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3월 24일 오전 7시 전화가 왔다. 언니였다.
"영숙아! 여기 홍천이야. 봄눈이 왔어. 지금 밖의 풍경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몰라. 시간 되면 이곳으로 와서 주말 함께 보내자."
다행히 바로 출발할 수 있었다. 북쪽으로 다가설수록 눈부신 설경이 펼쳐졌다.
그곳은 온통 순백의 눈꽃 세상이었다.
하얗게 눈이 쌓인 고즈넉한 마을을 지났다.
이윽고 깊은 숲속 길로 들어섰다. 차량이 다닐 수 있도록 누군가 미리 눈을 치워주셨다. 고마운 마음이 앞섰다.
눈을 이고 서 있는 나무들 위로 하늘이 시리도록 맑았다.
홍천에 도착하니 어느덧 10시가 가까워졌다. 언니와 형부가 마당까지 나와 반갑게 맞아주셨다. "얘, 너한테 전화하고 나서 갑자기 바람이 불길래, 처제 오기 전에 눈이 다 떨어지면 어쩌나 싶어 네 형부가 어찌나 성화를 부렸는지 모른다"며 언니가 웃으며 말했다. 두 분의 깊은 배려에 마음이 따뜻해졌다. 눈이 다 녹아버리기 전에 서둘러 산책로를 걸었다.
산은 마치 작은 소용돌이를 일으키고 있는 듯했다. 사방에서 바람이 불어오며 나뭇가지에 얹힌 눈들을 가볍게 털어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형부가 말씀하셨다. "이곳에서 10여 년 넘게 눈 내린 풍경을 보아왔는데, 눈이 온 다음 날은 거의 매번 이렇단다. 한꺼번에 세찬 바람이 부는 것도 아닌데, 작은 골짜기마다 미풍이 불어오며 나무 위의 눈들을 털어내지. 산자락에 가려서 바람이 전혀 없을 것 같은 곳조차도 어김없이 나무들이 스스로 몸을 흔들 듯 눈을 털어내는데, 그 모습이 참 신비로워."
언니도 곁에서 말을 거들었다. "나무들이 서로 몸을 흔들며 흰 눈을 털어내고 있는 모습을 창가에서 가만히 보고 있으면, 그 풍경을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행복해져."
언니는 산에서 아주 작은 들꽃 하나를 데려와도 "이렇게 예쁜 꽃으로 피어나 주어서 고맙습니다" 하고 인사를 건넨 뒤 정성껏 가꾸었다. 그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며, 두 사람이 이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어느새 산과 동화되어 스스로 하나의 풍경이 되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도 자연스럽게 나무와 꽃을 품은 산과 대화를 나누는 듯했다.
함께 산책을 나서자, 이제는 제법 나이가 들어 폭신한 눈길이 힘들 법도 한 반려견 초롱이가 가장 신이 나서 앞장섰다.
커다란 오동나무 가지 위에도 소복하게 눈이 쌓였다.
사방을 둘러보아도 풍경만큼은 아직 깊은 한겨울의 중심에 서 있는 듯했다.
그러함에도 계절의 순리는 거스를 수 없어, 봄은 어느새 우리 곁으로 성큼 다가와 있었다. 강원도에서 '동백꽃'이라 부르는 생강나무의 노란 꽃망울이 수줍게 고개를 내밀며 봄 인사를 건네고 있었다.
산책로를 걷는 동안에도 산에 가득한 나무와 바람이 서로 감응을 일으키듯, 산 전체가 동시다발적으로 눈을 털어내고 있었다. 예전에는 그저 예사로 스쳐 지나쳤을 풍경들이 오늘따라 전혀 새롭게 다가왔다. 자연은 결코 모호함이 없다. 누군가 강제하지 않아도 스스로 균형을 잡아가며 계절을 바꾸어 가고 있었다.
어느덧 해가 뉘엿뉘엿 기울며 오후 시간으로 접어들었다. '봄눈 녹듯'이라는 말처럼 벌써 마당의 눈들이 많이 녹아내렸다. 먼 산자락에서는 아직도 군데군데 나무들이 부지런히 눈을 털어내고 있었다. 산책을 마치고 들어온 초롱이가 창가에 앉아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아름다운 풍경을 함께 보고 싶다고 초대해준 언니와 형부가 고마웠다.
바쁜 일상을 잠시 내려놓고 마주한, 지극히 아늑하고 편안한 시간이었다.
살아가면서 가끔씩 꺼내어 보며 미소 지을 수 있는, 아주 따뜻하고 아름다운 추억이 담긴 '보석상자'를 선물 받은 듯한 귀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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