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 소금창고를 지나 '30호 빈터 소금창고'로 다가서면 그곳은 작은 창고 한 개만 남겨 있고 막상 소금창고는 이미 불타서 사라지고 빈터로 남겨져 있었다. 이곳은 이 방향의 사진을 담을 때 잠시 쉬어가는 장소가 되었다. 창고의 이름도 그냥 ‘빈터’ 소금창고가 되었다.
▲ '빈터' 소금창고의 불에 탄 흔적 © 최영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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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의 창고는 이미 불에 타서 사라지고 못과 숯들만이 덩그러니 남겨져 있었다. 70여 년의 세월을 서로를 물고 있던 못과 창고는 이제는 불에 타고 남은 숮과 뚝뚝 떨어져 나온 못이 되었다. 폐사지를 찾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생각났다. 그분들은 처음에는 수많은 사찰을 다닌다고 한다. 다음은 암자를 찾고, 마지막으로 폐사지를 찾는다고 한다. 예전에 웅장했을 사찰은 모두 사라지고 주춧돌이나 석등, 석탑만이 쓸쓸히 있는 폐사지에 들어서면 이곳이 어떠했을까 자신이 여태껏 보았던 여러 사찰들의 가람 형태와 산세들을 보면서 상상한다고 한다. 그러면 폐사지는 예전의 그 웅장한 사찰의 모습을 들어낸다고 한다. 그래서 폐사지의 그 쓸쓸함과 그 자유로움을 아는 이는 폐사지의 아름다움을 찾아 여러 곳을 찾는다고 했다.
빈터로 남은 소금창고 자리에서 이곳의 창고는 어떠했을까 상상해 보았다. 그러나 이곳을 깊이 알지 못하는 사람은 그저 쓸쓸한 느낌만 가질 뿐 좀 더 깊이 들어가지 못했다.
▲ 나문재와 칠면초 석양을 받고 서 있다 © 최영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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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고에서 몇 걸음 벗어났다. 그곳은 '빈터' 소금창고의 모습과 다른 세상을 품고 있었다. 이곳 포동 벌판이 아름다운 것은 어디를 둘러보아도 또, 어디에 발을 내디도 그곳에는 늘 새로운 풍경이 있다는 것이었다.
겨우 몇 걸음 내려선 바닥에는 나문재와 칠면초가 지는 석양에 빛을 발하고 있었다.
이곳의 타일들은 늘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 냈다. 벌집을 만들어 놓은 듯 타일 바닥들은 특이한 형상을 만들어 냈다. 이런 풍경을 만나는 일은 이곳에 오면 뭔가 특별함이 있다는 기대감을 갖게 했다. 그 기대감은 늘 충족되었다.
▲ '빈터' 소금창고 앞의 타일바닥에 게들이 몰려들다 © 최영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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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오면 풍경은 다시 바뀌었다. 강한 빗줄기가 내린 후에 이곳을 찾았을 때 인기척에 놀란 게들이 10미터 달리기로 재빨리 도망갔다. 갯벌이면 게 구멍으로 쏙 들어가면 될 일이지만 타일 바닥에서는 이 타일을 벗어나야 자신이 숨을 곳이 있기에 저러다 미끄러져 넘어지겠다 싶을 정도로 서둘러 도망갔다. 게들이야 마음이 급하겠지만 그것을 여유롭게 바라보는 이는 그 허둥거림을 보는 일이 즐거웠다.
새싹이 타일을 뚫고 나왔다. 단단히 다져진 바닥 위에 타일들이 깔리고 그 단단함이 세월의 흐름에 따라 허술해지면 새 생명은 그 틈을 비집고 올라왔다. 타일 바닥 아래의 술렁임이 들리는 듯했다. 자연이 길러내는 생명이란 얼마나 대단한가? 저 가벼운 술렁임은 새로운 생명을 품고 세상에 내보내는 소리였던 것이다.
이곳의 타일들은 사람들이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무한한 표현력을 지니고 있었다. 타일 바닥은 모양을 바뀌었고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은 늘 새로웠다. 어느 결에 여우가 슬쩍 한 마리 들어 앉았다.
▲ 타일바닥에 백남준의 작품이 담겨있다 ©최영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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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의 작품도 하나쯤 만들었다.
▲ 2005년 10월의 불탄 소금창고 자리 © 최영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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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일의 문양들을 바라보던 시선이 다시 창고로 들어섰다. 2005년 10월 소금창고 옆에 하나씩 있는 작은 창고만이 남아 있었다. 소금창고가 불이 나면 이곳은 누군가의 농토가 되었는데 이곳은 변함이 없었다. 그나마 다행이다 싶었다.
2008년 2월 눈이 내렸다. 세월은 유수와 같이 흘러서 2004년 이곳의 ‘빈터’소금창고를 사진에 담을 때 뒤에 서 있던 '31호 소금창고'는 이제는 몇 개의 기둥만이 남겨졌다. 빈터 소금창고 군데군데 갈대들만이 제 자리를 잡고 있었다. 이곳도 천이 현상이 일어나고 있었다.
▲ 2008년 7월의 '빈터' 소금창고 © 최영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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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7월이 되었다. 여름이 되자 빈터 소금창고에 터에는 이제 제법 갈대들이나 새로운 풀들이 제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다. 이곳은 이곳에 맞게 그들만의 새로운 세상을 만들고 있는 것이었다.
‘빈터’ 소금창고에 피어난 사데풀 꽃을 바라보았다. 이곳의 변하는 여건에 따라 자신의 영역을 넓혀가는 사데풀과 그 외의 무수한 생명들이 오늘의 태양을 맞이하고 있었다.
자연에 속한 생명들의 그 치열한 삶을 바라보면서 무수히 흘려보낸 시간들에 대하여 생각했다. 세상의 모든 생명은 인생의 스승이라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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