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8월 18일(목) 오전 10시, 국립서울현충원 현충관 및 묘소에서 김대중 대통령 서거 2주기 추도식이 열렸다.
현충관 임구에서는 참석자들이 단체 사진을 담았다.
추도식에는 이희호 여사, 권양숙 여사, 손학규 민주당 대표, 이정희 민주노동당 대표, 유시민 국민참여당 대표 등 야권 지도부가 자리를 같이했다.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 이해찬 전 총리, 박지원 의원, 권노갑 전 의원 등이 참석했다.
고인의 육성과 영상이 상영되었다. 이희호 여사의 눈가가 붉어졌다.
참석자들은 추모 노래 '당신은 우리입니다'를 함께 불렀다.
당신은 우리입니다
-고은-
당신은 민주주의입니다.
어둠의 날들
몰아치는 눈보라 견디고 피어나는 의지입니다.
몇 번이나 죽음의 마루턱
몇 번이나 그 마루턱 넘어
다시 일어서는 목숨의 승리입니다.
아 당신은 우리들의 자유입니다. 우리입니다.
당신은 민족통일입니다.
미움의 세월
서로 겨눈 총부리 거두고 부르는 노래입니다.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는 것
그 누구도 바라마지 않는 것
마구 달려오는 하나의 산천입니다.
아 당신의 우리들의 평화입니다. 우리입니다.
당신은 이제 세계입니다.
외딴 섬 아기
자라나서 겨레의 지도자 겨레 밖의 교사입니다.
당신의 고난 당신의 오랜 꿈
지구의 방방곡곡 떠돌아
당신의 이름은 세계의 이름입니다.
아 당신은 우리들의 내일입니다. 우리입니다.
이제 가소서.
길고 긴 서사시 두고 가소서.
이희호 여사가 김대중 대통령 자서전을 헌정했다.
조총 발사와 묵념에 이어 유족 대표로 김홍업 전 의원의 인사말이 있었다. 김 전 의원은 "아버님 묘소를 방문해 주신 많은 국민께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어떠한 삶을 살았느냐는 그 사람이 떠난 뒤에야 알 수 있습니다. 아버님은 많은 시련을 겪었지만, 그만큼 영광과 축복, 사랑을 받으셨습니다. 무엇이 되는 것보다 어떻게 사는가가 중요하다고 아버님은 늘 말씀하셨다"고 회고했다.
현충관에서의 추모식을 마치고 김대중 대통령의 묘소로 이동했다. 많은 사람이 묘소로 가는 길을 가득 메웠다.
김대중 대통령의 2주기 당일은 연일 계속되던 비가 멎고 하늘이 맑게 갰다. 푸른 구름과 추모객들이 하나가 된 듯했다.
묘소 앞은 추모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종교의식이 진행됐다.
헌화와 참배를 끝으로 김대중 대통령 서거 2주기 추도식이 모두 마무리되었다.
김대중 대통령 묘소를 떠나는 이희호 여사에게 시민들은 "여사님! 힘내세요!"라며 따뜻한 인사를 건넸다.
참배를 마친 시민들은 방명록에 저마다의 글을 남겼다. 광진구에서 온 윤선하 씨는 "한국의 민주화를 이룩하신 분. 남북관계를 화해로 이룩하신 분"이라고 적었다. 동작구에서 온 서성숙 씨는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이영석 씨는 "민주, 평화, 용서", 사당동에서 온 윤영순 씨는 "대통령님, 민주화를 위하여 수고 많으셨습니다"라고 적었다.
남양주에서 온 대학생 김은아(23) 씨는 "예전에 청와대를 방문해서 뵌 적이 있다. 인자한 할아버지 같으면서도 외유내강의 전형적인 분이셨던 듯하다. 우리 젊은 세대가 취업에 관심이 많지만, 좀 더 정치, 경제, 사회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서울에서 온 정순명(66) 씨는 "나는 고등학교 때부터 유세장을 찾아다녔다. 이런 분이 또 없다. 지역주의가 팽배한 현실 속에서도 경상도 출신의 노무현을 대통령 후보로 밀어주셨던 분이다. 우리는 평생 고인을 대통령으로 만들려고 목숨을 걸었다. 고인은 몇백 년 앞을 내다본 혜안을 가진 분이었다"라며 회상했다.
할머니의 고향이 하의도라고 밝힌 한 참배객은 "할머니 말씀에 의하면 김대중 대통령은 어릴 때도 장난기 많고 머리가 굉장히 좋았다고 하셨다. 구슬치기를 하면 동네 구슬을 모두 따 가셨다고 가끔 말씀하시곤 했다"고 전했다.
한동석(61) 씨는 "김대중 대통령은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고 본다. 남북 간의 교류를 이끌었고, 민주주의를 위해 죽음의 고비를 넘기며 인동초처럼 피어난 점은 깊이 존경한다. 다만 남북 교류 과정에서 물질적 지원이 과하여 결과적으로 핵 개발의 빌미를 준 것은 부정적으로 생각한다"고 소신을 밝히기도 했다.
윤선화(61) 씨는 "김대중대통령은 민주주의의 꽃이다. 37년 만에 정권 교체를 쟁취해 수장이 되셨다. 무기수와 사형수를 거쳐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이토록 파란만장한 삶을 사신 분은 드물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대선 때 대선주자로 나섰었다는 신전호(44) 씨는 "기탁금 5억 원이 없어서 선관위에서 등록을 거부당했다"며 "신행정수도는 사실 나의 공약이었다"고 아쉬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이처럼 묘소를 찾은 800여 명의 참배객은 저마다 김대중 대통령과 얽힌 깊은 사연과 추억을 가슴에 품고 있었다.
김대중 대통령 서거 2주기 추모시 그의 이름 -김정환- 정치가 살림 아니라 스스로 죽음이었던 시대 자신의 죽음 직전을 지나 젊은이들 죽어 거룩한 육체가 되던 시기 죽음의 영욕을 지나 짠하게 지나 평화와 희망의 경륜을 어느 누구도 그럴 수 없게 펼치며 더 짠했던 우리 선생님 호칭도 지나 자신의 죽음 직전 스스로 목숨을 던진 젊은 정치의 죽음 앞에서 마침내 어린아이처럼 엉엉 펑펑 울며 그 울음의 자신의 생애 응축 종지부로 삼은 사람. 그의 이름은 이제 고유를 벗고 보통명사가 되고 있다. 왜냐면 울음의 파란만장, 그의 울음은 죽음도 어린아이 5천 년 파란만장하게 씻어낸다. 왜냐면 죽음의 미화, 죽음이 그를 미화하지 않고 그의 이름이 죽음의 영역을 미화한다. 그리고 이것을 우리는 비로소 평화라 부르고 희망이라 부르게 된다. 목적격도 소유격도 없다. 그의 이름은 이제 보통명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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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동초 꽃을 보면 자연스레 김대중 대통령이 떠오른다. 그분이 가장 좋아하셨던 이 꽃은, 이제 어느 결에 꽃 그 자체로 고인을 연상시키는 상징이 되었다. '김대중'이라는 이름 석 자가 한국 현대사의 보통명사가 되었음을 느끼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분의 영원한 안식을 기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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