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호 못 소금창고'

<연재>소금창고를 복원하다

최영숙 | 기사입력 2008/07/27 [23:03]

'29호 못 소금창고'

<연재>소금창고를 복원하다

최영숙 | 입력 : 2008/07/27 [23:03]
▲ 29호'못' 소금창고     ©최영숙


 못 / 안정훈

너에게 견고하게 박혔으면

정수리가 깨지도록 사랑하는 열정

입에 사랑이란 액자를 물고

천 년 만 년 녹슬지 않는

-1997년 소래문학 제 5집중에서- 


소래 문학회 회원인  안정훈 시인의 ‘못’이라는 시이다. 못 창고의 사진을 보면서 그가 예전에 발표했던 시가 생각났다.  못이라는 이미지를 잘 살려낸 시였다. 시는 그 사람을 닮는다는 생각을 했다. 누군가를 사랑함이 이와 같다면 그 사랑의 세월은 천 년 만 년 녹슬지 않는 영원을 얻을 것이리라.

 

▲ 29번째 소금창고의 못  '배꼽'     © 최영숙



 '천 개의 시선' 사진집에 이 사진을 담으면서 ‘배꼽’이라는 이름으로 제목을 붙였다.

배꼽이란 무엇일까? 우리가 세상 밖으로 나오기 전까지 어머니와 어린 생명을 연결해 주던 끈이었고, 그 끈을 끊고 나오면서 세상에서 첫 숨을 내쉬는 것이다.

우주와 연결된 끈, 아무런 걱정이 없던 안전한 어머니의 뱃속, 그 생명줄을 끊고 세상 밖으로 단호히 나오게 되는  것이다.  우주와의 연결이 끊어지는 것이 어찌 보면 대지와의 또 다른 연결 더 직접적인 우주의 연결로 이어지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그렇게 태어나고 자라고 나이가 들어 건강을 챙길 나이가 되어서야  배꼽이 우리 몸에서 어떠한 역할을 하는지 그 절실한 중요성을 느끼게되었다. 

참선이나, 복식호흡 등에 관한 글들을 읽다 보면 모두 호흡할 때는 ‘배꼽으로 숨을 쉰다’ 가 중심이 되었다. 우주와 연결된 인간이기에 태초로 어머니의 뱃속에서 떨어져 나올 때 연결되었던 배꼽을 통해 다시 우주와 연결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2004년도의 '못' 소금창고     © 최영숙


이 소금창고가 처음부터 무너져 ‘못’ 창고가 된 것은 아니었다. 2004년 처음 만났을 때에는  건재했었다.

'28호 종이학 소금창고’의 무너진 창고를 지나면 당당히 서 있는 '못' 소금창고를 만날 수 있었다. 이 방향에서는 건재하게 서 있는 첫 번째 소금창고였었다.
 

▲ 2004년 가을  갈대  흔들리다     © 최영숙


2004년 가을이 되었다. 갈대들이 바람에 흔들렸다.

 

▲ '못' 창고에 눈 내리다     © 최영숙


2005년 '못 소금창고'는 3월의 눈을 맞고 서 있었다. 이 소금창고는 2005년 6월까지 건재해 있었다.
 
 

▲ 태산아파트를 바라보다     © 최영숙


2005년 3월의 못 창고 풍경은 다른 모습으로 보였다. 가까이 다가서 보면 많이 낡고 허물어질 듯했지만 이렇듯 조금만 떨어져서 다른 시선에서 바라보면 또 다른 풍경을 만들고 있었다. 멀리 태산 아파트의 모습이 보였다. 태산 아파트가 들어오기 훨씬 전에 이곳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셨던 분이 하시던 말씀이 떠올랐다. 

“곤궁했던 어린 시절 이곳의 갈대밭은 우리들의 놀이터였고, 또한 세상의 온갖 새들이 날아와서 이곳에서 주워온 새알들로 용돈을 마련했고 또한 간식으로 먹었다.”라고 회상하셨다. 

지금 같으면 새알을 줍는다는 생각도 잘 못하고 생태계파괴라고 하겠지만 그 당시는 새들은 풍족했고 사람들은 어린 아이들이 새알을 줍는 것 외에는 요즘처럼 근본적으로 생태계 전체를 파괴하는 행위를 하지 않았기에 서로 공존할 수 있었다는 생각을 했다.
 

▲ 29번째 '못' 창고에서 바라본 늘어선 소금창고들     © 최영숙


2005년 5월 봄이 되었다. 시야가 길을 따라 쭉 뻗어 나갔다. 소금창고에 들어서면 길은 늘 새로운 모습으로 다가들었다. 이 방향의 창고들은 점점이 늘어선 창고의 모습이 아니고 한 팔로 창고들을 감싸 안듯이 곡선을 이루고 창고들이 늘어서 있었다. 직선의 시원함과 다른 곡선의 부드러움이 있었다.
 
 

▲ 29번째 '못' 창고 무너짐     © 최영숙


2005년 6월까지도 당당히 서 있던 못 창고는 8월에 갔을 때 무너져 있었다. 

 

▲ 무너진 소금창고의 지붕     © 최영숙


무너져 내린 양철지붕은 밤색 비로도 치마를 말아  쥔 듯했다. 독특한 풍경이었다. 소금창고들이 무너진 것들을 보았지만 이처럼 완벽한 형태의 지붕 모습을 본 것이 이곳이 처음이었다.  오랜 세월을 두고 녹이 든 양철지붕의 모습은 그 독특함만큼이나 아름다웠다.  무너진 다른 소금창고들은 무너질 때의 충격으로 양철지붕들이 완전히 날아가 떨어져 나가든지 했다.

이렇듯 조용히 주저앉듯이 무너진 창고는 이곳 창고가 처음이었다. 무너짐이 아쉬우면서도 녹이 아름답게 들은 양철지붕의 또 다른 아름다움에 깊이 매료되었다.  이곳의 양철지붕과 강렬했던 못들의 풍경으로 인해 이 창고의 이름은  ‘못’창고가 되었다.


▲ 29번째 못 창고에 보름달 뜨다     © 최영숙


소금창고에 밤이 찾아왔다. 못 창고 너머로 보름달이 떴다. 초저녁이라 어스름한 달빛이 인상적이었다. 지붕 너머로 보름달과 만났다. 이곳의 밤은 다른 곳보다 좀 더 일찍 어두워지는 듯했다. 허허벌판에 혼자 있기에 그 어둠이 더욱 빨리 느껴졌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 무너진 '못' 소금창고에 눈 내리다     © 최영숙


무너져 내린 '못 소금창고' 위로 함박눈이 쏟아져 내렸다. 일 년이 다르고, 한 달이 다르고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는 곳이 이곳 포동의 소금창고 풍경이었다.
 

▲ 2008년 못 창고는 고구마 밭이 되다     © 최영숙


포동의 소금창고들이 무너져 내리면 다음에 누군가 불을 질렀다. 그리고 다시 조금 시간이 지나면 누군가 이곳에 작물을 심었다.  2008년 7월 못 창고는 이제는 고구마 밭이 되어있었다. 무너져 내린 풍경만으로도 충분히 자신의 아름다움과 의미를 부여해 주었던 못 소금창고는 그렇게 사라졌다.
 

▲ 29번째 못 창고의 기둥에 박힌 못     © 최영숙



못질 / 장인수   

새로 이사 온 집엔

이미 온통 못질 투성이다

이 쪽 저 쪽 묵은 못을 빼 보니

강건한 못의 등이 굽어 있었고

녹슨 쇳가루가 와르르 쏟아졌다

내 손금도 저와 같이 부식되어 있을까

못이 되어 살아온 내 등뼈가 보이는 듯 했다

새 못을 박는다

온 집안의 벽면이 쩌렁쩌렁 울린다

남편의 벽이 되어 살아온 아내여

아내가 있어도 삶은 근원적으로 외롭다며 

내가 방랑기로 허물어질 때마다

벽이 되어 바람을 막아주던 아내여

댕겅! 망치의 헛손질

손뼈가 저려오는 뜨거운 손맛

나는 아내의 젖무덤 속에 내 손을 집어넣고 싶어졌다

벽에 가족사진 액자를 건다

사진의 뒷면에 서리는 어둠이 액자를 뜨겁게 붙든다  

아내는 어둠과 얼마나 내통했던 것일까

아내의 웃는 목젖은 알전구가 되어  

입가로 잔잔한 빛을 발산하고 있다

아내는 상처 많은 집이었구나

-시작 2003년 겨울호- 


장인수 님의 ‘못질’을 보면서 아내를 깊이 이해하는 그의 시선을 보았다. ‘못’이라는 사물 하나를 바라봄에도 그의 시에서는 그분이 살아온 내력과  깊은 시선들이 담겨 있었다. 
 ‘못’ 소금창고는 무너진  양철지붕이 아름다웠던, 이런저런 사유를 이끌어 냈던 ‘못’창고에 대한 기억은 오래도록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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