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와 전설이 머무는, 강화도 보문사와 전등사 기행

최영숙 | 기사입력 2011/07/29 [08:19]

안개와 전설이 머무는, 강화도 보문사와 전등사 기행

최영숙 | 입력 : 2011/07/29 [08:19]
▲ 안개에 젖은 보문사     © 최영숙
 

 

2011년 7월 23일, 소래문학 회원들과 함께 강화도로 여행을 떠났다.
 

▲ 갈매기 날다     © 최영숙
 

 

외포리 선착장에서 석모도로 향하는 배에 올랐다. 배가 뜨자 갈매기들이 힘찬 날갯짓으로 날아들었다. 석모도에 도착해 보문사로 향하니 안개가 짙게 깔려 있었다.

 

▲ 오고 가는 사람들     © 최영숙



 

 










 
오고 가는 사람들 안개에 흠뻑 젖었다.

▲ 소나무의 크기를 가름하다     © 최영숙

 
소나무 크기를 팔로 안아 가늠해 보며 천천히 보문사로 들어섰다.

▲ 400년 된 은행나무     ©최영숙

 

보문사의 400년 된 은행나무는 다시 이곳을 찾을 때마다 늘 기억날 듯하다. 은행나무 앞에 이르렀을 때, 커다란 두꺼비 한 마리가 차에 치여 죽어 있었다. 마음이 아팠다. 이를 어찌할꼬! 사람들이 쳐다보고만 있을 때, 이동호 선생님이 사찰 뒤쪽으로 가서 삽을 찾아 들고 나왔다. 그대로 두면 차량들에 의해 시신이 더욱 처참해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동호 선생님은 두꺼비를 정성스럽고 정중하게 400년 된 은행나무 아래 고이 묻어주었다. 토닥토닥 두꺼비 무덤을 덮어주는 선생님을 보며 "아, 사람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두꺼비는 이제 400년 된 은행나무 아래에서 편히 쉬게 되었다.

 

▲ 보문사 경내로 들다     © 최영숙
 
 

 

보문사 경내로 들어섰다. 

▲ 기와 불사     © 최영숙

 
많은 이의 기원을 담은 기와들이 보였다. 가수 허각의 '1집 앨범 대박'을 기원하는 기와 등 각자의 간절한 소망이 기와마다 새겨져 있었다.

▲ 기와 담장     © 최영숙

 

저 기와들이 어디에 쓰일까 궁금했는데, 내려오는 길에 그 답을 찾았다. 소원을 담은 기와들은 아름다운 담장으로 다시 태어나 사찰을 감싸고 있었다.

▲ 500 나한전     © 최영숙

 

▲ 하회탈 처럼 웃고 있는 나한상     © 최영숙

 
오백나한전으로 발길을 옮겼다. 하회탈처럼 인자한 미소를 짓고 있는 나한상의 모습에서 깊은 편안함이 전해졌다. 바라보는 눈길조차 함께 평온해지는 기분이었다.

 

▲ 마애관음좌상으로 가다     ©최영숙


바위에 새겨진 마애관음좌상은 1928년 배선주 주지스님이 이곳이 관음 성지임을 나타내기 위해 새긴 것이라고 한다

 

▲ 기원하다     © 최영숙
 

 

안개에 싸인 마애관음좌상과 그 앞에 인사를 드리는 스님, 정성을 다하는 불자의 모습이 조용하고 엄숙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 새를 품다     © 최영숙
  

 

안개는 속의 나무가 새의 형상처럼 보였다.

▲ 때죽나무     © 최영숙

 
오르내리는 길에 이동호 선생님이 나무들을 설명해 주셨다. "스님들이 떼를 지어 있는 듯해서 때죽나무라고도 하고, 열매를 찧어 물에 풀면 물고기들이 떼로 죽는다고 해서 때죽나무라고도 한다"고 하셨다. 또한 "2~300년 동안 사람의 손이 닿지 않는 극상림에서 자라는 귀한 나무가 서어나무"라는 설명도 덧붙여 주셨다. 무심히 지나쳤을 나무들이 세세한 설명 덕에 새롭게 다가왔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실감 났다.

▲ 백구     © 최영숙

 
기념품 가게 앞에 백구 한 마리가 늘어지게 낮잠을 자고 있었다. 그 어떤 풍경보다 평화로웠다. "우리 불자의 얼굴입니다"라는 말처럼, 백구에게서조차 불심과 평강이 느껴졌다.

▲ 감로다원으로 가다     © 최영숙

 
전통 찻집인 감로다원으로 향했다.

▲ 치자꽃이 피다     © 최영숙

 
 치자꽃이 곱게 피어 있었다. 그 꽃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마음도 치자꽃 같았다.

▲ 소원탑     © 최영숙

 
사람들의 소망을 담은 작은 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그 모든 정성이 하늘에 닿기를 빌어보았다.
 

▲ 큐빅 수생식물     © 최영숙

 

▲ 수생식물     © 최영숙


 보문사를 내려오다 음식점 앞에서 수생식물을 만났다. "와, 큐빅이 촘촘히 박혀 있는 듯하다"는 이동호 선생님의 말에 공감했다. 사물을 섬세하고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는 분들과 함께여서 더욱 좋은 여행이었다.

 

▲ 할머니     © 최영숙

 

나물을 파시는 할머니를 뵈었다. "할머니 고우세요"라는 말에 할머니는 "옛날엔 그런 말 많이 들었는데 이젠 다 늙었어"라며 수줍게 웃으셨다. 그 미소에 이끌려 함초나물과 밤, 호박잎 등을 샀다. 점심은 전등사 앞에서 먹기로 하고 자리를 옮겼다.  

▲ 석모도 갈매기     © 최영숙


석모도를 떠나는 배 위에서 아이의 새우깡을 채가는 갈매기 덕분에 한바탕 웃음꽃이 피었다.
 

▲ 엄나무     © 최영숙


. 전등사 앞에 30미터가 넘는 엄나무가 꽃을 환하게 피우고 있었다. 가시 돋친 삼계탕용 엄나무만 생각했는데, 이렇게 거대하고 웅장한 엄나무는 처음 보았다.
 

▲ 전등사를 들어가다     © 최영숙

 

천년고찰 전등사에 들어서기 위해 성문을 지났다. 문을 통과하자마자 느껴지는 서늘하고 맑은 기운이 마치 새로운 세계로 들어서는 듯한 기분을 주었다.

 

▲ 양헌수 승전보     © 최영숙


동문 입구에는 양헌수 장군 승전비가 있다. 1866년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을 물리친 장군의 공적을 기리는 비석이다. 호국불교의 상징인 이곳에 세워진 의미가 남다르게 다가왔다.

 

▲ 윤장대     © 최영숙


 윤장대를 돌리며 소원을 빌었다. 함께한 이들의 바람이 모두 이루어지길 기원했다.
 

▲ 전등사 대웅보전 나부상     © 최영숙

 

전등사를 잊지 못하게 하는 나부상이 대웅보전의 네 귀퉁이를 떠받치고 있었다. 전설에 의하면 전등사를 짓고 있던 도편수와 주막의 주모가 사랑을 했다고 한다. 사찰 공사를 마무리하고 함께 살기로 약속했다. 그런데 어느 날 주모가 다른 사람과 눈이 맞아 도망을 가버렸다.

 

도편수는 배신감에 그 여인의 나부상을 만들어 대웅보전의 네 지붕을 떠받치게 했다. 도망갔던 여인은 오늘도 대웅보전의 처마 네 귀퉁이를 떠받치고 있었다. 잠시 "인연을 다한 사람이면 편하게 보내주었으면 될 것을..."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전설을 만드는 것은 '누군가 잊지 않는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전등사 대웅보전은 도편수 여인의 가없는 보호 아래 300여 년을 그 숱한 전란 속에서도 온전히 보존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전설이 있다는 것은 사람들에게 많은 상상을 하게 하고, 더욱 가깝게 다가서게 한다.

 

▲ 전등사 은행나무     © 최영숙

 

전등사의 은행나무는 꽃은 피어도 열매는 맺지 않는다고 한다. 이 은행나무에게도 전설이 있다. 강화도령 철종 임금 때, 조정에서는 전등사에 은행 스무 가마를 바치라고 요구했다. 전등사 은행나무는 열 가마밖에 열매를 맺지 않는데 걱정이었다. 은행 스무 가마를 내놓지 않으면 불교 탄압이 더욱 심해질 것이라 걱정이 많았다. 이에 노스님은 백련사에 있는 추송 스님에게 도움을 청했다. 곧 전등사 일대에 "전등사 은행나무에서 은행이 두 배나 열리게 하는 기도가 있을 것"이라는 소문이 퍼졌다. 사람들과 관리들이 추송 스님의 3일 기도를 지켜보았다. 기도가 끝나는 날, 지켜보던 관리들의 눈이 얻어맞은 것처럼 퉁퉁 부어버렸다. 추송 스님이 말했다. "이제 이 두 그루의 나무에서는 더 이상 은행이 열리지 않을 것이오. 어리둥절한 사람들 머리 위로 먹구름이 뒤덮더니 비가 무섭게 내렸다. 사람들은 두려움에 땅에 엎드렸다. 사람들이 고개를 들었을 때는 추송 스님은 물론 노스님과 동자승까지 사라진 뒤였다. 사람들은 보살이 전등사를 구하기 위해 세 명의 스님으로 변해 왔다고 믿게 되었다. 그때부터 전등사 은행나무는 열매를 맺지 않는다고 한다.  전설의 은행나무 아래에서 소래 사람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 명부전에서 기도드리는 스님     © 최영숙


명부전에서는 망자를 위한 제를 지내는 스님과 가족들의 경건한 모습이 보였다.
 

▲ 꽃들에게 안부를 전하다     © 최영숙


하산하는 길, 작은 꽃과 나무들에게 일일이 눈을 맞추며 안부를 전하는 소래문학 회원들의 모습은 그 자체로 한 편의 시였다.

 

▲ 보문사     © 최영숙

 

안개에서 시작해 전설로 끝난 여행이었다. 보문사의 안개와 두꺼비 무덤, 전등사의 전설들과 오고 가며 나눈 대화들... 2011년 7월 23일의 추억은 참으로 귀하고 행복했다. 자연의 아름다움만큼이나 사람의 마음이 아름답다는 것을 다시금 깨달은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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