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밭 일기1

미운 오리새끼 소금밭에 서다

이정우 기자 | 기사입력 2007/06/15 [09:12]

소금밭 일기1

미운 오리새끼 소금밭에 서다

이정우 기자 | 입력 : 2007/06/15 [09:12]

소금밭에 들었다. 꼭 열흘만이다. 흔적도 없이 소금창고가 뜯겨져서 어디론가 실려 가고 난 후로부터. 처음에 소금창고가 하룻밤 만에 다 사라졌단 이야길 듣고 믿고 싶지 않았지만, 엄연한 사실이었고, 쥐도 새도 모르게 서른 여 채의 소금창고가 순식간에 종적을 감췄다는 것은 미리부터 치밀한 계획이 있었고, 6월 7일 등록문화재 심의 결정을 앞둔 6월 4일 밤에 그들만의 거사가 치러졌다는 거다. 

▲     ©이정우


가슴이 뛰었다. 그냥 울근불근 자꾸 불안정한 뭔가가 꿈틀거렸다. 한걸음에 달려가 없어진 소금창고를 수소문해서 도로 갖다 놓을 수도 없고, 누가 그랬는지는 뻔하지만, 내겐 왜 그랬냐고, 꼭 그렇게 해야만 했냐고 쫒아가서 따져 물을 용기도 없다. 그냥 맥을 놓았다. 내 인생의 절반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소금밭의 추억. 신접살림을 시작하고, 갓난쟁이를 업고 들어 와 정착을 한 곳이다. 처음 이사 오던 해 가을 아이를 남편어깨에 무등 태워, 소금밭을 갔었다. 갯골에 앉아 낚시하는 사람들, 양동이 하나 가득 게를 잡아 힘겹게 들고 가는 사람들. 아직도 눈에 선하다. 그 때 그 풍경들. 삐거덕거리며 수차 밟아대는 염부들 모습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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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소금밭은 절대로 아니다. 시흥에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소금밭에 대한 추억이 있을 거고, 사라진 소금창고에 대한 안타까움이 한동안 가슴 아프게 할 거다. 사라진 소금창고에 대한 이야기가 신문 방송매체를 탔고, 우르르 몰려가서 확인을 했다. 그 곳에 갔다 온 사람들은 한결같이 입을 모았다. 정말로 흔적도 없이 싹 치웠더라고. 

▲     ©이정우


소금밭은 내게 남편 이상의 동반자였다. 멀리 떠난 친구의 안부가 묻고 싶으면 찾아가기도 했고, 내 안의 정서가 메마름을 호소하면 나도 모르게 달려가기도 했고, 아릿한 사랑하나 몰래 떠올리러 가기도 했다. 지난 가을엔 가슴 아픈 일이 많아 유난히 더 찾았다. 살아가면서 속상할 일이 어디 한두 번 일까마는 번번이 어루만져 주고 곪은 내 안의 것들 깨끗하게 소독까지 해 준다. 소금밭에 가면. 

 

▲     ©이정우


유월 뙤약볕이 내리쬐는 한낮에 소금밭에 서 있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땀을 흘렸다. 혹시 모를 눈물을 땀이라 우기고 싶었기에. 동행한 지인이 곁에 오지를 못 한다. 내 얼굴이 많이 굳어 있었나보다. 황량한 벌판에 서서 [비밀의 화원]에서 메리가 부모를 잃고 먼 친척에게 보내지는 그 광경이 떠올랐다. 마차에서 내려다 본 풍경은 삭막했고, 이름 모를 잡풀들이 듬성듬성 자라고 있었고, 바람이 불어 을씨년스러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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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량한 벌판이 좋았다. 나는. 키가 작은 내게도 멀리 뚫린 시야를 허락한다는 것도 좋았고, 착착 누웠다 우르르 같이 일어나는 갈대들의 바람놀이도 좋았다. 군데군데 염분으로 인해 붉게 자라고 있는 염생식물도 좋았고, 가끔 한두 가지씩 꺾어서 짭짜름한 맛을 볼 수 있다는 것도 좋았다. 바람이 귓전을 스치며 속살대는 것도 좋았고, 얼금얼금 빗겨져나간 소금창고 허름한 나무들 틈새로 석양이 들이치면 더할 나위 없이 스스로 무아지경에 빠져 버리고 만다.

▲     ©이정우


나를 키워 준 소금밭의 주인인 소금창고가 없어졌다는 것을 그 대낮에 실감하면서 애써 그 흔적. 소금창고가 섰던 그 곳을 피했다. 슬쩍 눈으로만 확인했다. 사진을 찍기엔 좀 더 시간이 지나야 될 거 같다. 얼른 크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힘이 없으니 왜 소금창고 없앴냐고 쫒아가 따져 물을 수도 없고, 힘이 없으니 그 소금밭 내가 다 사겠다고 떵떵거리며 나설 수도 없다. 참 약하다. 지금의 나는. 지금도 어디에선가는 나처럼 소금창고 그 사라짐에 대한 애도의 뜻을 속으로만 삭히고 있는 사람들이 많을 거다. 

▲     ©이정우


엊그제 본 소금창고과 관련 촛불 집회에서 나의 힘없음을 다시 확인했다. 그들과 휩쓸리지 못 하는 나. 나도 그들과 촛불을 들고 설 수도 있고, 뭔가를 같이 의논 할 수도 있는데, 아직은 자라지 못한 내 키가 문제인 모양이다. 그 너른 소금밭에 서서 갑자기 미운 오리새끼가 생각났다. 열심히 하지만 자꾸 따돌림을 당하던 오리. 결국엔 자신이 오리가 아니고 백조였음을 알았다는 거. 백조 이길 원하지 않지만, 지금의 나는 미운오리새끼임은 분명하다. 소금창고 헐리면서 내려앉았던 서까래위의 먼지들이 바람에 푸르르 머리 위를 날린다. 평정을 되찾는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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