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들이 몸을 흔들어 눈을 털어낼 때

최영숙의 발길따라 가는 풍경

최영숙 | 기사입력 2012/03/26 [06:49]

나무들이 몸을 흔들어 눈을 털어낼 때

최영숙의 발길따라 가는 풍경

최영숙 | 입력 : 2012/03/26 [06:49]

 

▲ 눈꽃 피다     ©최영숙

 
2012년 3월 24일 오전 7시 전화가 왔다. 언니였다.
"영숙아! 여기 홍천이야. 봄눈이 왔어. 지금 밖의 풍경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몰라. 시간 되면 이곳으로 와서 주말 함께 보내자." 

▲ 눈꽃 피다     ©최영숙


다행히 바로 출발할 수 있었다. 북쪽으로 다가설수록 눈부신 설경이 펼쳐졌다.

▲ 눈꽃 세상     ©최영숙

 
그곳은 온통 순백의 눈꽃 세상이었다. 

▲ 봄눈에 쌓인 마을     ©최영숙


하얗게 눈이 쌓인 고즈넉한 마을을 지났다.

▲ 숲으로 들어서다     ©최영숙

 
이윽고 깊은 숲속 길로 들어섰다. 차량이 다닐 수 있도록 누군가 미리 눈을 치워주셨다. 고마운 마음이 앞섰다.

 

▲ 언덕 위의 나무들     ©최영숙


눈을 이고 서 있는 나무들 위로 하늘이 시리도록 맑았다.

▲ 산책로를 걷다     ©최영숙

 
홍천에 도착하니 어느덧 10시가 가까워졌다. 언니와 형부가 마당까지 나와 반갑게 맞아주셨다. "얘, 너한테 전화하고 나서 갑자기 바람이 불길래, 처제 오기 전에 눈이 다 떨어지면 어쩌나 싶어 네 형부가 어찌나 성화를 부렸는지 모른다"며 언니가 웃으며 말했다. 두 분의 깊은 배려에 마음이 따뜻해졌다. 눈이 다 녹아버리기 전에 서둘러 산책로를 걸었다.

▲ 봄눈 내린 풍경     ©최영숙

 
산은 마치 작은 소용돌이를 일으키고 있는 듯했다. 사방에서 바람이 불어오며 나뭇가지에 얹힌 눈들을 가볍게 털어내고 있었다.

 

▲ 눈 쏟아지다     ©최영숙

 

그 모습을 보며 형부가 말씀하셨다. "이곳에서 10여 년 넘게 눈 내린 풍경을 보아왔는데, 눈이 온 다음 날은 거의 매번 이렇단다. 한꺼번에 세찬 바람이 부는 것도 아닌데, 작은 골짜기마다 미풍이 불어오며 나무 위의 눈들을 털어내지. 산자락에 가려서 바람이 전혀 없을 것 같은 곳조차도 어김없이 나무들이 스스로 몸을 흔들 듯 눈을 털어내는데, 그 모습이 참 신비로워."

 

언니도 곁에서 말을 거들었다. "나무들이 서로 몸을 흔들며 흰 눈을 털어내고 있는 모습을 창가에서 가만히 보고 있으면, 그 풍경을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행복해져."

언니는 산에서 아주 작은 들꽃 하나를 데려와도 "이렇게 예쁜 꽃으로 피어나 주어서 고맙습니다" 하고 인사를 건넨 뒤 정성껏 가꾸었다. 그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며, 두 사람이 이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어느새 산과 동화되어 스스로 하나의 풍경이 되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도 자연스럽게 나무와 꽃을 품은 산과 대화를 나누는 듯했다.

 

▲ 초롱이 놀다     ©최영숙

 
함께 산책을 나서자, 이제는 제법 나이가 들어 폭신한 눈길이 힘들 법도 한 반려견 초롱이가 가장 신이 나서 앞장섰다.

 

▲ 오동나무에 눈 쌓이다     ©최영숙

 
커다란 오동나무 가지 위에도 소복하게 눈이 쌓였다.

▲ 산책로를 걷다     ©최영숙


사방을 둘러보아도 풍경만큼은 아직 깊은 한겨울의 중심에 서 있는 듯했다.

▲ 동백꽃(생강나무) 꽃몽우리 맺다     ©최영숙

 

그러함에도 계절의 순리는 거스를 수 없어, 봄은 어느새 우리 곁으로 성큼 다가와 있었다. 강원도에서 '동백꽃'이라 부르는 생강나무의 노란 꽃망울이 수줍게 고개를 내밀며 봄 인사를 건네고 있었다.

▲ 눈 쏟아지다     ©최영숙

 
산책로를 걷는 동안에도 산에 가득한 나무와 바람이 서로 감응을 일으키듯, 산 전체가 동시다발적으로 눈을 털어내고 있었다. 예전에는 그저 예사로 스쳐 지나쳤을 풍경들이 오늘따라 전혀 새롭게 다가왔다. 자연은 결코 모호함이 없다. 누군가 강제하지 않아도 스스로 균형을 잡아가며 계절을 바꾸어 가고 있었다.

▲ 초롱이 창밖을 바라보다     ©최영숙


어느덧 해가 뉘엿뉘엿 기울며 오후 시간으로 접어들었다. '봄눈 녹듯'이라는 말처럼 벌써 마당의 눈들이 많이 녹아내렸다. 먼 산자락에서는 아직도 군데군데 나무들이 부지런히 눈을 털어내고 있었다. 산책을 마치고 들어온 초롱이가 창가에 앉아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 산과 하늘     ©최영숙

 
아름다운 풍경을 함께 보고 싶다고 초대해준 언니와 형부가 고마웠다. 

▲ 산 전체 눈 털기     ©최영숙

 
바쁜 일상을 잠시 내려놓고 마주한, 지극히 아늑하고 편안한 시간이었다.

 

▲ 눈 흩날리다     ©최영숙
▲ 숲길을 걷다     ©최영숙

 

살아가면서 가끔씩 꺼내어 보며 미소 지을 수 있는, 아주 따뜻하고 아름다운 추억이 담긴 '보석상자'를 선물 받은 듯한 귀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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