로 들어섰다. 지붕을 엮은 단단한 동아줄을 본다. 조금의 각도 흐트러지지 않도록 서로를 강하게 연결 짓고 있었다. 이렇듯 단단히 연결 지어진 세월을 어찌 두고 그렇게 속절없이 스러지는 것인지 지나간 풍경을 보는 일은 씁쓸한 일이었다.
▲ 32번째 울타리 창고 내부의 벽과 기둥들 ©최영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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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동 염전에서 염부로 일하셨던 안성남(46) 님의 증언에 의하면
“소금창고를 그득 채우던 소금들을 비워내고 소금창고 기둥에 남은 소금들은 몇 년을 넘겨 있던 것들이라서 간수가 모두 빠져나가 소금이 달짝지근했지요. 그래서 나이 드신 염부들과 힘든 노동을 마치고 한 잔 불콰하게 술을 마실라 치면 돼지고기를 구워 소금창고의 기둥에 붙어있는 간수가 다 빠진 몇 년 된 소금에 돼지고기에 찍어서 먹었습니다. 그때의 그 달짝지근하던 고기와 소금의 맛을 잊지 못한다."라고 하셨다.
옛 추억을 말씀하시는 표정에는 감회가 새로워 보였다.
그러나, 이제 포동 벌판에 염부들도 모두 떠나고 소금창고도 무너지고 염부들이 돼지고기를 찍어 먹었다는 기둥들만이 남겨졌다. 풍경은 사라지고 그 풍경을 기억하는 사람들만이 남겨진 것이다.
▲ 울타리 창고 너머로 보이는 학미산과 태산아파트의 모습들 ©최영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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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3월 1일 포동 벌판에서는 대보름 행사를 하고 있었다. 이제는 무너져 내린 '32호 울타리 소금창고'는 몇 개의 기둥만을 남겨놓고 있었다. 멀리 학미산과 태산 아파트가 보였다. 포동 벌판 대보름 행사장 안으로 들어섰다.
▲ 대보름 행사에서 줄넘기를 하는 어린이들 ©최영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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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동의 너른 벌판은 갈대들을 베어내고 어린이들이 놀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었다. 아이들은 줄넘기를 하고 있었다. 다른 방향에서는 대보름 행사답게 어린이들은 새끼줄을 얽매고 엄마와 함께 ‘칙칙폭폭’ 기차놀이를 하고 있었다. 사진기를 던져두고 같이 뛰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시흥의 어린이들과 시민들은 많은 혜택을 받는다는 생각을 했다. 시흥에서 이렇게 넓게 펼쳐진 벌판을 만날 수 있는 곳은 이곳 포동 벌판과 호조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곳도 아니고 두 곳이나 넓은 벌판을 가진 시흥에서는 놀이문화를 더욱 많이 발전시킬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 대보름 갈대 태우기에서 나타난 천마총 모습 ©최영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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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원을 담은 달집이 불태워졌다. 달집은 마치 천마가 하늘로 기상하는 듯 거칠게 타올랐다. 달집을 태우고 갈대밭 태우기를 했다. 온 포동 벌판이 붉게 물들어갔다. 갈대들이 타면서 만들어내는 형상을 보는데 마치 경주의 천마총 안에 들어선 느낌이 들었다. 너울너울 일렁이는 불꽃들이 마치 천마총의 말과 그를 호위하는 신하들처럼 보였던 것이다. 대보름을 맞아 한 해의 소원을 빌었던 모든 사람들의 소원을 들어 주는듯 했다.
▲ 32번째 울타리 소금창고에서 바라본 대보름 행사 모습들 ©최영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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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보름 행사장을 빠져나오면서 포동 벌판을 바라보았다. 온 벌판이 붉게 타올랐다. 이제는 무너져 내린 울타리 소금창고는 붉게 타오르는 포동 벌판을 무심한 듯 바라보고 있었다.
▲ 2008년 2월 울타리 너머의 창고들 모두 사라지다 ©최영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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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눈이 내렸다. 2년 전에 울타리 너머로 보이던 창고는 이제는 보이지 않는다. 그나마 듬성듬성 남겨졌던 창고의 모습들도 모두 사라졌다.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이 부서지듯 소금창고의 모습들은 그렇게 사라져갔다.
'32호 소금창고' 방향으로 사람들이 산책을 하고 있다. 풍경은 사라지고, 사람은 남고 지금을 기억하는 사람들 또한 사라지면 기록들만이 남겨질 것이다. 이곳이 다시 어찌 변할지 알 수 없다. 그저 오늘을 기록할 뿐이다. 기록이 많이 남겨질수록 이곳에 살았던 사람들과 이곳의 세월, 이곳의 옛 모습들을 더 정확히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삶의 경계에 울타리를 치고 산다. 나이가 들면서 예전에는 허술했던 울타리의 경계가 더욱 견고해져서 벽이 되어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살아온 세월이 길수록 만나는 사람이 더욱 많아질 듯한데 오히려 사람들 사이에서 떨어져 나오는 자신을 바라보게 되었다.
문득, 주위를 친 울타리들은 결국은 자신을 가두는 감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생각이 꼭 맞는 것도 아니건만 뭘 그리 잘 안다고 생각했을까? 세상을 여유롭게 바라보지 못하는 근시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각자의 생각들은 자유이기에 자신과 맞지 않는 것이 당연한 것을 “당신은 왜 그런가?”라고 상대에게 물었던 것이다. 손가락을 타인에게 가리키면 손가락질이 된다. 그러나 자신에게 돌리면 자신의 눈을 가리킨다. 자신이 선택해서 온 것이 여기까지인 것이다. 세상 일에는 옳고 그름이 양단 간에 결정 나는 일들이 그다지 많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산다는 것은 이 미묘한 경계의 틈에서 살아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기에 울타리를 단단히 칠수록 자신의 벽은 공고해지고 더 너른 세상을 볼 수 없는 것이었다. 당신은 누구인가?에서 나는 누구인가?로 스스로에게 물었다. 그러자 세상을 보는 눈이 좀 더 편안해졌다.
현재 일어나는 일들의 모든 원인과 결과들은 자신에게서 최초로 시작됐다는 생각을 했다.
늘 생각하고 있어야 할 일들을 자주 잊어버린다. 그래서 여전히 스스로의 울타리를 만들고, 부숴버리고를 반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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