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개 속에 산을 품고 있는 소금창고 ©최영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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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아트에서 소금창고를 주제로 한 세 번째 사진 전시회 ‘물고기 노닐다’를 마치고 한동안 힘이 들었다. 그동안의 기력이 모두 소진한 듯했다. 그러나 전시회를 하는 동안 많은 분들의 깊은 관심과 소금창고를 사랑함이 나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는 깊은 교감을 가질 수 있었다. 지난 세월과 사람들에게 깊은 고마움을 느꼈다.
한동안 글을 쓸 수가 없었다. 그러나 이제 그동안 멈춰졌던 소금창고 하나하나에 담 그들만의 이야기를 다시 하려고 한다.
'26호 산을 품다 소금창고'에 다다르면서 많은 생각들이 교차했다. 소금창고들 하나하나에는 많은 이야기들과 이미지들을 가지고 있었지만 이곳 ‘산을 품다’처럼 많은 이미지들을 가진 곳 또한 드물었다. 혼자서 부르던 그 많던 이름들 중에서 안개가 낀 아침에 만난 풍경으로 하나의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 소금창고는 커다란 산을 품고 있었다. 보통은 산이 창고를 품는데 나의 느낌은 소금창고가 커다란 산을 품고 있는 듯이 보였다. 창고의 이름이 ‘산을 품다’가 되었다.
어느 겨울 사진을 담는데 저 반대편 갯벌 넘어 소금창고 앞으로 마차가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 이곳에서 처음 보는 풍경이었다. 급하게 렌즈를 교체하고 보니 어라, 마차는 이미 멀리 사라져 가고 있었다. ‘그래, 이 길은 외길 네가 그리로 갔으면 결국 이리로 다시 올 수밖에 없겠지.’ 하고 다시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시간이 제법 지났음에도 마차는 돌아오지 않았다. 다른 길로 가면 차가 다니는 길이기에 이 길이 마차가 갈 수 있는 외길이라고 생각한 것은 나만의 착각일 수 있겠다 싶었다. 그래도 좀 더 기다려보자 싶어 아예 땅바닥에 주저앉았다. 얼마를 기다렸을까 딴 길로 갔나 했던 마차가 다시 시야에 들어왔다. 스러져 가는 소금창고, 요즘 새로 지은 창고, 말과 마차 그리고 마부, 무덤이 한 장에 담겼다. 이 사진을 바라보면 세상사 모두 별것 아닌듯했다. 삶과 죽음, 생성과 스러짐이 한곳에 있었다.
음력으로 2005년 9월 15일 보름달이 떴다. 소금창고에서 바라보는 보름달은 어떨까 궁금했다. 차를 소금창고로 몰았다. 보름달이 떴다지만 포동의 너른 벌판은 혼자 있다는 두려움을 느끼기에 충분히 어두웠고 고요했다. 라디오의 볼륨을 크게 틀어 놓았다. 허허벌판에서 들리는 요란한 음악소리는 생경했다. 다음날 그전 날 내가 했던 행동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내가 보름달 소금창고 아래에 있는지 아무도 모르는데 자신의 두려움 때문에 ‘나 여기 있어요.’ 광고하듯 커다랗게 음악을 틀어댔던 자신의 모습이 우스웠던 것이다.
두려움을 몰아내려면 자신이 그 두려움의 근원으로 들어서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보름달의 사진을 원하면 그 장소에 있어야 했다. 그러나 사진은 생각만큼 좋지 않았다. 빛이 너무 강한 보름달은 빛을 분산했던 것이다.
음력으로 2006년 1월 15일 정월 대보름날이 되었다. 이날은 지인들과 양평을 다녀왔었다. 시흥에 도착했을 때 밤하늘에는 보름달이 둥실 떠 있었다. 다시 차를 소금창고로 몰았다. 일행이 있다는 안도감은 좀 더 여유롭게 했다. 그러나 이날의 사진도 빛이 강한 보름달은 모두 부서졌다.
▲ 6번째 '천개의 시선'소금창고에 보름달 뜨다 ©최영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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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호 산을 품다 소금창고'에서 그렇게 공을 들여도 못 만났던 제대로 된 보름달 사진은 '6호 천'개의 시선 소금창고’에서 만났다. 이른 저녁 달이 막 뜨기 시작하는 즈음, 보름달이 제 빛을 발하기 전, 구름이 살짝 있을 때 빛에 부서지지 않은 온전한 보름달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이다. 반가웠다. 그러나 지나고 생각해 보면 사진으로 보면 ‘천 개의 시선’에서 만난 사진이 온전한 사진이지만 진정 보름달 자신에 맞는 사진은 가장 강한 빛을 발산하고 있던 ‘산을 품다’의 사진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또 사람은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을 보려 한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모두 진정한 모습을 보여준 보름달 사진이었건만 빛이 부시다는 이유로 끝없이 다시 보름달 사진을 담았던 것은 자신이 원하는 모습을 할 때의 보름달을 찾기 위한 것이 아니었나 싶었다. 혹시 내가 사람을 대함에 있어도 상대방의 많은 장점이나 단점 중에서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보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보름달 사진을 담으면서 좀 더 폭넓게 있는 그대로의 세상을 봐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 27번째 겨울새 소금창고와 다정하게 머리를 맞대고 있는 '산을 품다' 소금창고 ©최영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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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살아온 부부처럼 27번째 ‘겨울새 소금창고’와 머리를 맞대고 있는 ‘산을 품다’ 창고를 만났다. 70여 년의 세월을 함께 이곳에서 함께 살았다고 서로 등을 두드려 주고 있는 듯했다. 이들이 보았던 그 많은 세월들은 모두 어디로 사라졌을까? 궁금했다. 저 너른 염전 벌판에서 일하던 그 많던 염부들과 가시랑 철길, 소금창고들에 그득그득 쌓이던 소금들을 모두 떠나보내고 두 부부만이 고즈넉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는 듯했다. 자식들을 모두 타지로 보내고 홀로 시골집을 지키고 있는 시골의 부모님들처럼 예전의 추억을 되새김하며 지내고 있는 듯했다.
▲ 용트림을 하고 있는 불꽃을 만났다 © 최영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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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불이 거칠게 타고 있었다. 예전에는 이른 봄이면 흔한 풍경이지만 지금은 보기가 힘들다. 사진을 담고 있자 어디에 있었는지 관리인 같은 분이 “아니, 어떤 사람이 이곳에 불을 놓고 갔지.” 하면서 불을 급하게 끈다. 예전에는 봄이 되면 병충해 때문에 논과 밭둑에 불을 놓았는데 요즘은 산불 조심과 환경파괴 문제로 보기가 힘든 풍경이 되었다. 대신 포동 벌판에서 정월대보름의 행사 중 갈대 태우기처럼 행사용으로 만날 수 있었다. 시대가 바뀐 것이다. 활활 타오르는 용의 불길은 마치 저 너른 포동 벌판을 모두 태울 듯한 기세였다. 저 건너의 아파트들조차 불길에 흐물흐물 녹아내리는 듯했다. 나중에 보니 내 겉옷과 앞 머리카락이 그 불길에 타 있었다. 그러함에도 가슴에 확, 불을 지르는 풍경을 만나서 생기가 넘치는 날로 기억되었다.
▲ 황금빛 갈대들 품에 안긴 소금창고 ©최영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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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의 오후가 되었다. 갈대들이 석양에 빛을 발하고 있었다. 이곳에서 보는 해는 뜨는 해도 아름다웠지만 서서히 서해로 지는 석양이 더욱 아름다웠다. 석양 무렵의 빛남을 보는 것은 늘 설렘을 동반했다. 빛을 발하는 갈대들이 마치 소금창고를 안고 있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 오래된 사진을 보면 이 앞은 너른 저수지여서 이곳에서 망둥이도 잡고 하는 풍경을 보았다. 그러나 이제는 염전이 폐쇄되면서 저수지도 사라지고 갈대들만 무성하게 자라고 있었다. 생태계는 친환경적이어서 이곳에서 자랄 수 있는 갈대들은 자신의 영역을 새롭게 넓혀가고 있었다. 생태계는 늘 자신에게 걸맞게 주위를 개편하고 있었다. 이곳이 또 어떠한 생태계 변화를 겪을 것인지 관심을 갖고 지켜볼 일이었다.
만물이 소생하는 봄이 되었다. ‘산을 품다’ 소금창고는 넉넉한 품으로 온 산과 생명이 들불처럼 활활 타오르는 녹색 들판을 받아들일 준비를 마쳤다.
그러나, 한 달도 되기 전에 소금창고의 꿈은 모두 사라졌다. 이제는 산을 품을 수도 지나는 새들에게 쉴 자리를 제공할 수도 없다. 다시 너른 벌판을 바라볼 수도 없었다. 또 나이 들어가는 부부처럼 머리를 맞대고 지난 세월을 이야기할 수도 없다. 두려움 속에서 부서지던 보름달을 찍던 그 많은 사연을 지녔던 소금창고가 철저히 파괴되어 사라졌다. 그간의 추억의 시절도 함께 파괴되었다.
▲ 26번째 '산을 품다' 창고부터 '절대금지' 창고까지 이어진 소금창고들 © 최영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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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방산대교 방향으로 늘어서 있던 소금들이 2007년 6월 4일 밤사이에 파괴되어 사라졌다. 저 뒤편으로 보이는 아파트들에는 사람들이 오순도순 제 보금자리를 틀고 앉았는데 이곳에서 70여 년을 제 자리를 지키던 소금창고들은 한순간에 파괴되어 사라진 것이다.
▲ 소금창고가 파괴되고 난 후의 겨울풍경 ©최영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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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이 파괴된 지 8개월이 지났다. 그 당시 이곳의 파괴가 얼마나 철저했는지 아직도 그 당시의 포클레인의 발자국들이 타일에 선명히 찍혔다. 아직도 가슴에서 쿵 하는 소리가 들린다.
눈을 맞고 있는 26호 소금창고를 바라본다. 아직도 글을 쓰다 보면 ‘있었던’ 과거형이 아닌 ‘있는’ 현재형으로 쓰게 된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볼 수 있었던 풍경들을 이제는 사진으로만 볼 수 있다. 진정 안타까운 일이다.
소금창고가 파괴된 뒤 소금창고를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이 힘을 모은 결과 소금창고들을 복원하는 일들이 진행되고 있다. 예전의 풍경을 만들 수는 없겠지만 빠른 시일 안에 옛 풍경을 해치지 않는 소금창고들의 빠른 복원을 기원한다.
그리하여 옛 소금창고를 아는 사람의 쓸쓸함이 있겠지만 과거 이곳에 있었던 소금창고의 과거형이 아닌 다시 복원된 소금창고를 바라보는 현재진행형의 사진과 글을 쓰고 싶은 깊은 바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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