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남 땅끝 마을

-스침의 미학-

김민지(김순기) | 기사입력 2018/02/20 [10:39]

해남 땅끝 마을

-스침의 미학-

김민지(김순기) | 입력 : 2018/02/20 [10:39]

 

                                       해남 땅끝 마을

                                                         -스침의 미학-

 

▲     © 김민지(김순기)

 

  긴 시간을 달려와 만난 해남 땅끝 마을, 우리가 살던 도시의 바람보다 훈훈하다. 봄은 땅 속에서 잠든 것들을 깨우고 있다. 그 흔적이 질적 한 길과 물 오른 나무에 있다. 강원도에서는 눈 축제인 평창올림픽이 남쪽 해남에는 마늘이 쑥쑥 올라와 파릇하다. 그 파릇함이 싱그럽다.

  전망대에서 스침은 명풍경을 예고한다. 점점이 떠 있는 섬과 어부의 땀으로 만들어진 바다의 밭으로 햇살이 꼬물거리며 어루만져 주고 있다. 미역일까 다시마일까 아니면 홍합일까 머릿속을 헤집는 궁금증에 군침이 돈다.

 

▲     © 김민지(김순기)

 

   자연의 스침은 늘 경이롭다. 순간을 포착한 사진 한 장이 멍 때리게 한다. 전망대에서 내려오다 만난 풍경이다.  아무 생각 없이 하늘을 바다를 바라다보았다. 그때 내 뺨을 스치며 지나가는 바람과 햇살에 눈을 감았다가 떴다.

  바다로부터 달려오는 냄새와 나무에 매달려 있는 묵은 잎사귀, 그 간극의 사이에서 내가 놓았다가 잡은 것은 웃음이다. 공중에 나무의 언어가 펼쳐져 있다. 바닷길에는 배가 지나가고 내 마음에서는 많은 길들이 흔들린다. 흔들리는 나한테 나무의 언어가 무엇이라 말하는 걸까

 

▲     © 김민지(김순기)

 

   해안 길을 걷다가 연리지 나무를 만났다. 때죽나무이고 수령이 50~60년 되었다고 한다. 여태껏 본 연리지는 우람하고 귀태가 있었다. 그런데 이 곳에서 본 때죽나무 연리지는 연약해서 보호 본능을 자극한다. 예로부터 금실 좋은 부부를 상징했다.

   서로가 의지하고 상처를 끌어안은 모습에서 보는 이로 하여금 뭉클하게 한다. 이 곳에서의 스침은 사람 사는 곳이나 자연에서나 혼자가 아닌 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는 사실이다. 고즈넉한 풍경에 천천히 내쉬는 호흡은 몸과 마음을 가볍게 한다.

 

▲     © 김민지(김순기)

 

    해안길을 벗어나자 작은 마을이 나타났다. 사람 사는 냄새가 물씬 풍긴다. 할머니 뒤로 봄볕을 즐기는 마늘밭이 있다. 봄이 가까이 왔음을 알리듯 파릇파릇 올라온 마늘이 숨 고르며 쉬어가란다. 우리는 할머니가 캐어 놓은 도라지를 샀다. 도라지 하나를 껍질을 벗겨내고 입에 넣고 오물거리자 달짝지근한 향이 스친다.

   할머니는 배추와 무를 우리한테 가져가라 하신다. 다음날 장에 가서 팔 도라지를 사준 덤으로. 할머니 굽은 허리와 웃음에서 고향 마을 아주머니들 모습이 겹친다. 마을 가까이에는 질서보다 상생을 선택한 동백나무들의 괴괴한 풍경은 영화 속 한 장면 같다. 햇살과 바람의 스침을 기다리는 동백 꽃잎이 봄을 잔뜩 물고 있다. 붉은빛이 감돈다. 할머니의 건강을 빌면서 마을을 떠났다.

 

▲     © 김민지(김순기)

 

   해남 두륜산 대흥사에서 연리근을 만났다. 천년 된 느티나무는 천년 동안 사랑하고 있는 모습이다. 서로를 보듬고 같은 곳을 바라다보면서 서 있는 게 숙명 같다. 봄을 재촉하는 겨울바람이 느티나무 가지를 흔들며 지나간다. 천 년의 소리가 산으로 흩어진다. 대흥사를 나오다가 나무판에 새겨 놓은 대반열반경의 문구가 스친다.

 

  ‘겉모습이 그럴듯하다 해서

  모두가 좋은 사람이 아니다.

  그 뜻이 깨끗하고 정직해야 하느니

  공연히 겉모습만 가지고

  사람을 평가하지도 말고

  또한 겉모습만 치장하지도 말라-

                                   -대반열반경-

 

  마치 나를 두고 하는 말 같았다. 마음을 비우고 합장하면서 고개를 숙이고 빠른 걸음으로 대흥사를 벗어났다. ‘겉모습만 치장하지 말라라는 문구가 끈질기게 따라온다. 두리번거리다 대흥사를 내려다보는 누워 있는 바위 부처를 보았다. 인생은 후회하면서 성장해 가는 것이라 일러 주신다.

  집으로 돌아와서 도라지를 깨끗이 씻어서 말렸다. 며칠 뒤 도라지에 대추를 넣고 끓여서 차로 마셨다. 찻잔으로 할머니의 고단한 주름과 웃음이 머물렀다 떠난다. 이내 거실로 퍼지는 도라지 향에 마음이 해남으로 달아난나. 내 몸으로 스며드는 땅끝 마을에서의 시간이 기분 좋게 한다.

                                                                                                                               2018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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