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광복군, 시대의 스승 김준엽 선생을 보내며
-최영숙의 발길 따라 가는 풍경-
최영숙 | 입력 : 2011/06/14 [02:47]
2011년 6월 7일, 김준엽 전 고려대 총장이 고려대 안암병원에서 91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김준엽 전 총장은 1920년 8월 26일 평안북도 강계에서 태어났다. 일본 게이오대학 유학 중 1944년 2월 학도병으로 징집됐다가 장준하 선생과 함께 탈출, 광복군에 합류해 항일운동을 벌였다.
광복 이후 중국사 연구에 매진한 고인은 고려대 사학과 교수로 중국 근대사를 가르쳤으며, 1982년부터 1985년까지 고려대 총장을 지냈다. 총장 재직 당시 민주화 운동에 참여한 학생들의 처벌을 요구하는 정권의 압력에 굴하지 않고 학생들을 보호하다가 결국 총장직에서 물러났다. 이로 인해 학생들이 한 달 이상 총장 사퇴를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1988년 노태우 정부 당시 국무총리직을 제안받았으나, "국정자문회의 의장을 맡게 될 전두환 전 대통령에게 고개를 숙일 수 없다. 민주주의를 외치다 투옥된 제자들이 많은데 그 정부의 총리가 될 수 없다"며 거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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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은 9일 빈소를 찾아 고(故) 김준엽 전 총장에게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추서하고 유족을 위로했다. 조의록에는 '늘 기억하겠습니다. 이명박'이라고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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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학규 민주당 대표 또한 조의록에 이름을 남겼다. 손 대표는 빈소에서 "고결하고 깨끗하게 산 선비이자 지사로, 애국애족 정신을 후손에게 물려주고 가신 민족의 스승"이라며 "이분의 삶 자체가 우리 민족의 소중한 자산"이라고 기렸다. 항일 투쟁과 군사 독재에 맞서 올곧게 정도를 걸어온 김준엽 전 총장의 빈소에는 김신 백범 김구기념사업회장, 고 장준하 선생의 장남 장호권 사상계 대표이사, 안희정 충남도지사, 박유철 광복회 회장,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 이기택 4·19혁명공로자회 회장 등 정·관계 및 학계 주요 인사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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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6월 10일 오전 8시, 고려대학교 안암병원 영결식장에서 고 김준엽 선생의 영결식이 거행되었다. 이기택 4·19혁명공로자회 회장은 추모사를 통해 "선생님은 살아 계시는 것만으로도 나라의 기둥이셨고 우리의 힘이자 자랑이었다"며 "선생님이 걸어온 애국과 정의의 길을 잊지 않고 따르겠다"고 다짐했다. 또한 "제가 현직에 있을 때에는 만나주지 않으셨던 분이, 모든 것을 내려놓았을 때 비로소 맞아주시고 이야기를 들어주셨다"고 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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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배 이사장은 "선생님은 관직을 맡아달라는 부탁을 끊임없이 받고도 사양하며 학문의 세계를 지켰다"며 "선생님의 간절한 소망이었던 조국 통일은 후학들의 몫이니 걱정하지 마시고 부디 영면하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 이사장은 조사를 읽는 도중 목이 메어 잠시 말을 잇지 못하기도 했다.
헌화 시간이 되었다. 미망인 민영주 선생이 헌화했다. 고 김준엽 선생의 가계는 현대사에서도 매우 돋보인다. 백범 김구 선생의 비서실장이었던 민필호 선생의 딸 민영주 선생과 김준엽 선생을 연결해 준 이는 바로 장준하 선생이었다. 두 사람은 중국 시안의 광복군 주둔지에서 이범석 장군과 장준하 선생이 지켜보는 가운데 결혼식을 올렸다. 김준엽 선생이 평생 대쪽 같은 절개와 정의를 지킨 진정한 자유인으로 살 수 있었던 것은, 남편 못지않은 강단으로 힘을 실어준 부인이 있었기에 가능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장례는 고인의 유지에 따라 가족장으로 간소하게 치러졌다. 마지막 가는 길까지 자신의 길을 올곧게 가셨고, 가족들 또한 그 뜻을 끝까지 받들었다. 독립군 가문의 서늘한 기개가 느껴지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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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김준엽 선생의 영정을 모시고 고려대 아세아연구소를 거쳐 교정에서 작별 인사를 고한 뒤, 성북동의 사회과학원으로 향했다.
생전에 머물던 명륜동 자택을 들렀다. 평소 앉아 계시던 곳에서 여전히 정원을 바라보고 계신 듯한 느낌을 주었다.
운구 행렬이 대전 현충원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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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배 고려중앙학원 이사장은 추모사를 통해 "존경하고 자랑스러운 선생님! 지금 나라 안팎에서는 선생님을 겨레의 스승이자 마지막 광복군 항일 투사로 명명하고 있습니다. 일관된 애국애족의 생활 철학을 높이 찬양하며 나라의 큰 별이 떨어진 슬픔을 추모하고 있습니다"라며 "평생 조국을 사랑하신 큰 뜻을 우리 후손들이 받들어 나라의 번영에 기여토록 하겠습니다. 부디 편안하게 잠드소서"라고 애도했다.
추모객 김교문(79) 씨는 "담백한 분이셨다. 고리타분한 학자풍이 아니라 약주 한 잔에 담배를 피우시면 멋진 풍류객과 같았다"고 회고했다. 박우동(67) 씨는 "김준엽 선생은 '연인'이라고 표현했던 장준하 선생의 일을 가장 안타까워하셨다"며 "선생님은 영원한 자유인이자 정의를 따르고 정도를 걷는 강한 분이셨다"고 전했다. 그는 선생님의 가르침 덕분에 62세에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을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조카 김영규(64) 씨는 "가족보다 조국을 위해 사셨던 분"이라며 "가난을 물려받을 수밖에 없는 애국지사 가문의 처지를 안타까워하시며 혜택을 가족들에게 줘야한다고 하셨다"고 했다.
| ▲ 고 김준엽 전 고려대 총장의 저서와 함께 영면하다 © 최영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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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김준엽 선생은 저서 <회고록 장정>, <나와 중국>, <중국 최근세사>등이 무덤에 함께 묻혔다.
마지막 가는 길을 기록하며 많은 생각이 교차했다. 별세 소식을 전하는 각 신문의 제목들을 살펴보았다.
[한겨레]: "'영원한 광복군' 김준엽 전 고려대 총장 별세"
[한국일보]: "김준엽 전 총장, 독립투사로 꼿꼿한 학자로 평생 한길"
[조선일보]: "'꼿꼿한 지성, 영원한 광복군' 김준엽 전 고려대 총장 별세"
[경향신문]: "'별은 지지 않고, 밤에 더 반짝인다' 김준엽 넋 기려"
[동아일보]: "'시대의 스승' 김준엽 전 고대 총장 별세"
광복군으로 또 학자로서 절개를 지킨 故 김준엽 선생이 올곧게 정도를 걸어온 91년의 세월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했다.
"사회장으로 치러야 한다"는 주변의 권유에도 유족들은 가족장으로 치르겠다는 고인의 유지를 정중히 지켰다. 명문 독립군 가문의 서늘한 절제미가 돋보였다. 박우동 씨는 고인이 평소 "가장 검소하게 하라. 교수나 학생들에게 피해 주지 말고 사람들을 번거롭게 하지 마라"고 당부했다고 전했다. 마지막까지 꼿꼿한 선비의 기상으로 떠나신 것이다.
'영원한 광복군', '학병 탈출 1호', '독재 정권에 맞서 학생을 지키다 명예롭게 물러난 총장', '시대의 지성'. 고인을 표현하는 수식어는 다양했지만 모두가 그가 걸어온 정도를 존경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가 60세가 넘은 제자에게도 만날 때마다 하셨다는 "열심히 공부하고, 배우고 느낀 것들을 책으로 써라"라는 말씀이 귓가에 쟁쟁하다. 그는 진정한 민족의 스승이자 이 시대의 큰 별이었다. 돌아오는 길, 고 김준엽 선생의 영원한 안식을 간절히 기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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