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5월 23일 오후 2시, 봉하마을에서 노무현대통령 2주기 추모식이 열렸다.
| ▲ 봉하마을 입구 빗속을 걸어가는 사람들 © 최영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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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비가 내렸다. 사람들은 셔틀버스를 이용하거나 걸어서 봉하마을로 들어갔다.
비가 내리는 가운데 참배객들은 기념식장으로 총총히 발걸음을 재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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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족들이 기념식장으로 가기 위해 자택을 나섰다. 참배객들이 권양숙 여사를 향해 인사를 건넸다.
기념식장은 노란 물결이었다. 5,000여 명의 참석자가 모여 노무현 대통령을 추모했다.
노무현 재단 상임운영위원인 문성근 씨의 사회로 식이 시작됐다.
추도식에는 권양숙 여사와 노건호 씨 등 유족과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 민주당 손학규 대표, 민주노동당 이정희 대표, 진보신당 조승수 대표, 국민참여당 유시민 대표 등 각 당 대표와 박지원 의원 등 야당 의원들이 참석했다. 또한 송기인 신부와 강금원 노무현재단 이사, 이해찬·한명숙 전 총리, 김우식·이병완 전 비서실장, 안희정 충남도지사, 이광재 전 강원도지사, 김두관 경남도지사, 정연주 전 KBS 사장 등 참여정부 및 친노 인사들도 대거 참석했다.
한나라당에서는 당 대표 대신 김해가 지역구인 김정권·김태호 의원이 참석했고, 정부에서는 김덕룡 대통령실 국민통합특보가 참석했다.
참석자들은 부엉이바위 아래 숲속에서 기념식을 지켜보았다.
| ▲ 2주기 추모식이 거행되는 동안 눈물을 닦는 노무현대통령의 아들 노건호씨 ©최영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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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족들이 추모식을 지켜보았다. 노무현대통령의 아들 노건호씨가 눈물을 닦았다.
노건호 씨는 유족을 대표해 "바쁜 시간을 쪼개 다양하고 창의적으로, 각각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자발적으로 추모의 염(念)을 표현해 주신 분들을 보았다"며, "이분들이 앞으로 우리나라를 더 좋게 만들겠다는 확신이 절로 생겼다"고 인사말을 전했다.
이어 "공연을 기획하고 진행해 주신 분들, 모바일 폰을 위한 앱을 만들고 무료로 배포해 주신 분들, 다양한 소모임을 꾸리고 온라인으로 추모의 글을 올려주신 분들의 다양성과 창의적인 방식에 놀랐다"며, "아버님께서도 하늘에서 많은 분을 지켜보시며 흐뭇해하고 계실 것 같다. 먼 길을 무릅쓰고 봉하까지 오셨던 분들, 이 자리에서 추모식을 지켜주시는 모든 분에게 감사드린다"고 고마움을 전했다.
새로운 희망과 다짐을 상징하는 2011마리의 나비를 날려 보냈다.
'임을 위한 행진곡'을 끝으로 기념식이 모두 마무리되었다.
기념식이 끝나고 유족과 참석자들이 묘역으로 이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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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하는 노란 물결을 이루었다.
유족들이 먼저 헌화했다.
고 노무현대통령이 잠든 너럭바위 앞에서 유족들이 마지막 인사를 했다.
| ▲ 민주당 인사들 너럭바위 앞에 서다 © 최영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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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인사들의 참배가 이어졌다.
일반 참석자들의 참배가 이어졌다.
비가 오는 궂은 날씨에도 많은 사람이 참석했다. 참배객의 줄은 끝없이 이어졌고, 한 줄로 시작된 행렬은 두 줄로 늘어났다.
"당신은 내 마음속 신앙입니다", "목 놓아 울었습니다, 지금도 웁니다", "그때 우린 행복했습니다", "깨어 있는 시민으로, 원칙을 지키는 시민으로 살겠습니다" 등의 글귀가 박석에 새겨져 있었다.
정토원에서 묘역을 내려다보았다. 참배하는 사람들의 행렬이 한눈에 들어왔다.
사자바위에 오르니 노무현 대통령의 생가와 사저, 마을, 묘역이 모두 보였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전 생애가 이곳에 응축되어 있었다.
정토원에는 권양숙 여사의 이름이 적힌 등이 걸려 있었다.
| ▲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의 영정이 모셔지다 © 최영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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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화산 정토원 수광전에는 김대중, 노무현 두 대통령의 영정이 모셔져 있다. 한 참배객이 정성스레 절을 올렸다.
생가 방 안에는 결혼사진과 가족사진, 간소한 가구들이 놓여 있었다. 문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푸르름 그 자체였다. |
추모의 집에는 '대지의 아들'이라는 이름의 흉상이 있었다. 사람의 눈높이에 맞춰 제작되어 더욱 친근하게 느껴졌다. |
| ▲ 1주년 추모식 리본으로 만들어진 얼굴과 촛불 ©최영숙 |
지난 1주기 때 참배객들이 남긴 노란 리본으로 노무현 대통령의 얼굴 형상을 만들고, 그 아래 영면을 기원하는 촛불을 밝혔다. |
| ▲ 환하게 웃고 있는 리본으로 만든 노무현 대통령의 얼굴 ©최영숙 |
작품을 보며 만드는 이들이 들였을 깊은 정성이 전해졌다. |
노무현 대통령이 생전에 가장 좋아했던 시가 도종환 시인의 '담쟁이' 였다고 한다. 추모관 밖에는 담쟁이 시와 담쟁이에 여러 사람들의 글들이 함께 붙어 있었다.
담쟁이
-도종환-
저것은 벽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그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물 한 방울 없고 씨앗 한 톨 살아남을 수 없는
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한 뼘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간다
푸르게 절망을 다 덮을 때까지
바로 그 절망을 잡고 놓지 않는다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담쟁이 잎 하나는 담쟁이 잎 수천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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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합니다. 보고 싶습니다", "대통령 할아버지 고이 잠드세요", "사랑이 묻어나는 당신이 그립습니다. 영원히 잊지 않겠습니다", "노무현! 당신의 주름진 얼굴이 보고 싶습니다" 등의 글이 적혀 있었다.
2주기 추모식을 다녀오며 많은 생각이 교차했다. 추모 사업이 기관 중심이 아니라 노사모를 비롯해 대통령을 사랑하는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이 인상 깊었다. 이러한 자발성은 모두를 하나로 묶어주고 있었다.
자원봉사자들이 나비를 날리고, 방문객들은 리본에 글을 남기고 박석을 새겼다. 리본 하나하나가 모여 하나의 예술 작품이 된 것처럼, 추모에 참여한 모든 이가 함께 역사를 기록하고 있었다. 서로에게서 동력을 얻는 '인간 친화적'인 연대가 느껴졌다.
사람들은 비가 오고 먼 길을 걸어야 하는 불편함 속에서도 미소를 잃지 않았다. 자원봉사자들은 작은 쓰레기 하나까지 바로바로 치우며 현장을 관리했다. 보이지 않는 거대한 힘이 느껴지는 추모식이었다.
슬픔 속에서도 함께 추억하고 기록하는 사람들의 표정은 평온해 보였다. 봉하마을에서는 남녀노소 세대를 아우르는 기록의 역사가 지금도 만들어지고 있었다. 돌아오는 길, 노무현 대통령의 영원한 안식을 다시 한번 기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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