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겨울을 추억하면서-

선자령, 그 아이러니

김민지(김순기) | 기사입력 2018/01/12 [11:30]

-지난 겨울을 추억하면서-

선자령, 그 아이러니

김민지(김순기) | 입력 : 2018/01/12 [11:30]

    -지난 겨울을 추억하면서-

    

▲     © 김민지(김순기)

 

    -선자령, 그 아이러니 -

   선자령 눈 더미에서 언어와 지천명 나이를 잊었다. 뭔가에 제대로 한방 얻어맞은 듯 머릿속이 백지다. 선자령을 벗어나 차에서 깜빡 잠이 들었다가 깨어났는데, 선자령 기억이 없다. 마치 한낮의 오수에 빠져 행복한 꿈을 꾸고 일어난 기분이다. 그리고 선자령이 일상생활의 그 어떤 시간의 공백인 것처럼 아득하면서 느낌이 없다.
   선자령으로 몸이 움직일 때, 우리는 같은 말을 하였다. 어쩜 이번 겨울에 보는 마지막 눈이 될 것이라고. 그래서 기대감도 상승곡선으로 치달았다. 선자령에 발을 내딛는 순간, 생경한 풍경 앞에 표현할 말을 잃었다. 한 단어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가 없다. 이렇게 많은 눈 더미는 처음으로 맞닥트린 광경이다. 기억을 끄집어내자면 유년의 크리스마스 카드에 그려있던 그림 속 한 장면 같기도 하고, 아님 옛 성인의 산수화에 안착된 그림 같기도 하다. 
 

▲     © 김민지(김순기)



   하얗게 눈을 뒤집어쓴 나무를 보자 텔레비전을 통해 보았던 기억이 갑자기 오버랩된다. 요즘 한창 수확 중인 멍게가 긴 줄에 가득 붙어있는 장면이다. 선자령 나무마다 하얀 멍게를 주렁주렁 매달고 있는 느낌이다. 서로 같은 풍경을 보고 다른 상상으로 자연의 품에 안긴다. 여기저기서 감탄을 쏟아내는 신음소리가 숲으로 잦아든다. 선자령에서 풍경에 취하고 풍경을 보고 대화에 취하는 시간이 길다.
   나무마다 제 무게만큼 받아들인 눈을 이고 빠끔히 우리와 마주한다. 마주한 모습이 생에 다시 볼 수 없는 명품인데, 왠지 마음이 휑하게 저리다. 스틱으로 눈을 끌어안고 쩔쩔매는 나뭇가지에서 눈을 털어내자 ‘훅’ 숨을 내쉬며 제자리로 돌아간다. 나무마다 겨울의 시간을 묵묵히 살아내고 있다. 그 시간에다 우리는 일상의 시름을 덜어내고 떠난다. 자연의 모든 것은 풍경에다 의미를 부여하듯 여러 모습을 내보인다.
 

▲     © 김민지(김순기)



   선자령에서 우리는 시간을 놓았다. 목적지 없이 동심으로 돌아가 겨울 풍경에 푹 빠졌다가 돌아가는 것이 우리 일정이다. 오히려 마음도 평온하다. 자연에 동화되어 즐기는 산행이라서 더딘 걸음은 마치 영화 ‘겨울왕국’에 온듯하다. 선자령에 오기 며칠 전에 ‘겨울왕국’을 보고 정말이라는 부사와 아름답다는 형용사를 반복해서 중얼거렸다. 그런데 영화 속 장면의 풍경보다 선자령에서 느끼는 감동은 말보다 표정이 앞서서 표현한다. 오늘 선자령에서 누린 호사로 오랫동안 영화 속에서 살 것 같다.
   내가 처음 이 글을 쓸 때, 백지라고 한 것은 아마도 선자령과 일상생활이 주는 느낌이 동전의 양면 같아서일 것이다. 선자령에서는 아이처럼 걱정 없이 즐겼는데, 집으로 돌아와 9시 뉴스를 보니 그 많은 눈 때문에 고립이니 단절이니 마비니 극단적인 말이 쏟아진다. 그리고 눈으로 상처 입은 곳도 속출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순간 내가 꿈을 꾸고 일어난 듯 선자령 기억은 없고, 마음을 흔들었던 눈은 이제 걱정과 근심으로 이어진다. 참으로 세상일은 아이러니로다.
 

▲     © 김민지(김순기)



   삶은 의미가 아니라 필(feel), 느낌이 필요하다. 그래야 삶이 덜 삭막하기 때문이다. 그 필(feel)은 어쩜 스스로 뭔가를 찾아 행동하면 주어지는 선물이라는 게 내 생각이다.

   가끔 자연의 순환도 삶의 순환도 무상함으로 다가올 때가 있다. 바로 마음이 허전할 때다. 그럴 때 내 내면과 맞닥뜨리는 가장 좋은 방법은 자연이다. 선자령에서 동심을 찾아 주었던 눈은 답답한 마음을 뻥 뚫어주었다. 그것도 아주 시원하게 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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