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호 종이학 소금창고'

<연재>소금창고를 복원하다

최영숙 | 기사입력 2008/07/23 [10:01]

'28호 종이학 소금창고'

<연재>소금창고를 복원하다

최영숙 | 입력 : 2008/07/23 [10:01]


 

▲ 포동 펌프장 입구의 함박눈     © 최영숙


'종이학 소금창고'는 포동 펌프장을 지나서 왼쪽으로 가야 있었다.  2006년 눈이 내렸다. 서둘러 포동 소금창고로 향했다. 아무도 들어선 사람이 없다. 이렇듯 누가 밟지 않은 첫눈 길을 걷는 일은 늘 가슴을 설레게 만들었다.

 

▲ 펌프장 가는 길에서 겨울새 창고 방향으로 바라본 풍경     ©최영숙


포동 펌프장으로 들어서는 길에서 바라보는 두 개의 풍경은 늘 달랐다. 오른쪽으로 바라보면 방산대교를 바라보며 20호부터 ‘겨울새’ 소금창고까지 8개의 소금창고들이 늘어서 있었다.  이곳 포동 소금창고들 중에서 가장 상징적인 풍경이었다.  

▲ 28번째 '종이학' 소금창고 방향의 늘어선 소금창고들     ©최영숙


포동 펌프장 입구 방향에서 왼쪽으로 바라보면 '종이학' 소금창고부터 '37호 구름을 몰고 오다 소금창고'까지 10개의 소금창고들이 늘어서 있었다.  2004년부터 소금창고들을 사진에 담으면서 이곳의 창고들이 어느 날  속절없이 무너져 내리거나 또는 얼마 전까지 멀쩡했던 창고들이 불에 타서 사라지는 풍경들을 바라보았다. 그 풍경들을 바라보는 일은 세월의 덧없음을 느끼게 했다. 이곳의 창고들은 누구의 관심도 받지 못하고 그렇게 하나씩 사라져 갔다.   아름다운 풍경을 품은 시흥시의 유산들은 그렇게 사라져 갔다. 

 

▲ 28번째 '종이학' 소금창고 무너져 내렸다     © 최영숙


2004년 8월 14일 '28호  종이학 소금창고' 가까이 들어섰다. 이 방향에서 첫 번째로 만난 창고는 이 무심한 세월을 이기지 못하겠다는 듯 이미 무너져 있었다.  무너져 내린 창고 위로 하늘이  푸르렀다. 

 

▲ 종이학이 날다     © 최영숙


소금창고 사진들을 담으면서 가장 놀라웠던 것은 자연의 치유력과 복원력이었다. 2004년 8월 무너져 내린 창고를 사진에 담고 다음 해 2008년 4월에 갔을 때는 그곳의 풍경이 모두 바뀌어 있었다. 무너져 내렸던 소금창고는 그 사이 누군가에 의해 불태워졌고 봄이 되자 그 소금창고 터에서는 새싹들이 돋아나고 있었다.  새싹들은 마치 종이학 같았다. 전영록의 ‘종이학’ 노래를 부르고 자란 세대가 이곳에서 만난 종이학 모양의 새싹은 새로움이었고 반가움이었다.  

학창 시절 종이학 천 마리를 접어서 좋아하는 사람에게 선물하면 소원이 이뤄진다고 했다.  종이학을 접어줄 사람이 없었던 사람은 종이학을 열심히  접는 친구를 보면서 질투와 부러움 같은 감정을 느꼈었다. 포동 벌판에서 무너지고 불태워진 소금창고에서 종이학을 만나자 세월은 훌쩍 뒷걸음쳐서 양 갈래로 머리를 묵던 학창 시절로 돌아갔다. 이 창고의 이름은 ‘종이학’이 되었다.


▲ 종이학 창고 방향의 사대풀이 피어 있는 벌판 풍경     ©최영숙

   
포동 벌판에 봄이 왔다. 바닷가와 양지에서 자라는 사대풀꽃이 피었다. 노란 사대풀 뒤로 너른 벌판이 보였다. 포동 벌판에 들어서면 가슴이 후련해졌다. 도시 근교에서 바다가 아니고 벌판에서 이런 풍경을 만나는 일은 특혜를 받는 일이라는 생각을 했다. 탁 트인 시야와 70년을 견뎌준 소금창고들과  벌판을 팔 안에 아우르듯 감싸고 있는 아파트들과 나지막한 산들까지 바라보는 시선이 편안해졌기 때문이다. 

지난 세월과 다가오는 세월의 풍경이 서로 부딪치지 않고 평화롭게 공존하는 곳이 이곳 포동 벌판의 풍경이었다. 

 

▲ 2008년 6월 3일의 '종이학' 창고 모습     © 최영숙

 
2008년 6월 3일 종이학 소금창고를 찾았다. 풀들이 무성했다.   무너져 있었던 소금창고 또 종이학이 날았던 창고가 이제는 폐허가 되어 공허하다. 세월은 무심하다는 생각을 했다. 

▲ 2008년 6월 3일 포동벌판에 서다     © 최영숙


2008년 6월 3일 벌판에 다시 섰다.  ‘종이학’ 창고 방향의 10개의 창고들은 모두 사라지고 빈 벌판만이 남았다.  5년의 세월을 두고 소금창고들이 서서히 무너지거나 누군가의 손길에 의해 불태워 없어지는 풍경들을 보았다. 이 소금창고들이 모두 사라질 동안 속수무책으로 바라만 보았던, 아니 사진만을 담았던 사람은 회한이 많다. 

이곳의 소금창고들이 모두 사라지고 그나마 살아남았던 소금창고들은 다시 2007년 6월 4일 3 개동의 소금창고들만 남겨지고 (주) 성담에 의해 모두 파괴되는 상황을 또다시 바라만 보았다. 

이제 너무 늦었지만 그동안 이곳을 사랑했던, 이곳의 풍경들에게서 깊은 위안을 받았던 사람은 이곳의 아름다움을 말한다.  그것이 지금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이라는 생각을 했다. 
이곳의 아름다운 풍경을 제대로 담아내지 못했다는 깊은 아쉬움은 있지만 지금까지가 최선이었다고는 말할 수 있다.  

 

▲ 종이학 창고 방향의 가을 풍경     © 최영숙

 
사람들이 깨달을 때는 늘 한 박자씩 늦다. 

이곳의 아름다운 소금창고들이 모두 파괴되고 이제는 복원에 대하여 말한다. 한 발짝 늦었지만 그나마 지금이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무엇을 잃었는지도 모르는 일들이 세상에는 얼마나 많은가? 

소금창고를 복원하는 일이라면 작은 힘이지만 도움이 되고 싶다.  그동안 많은 사진을 담은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복원을 하려면 예전의 이곳의 풍경이 어떠했는지 바라보아야 가장 옛 풍경에 가깝게 복원될 것이기 때문이다.
 
 

▲ 소금창고로 들어서다     ©최영숙


 
글을 쓰면서 다시 옛 풍경들을 보았다. 마음의 발길은 이미 저 눈밭 길로 들어섰는데 가도 이제는 저 풍경들을 볼 수 없다는 것을 안다.  무너지고 사라진 옛 풍경들을 바라보는 일, 참으로 쓸쓸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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