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박태준 명예회장, 서울현충원에 영면하다

최영숙 | 기사입력 2011/12/28 [02:12]

故 박태준 명예회장, 서울현충원에 영면하다

최영숙 | 입력 : 2011/12/28 [02:12]
▲ 故 청암 박태준 국립서울현충원으로 들어서다     © 최영숙

 
2011년 12월 13일, 향년 84세를 일기로 별세한 故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의 영결식과 안장식이 2011년 12월 17일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엄숙히 거행되었다.

 

▲ 고 박태준 전 국무총리의 빈소     © 최영숙


.故 박태준(1927~2011) 전 국무총리는 1927년 경상남도 동래군에서 출생했다. 1968년 포항종합제철주식회사를 설립한 뒤, 1973년 영일만 백사장에서 포항제철소 1기를 종합 준공하며 대한민국 중화학공업의 기틀을 닦았다. 이후 1981년 초대 회장으로 취임했으며, 2000년에는 제32대 국무총리를 역임했다. 2008년부터는 포스코 청암재단 이사장직을 맡아 인재 양성에 힘써왔다.

 

고인은 생전 '철강왕', '철의 사나이'로 불렸다. 영일만의 황량한 모래밭에서 '제철보국(製鐵報國)'의 각오로 단단히 무장해 대한민국을 세계적인 철강 생산 국가로 우뚝 세우는 한강의 기적을 일궈낸 주역이다.

 

▲ 신촌 세브란스병원 영결식장으로 운구 운반되다     © 최영숙


 이날 오전 7시, 신촌 세브란스병원 영결식장에서 고인의 명복을 비는 천국환송예배가 거행되며 장례 일정의 막이 올랐다.

 

▲ 포스코에서 추모식을 하다      © 최영숙

 

故 박태준 명예회장의 노제는 서울 강남구 대치동 포스코 센터에서 열렸다. 포스코 본사에 마련된 분향소에는 검은 상복을 갖춰 입은 임직원들이 침통한 표정으로 창업주의 마지막 길을 정중히 맞이했다.

▲ 포스코 분향소     © 최영숙

 

숙연한 분위기 속에서 고인의 약력 보고와 함께 가슴을 울리는 추모사가 낭독되었다.
  

▲ 포스코를 떠나다     © 최영숙

 
식장을 메운 포스코 직원들의 깊은 애도와 배웅을 받으며, 고인을 모신 운구 차량이 최종 장지인 국립서울현충원으로 출발했다.

 

 

▲ 포스코 직원들 배웅하다     © 최영숙

포스코 직원들의 배웅을 받으며 고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의 운구는 떠났다. 
 
▲ 영결식이 열리는 현충관으로 들어서다     © 최영숙
 
고인의 장례는 사회장으로 거행되었다. 장례위원회는 박준규 전 국회의장, 황경로 전 포스코 회장, 정준양 당시 포스코 회장 등 3명의 공동위원장과 부위원장 5명, 고문 22명, 장례위원 232명 등 각계각층의 인사들로 대규모 구성되었다.


▲ 장례위원장 박준규(전 국회의장)조사     © 최영숙

현충관에 운구가 도착한 후, 박준규 장례위원장의 절절한 추도사가 이어지며 영결식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 조정래 작가의 조사     © 시흥시민뉴스


이어서 고인의 평전을 집필했던 조정래 작가가 영결식 전날 밤 친필로 작성했다는 조사를 낭독하기 시작했다.

 

"추운 걸 그렇게도 싫어하셨는데, 하필 영하 10도의 엄동설한에 이리 황망히 돌아가십니까? 포스코를 세계 최고의 철강기업, 분기마다 1조 원의 수익을 올리는 기업으로 성장시킨 박태준은 '한국의 간디'입니다. 인도인들이 간디에게 '성스러운 영혼'이라는 뜻의 '마하트마(Mahatma)'를 붙여준 것처럼, 저 또한 그의 이름 앞에 마하트마를 붙여 '마하트마 박'이라 부르고 싶습니다." 조 작가는 "당신이 가실 길에 5천만 국민이 감사와 존경의 꽃을 뿌려두었으니, 부디 꽃길만 밟고 편안히 가시라"며 마지막 작별 인사를 고했다. 장내에는 흐느낌이 번져갔다.


 
▲ 장사익씨 조가를 부르다     © 최영숙


뒤이어 소리꾼 장사익 씨가 고인의 넋을 기리는 애달픈 조가를 불러 참석자들의 가슴을 다시 한번 먹먹하게 만들었다.

▲ 현충관에서 분향하다     © 최영숙

영결식이 거행되는 내내 식장을 가득 채운 추모객들은 대한민국 위대한 거목의 부조(訃告)에 깊은 슬픔을 감추지 못했다. 故 박태준 회장의 미망인 장옥자 여사가 아들 박성빈 씨의 부축을 받으며 슬픔을 억누른 채 영전에 헌화했다. 유족들의 헌화가 끝난 뒤, 참석한 지인들과 각계 인사들이 차례로 줄을 이어 헌화와 분향을 마쳤다.

▲ 묵념을 하다     © 최영숙

고인에 대한 묵념을 했다.
 
▲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안장식을 하다     © 최영숙


현충관에서의 영결식이 마무리된 후, 국립서울현충원 묘역으로 자리를 옮겨 안장식이 엄수되었다.
 
▲ 헌화와 분향을 하다     ©최영숙
 
하관 전, 고인의 영정 앞에 마지막으로 한 번 더 헌화와 분향이 진행되었다.

▲ 하관식을 하다     © 최영숙
 
'한국의 철인'이자 세계가 인정한 '철강왕', 평생을 포항제철과 함께 살아 숨 쉬던 고 박태준 회장은 마침내 차가운 대지 아래 영원한 안식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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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정래 작가 지켜보다     © 최영숙
 
하관과 안장 작업이 진행되는 동안, 조정래 작가를 비롯한 수많은 참석자가 자리를 떠나지 않고 경건한 자세로 그 과정을 지켜보았다.

▲ 허토를 하다     © 최영숙
 

유족과 장례위원들이 차례로 관 위에 흙을 가만히 얹는 허토(흙 넣기)가 진행되었다.
 
▲ 조총발사     © 최영숙


대한민국 군의 예포와 함께 세 발의 조총 발사가 엄숙하게 울려 퍼지는 것을 끝으로 모든 안장식이 끝났다.

 

▲ 평소에 좋아하던 호접란으로 장식되다     © 최영숙

 

故 박태준 명예회장은 눈을 감기 전 유언으로 “포스코가 국가 경제의 핵심 동력으로 성장한 것에 대해 깊이 만족한다”며 “앞으로 더 크게 성장해 세계 최고가 되길 바란다”는 말을 남겼다. 또한 남겨진 임직원들에게는 “언제나 애국심을 가슴에 품고 일해 줄 것”을 간곡히 당부했다.

 

'아시아의 철강왕'이라 칭송받으며 한 기업을 세계 정상에 올려놓은 인물이었지만, 놀랍게도 고인이 세상을 떠날 때 남긴 개인 재산은 전무했다. 생전에 자신이 거처할 집 한 채조차 마련하지 않아 큰딸의 집에서 머물렀으며, 노년의 생활비와 병원비조차 자녀들의 도움을 받아 해결하다 세상을 떠났다.

 

고인의 마지막 걸음을 카메라 렌즈에 담으며 가슴속에 수많은 질문과 깊은 울림이 일었다. 떠나는 순간 남겨진 이들에게 당당하게 "애국심을 가지고 일해 달라"고 권할 수 있었던 비결은, 자신의 평생을 한 점 부끄러움 없이 공익과 나라를 위해 통째로 바쳤기 때문일 것이다. 스스로에게 당당했기에 가능한 유언이었다. 고인의 영원한 명복과 영면을 마음 깊이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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