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산, 선암사와 송광사가 있다-
조계산을 갈 때 계절에 대한 기대는 없었다. 이도 절도 아닌 어정쩡한 계절에 찾은 산은 텅 빈 숲과 망설이는 봄소식에 조용하다. 아직 제 색깔을 찾지 못한 나무들도 봄의 설렘을 기다리고 있다. 다만 가장 나를 움직이게 한 것은 선암사와 송광사다. 아직 닿지 않은 곳이라 알고 싶고 보고 싶었다.
우리가 택한 길은 굴목이재 숲길이다. 이 길을 ‘천년불심길’이라고 한다. 선암사는 조계산 동쪽에 송광사는 서쪽에 자리 잡고 있다. 누군가의 말을 빌리자면 선암사는 수수하면서 소박하고, 송광사는 우아하고 세련됐다고 한다.
선암사에 들어서기 전, 두 손을 마주 잡으면서 입술을 꽉 다물게 하는 풍경과 마주했다. 승선교 다리 밑으로 강선루의 조화가 그야말로 보배다. 전체적인 분위기나 짜임에 맞는 어울림이다. 쳐다보고 봐도 질리지 않는 모습이다. 가만히 바라다만 봐도 나쁜 업이 사그라드는 듯하다. 내가 자주 듣는 티베트 명상 음악과도 잘 어울리는 승선교와 강선루의 궁합이 평온하다.
또 하나의 풍경 앞에서 발을 멈추었다. 산 자와 죽은 자의 조화로움 때문이다.
푸름을 잃지 않은 삼나무 옆에서 죽어서도 풍경으로 머무는 이름 모를 나무에서 고전미의 냄새가 스며있다. 죽었지만, 잊히지 않는 풍경에서 얼마 전 읽었던 ‘퐁퐁이와 툴툴이’이라는 동화 이야기이다.
‘두 옹달샘의 이름은 퐁퐁이와 툴툴이다. 두 옹달샘에는 파란 하늘과 종달새의 맑은 소리가 담겨 있었다. 퐁퐁이는 숲 속에 사는 친구들에게 자신의 샘물을 나눠줬지만, 툴툴이는 자신의 샘물을 먹지 못하게 했다. 그러던 어느 가을날, 두 옹달샘에는 낙엽이 쌓여 갔다. 숲 속 친구들은 퐁퐁이 샘물 위의 낙엽, 나뭇가지들만 건져내고 물을 마시고, 아무도 툴툴이 샘물을 찾지 않아 결국 친구들에게 잊혀버리고 만다는 이야기이다.’
툴툴이가 잊고 있었던 것은 샘물은 나누어져도 항상 새로운 물이 솟고 있다는 사실이다. 저 죽은 나무는 잊히는 게 아니라 당당함을 넘어서 사람들한테 감동을 주고 있지 않은가. 가장 슬픈 게 잊히는 것이라 했는데.
선암사에서 송광사까지 가는 길은 ‘천년불심 길’이라고 하는데, 아마도 그 이유가 돌과 돌을 밟으며 걸으면서 마음에 얹혀 있는 돌덩어리를 하나씩 버리라는 뜻인가. 질리도록 돌을 밟고 밟았다. 지친 발걸음을 다독이는 편백나무 숲길이다. 수직 세상에서 피톤 치든을 듬뿍 흡입하고 나니 일상의 먼지가 흩어진다.
숲길에서 굴참나무-서어나무-너도 밤나무-오리나무-진달래-느티나무 등과 조우하면서 지나가는데, 숲 속 주인공인양 우리의 시선을 이끄는 나무 둘이 있다. 서어나무 뿌리가 떡갈나무를 파고들어 한 몸이 된 연리근이다. 이들의 대화는 어떤 말을 주고받을까? 별님-바람-달님-새들의 소식을 조곤조곤 속삭일듯한 풍경이다.
다시 돌다리 두르며 걸어가 만난 곳이 송광사다. 절의 위상보다 내 머리를 쮸빗 서게 한 해우소가 강인하게 저장된다. 정호승 시인이 말한 것처럼 통곡할 일은 없다. 다만 선암사 뒤칸을 보고 죄지은 사람처럼 떨었다. 송광사 해우소에서는 다리가 후들거려서 바지도 제대로 올리지 못하고 후다닥 나왔다.
해우소에 앉아서 밑을 보자 깊이는 알수 없고, 오물 쌓인 것이 분뇨 지옥 풍경이다. 잘못하면 분뇨 지옥에 빠져 허우적거릴 것 같아서 되도록 해우소와 멀어졌다. 송광사에 세 가지는 없고 있고를 떠나 나를 안절부절하게 한 곳이다. 없고는 풍경과 석탑, 석등이다. 있고는 비사리구시와 능견난사. 쌍향수다.
허허로운 마음을 안고 절마당을 보자 나무의 그림자가 큰 그림이었다가 작은 그림으로 흔들린다. 정호승의 ‘선암사’ 시를 가만히 따라나섰다.
선암사/정호승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고 선암사로 가라
선암사 해우소로 가서 실컷 울어라
풀잎들이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아주고
새들이 가슴 속으로 날아와 종소리를 울린다
눈물이 나면 걸어서라도 선암사로 가라
선암사 해우소 앞 등 굽은 소나무에
기대어 통곡하라
-2018년 3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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