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의 소리, 씻김굿으로 떠나보낸 김대례 명인의 마지막 길

-진도씻김굿 중요무형문화제 72호 김대례 명인을 기리는 씻김굿이 열렸다-

최영숙 | 기사입력 2011/03/29 [01:04]

남도의 소리, 씻김굿으로 떠나보낸 김대례 명인의 마지막 길

-진도씻김굿 중요무형문화제 72호 김대례 명인을 기리는 씻김굿이 열렸다-

최영숙 | 입력 : 2011/03/29 [01:04]
▲ 손님굿을 하다     ©최영숙

 

2011년 3월 24일 밤 8시, 전남 진도군 진도산림조합에서는 전날 별세한 진도씻김굿(중요무형문화재 제72호) 명예 보유자 김대례 명인을 기리는 씻김굿이 열렸다.
 

▲ 다시래기를 하다     ©최영숙

 

굿은 곽머리씻김굿으로 진행되었으며, 그 시작은 '다시래기'가 알렸다.
  

▲ '다시래기'를 하다. 새 생명이 탄생하다.     ©최영숙


  '다시래기'는 출상 전날 밤샘을 하며 노는 익살스러운 놀이로, "다시 나다" 즉 재생(再生)을 의미한다. 한자로는 '다시락(多侍樂)'이라 표기해 여러 사람이 함께 즐긴다는 뜻으로도 해석된다. 심 봉사와 뺑덕어멈, 초랭이, 땡중이 엉겨 한바탕 노니는 이 놀이는 죽음을 끝이 아닌 새로운 탄생으로 보는 윤회 사상을 담고 있다.

 

▲ 굿을 하는 것을 고하는 안땅     ©최영숙

   

여러 조상에게 오늘 김대례(76) 명인의 굿을 올린다고 고하는 '안땅 굿'이 이어졌다.
  

▲ 상주, 어머니를 보다     ©최영숙

 

상주는 조용히 어머니의 마지막 길을 지켜보았다.
 

▲ 박미옥 초가망석을 하다     ©최영숙

 

▲ 박미옥 굿하다     ©최영숙

  

고(故) 박병천 명인의 딸이자 김대례 명인의 육촌 조카인 박미옥(50) 씨의 초가망석과 처올림 굿은 대단히 힘차고 강렬했다. 대대로 이어져 온 세습무 집안의 저력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 손님굿을 하다     ©최영숙


  씻김굿 전수조교 송순단 무녀가 손님굿을 집전했다.
  

▲ 제석거리를 하다     ©최영숙 


 본래 곽머리씻김굿에서는 제석거리를 하지 않으나, 고인이 10년 넘는 긴 병석 끝에 돌아가셨기에 평안히 가시라는 의미로 특별히 제석거리를 올렸다.
  

▲ 제석거리를 하다     ©최영숙


  박미옥, 강은영, 공민선, 이숙영 씨 등이 참여한 제석거리는 더없이 경쾌하고 흥겨웠다.

 

▲ 손님굿을 하다     ©최영숙

 

손님굿을 했다.

 

▲ 닭죽을 먹다     ©최영숙

 

굿판의 중간, 사람들은 닭죽을 나누어 먹으며 기력을 보충했다.

 

▲ 제석거리를 하는 박미옥(50)과 굿판 참석자     ©최영숙


   굿이 무르익자 구경하던 마을 사람들이 하나둘 굿판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 마을주민 한거심(81)어르신 안주머니에서 돈을 꺼내다     ©최영숙


고인과 평생을 함께해 온 마을 주민 한거심(81) 어르신이 몸배 안주머니에서 주섬주섬 돈을 꺼냈다. 그중 가장 큰 돈인 만 원권을 무녀에게 척하니 건네는 모습이 뭉클했다.
 

▲ 마을주민 한거심(81)어르신 걸판지게 놀다     ©최영숙

 

이어 어르신은 덩실덩실 춤을 추기 시작했다. 가장 기쁜 듯하면서도 깊은 슬픔이 배어 나오는, 말로 형언할 수 없는 남도의 정이 우러난 춤이었다. 이를 본 구경꾼들도 너나 할 것 없이 망자의 바지춤에 노자 보태듯 돈을 끼워주며 함께 어우러졌다.

 

▲ 굿판에 참석한 이들 창을 하다     ©최영숙

 

굿판에서는 '소리 부조'도 이어졌다. 윤진철 씨는 "김대례 선생님과는 소리로 맺은 오랜 인연입니다. 선생님을 위해서 온 마음을 다해 소리하겠습니다"라며 심청가를 절창했다.
 

▲김광복 교수 피리를 올리다     ©최영숙


  광주에서 온 김광복 교수는 애절한 피리 가락을 영전에 바치며 고인의 넋을 위로했다.

 

▲ 흥겨운 참석자들     ©최영숙

 

구경꾼과 굿판이 경계 없이 섞여 노는 진도의 제석굿은 참으로 흥겨웠다. 망자 또한 이 자리를 흐뭇하게 지켜보고 계실 것만 같았다.

 

▲ 송순단 고풀이를 하다     ©최영숙

 

이승에서 풀지 못한 한과 원망을 상징하는 '고'를 하나하나 풀어내는 대목굿, 고풀이가 시작되었다.

 

▲ 굽이굽이 진 매듭을 보다     ©최영숙

 

굽이굽이 매듭진 고를 보며, 사는 일이란 고를 묶는 일인가 아니면 푸는 일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진도 씻김굿은 마치 한마당 인생극을 보는 듯한 깊은 몰입감을 주었다.
 

▲ 고풀이를 하다     ©최영숙


  씻김굿 전수조교 송순단 무녀가 고풀이를 했다.
 

▲ 고풀이를 하다     ©시흥시민뉴스

 

▲ 매듭을 모두 풀다     ©최영숙


송순단 무녀는 망자가 살아온 나이만큼 묶인 매듭들을 정성껏 풀어나갔다. 세상 떠나기 전 맺힌 모든 매듭을 훌훌 털고 가라는 염원이 담겨 있었다.
 

▲ 씻김굿을 하다     ©최영숙

 

▲ 씻김굿을 하다     ©최영숙


쑥물, 향물, 청계수를 차례로 빗자루에 묻혀 쓸어내는 '이슬 털기', 즉 씻김굿이 시작되었다. 깨끗이 씻겨 극락왕생하기를 바라는 무녀의 손길이 그 어느 때보다 정성스러웠다.

 

▲ 상주 한명욱(46)에게 넋올리기를 하다     ©최영숙

 

상주 한명욱(46) 씨의 머리에 넋을 올려 한이 풀렸는지 살피는 '넋 올리기'가 이어졌다. 7년간 병수발을 든 아들은 공손히 어머니와 마지막 인사를 나누었고, 망자 또한 아들을 다독이며 세상 걱정을 내려놓는 듯했다.

 

▲ 희설을 하다     ©최영숙


   무녀 송순단은 세워놓았던 '영돈'을 풀고  저승의 육갑을 풀어주는 희설을 이어갔다.
  

▲ 씻김굿을 하다     ©최영숙

  

길닦음으로 떠나기 전  망자의 옷을 가지런히 모았다.
  

▲ 마을 주민과 어울리다     ©시흥시민뉴스

  

망자가 영영 떠나기 전, 굿판의 사람들은 다시 한번 다 같이 모여 마지막 춤을 추었다.

 

▲ 고별인사를 하다     ©최영숙

 

 망자는 굿판에 모인 모든 이에게 깊은 감사의 하직 인사를 올렸다.
  

▲ 길닦음     ©최영숙

 

길닦음은 이승에서의 모든 원한을 풀어 주었기에 극락으로 가는 길을 깨끗이 닦아 주는 대목이다. 질베(무영베) 삼삼척을 큰방 문에서부터 대문쪽으로 펼쳐놓고 하직행기(넋을 넣은 놋주발)로 길을 닦듯이 문지르면서 하직하는 것이다.
 

▲ 길닦음     ©최영숙

  

이제 정말 이별이라는 실감이 나자 유족과 참석자들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 길닦음     ©최영숙

  

떠나는 걸음마다 사람들이 정성껏 놓은 노자 돈이 쌓였다.
  

▲ 손에 손을 잡고 길닦음을 하다     ©최영숙


 참석한 모든 이가 질베를 잡고 마음을 모아 고 김대례 명인이 가는 길을 열어주었다.
 

▲ 길닦음     ©최영숙


 망자를 담은 놋그릇과 망자가 입었던 옷이 천천히 떠나갔다.
 

▲ '반야옹성'을 타고 떠나다      ©최영숙


'반야용선'의 배를 타고 저 멀리 떠나갔다.

 

▲ 길닦음 무녀     ©최영숙

 

▲ 길닦음 했던 광목천을 접다     ©최영숙

  

길닦음을 하는 무녀들의 손길에서 스승을 보내는 애절함이 묻어났다. 보는 이들의 마음을 울리는 깊은 정성이었다.

 

▲ 길닦음을 하다     ©최영숙


   진도씻김굿 (중요무형문화재 72호) 김대례 명인의 씻김굿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 종천을 하기 위해 밖으로 나서다     ©최영숙


굿의 마지막 순서인 종천(태워 보내는 의식)을 위해 무녀가 태울 물건들을 들고 대문 밖 길가로 나섰다.
  

▲ 망자를 떠나보내는 무녀의 슬픔     ©최영숙


 망자를 떠나보내는 무녀는 가시는 길 편안히 가시라고 정성껏 종천을 했다.
  

▲ 종천     ©최영숙


  불꽃이 피어올랐다. 밤 8시에 시작된 굿은 새벽 2시가 넘어서야 끝이 났다. 시간이 어떻게 흘렀는지 모를 만큼 몰입했던 6시간이었다.
  

▲ 마을주민 한거심(81)과 박미옥     ©최영숙


진도의 씻김굿은 마지막 순간을 슬픔으로만 가두지 않았다. 웃고 울며 즐겁게 보내드리는 이 의식을 통해, 우리는 김대례 명인을 기억할 때마다 슬픔보다는 입가에 묻어나는 옅은 미소로 그를 떠올리게 될 것이다.

▲ 박미옥 굿하다     ©최영숙

 

박미옥(50) 씨는 인터뷰 도중 “웃고 있지만 속으로는 울고 있다. ‘잘 가라, 잘 가라’ 인사를 건네는데 마음을 다잡느라 혼이 났다. 고모님이 생전에 고생을 너무 많이 하셨기에 가시는 길만큼은 즐겁게 가셨으면 한다”라고 심경을 밝혔다.

 

그녀는 고모인 김대례 명인이 가끔 전화를 걸어 “술 한잔하게 오너라”라며 상다리가 부러질 듯 음식을 차려주시고, 특히 고기를 꼭 챙겨 먹이셨던 다정한 모습을 회상했다. 또한 고인이 생전에 “후배를 많이 키우지 못한 게 후회된다. 무엇이든 배워야 남는 것이다”라고 입버릇처럼 말해왔음을 전했다.

 

박 씨는 고모가 풍으로 쓰러져 10년 동안 투병하며 고생한 것을 생각하면 가슴이 너무 아프다고 했다. 특히 “우리 같은 사람은 집에만 있으면 답답해서 죽는다. 우리는 밖으로 돌아다니며 신명 나게 소리를 해야 하는 사람인데, 목소리를 제대로 내지 못하니 마음의 병이 더욱 컸을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김대례 명인 화장장으로 모셔지다     ©최영숙

 

 고(故) 김대례 명인의 마지막 가는 길을 동행했던 이동훈(44) 씨는 "진도 상여는 웃으면서 기쁘게 보내드리는 법이다. 김대례 명인의 소리는 참으로 심금을 울렸다"고 회상했다. 이어 "진도 창은 징하게 좋다. 억세면서도 깊은 맛이 느껴져서 좋다"며 고인의 예술 세계에 대한 깊은 경의를 표했다.
 

▲ 화장으로 모셔지다     ©최영숙

   

고(故) 김대례 명인은 생전에 "화장해서 훨훨 날아갈 수 있게 지리산에 뿌려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그러나 지리산 국립공원의 공원화 사업 등으로 인해 유언대로 집행하기는 어려웠다. 이동훈(44) 씨에 따르면, 명인은 화장으로 모셔진 후 전남 진도군 본영의 선산에 안치되었다고 했다.
 

▲ 씻김굿을 하다     ©최영숙

 

진도 씻김굿(중요무형문화재 제72호)의 큰 기둥이었던 고(故) 김대례 명인의 마지막 길을 따라 다녀왔다.

 

진도 씻김굿 이수자 정필식 씨는 명인을 떠올리며 "그분의 소리를 들으면 소름이 오싹오싹 돋았어요. 구름 위에 떠 있는 듯, 마치 귀신이 내는 소리 같았다"라고 회상했다. 그의 증언을 통해 우리가 우리 시대의 얼마나 위대한 예인을 떠나보냈는지 다시 한번 실감할 수 있었다.

 

비록 생전에 직접 뵙지는 못했으나, 그분을 기억하는 많은 이들은 한결같이 명인을 '한없이 따뜻하고 정이 넘치던 분'으로 추억했다.

 

살아생전 수많은 망자의 한 맺힌 사연들을 굽이굽이 풀어주었던 그 지극한 공덕으로, 이제는 명인 스스로가 모든 매듭을 풀고 부디 평안하고 좋은 곳으로 떠나시기를 간절히 기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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