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함 46용사 안장식 기록

천안함 46용사 합동 분향소와 안장식을 다녀오다

최영숙 | 기사입력 2010/05/01 [04:16]

천안함 46용사 안장식 기록

천안함 46용사 합동 분향소와 안장식을 다녀오다

최영숙 | 입력 : 2010/05/01 [04:16]
▲ 자식을 보내는 어머니의 절규     © 최영숙

    

2010년 4월 29일 오후 3시, 천안함 46용사의 안장식이 국립대전현충원 308묘역에서 거행되었다. 나는 4월 27일부터 29일까지 사흘간, 용사들의 마지막 가는 길을 가슴에 담았다.

▲ 평택 2함대 조문행렬     © 최영숙
 
 

 

봄비가 마치 가을비처럼 추적추적 내렸다. 평택 2함대 사령부에 마련된 합동분향소 체육관 앞에는 46위의 영정과 위패가 모셔져 있었다. 현수막의 “故 천안함 46용사, 대한민국은 당신들을 영원히 잊지 않을 것입니다.”라는 문구 아래로 조문 행렬이 끝없이 이어졌다.

 

▲ 이창기 원사의 외아들 이산을 위로하는 선생님과 학생들     © 최영숙


미귀환자 이창기 원사의 외아들 이산(14) 군을 위로하기 위해 도곡중학교 친구들과 선생님이 분향소를 찾았다.

 

▲ 이산에게 힘내라는 글을 남기는 친구들     © 최영숙


친구들은 “산이야, 울지 말고 힘내!”, “너의 아버지도 네가 훌륭하게 자라는 모습을 지켜봐 주실 거야.”라며 고사리손으로 적은 쪽지를 남겨 보는 이의 마음을 울렸다.

▲ 정범구 엄마의 글     © 최영숙

 

아들 정범구를 떠나보내는 어머니의 편지 앞에서는 차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아들아, 네가 없다는 게 미치겠다. 심장이 떨린다. 네 모습을 보면 온몸이 저려서 아무 생각을 할 수 없구나. 부디 잘 가라. 엄마가 편히 보내줄게!” 장대 같은 아들을 졸지에 잃은 어미의 단장(斷腸)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 아빠의 영정 앞에서 노는 아이들     © 최영숙


아빠의 죽음을 실감하지 못하는 어린 자녀들이 국화꽃을 든 채 영정 앞에서 천진하게 노는 모습은 잔인하리만큼 슬펐다.

 

▲ 해군 병사들 조문 오다     © 최영숙


함께 근무했던 장병들이 세상을 떠난 동료를 조문하러 온 듯했다. 어머니는 마치 자식을 대하듯 병사들의 손을 꼭 잡은 채 한동안 놓을 줄 몰랐다.

▲ 조문하는 사람들     © 최영숙


학위증과 명예졸업장 등이 영정 앞에 놓여 있었다. 그들이 이 지상에서 못다 꿈꾸었던 세상은 이제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환하게 웃고 있는 영정 사진을 바라보고 있으니 말로 다 못 할 쓸쓸함이 밀려왔다.

 

▲ 평택 2함대 달 뜨다     © 최영숙


2010년 4월 27일 평택 2함대에 어둠이 찾아왔다. 밖으로 나오니 날이 개었다. 언제 비가 왔었냐는 듯 달이 떴다. 그러나 이 달을 동료들과 보았던 46명의 평택 2함대 소속 장병들은 이제 없었다.

▲ 서울 시청 분향소     © 최영숙


2010년 4월 28일 비가 내렸다. 서울시청 광장의 합동분향소를 찾았다. 쌀쌀한 기온에도 많은 참배객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 연예인 차승원, 빅뱅 멤버 오다     © 최영숙


포항제철 사장을 지냈던 박태준 사장, 군인, 예비역 장성, 배우 차승원, 빅뱅 멤버 등 다양한 사람들이 다녀갔다.

 

▲ 어린이     © 최영숙


어린이들의 모습도 보였다. 

▲ 시청 분향소     © 최영숙


올봄은 날씨까지 궂었다. 사람들은 오랫동안 기다리며 조문을 했다. 

 

▲ 시청앞 천안함 사진전을 하다     © 최영숙


이곳에서는 천안함 사진전도 함께 열리고 있었다. 

▲ 장철희(19) 천안함 막내의 사진     © 최영숙


천안함의 막내 장철희 이병(19)은 해군에 입대한 지 70여 일, 천안함에 승선한 지 8일 만에 세상을 떠났다. 편지들에는 “비 오는 날, 빗방울이 떨어지는 날 천안함의 아들들을 기억합니다. 필승! 고이 잠드소서.”, “오호, 통재라! 젊은 그대들이여.”, "철희야 미안해. 고등학교 생활을 함께했는데 안타깝구나. 해줄 수 있는 게 없어서 미안하다. 네가 하고 싶었던 기관사의 꿈을 못 이룬 게 슬프다." 등 많은 사연과 글이 적혀 있었다.

2010년 4월 29일 안장식이 있는 대전 현충원으로 갔다. 

▲ 한주호 준위의 묘     © 최영숙


308구역 건너에 한주호 준위의 묘가 있었다. 옛 동료와 동생이 비석을 어루만지고 있었다.
 

▲ 46기의 빈 무덤     ©최영숙

 

308구역에는 천안함 46용사의 구역이 따로 있었다. “이곳은 2010. 3. 26. 서해안 임무수행 중 희생된 천안함 46용사가 잠들어 있는 곳입니다.”라는 검은 돌 기념석이 있었다. 
 

▲ 빈무덤을 보다     © 최영숙


46기의 빈무덤이 미리 준비되어 있었다. 꽃다운 청춘장병들이, 어린 자녀들을 두고 세상을 떠난 46용사들이 영원한 안식을 가질 곳이 이곳이었다. 가슴이 서늘해졌다. 

▲ 이창기 원사 영정과 유골함이 들어서다     ©최영숙


이창기 원사의 영정과 유골함이 처음으로 308묘역으로 들어섰다.

▲ 어머니의 눈물     © 최영숙

 
308묘역은 커다란 슬픔에 빠져들었다. 어머니는 자식의 영정을 쓰다듬고 쓰다듬으며 단장이 끊어지게 자식을 불렀다. 불러도 대답 없는 자식은 영정 속에 갇힌 듯했다.  자식 잃은 어미들은 떠나는 마지막 길에 목놓아 울었다. 

▲ 자식 무덤에 옷을 덮어주다     © 최영숙


“내 새끼! 추운 바다에서 얼마나 추웠냐.”며 어미는 옷을 벗어 무덤을 덮었다.

▲ 어머니의 눈물을 바라보는 어린 아들     © 최영숙


남편을 먼저 떠나 보낸 아내는 통곡하고  있었다. 어린 아들은 어머니를 어떻게 위로 할지 몰라  태극기만 들고 그저 바라만 볼 뿐이었다.

▲ 김동진을 기다리다     © 최영숙


46명의 안장식이 한꺼번에 치뤄지기에 관리인들은 유가족들의 안내를 돕기 위해 팻말을 들고 기다렸다.
 

▲ 김동진 영정사진을 들고 들어오다     © 최영숙


김동진의 영정과 유골함이 들어왔다. 어미의 통곡이 이어졌다. “동진아! 이 우찌 아까운 거 우찌 보낸다냐, 일찍 갈 거면 속이라도 썩이지. 어찌 이리 착했노. 에미는 어찌 살라꼬”하면서 통곡을 했다.
 

▲ 흙 뿌리다     © 최영숙


자식을 키우는 사람은 자식이 어떤 존재인지를 안다. 그 어미의 마음을 알기에 사진을 담으면서도 눈가가 젖었다. 
 

▲ 지켜보는 이의 눈물     © 최영숙


홍성에서 온 이정석(66) 씨는 “너무 마음이 아프고 딱해서 왔다. 자식을 군대 보내본 사람이라서 저 부모들의 심정을 안다. 이제 자식을 이곳에 묻고 군복을 입은 군인들을 보면 다 자식으로 보이고 남편으로 또 아빠로  보일 텐데 그 세월들을 어찌 살꼬.”하면서 눈시울을 적셨다.
 

▲ 고 임재영의 영정을 들고 들어오다     © 최영숙


천안함에서 살아남은 동료의 슬픔도 컸다. 천안함에서 생존한 동료가 고 임재영 영정을 들고 안장식에 들어왔다.

▲ 동료의 눈물     © 최영숙



2010년 3월 26일 승조원 104명 중에서 46명의 사망자와 58명의 생존자로 생사가 갈렸다. 함께 선상에서 생활했던 친구들의 무덤을 보던 생존 장병이 친구의 비석을 안으며 소리 없는 울음을 쏟아냈다.


▲ 46기의 무덤들이 생기다     © 최영숙


46기의 무덤이 생겼다. 온갖 가슴 아픈 사연을 간직한 무덤은 고요했다.
 

▲ 서울에서 48개의 초콜릿을 가져온 여인     ©최영숙


서울에서 왔다는 한 여인이 초콜릿 48개를 뜯었다.  2개는 한주호 준위의 무덤에 놓았다고 했다. 이 젊은이들이 추운데서 돌아가서 초콜릿을 먹고 뜨거운 기운을 느끼라고 가져왔다고 했다. 초콜릿은 “사랑합니다.”라는 표시라고 했다.

▲ 무덤에 초콜릿이 놓여지다     © 최영숙


46 용사의 무덤 옆에 초콜릿이 하나씩 놓여졌다. 
 

▲ 우는 어린이     ©최영숙


어린 자녀를 남겨두고 떠난 천안함의 아빠들,
 

▲ 유족들이 떠난 자리를 못 떠나고 있던 여인     © 최영숙


여인에게 복받치는 슬픔을 안기고 떠난 연인들, 

유족들이 떠나고 젊은 여인만이 남았다. 그녀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영영 움직일 줄을 몰랐다.
 

▲ 친구를 잃은 장병의 눈물     © 최영숙


친구의 무덤을 찾은 장병은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 어머니의 눈물     © 최영숙





 
 
 
 
 
 
 
 
 
 
 
아들의 영정을 쓰다듬고 쓰다듬던 어머니의 손길을 멀리 두고 다시는 올 수 없는 곳으로 46명의 장병들은 떠났다.

▲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젊은 장병들     © 최영숙

 

우리는 이 젊은 장병들이 한순간 목숨을 잃게 한 명확한 이유를 아직 밝혀내지 못했다. 각자의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했던 가장 빛나던 시절의 그 장병들은 떠났다. 든든한 집안의 가장이었던 그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았던 자식들, 사랑을 키워가던 연인들이었던 그들이 왜 죽는지도 모르고 죽었다면 이는 영령들에게 차마 못 할 일이다. 최고의 예우로 장례를 치렀다고 해서 그들에게 위로가 될 수는 없다. 그들은 이미 그 바다에서 모든 것을 잃었기 때문이다.

 

정확한 답을 이들의 무덤 앞에 알려줘야 할 의무가 살아남은 자들에게 남겨진 몫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야 차가운 바다에 가족들의 통곡을 함께 묻었던 그분들에게 조금이나마 위로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정확한 원인을 알아야 다시는 이런 비극이 일어나지 않도록 준비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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