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부도 매바위, 무심한 풍경 속에서 마주한 세월의 흔적

-최영숙의 발길따라 가는 풍경-

최영숙 | 기사입력 2011/03/13 [22:40]

제부도 매바위, 무심한 풍경 속에서 마주한 세월의 흔적

-최영숙의 발길따라 가는 풍경-

최영숙 | 입력 : 2011/03/13 [22:40]
 
▲ 제부도 매바위     ©최영숙

 
 2011년 3월 9일, 제부도를 다녀왔다. 바람은 다소 불었지만 봄기운이 완연했다. 제부도에 가면 수많은 바위를 만날 수 있는데, 그 생김새를 보고 있노라면 여러 모습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혼자 '고래가 입을 벌린 바위'라 부르기도 하고, '이가 빠진 동그라미'라 이름 붙여보기도 하지만, 공식 안내판에는 '매바위'라 적혀 있다.

▲2011년 2월 19일  제부도 매바위 앞의 얼음바다     ©최영숙

 

불과 두 달 전인 1월 19일, 이곳을 찾았을 때의 매서운 추위와 겨울 바다 풍경이 떠올랐다.

▲2011년 1월 19일  제부도 얼음 등대     ©최영숙

 

당시 제부도 등대 앞은 얼음으로 뒤덮여 있었다.

▲ 2011년 1월 19일 얼음에 갇힌 배     ©최영숙

 

유난히 추웠던 지난겨울, 바다에서 돌아오던 배들은 뭍으로 다가오기가 무척 힘들었다. 얼음을 깨가며 사람들이 배를 밧줄로 묶어 겨우 들어서던 모습이 선하다.

▲2011년 3월  9일 제부도 등대     ©최영숙

 

.그 혹독했던 추위와 얼음을 기억하기에, 얼음이 녹았다는 사실만으로도 봄은 충분히 느껴졌다.

▲2011년 3월 9일  제부도의 아름다운 해안선     ©최영숙

  

제부도 등대 전망대로 향했다. 물이 들어차기 시작하며 아름다운 해안선이 드러났다. 제부도는 아무 때나 허락되는 섬이 아니다. 하루에 한두 번, '모세의 기적'이라 불리는 바닷길이 열려야만 들어올 수 있다. 밀물이 밀려들고 있었다. 물이 완전히 차오르기 전까지 약 1시간 정도의 여유가 있었다. 갯고랑으로 물들이 들어오고 있었다.

  

▲ 2011년 3월 9일 제부도 해안선     ©최영숙

 

역광을 받아 반짝이는 갯벌과 해안선의 모습이 더없이 아름다웠다.

 

▲ 2011년 3월 9일 제부도 해안사구와  구름     ©최영숙

   

매바위가 있는 곳으로 발길을 옮겼다. 모래사장 위로 흐르는 구름이 한가로워 보였다. 나이가 들수록 이렇듯 '심심한 풍경'에 마음이 머문다. 간이 되지 않은 풍경, 눈길이 편안해지는 자연의 모습에서 잔잔한 위안을 받는 것이다. 무심하게 떠 있는 구름, 해안사구의 모래알, 바닷물에 실려 온 나뭇가지와 돌멩이들... 별반 특별할 것 없는 풍경이 오히려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 자극적인 세상에 익숙해져 있었기에, 그저 바라만 봐도 좋은 이 무심한 풍경들이 반가운 것이다.

 

▲ 2011년 3월 9일 봄에 만난 제부도 매바위     ©최영숙

  

제부도의 매바위를 보고 있으면, 세월이 흐름에 따라 바위가 부서져 내리는 속도가 무척 빠르다는 생각이 든다. 어느 날 문득 이곳을 찾았을 때, 자연의 돌들이 모두 무너져 내리고 그 자리에 시멘트로 빚어 만든 가짜 매바위가 세워져 있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들 정도다.

 

▲ 2005년 2월 3일   입맞춤하는  연인 모습  매바위 모습     ©최영숙

 

2005년 2월에 담았던 매바위의 모습이다. 지금보다 바위들이 서로 가깝고 크기 또한 훨씬 컸다. 마치 연인이 입을 맞추는 듯한 형상을 하고 있었다.

 

▲ 2005년 2월 3일 제부도 관음보살상  바위     ©최영숙

 

2005년 2월 3일 당시 매바위 옆면을 보고 깜짝 놀랐던 기억이 있다. 영락없는 관음보살상의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그때 어느 여인이 매바위 주변을 돌며 "어디선가 강한 기운이 느껴지는데 그곳이 어딘지 모르겠다"며 혼잣말을 하기에, "옆으로 가면 관음보살 형상이 보인다"고 일러주었다. 그녀는 그 모습을 확인하고는 깊이 합장하며 인사를 올렸다. 여행을 하다 보면 참 묘한 일도 다 만난다 싶었다. 바위 뒷면 깊은 동굴에서 촛불을 켜고 기도하던 무속인들의 모습에서 뿌리 깊은 토속 신앙을 엿보기도 했다.

  

▲ 2011년 3월 9일 제부도 스핑크스     ©최영숙

 

그 뒤로도 몇 번 제부도를 찾았지만, 그때마다 돌기둥들은 야위어 가고 있었다. 이제 더 이상 관음보살상의 자애로운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다. 오히려 지금은 스핑크스의 형상에 더 가까워졌다.
  

▲2011년 3월 9일  제부도 고릴라 바위와 연인들     ©최영숙


 

 

▲ 2011년 3월 9일 고릴라 바위     ©최영숙

 

커다란 고릴라 두 마리가 나란히 서 있는 듯한 돌기둥 곁을 지나는 연인의 모습이 평화롭다.
  

▲ 2011년 3월 9일  제부도 매바위 위에 있는 스피커와 돌고래 형상의 바위     ©최영숙

 

금방이라도 떨어질 듯 위태롭게 얹힌 바위는 돌고래를 닮았다. 언제 아래로 굴러떨어질지 몰라 보는 내내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이토록 빠른 속도로 풍화가 진행된다면, 머지않아 폭삭 주저앉은 모습만 남게 될지도 모른다.
  

▲2011년 3월 9일  제부도의 스핑크스     ©최영숙

 

기우뚱하게 서서 툭툭 무너져 내리는 돌덩이들을 보며, 조금 더 일찍 보존을 위한 손길을 보탤 수는 없었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사라지는 것 또한 자연의 순리라지만, 귀중한 자연 유산이 속수무책으로 허물어지는 것을 보는 마음은 무거웠다.
  

▲ 2011년 3월 9일 무너지는 매바위     ©최영숙

 

바위 뒤쪽은 무너짐의 속도가 더 빨랐다. '낙석 위험'이라는 경고문이 붙은 기우뚱한 바위들을 보며, 제부도를 대표하는 이 명물이 사라진 자리에 인공 구조물이 들어서는 상상을 하니 씁쓸해졌다.
  

▲ 2011년 3월 9일  거인 석상 모습의  매바위     ©최영숙

 

제부도의 매바위는 보는 눈길과 각도에 따라 관음보살이 되기도 하고, 고릴라나 스핑크스, 혹은 거인 석상이 되기도 한다. 갈 때마다 늘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는 신비로운 존재다.

 

▲ 2011년 1월 19일의 제부도  매바위     ©최영숙
 
  
▲ 2011년 3월 9일 너구리를 업은  매바위     © 최영숙

 

어느 각도에서는 너구리를 등에 업은 모습으로 보이기도 한다. 이렇듯 무궁무진한 표정을 지닌 매바위를 먼 훗날의 사람들도 함께 누릴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 제부도 입구     ©최영숙

 

 

다음에 이곳을 찾을 때는 또 어떤 얼굴로 나를 맞이할지 알 수 없다. 바위가 무너질까 봐 노심초사하는 것은 나만의 기우일지도 모르겠으나, 이 풍경을 오래도록 보고 싶어 하는 간절함이 낳은 애정이라 믿고 싶다. 늦기 전에 전문가들의 안전 진단과 체계적인 보존 대책이 마련되기를 바란다.

 

이제 제부도를 떠날 시간이다. 멀리서 물길이 바짝 다가서고 있었다. 거인과 여인, 고릴라와 스핑크스를 닮은 바위들을 뒤로하고 섬을 나섰다.

 

 

닉네임 패스워드 도배방지 숫자 입력
내용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을 사용하는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 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주간베스트 TOP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