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사리를 남긴 거룩한 학승, 가산 지관 대종사 사바를 떠나 적멸에 들다

-최영숙의 발길 따라 가는 풍경-

최영숙 | 기사입력 2012/01/09 [01:01]

문자사리를 남긴 거룩한 학승, 가산 지관 대종사 사바를 떠나 적멸에 들다

-최영숙의 발길 따라 가는 풍경-

최영숙 | 입력 : 2012/01/09 [01:01]
▲ 지관스님 다비식이 엄수되다     ©최영숙


2012년 1월 6일, 법보종찰 합천 해인사에서는 지난 1월 2일 성북동 경국사에서 입적하신 한국 불교의 대표적인 학승이자 조계종 제32대 총무원장을 지낸 지관 스님의 영결식과 다비식이 엄수되었다.

▲ 영결식이 치러지다     © 최영숙
 

 

오전 11시에 시작된 영결식에는 조계종 종정 법전 스님과 총무원장 자승 스님, 중앙종회의장 보선 스님, 교육원장 현응 스님, 포교원장 혜총 스님을 비롯해 최광식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권양숙 여사,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 등 각계각층의 주요 내빈과 수만 명의 추모객이 한자리에 모여 스님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지관 스님은 10대 후반인 1947년 해인사에서 자운 대율사를 은사로 출가하여 사미계를 받았고, 1953년 비구계를 수지했다. 2004년에는 종단 최고 품계인 대종사 법계를 품수했다. 1959년 이후 10여 년 동안 해인총림에서 강주 및 주지 소임을 맡았으며, 1970년 이후 20여 년간 동국대학교에서 교수, 불교대학장, 총장 등을 역임했다. 스님은 《남북율장비교연구》 등 4권의 전구적인 계율 저서를 통해 율장 및 교단사 연구에 매진하여 현대 승단 운영의 확고한 이론적 토대를 마련해 왔다.

 

▲ 해인사에서 영결식을 하다     © 최영숙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 자승 스님은 영결사를 통해 "한가한 청복(淸福)을 마다하고 부처님께서 남겨 주신 삼장교해(三藏敎海)와 선조들이 남겨 놓으신 한국 불교 1천7백 년의 자료들을 작업장 삼아 촌음을 아끼셨으니, 그 결과물인 《가산불교대사림》과 《역대고승비문》을 비롯한 수많은 저서들은 큰스님께서 남기신 문자사리로 공경하겠습니다. '한 중생이라도 남아 있어 성불하지 못한다면 영원토록 정각도(正覺道)를 취하지 않으리라!' 하고 발원하셨으니, 이 사바로 돌아오시어 한 중생도 남김없이 제도하실 그날을 하루하루 손꼽아 기다릴 것입니다. 속히 환도중생하시어 지혜의 보장을 열어 주옵소서"라고 했다.

 

조계종 종정 법전 스님은 법어에서 "종사는 일찍이 우리 종문에 귀의하여 일념정진으로 삼장을 통달하고 일승의 현의를 터득하여 교학의 지평을 넓혀서 우리 종문을 빛낸 눈 밝은 종장이었습니다. 이제 자애스런 진용과 사자후를 어디서 뵙고 들어야 합니까? 종사는 임운자재(任運自在)하는 법계의 자유인으로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생멸이 없는 곳에서 해탈을 누리시니 얼마나 자유스러우며, 무생법인의 안락을 누리시니 얼마나 즐거우십니까"라고 했다.

 

중앙종회의장 보선 스님은 추도사에서 "가산지관 대종사의 걸음걸음은 문수의 행원이었고, 허공의 뼈 속을 뚫는 법등이었습니다. 사방천지에 그 누가 있어 천지를 놀라게 한 《가산불교대사림》 방광(放光)의 비밀을 다 알겠습니까. 그 빛은 가이가 없으며, 그 비밀은 삼세제불 또한 온전히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가산지관 대종사여, 생사가 없는 곳에서나 생사가 있는 곳에서나 조사의 정법으로 다시 만날 수 있기를 간곡히 기원합니다"라고 추모했다.

 

이명박 대통령도 조의문을 보내 지관 스님의 입적을 추도했다. 또한 한국 불교와 문화 발전에 기여한 고인의 공로를 기려 정부 최고 훈장인 금관문화훈장을 추서했다.

 

▲ 대만 불광산사 회주 성운 스님의 혜등서거(慧登西去; 지혜의 등이 꺼지다)만장이 앞장서다     ©최영숙
 

 

대만 불광산사 회주 성운 스님이 '혜등서거(慧燈西去; 지혜의 등이 꺼져 서쪽으로 가시다)'라고 쓴 만장이 행렬의 앞장을 서고, 고인을 추모하는 1,500여 개의 만장이 그 뒤를 묵묵히 따랐다.

 

▲ 지관스님 법구가 해인사에 마지막 인사를 드리다     ©최영숙

 

지관 스님의 법구가 평생 수행 정진했던 해인사의 일주문 앞에서 잠시 멈추어 서서 이승에서의 마지막 인사를 고했다.

▲ 지관스님 다비식을 하다     ©최영숙

 
2012년 1월 6일 오후 1시 30분, "큰스님, 불 들어갑니다"라는 승원 스님의 외침과 함께 연화대에 불이 당겨졌다. 지관 스님의 다비식을 지켜보던 스님들과 신도들은 "불·법·승(佛法僧)"을 외치며 스님의 극락왕생을 간절히 기원했다. 이곳 해인사 다비장에서는 앞서 조계종 종정을 지냈던 성철 스님과 혜암 스님의 다비식도 치러진 바 있다.

▲ 스님들 지켜보다     © 최영숙
 

 

대중 스님들이 숙연한 자세로 거대한 불길로 화한 지관 스님의 연화대를 가만히 지켜보았다.

 

▲ 신도들이 '아미타불'을 외우며 원을 돌며 극락왕생을 기원하다     © 최영숙

 
신도들은 지관 스님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며 '나무아미타불'을 나직하게 염송했고, 연화대 주위를 크게 원을 그리며 돌았다.

▲ 이귀례(76)불자 108번 이상을 돌면서 기도하다     © 최영숙
 

 

서울에서 내려왔다는 이귀례(76) 불자는 다비장 주변을 멈추지 않고 계속 둥글게 돌며 기도를 올렸다. 두 시간이 넘도록 원을 도는 모습을 보고 나중에 얼마나 도신 거냐고 조심스레 여쭈었다. 할머니는 "108번을 다 채우고도 계속 더 돌며 기도하고 있다"고 대답했다. 무엇을 그토록 간절히 기원하셨는지 묻자, "그저 우리 스님 좋은 곳으로 가시라고 빌고 있다. 이 세상 저 세상의 구별도 없는 참된 극락왕생을 누리시라고 기도한다"며 온 마음을 보냈다.
 

▲ 기도하는 불자들     ©최영숙


 다비장이 내려다보이는 산자락 위에서도 수많은 불자가 자리를 잡고 앉아 간절한 기도를 드렸다.

▲ 다비식장에 달이 뜨다     © 최영숙

 
가야산에 서서히 어둠이 짙어졌으나 다비식장의 불길은 밤하늘을 비추며 더욱 활활 타올랐다. 절기상 소한(小寒)이라 저녁이 되면서 날씨가 제법 쌀쌀해졌다. 그러나 다비장에서 내뿜는 열기가 워낙 강렬해 추위를 느낄 새가 없었다. 지관 스님이 마지막 순간까지 당신의 몸을 아낌없이 공양하여 남겨진 중생들을 따뜻하게 데워주고 계신다는 생각이 문득 스쳤다.

 

▲ 불꽃 일다     © 최영숙

 

다비장의 불꽃은 사바세계의 모든 번뇌를 태워버릴 듯 강인하게 춤을 추며 타올랐다. 과거 법정 스님에 이어 개인적으로 두 번째 마주하는 다비식 현장이었다. 마지막 가는 길에 저토록 장엄한 불꽃 속으로 자신을 온전히 태우고 떠난다는 사실에 가슴 깊이 수많은 생각이 교차했다.

 

전남 광양시에서 왔다는 한 여성 신도는 "삶의 마음을 비워내기 위해 다비장을 찾곤 한다"며 "타오르는 불꽃을 가만히 쳐다보고 있으면 신기하게도 모든 잡념이 사라지고 내 안의 무심(無心)의 세계로 들어가게 된다"고 소회를 밝혔다.

  

▲ 불꽃이 거의 사그러진 다비식장에서 예를 드리다     © 최영숙

 
이튿날 새벽, 동이 트기 전 다시 다비장으로 올라왔다. 밤새 맹렬하던 불꽃은 마침내 가라앉았고, 밤을 지샌 스님들과 신도들은 차분해진 공기 속에서 '나무아미타불'을 연이어 염송했다.

▲ 스님 지켜보시다     © 최영숙

 
다비장에서 밤을 지샌 시옥희(54) 씨를 만났다. 과거 한장상, 김경태 선수에 이어 한국인으로는 세 번째로 일본 오픈 골프 선수권에서 우승을 차지한 배상문(26) 선수의 어머니인 시 씨는 지관 스님과의 애틋한 인연을 다음과 같이 전했다. "생전에 종단 재단인 '아름다운 동행' 홍보대사 활동을 하면서 지관 스님을 가까이서 뵈었습니다. 스님이 이렇게 황망히 떠나시니 가슴이 너무나 아픕니다. 아들 상문이가 멀리 있어 직접 오지 못해, 제가 대신 밤을 새우며 이곳에서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스님께서 생전에 상문이를 심적으로 참 많이 응원해 주시고 도와주셨는데, 하늘에서도 큰 힘을 보태주실 것 같습니다."
 

▲ 스님들 지관 스님 사리를 찾다     © 최영숙

 
날이 밝자 스님들이 재를 헤치며 조심스럽게 지관 스님의 사리를 찾기 시작했다. 사소한 결정 하나라도 놓칠세라 온 신경을 집중해 정성을 다해 사리를 수습했다.

 

▲ 정성스럽게 수습하다     © 최영숙

 
수습하는 스님들의 손길 끝에서 고인을 향한 지극한 존경과 정성이 그대로 묻어났다.

 

▲ 지관 스님의 사리들을 모셔가다     ©최영숙

 
정성껏 수습된 지관 스님의 사리들을 담은 함을 상좌와 제자 스님들이 받쳐 들고 엄숙한 걸음으로 모셔갔다.
  

▲ 5대 포교원장 혜총 스님     ©최영숙
  

 

조계종 제5대 포교원장을 지낸 혜총 스님은 지관 스님의 생전 모습을 눈시울을 붉히며 회고했다. "지관 큰스님은 화려한 가사보다 늘 일반 스님들이 입는 소박하고 검은 승복을 즐겨 입으실 만큼 지독히 검소하셨습니다. 총무원장 소임을 보실 때도 개인 전용차를 마다하고 항상 일반 택시나 버스, 기차를 이용하셨지요. 학승으로서의 책임감 또한 어찌나 강하셨는지, 밤잠을 아켜가며 경전을 연구하는 일에 평생을 바치셨습니다."

 

▲     지관 스님에게 절하다© 최영숙

 

지관 스님은 입적하기 전, 친필로 사세(辭世)를 앞둔 심경을 담은 임종게(臨終偈)를 남겼다. 그 구절이 마당의 비석처럼 선명하게 가슴에 와닿았다.

 

'무상한 육신으로 연꽃을 사바에 피우고 / 허깨비 빈 몸으로 법신을 적멸에 드러내네 / 팔십 년 전에는 그가 바로 나이더니 / 팔십 년 후에는 내가 바로 그이로다'

 

▲ 스님들 극락왕생을 기원하다     © 최영숙

 

지관 스님은 과거 총무원장 퇴임 인터뷰에서 이런 말씀을 남기기도 했다. "차표를 사서 버스를 타고 가다가, 내가 내려야 할 정류장에서 차분히 내리는 것뿐입니다. 본래 오는 것도 없고 가는 것도 없지요. 시간이 흐르면 육신도 변하고 마음도 변하듯, 정류장에서 내리는 것에 대해 서운할 것도 흐뭇할 것도 전혀 없습니다."

 

기록을 하면서 스님의 임종게와 퇴임사 구절이 머릿속을 맴돌아 깊은 생각에 잠겼다. 정작 나는 내가 내려야 할 인생의 정류장이 어디인지도 모른 채, 그저 하루하루 머뭇거리며 헛되이 삶을 보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거인의 뒷모습이 남긴 가르침을 마음에 새기며, 지관 스님의 영원한 안식과 극락왕생을 두 손 모아 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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