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8월 14일 비가 온 다음날 포동으로 들어섰다. 물에 비친 소금창고를 만났다.
풍경을 바라보면 그 풍경 속으로 스며드는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반추되고 있는 소금창고를 바라보는데 알 수 없는 서러움 같은 감정이 울컥 지나갔다. 가만히 앉아서 한참을 바라보았다. 왜 엉뚱하게도 이 소금창고를 보면서 경주의 무영탑이 생각났는지 모를 일이었다. 두 번째 '천 개의 시선' 전시회에서 ‘무영탑’이라는 이름으로 전시했다.
감수성이 예민하던 시절 좋아했던 가수는 박인희, 은희, 양희은, 한대수, 송창식 등이었다. 박인희의 노래 중에서 아사녀는 좋아하는 노래였다. 느린 곡조의 슬픈 가사를 부르다 보면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한없이 처연해졌었다.
‘천 개의 시선’ 전시회를 보러 온 친구가 '무영탑'의 사진을 사겠다고 했다. 전시회에는 혼자였던 친구가 좋은 만남을 시작한 사람과 왔었다. 아사달과 아사녀의 슬픈 전설을 떠올렸던 사진이기에 나는 친구에게 조심스럽게 사지 말라고 했다.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친구에게 실수했음을 알았다. 사진은 보는 사람 각자의 느낌인데 내 주관을 너무 강조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이 창고가 그렇게 쓸쓸한 것만은 아니었다. 어느 늦은 오후 ‘무영탑’ 창고에 왔을 때 마침 이 창고는 지는 태양을 가슴에 품고 있었다. 마치 커다란 알을 품은 느낌이 들었다.
나이가 들수록 어느 풍경을 보고 숙연해지는 것은 일상적인 자연 현상을 지켜보는 일이었다. 오늘 뜨고 다시 지는 저 해와 달처럼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들이 고맙게 생각되는 것이었다. 포동 소금창고와 벌판에 들어서는 것은 바람이 불거나, 비가 오거나 해가 뜨거나 석양이 지고 달이 뜨는 일상들을 좀 더 깊이 받아들이는 일이었다. 이 지극히 일상적인 찰나들을 사랑하는 일이 생을 사랑하는 일이었다.
▲ 멀리서 바라본 '무영탑' 소금창고 © 최영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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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창고들을 사진에 담다 보면 ‘어, 이 소금창고 모습은 어디서 많이 본 듯한데 하는 것이 있었다.‘무영탑’ 소금창고의 앞면을 보면 어디서 많이 본 듯한 모습이었다.
비슷한 시기에 지어진 소금창고들이 무너지면서 어떤 특징을 보이는 듯했다.
‘무영탑’소금창고의 무너진 앞모습이 '25호 나무다리 소금창고'와 무너진 지붕 모양이 비슷했다. 소금창고 뒤쪽으로 숲속 마을 아파트가 보였다.
▲ 25번째 '나무다리' 소금창고의 모습 © 최영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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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호 나무다리 소금창고'의 모습이 '무영탑 소금창고'의 주위의 풍경을 보지 않는다면 비슷해서 착각을 하게 만들었다. 소금창고들의 모습이 모두 비슷해서 또 다른 모습을 찾는 일은 늘 새로운 일이었다.
▲ 31번째 '무영탑' 소금창고에 함박눈 내리다 © 최영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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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영탑 소금창고'에 함박눈이 내렸다. 눈이 쌓인 풍경이 어딘들 아름답지 않겠냐마는 지금도 눈이 내리면 소금창고에서 만났던 눈들이 가장 많이 기억되었다. 너른 벌판에 너울너울 내리는 눈을 맞고 있으면 세상사가 그렇게 넉넉하고 만만한지 몰랐다. 세상의 허물들은 모두 덮어버리겠다는 듯 포동의 소금창고에서 맞는 눈들은 그렇게 풍성했고 후덕해 보였다.
아직도 바닥에 염기가 많은 포동의 눈들은 빨리 녹았다. 눈이 내리고 금방 눈들이 녹아서 거친 눈길들을 만났다. 사진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이리저리 미끄럽던 포동 길을 달리는 느낌이 들었다. 눈이 오면 저 길은 만날 수 있었지만 소금창고가 사라진 뒤에는 밋밋한 풍경을 만날 뿐이었다.
가을이 되었다. 가까이 ‘무영탑’ 소금창고가 보였다. 그러나 이 풍경들은 2006년을 기점으로 사라져 갔다. 세월의 무게를 못 이겨 무너지는 것도 있었고, 누군가의 방화로 인해 사라지는 것도 있었다. 이 소금창고는 세월의 무게를 이겨내지 못하고 무너져 내렸다.
반쯤 무너져 내린 소금창고 안으로 들어섰다. 겨우 제 몸을 지탱하고 있는 창고 안은 폐허의 분위기가 강하게 풍겼다. 이렇듯, 무너지고 스러지는 풍경들 속에서도 서늘한 스러짐의 미학을 만날 수 있었다. 우리의 삶도 이렇듯 어느 순간 이렇듯 속절없이 무너져 내리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무너져 내리는 육신이야 어쩔 수 없지만 바랄 수 있다면 마지막 순간까지 정신을 놓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곳의 풍경에 익숙해지면서 세월을 앞서간다는 생각을 했다. 그 또한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결국은 만나는 길 좀 더 여유롭게 만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 '무영탑' 무너지고 기둥만 남겨지다 © 최영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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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2월 눈이 내렸다. 이제 ‘무영탑’ 소금창고는 기둥만이 남아서 포동 벌판을 지키고 있었다. 갈대들이 바람에 흩날렸다. 세월은 유수와 같고 세월을 이기는 풍경은 없다.
가볍게 흔들리는 갈대 소리에 이곳 창고에서 흥얼거렸던 박인희 노래의 [아사녀]의 노랫소리가 가만히 들리는 듯했다.
나는 가요 아사달님 저 영지 못 속으로 나는 가요
탑의 그림자는 보이지 않고 당신의 모습도 보이지 않아
긴 날을 기다리고 기다리다가 달빛 밝은 저 영지 못 속으로
나는 가요 아사달님
울지 마오 아사달님 서럽게 떠난 나를 달래주오
그날 그 자리에 남겨둔 건 길고도 지루한 기다림이라
달빛을 치마폭에 휘어 감고 나 여기 떠나와 울고 있다오
울지 마오 아사달님 울지 마오 아사달님
첫인상이 처연한 모습을 간직해서 ‘무영탑’이라고 이름 지었던 31번째 소금창고의 옛 모습을 바라보았다. 저렇듯 반쯤 무너지고도 여전히 칼칼했던 세월은 모두 사라졌다.
옛 '무영탑' 소금창고 사진에 시선이 오래도록 머물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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