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사리를 남긴 거룩한 학승, 가산 지관 대종사 사바를 떠나 적멸에 들다-최영숙의 발길 따라 가는 풍경-
오전 11시에 시작된 영결식에는 조계종 종정 법전 스님과 총무원장 자승 스님, 중앙종회의장 보선 스님, 교육원장 현응 스님, 포교원장 혜총 스님을 비롯해 최광식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권양숙 여사,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 등 각계각층의 주요 내빈과 수만 명의 추모객이 한자리에 모여 스님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지관 스님은 10대 후반인 1947년 해인사에서 자운 대율사를 은사로 출가하여 사미계를 받았고, 1953년 비구계를 수지했다. 2004년에는 종단 최고 품계인 대종사 법계를 품수했다. 1959년 이후 10여 년 동안 해인총림에서 강주 및 주지 소임을 맡았으며, 1970년 이후 20여 년간 동국대학교에서 교수, 불교대학장, 총장 등을 역임했다. 스님은 《남북율장비교연구》 등 4권의 전구적인 계율 저서를 통해 율장 및 교단사 연구에 매진하여 현대 승단 운영의 확고한 이론적 토대를 마련해 왔다.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 자승 스님은 영결사를 통해 "한가한 청복(淸福)을 마다하고 부처님께서 남겨 주신 삼장교해(三藏敎海)와 선조들이 남겨 놓으신 한국 불교 1천7백 년의 자료들을 작업장 삼아 촌음을 아끼셨으니, 그 결과물인 《가산불교대사림》과 《역대고승비문》을 비롯한 수많은 저서들은 큰스님께서 남기신 문자사리로 공경하겠습니다. '한 중생이라도 남아 있어 성불하지 못한다면 영원토록 정각도(正覺道)를 취하지 않으리라!' 하고 발원하셨으니, 이 사바로 돌아오시어 한 중생도 남김없이 제도하실 그날을 하루하루 손꼽아 기다릴 것입니다. 속히 환도중생하시어 지혜의 보장을 열어 주옵소서"라고 했다.
조계종 종정 법전 스님은 법어에서 "종사는 일찍이 우리 종문에 귀의하여 일념정진으로 삼장을 통달하고 일승의 현의를 터득하여 교학의 지평을 넓혀서 우리 종문을 빛낸 눈 밝은 종장이었습니다. 이제 자애스런 진용과 사자후를 어디서 뵙고 들어야 합니까? 종사는 임운자재(任運自在)하는 법계의 자유인으로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생멸이 없는 곳에서 해탈을 누리시니 얼마나 자유스러우며, 무생법인의 안락을 누리시니 얼마나 즐거우십니까"라고 했다.
중앙종회의장 보선 스님은 추도사에서 "가산지관 대종사의 걸음걸음은 문수의 행원이었고, 허공의 뼈 속을 뚫는 법등이었습니다. 사방천지에 그 누가 있어 천지를 놀라게 한 《가산불교대사림》 방광(放光)의 비밀을 다 알겠습니까. 그 빛은 가이가 없으며, 그 비밀은 삼세제불 또한 온전히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가산지관 대종사여, 생사가 없는 곳에서나 생사가 있는 곳에서나 조사의 정법으로 다시 만날 수 있기를 간곡히 기원합니다"라고 추모했다.
이명박 대통령도 조의문을 보내 지관 스님의 입적을 추도했다. 또한 한국 불교와 문화 발전에 기여한 고인의 공로를 기려 정부 최고 훈장인 금관문화훈장을 추서했다.
대만 불광산사 회주 성운 스님이 '혜등서거(慧燈西去; 지혜의 등이 꺼져 서쪽으로 가시다)'라고 쓴 만장이 행렬의 앞장을 서고, 고인을 추모하는 1,500여 개의 만장이 그 뒤를 묵묵히 따랐다.
지관 스님의 법구가 평생 수행 정진했던 해인사의 일주문 앞에서 잠시 멈추어 서서 이승에서의 마지막 인사를 고했다.
대중 스님들이 숙연한 자세로 거대한 불길로 화한 지관 스님의 연화대를 가만히 지켜보았다.
서울에서 내려왔다는 이귀례(76) 불자는 다비장 주변을 멈추지 않고 계속 둥글게 돌며 기도를 올렸다. 두 시간이 넘도록 원을 도는 모습을 보고 나중에 얼마나 도신 거냐고 조심스레 여쭈었다. 할머니는 "108번을 다 채우고도 계속 더 돌며 기도하고 있다"고 대답했다. 무엇을 그토록 간절히 기원하셨는지 묻자, "그저 우리 스님 좋은 곳으로 가시라고 빌고 있다. 이 세상 저 세상의 구별도 없는 참된 극락왕생을 누리시라고 기도한다"며 온 마음을 보냈다.
다비장의 불꽃은 사바세계의 모든 번뇌를 태워버릴 듯 강인하게 춤을 추며 타올랐다. 과거 법정 스님에 이어 개인적으로 두 번째 마주하는 다비식 현장이었다. 마지막 가는 길에 저토록 장엄한 불꽃 속으로 자신을 온전히 태우고 떠난다는 사실에 가슴 깊이 수많은 생각이 교차했다.
전남 광양시에서 왔다는 한 여성 신도는 "삶의 마음을 비워내기 위해 다비장을 찾곤 한다"며 "타오르는 불꽃을 가만히 쳐다보고 있으면 신기하게도 모든 잡념이 사라지고 내 안의 무심(無心)의 세계로 들어가게 된다"고 소회를 밝혔다.
조계종 제5대 포교원장을 지낸 혜총 스님은 지관 스님의 생전 모습을 눈시울을 붉히며 회고했다. "지관 큰스님은 화려한 가사보다 늘 일반 스님들이 입는 소박하고 검은 승복을 즐겨 입으실 만큼 지독히 검소하셨습니다. 총무원장 소임을 보실 때도 개인 전용차를 마다하고 항상 일반 택시나 버스, 기차를 이용하셨지요. 학승으로서의 책임감 또한 어찌나 강하셨는지, 밤잠을 아켜가며 경전을 연구하는 일에 평생을 바치셨습니다."
지관 스님은 입적하기 전, 친필로 사세(辭世)를 앞둔 심경을 담은 임종게(臨終偈)를 남겼다. 그 구절이 마당의 비석처럼 선명하게 가슴에 와닿았다.
'무상한 육신으로 연꽃을 사바에 피우고 / 허깨비 빈 몸으로 법신을 적멸에 드러내네 / 팔십 년 전에는 그가 바로 나이더니 / 팔십 년 후에는 내가 바로 그이로다'
지관 스님은 과거 총무원장 퇴임 인터뷰에서 이런 말씀을 남기기도 했다. "차표를 사서 버스를 타고 가다가, 내가 내려야 할 정류장에서 차분히 내리는 것뿐입니다. 본래 오는 것도 없고 가는 것도 없지요. 시간이 흐르면 육신도 변하고 마음도 변하듯, 정류장에서 내리는 것에 대해 서운할 것도 흐뭇할 것도 전혀 없습니다."
기록을 하면서 스님의 임종게와 퇴임사 구절이 머릿속을 맴돌아 깊은 생각에 잠겼다. 정작 나는 내가 내려야 할 인생의 정류장이 어디인지도 모른 채, 그저 하루하루 머뭇거리며 헛되이 삶을 보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거인의 뒷모습이 남긴 가르침을 마음에 새기며, 지관 스님의 영원한 안식과 극락왕생을 두 손 모아 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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