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가 되세요"… 고(故) 이소선 여사 1주기 추도식 현장어머니에게 빚진 사람들... 모란공원 민주열사 묘역에 모여 추모
오전 10시 고 이소선 여사가 잠든 모란공원 민주열사 묘역에 도착했다. 한가위를 맞아 공원관계자들이 이소선 여사와 전태일 열사의 묘역을 벌초하고 있었다.
11시에 엄수된 추도식에는 유가족과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 배은심 여사를 비롯한 유가협 회원, 양대 노총 관계자, 민주화운동 원로 백기완 선생, 김문수 경기도지사, 이재오 새누리당 의원, 권영길 전 민주노동당 대표, 심상정 전 통합진보당 대표, 이용득 민주통합당 최고의원, 한정애 민주통합당 의원 등 500여 명이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이소선 여사가 걸어온 길이 소개됐다.
“이소선 어머니는 1929년 12월 30일 경북 달성에서 태어났다. 1947년 대구 남산동에서 봉제 자영업자 전상수와 결혼했고 1948년 전태일을 낳았다. 이후 태삼, 순옥, 순덕을 출산했다. 1954년 서울로 이사했다. 염천교 밑, 해방촌, 남산동을 전전하며 팥죽, 비빔밥, 찹쌀떡 장사 등을 해서 가족을 먹여 살렸다.
그러다 1970년 11월 13일 아들 전태일의 죽음을 맞았다. 그날 “엄마, 연약한 노동자들이 자기 권리를 찾을 수 있는 길을 엄마가 만들어야 해요. 내가 헛되게 죽으면 안 되잖아요. 한다고 크게, 크게 대답해 주세요”라는 아들의 절규에 “이 몸이 가루가 돼도 네가 원하는 거 끝까지 할 거다”라고 약속했다. 그 약속을 시작으로 어머니는 노동운동가이자 '노동자의 어머니'의 길로 들어섰다. 1970년 11월 18일 아들 태일을 모란공원에 묻고, 11월 27일 청계피복 노동조합 결성에 참여했다. 이후 1977년 7월, 1980년 10월, 1981년 2월 세 차례에 걸쳐 민주화운동 및 노동운동과 관련해 옥고를 치렀다. 1985년 민가협 공동의장을 역임했고, 1986년 8월 12일 가슴에 자식을 묻고 사는 어머니, 아버지를 규합하여 유가협을 만들고 초대 회장이 되었다. 그리고 유가협 회원들과 함께 1988년 11월 4일부터 국회 앞에서 의문사 진상규명 및 명예회복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며 422일간 천막농성을 벌였다.
그처럼 전태일 사후 41년의 세월을 변함없이 소외받는 자, 고통당하는 자, 투쟁하는 자들의 곁에 머물던 어머니는 2011년 9월 3일 영면했다.”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 배은심 여사는 추도사를 통해 “많은 사람들은 세월이 빠르다 하는데 어머니가 안 계시니까 1년이 이렇게 길다”며 “난관이 생기면 어머니는 생전에 어떻게 하셨을까 생각해서 합니다”라고 회고했다. 이어 “어머니가 생전에 좋아하시던 노동자들은 어머니가 비록 이 세상에 없지만 우리들과 같이 이곳에 있음을 믿는다”면서 “어머니 편히 계십시오”라며 그리움을 전했다.
이어서 백기완 선생이 추도사를 했다. “오늘 자잘한 일이 있어서 여기 못 올 뻔했습니다. 새벽꿈에 어쩌자고 어머니가 나타나셔 서 ‘이봐요. 백 양반 왜 이렇게 늦잠을 자’ 해서 깨보니 오늘이 어머니 떠나신지 한 해가 된 해라는 기사를 보았다”며 “지금 이 땅의 노동자를 다 죽이려고 하는데 늦잠을 자고 있다고 야단치려고 깨워주신 것 고맙습니다”라고 했다. 조헌정 전태일재단 이사장은 추도시 ‘어머니 이소선’에서 “이 땅에 살 때는 저 생의 사람처럼, 저 땅에서 살 때의 이 생의 사람처럼, 어머님은 참 묘한 분이셨지요. 훗날 다시 뵈올 때에 얼굴 돌리지 않고 당당하게 어머님 손잡고 ‘어머님 보고 싶었습니다. 어머니 그간 고마웠습니다.’라고 말하는 당신의 딸, 당신의 아들이 되기를 소원하면서…” 라고 했다.
전태일의 친구이자 '바보회' 회원이었던 최종인 씨는 “어머니는 청계천 평화시장의 노동자들을 지독히도 사랑하셨습니다. 저희가 배를 곯으며 노동조합 일을 할까 봐 늘 노심초사하셨지요. 병원 영안실에서 얻어온 헌 옷들을 개천 물로 깨끗이 빨아, 서울 시내를 고무신이 닳도록 돌아다니며 파셨습니다”라고 옛일을 회고했다.
그는 이어 “그렇게 번 돈을 들고 어머니가 조합 사무실에 들어서면, 저희는 인사 대신 ‘어머니, 배고파요!’를 먼저 외쳤습니다. 그러면 라면을 끓여 허기진 배를 채우고서야 조합 사무실을 나설 수 있었지요. 밤이 되면 저희가 어머니의 헌 옷 보따리를 짊어지고 어머니가 사시던 쌍문동 208번지로 함께 가곤 했습니다. 그 시절, 배고프고 만나면 경찰들에게 두들겨 맞던 그 시절이 왜 이리 사무치게 그리운지 모르겠습니다”라며 고난의 세월 속에서 핍박받던 모든 이들의 버팀목이었던 이소선 여사를 떠올렸다.
민주노총 김영훈 위원장은 추도사를 통해 “어머니는 희생이고 사랑이며 그리움입니다. 전태일 열사가 산화해가신 지도 어느덧 43년, 그 긴 세월 동안 전태일 열사를 우리가 기억하고 따를 수 있었던 건 ‘어머니 이소선’ 당신의 가슴에 전태일 열사가 살아있었기 때문이었고, 당신의 자랑스러운 아들이 그랬던 것처럼 당신의 따뜻한 손길이 늘 노동자를 향했기 때문입니다”라고 추모했다.
한국노총 위원장 권한대행 김동만 씨도 “언제나 투쟁하는 노동자의 곁을 지켜주시던 따뜻한 어머니, 단결해야 승리한다고 호소하시던 당신이 계셨기에, 숱한 난관과 좌절 속에서도 우리는 다시 일어설 수 있었습니다. 진정 당신은 헌신적이며 강인한, 모든 노동자의 어머니입니다”라고 추모했다.
이소선 여사의 딸 전순옥 민주통합당 의원은 다음과 같이 말하며 어머니를 그리워했다. “어머니가 항상 보고 싶어 하셨던 ‘노동자가 대우받고 인간답게 사는 세상’, 이 땅에 아직 도착하지 못한 큰오빠의 편지를 잊지 않겠습니다. 어머니가 말보다 행동으로 보여주셨던 그 정신, 함께 웃고 울던 그 마음들, 그리고 무엇보다 '사랑해'라고 속삭이며 안아주던 그 가슴을 영원히 기억하겠습니다.”
이소선 여사가 생전에 “노동자는 단결해야 한다”는 유지를 받들어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노동자들이 함께한 ‘이소선 합창단’ 과 참석자들이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불렀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 없이 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동지는 간 데 없고 깃발만 나부껴 새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자 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 깨어나서 외치는 뜨거운 함성 앞서서 나가니 산자여 따르라 앞서서 나가니 산자여 따르라 이어진 헌화와 분향 순서 도중, 묘역 뒤편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야, 네가 어떻게 이곳을 와! 어서 나가!” 김정우 쌍용차 노조위원장이 분향하려는 김문수 경기도지사를 막아서며 소리쳤다. 이 소란은 전태일 열사의 동생 전순옥 의원이 만류하면서 겨우 진정되었다.
이소선 여사가 생전에 어떤 분이셨는지 추모객들에게 물었다.
신금순(75) 씨는 “어머니는 참 좋은 분이셨다. 만날 때마다 병 없이 살라며 아프지 말라고 당부하셨다”며 “이렇게 일찍 돌아가실 줄 몰랐다. 너무 슬프고 그립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금속노조 문화국장 이장주(47) 씨는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우리의 투쟁 의지를 어머님이 하늘에서 지켜보실 것 같아서요”라고 말한 뒤, “어머니는 늘 ‘고맙다! 투쟁하는 동지들에게 고맙다’고 보는 사람마다 말씀해 주셨습니다. 덕분에 우리가 투쟁하는 것이 당당하고 정당함을 느낄 수 있었지요. 어머니의 유지대로 노동자들이 한데 모여 나쁜 세력들을 제대로 혼내주는 것이 우리가 할 일입니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내가 18살, 형이 21살 때 평화시장에서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던 길에 형과 손잡고 이야기하던 말소리나 손의 따뜻함이 아직도 남아 있습니다. 화전민촌 언덕길을 올라오면 어머니가 달빛 아래서 우리를 기다리고 계셨지요. 차비가 없어서 걸어왔으면서도, 밤일을 하느라 늦었다고 형과 함께 거짓말을 하곤 했습니다.”
당시를 회상하던 그는 이어 “천막 문을 열고 들어서면 19공탄 위에 맑은 물이 끓고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우리가 오면 바로 수제비를 끓여 주시려고 달빛 언덕에서 기다리고 계셨던 것입니다. 어머니가 끓여 주시던 그 수제비 맛을 지금도 잊지 못합니다”라며 두 아들의 어머니로서 애틋했던 모정을 전했다.
또한 “어머니는 참 강인한 분이셨습니다. 아픔을 가슴에 품고 눈물을 흘리기보다 굳건하게 형과의 약속을 지키려 하셨지요. 어느 자리, 어느 곳, 어느 글 속에서도 어머니가 나약하게 눈물 흘리시는 모습은 한 번도 보지 못했습니다”라고 덧붙였다.
“옷도 세상도 건물도 자동차도 이 세상 모든 것을 노동자가 만들었습니다. 노동자가 세상의 주인 아닙니까. 그런데 우리는 하나가 안 되어서 천대받고 멸시받고 항상 뺏기고 살잖아요. 이제부터는 하나가 되어 싸우세요. 하나가 되세요. 하나가 되면 못할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태일이 엄마의 간절한 부탁입니다. 여러분이 꼭 이루어주세요.”
‘태일이 엄마’ 이소선 여사가 남긴 이 간절한 부탁은, 이제 과연 누가 들어줄 것인가. <저작권자 ⓒ 시흥장수신문(시민기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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