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리랑카에서 실론티를 마시다

스리랑카로 홍차답사를 다녀오다

최영숙 | 기사입력 2015/01/27 [23:19]

스리랑카에서 실론티를 마시다

스리랑카로 홍차답사를 다녀오다

최영숙 | 입력 : 2015/01/27 [23:19]
▲ 세계적 명성의 실론티 브랸드 립톤 차밭     ⓒ최영숙

 

2015년 1월 12일부터 1.19일까지 5박8일 일정으로 스리랑카 홍차 답사를 다녀왔다. 

 

스리랑카의 역사는 북부 인도에서의 아리안계 민족의 유입에서 시작된다. 팔리어 역사서[마하완사]에 의하면 기원전 543년 인도 아리안계의 왕자(싱하)의 자손으로 칭하는 윈자야 왕자가 북인도에서 700명의 싱할리인을 거느리고 건너와서 원주민 벳다를 정복하고, 싱할리인에 의한 최초의 왕조를 세우게 되었다. 최초의 수도 아누라다푸라 (Anuradhpura)는 1,500년에 걸친 불교문화의 중심지였다.

 

그러나 1505년 포르투칼인이 섬에 들어와 연안지대를 점령하고 로마 카톨릭으로 개종을 장려했다. 그후 1640년 네델란드인이 점령하고 총독을 두어 식민지 경영을 한다. 1796년 영국은 180대에 걸쳐 2300년간 지속되어 온 싱할리 왕조를 멸망시키고 식민지화 했다. 영국인들은 1830년대 남인도로부터 타밀인 노동자를 대량으로 이주시키고 산지를 개척하여 커피농장을 만들었다. 그러나 커피농장이 1870년대 병해에 의해 괴멸하자 품종을 홍차로 전환했다. 실론티는 그렇게 탄생했다. 실론이라는 국가의 이름이 차이름이 된 것이다. 스리랑카에서 차의 역사는 또 다른 의미로 수탈의 역사였다.

 

 2차 세계 대전이 종식되자 1948년 2월 4일 英 연방으로부터 독립했다. 이로 인하여 스리랑카는 포르투갈, 네덜란드, 영국에 의해 계속된 450년간의 식민지 지배에 종지부를 찍고 독립을 회복했다. 1972년 5월 22일 신헌법 제정에 의해 국명을 실론에서 스리랑카로 변경했다.

 

▲ 교황의 방문을 알리는 간판     ⓒ최영숙

 

1월 13일 콜롬보에 도착했다. 로마교황의 방문을 환영하는 입간판들이 서 있었다. 스리랑카는 불교(69%), 힌두교(11%), 회교(7.6%), 천주교(7.5%) 등 여러 종교들이 혼재되어 있다. 콜롬보 시내에만도 여러 사원과 교회들이 한 곳에 모여 있었다. 서로의 종교에 대하여 너그러운 듯했다.

 

▲ 콜롬보의 아침  풍경     ⓒ 최영숙

 

콜롬보의 아침은 활기찼다. 지나는 빨간 기차에는 사람들이 매달려 갔다. 옛날 우리의 풍경을 보는 듯했다. 

 

▲ 티 보드견학을 하다. 회원들 여러가지 홍차들을 시음하다     ⓒ 최영숙

 

 차를 전문으로 하는 사람들과의 차 답사였기에 모든 일정은 차로 시작되었다. 실론티(Ceylon tea)의 나라 스리랑카는 차(茶) 수출이 전체 수출량의 3위를 차지할 정도로 국가적인 차원에서 차(茶)재배를 육성하고 있었다. 국가에서 운영하는 티 보드로 견학 갔다. 그곳에서 회원들은 스리랑카에서 생산되는 많은 홍차들을 시음했다. 캔디로 이동했다.

 

▲ 차 잎을 따는 사람들     ⓒ 최영숙

 

홍차 만드는 공장을 가는 길에 차 잎을 따는 사람들을 만났다.

 

▲ 차를 만드는 공장 견학     ⓒ 최영숙

 

공장 견학을 했다. 그곳에서 홍차 만드는 과정을 볼 수 있었다.

 

▲ 홍차공장에서 일하는 근로자들     ⓒ 최영숙

 

홍차 공장에서 일하는 근로자들을 만났다. 사람들의 표정이 환했다. 공장 옆에는 찻집이 있었다. 홍차를 마시고 차들을 샀다. 캔디로 이동했다.

 

▲ 왕과 왕비의 복장을 한 스리랑카 신혼부부가 들러리를 선 친구들과  웨딩촬영 을 하다    ⓒ최영숙

 

 우리가 묵은 캔디의 호텔에서 웨딩촬영을 하는 신혼부부를 만났다. 왕과 왕비의 복장을 한 신랑 신부가 웨딩 촬영을 했다. 여행의 즐거움은 이렇듯 이곳에 사는 사람들의 다양한 삶의 모습을 보는 것이다. 웨딩 촬영을 하던 사람들은 관광객에게도 환한 웃음을 보내주었다. 감사했다.

 

 

▲ 부처님 치아 사리가 모셔진 불치사     ⓒ 최영숙

 

부처님의 치아가 모셔진 불치사에 들렀다, 불자들은 음식과 꽃을 올렸다. 이곳에 모셔졌던 부처님 사리는 부천의 석왕사에 일부 모셔졌다.

 

▲ 불치사에 꽃을 바치는 사람들     ⓒ최영숙

 

사람들은 꽃을 바쳤다.

 

▲ 캔디 차 박물관     ⓒ최영숙

 

스리랑카에서 실론티가 생산된 것은 제임스테일러가 인도를 방문하여 차 재배 기술을 배운 뒤 1867년 스리랑카 중앙 산악지대 룰레콘데러 자신의 커피 밭에 차나무를 심어 성공하게 된다. 제임스테일러는 직접 기계를 만들어가며 홍차 공장을 완성하고 1872년 첫 선적물을 런던경매장에 보냈다. 스리랑카는 제임스테일러가 차 재배를 시작한 1867년을 실론티의 원년으로 여긴다. 캔디 차 박물관에는 차를 만드는 과정과 제임스테일러에 관한 기록과 그가 쓰던 물건들이 전시되었다.

 

▲ 장례식 행렬을 만나다     ⓒ 최영숙

 

차 박물관에서 장례식 행렬을 만났다. 폭죽을 터트려 슬픔을 표하고 사람들은 장례행렬을 따랐다.

 

▲ 차 공장 밖에 있는 구멍가게     ⓒ 최영숙

 

각국에서 견학을 오는 사람들이 많은 듯했다. 차 공장 밖에 있는 작은 가게에서 바나나를 샀다.

 

▲ 타밀축제를 하는 마을을 들르다     ⓒ 최영숙

 

여행기간 중에 타밀민족의 축제를 만났다. 누와라엘리야로 가는 길에 마을을 들렀다.

어린이들이 외지인들을 반겼다.

 

▲ 누와라엘리야- 타밀축제를 하다. 신이 모셔진 가마는 마을 사람들이 들고 갔다.  집집마다 가서 복을 빌어주고 집 주인은 음식을 차리고 물을 쏟으며 신을 맞아들였다.     ⓒ최영숙

 

타밀족의 축제 때 신을 모신 가마를 맞아들이는 가족들은 음식을 차리고 방문객에게도 음식을 권했다. 마을 사람들이 순수하고 다정했다.

▲ 마을 주민들     ⓒ최영숙

 

이방인들이 가는 것을 오래도록 지켜보았다.

 

 

▲ 타밀축제-원숭이 분장을 한 소년과 마을 사람들     ⓒ최영숙

 

저녁이 되자 원숭이로 분장한 소년들이 춤을 추며 행렬 앞에 섰다. 신전을 꾸민 트랙터와 마을 사람들은 뒤를 따랐다. 만나기 힘든 마을의 고유축제를 볼 수 있었다.

 

▲ 세계적인 명성의 실론티 브랜드인 립톤  차 밭을 가다   ⓒ최영숙

 

 립톤의 차 밭으로 가는 길은 끝이 없었다. 굽이굽이 산등성이를 한참을 돌아서 정상에 도착했다. 안개가 끼어 아래가 멀리 보이지 않았다.

▲ 립톤 티 정상에서 실론티를 만드는 소년     ⓒ최영숙

 

정상에서 차를 마실 수 있었다. 소년이 차를 끓였다.

▲ 립톤 차 생산지에서 만난 어린이들     ⓒ최영숙

 

마을 소년들은 나무를 해왔다.

 

▲ 소는 차잎은 먹지 않고 차 밭에 난 잡풀들을 뜯어 먹기 때문에 그냥 풀어 놓았다.     ⓒ 최영숙

 

차밭과 소가 함께 있었다. 소는 차 잎은 먹지 않고 차밭 아래에 있는 잡풀들을 뜯어먹었다. 차밭을 여유롭게 다니면서 밭을 매는 듯했다.

 

▲ 갈레 요새에 가다     ⓒ 최영숙

 

갈레 요새는 쓰나미가 왔을 때도  무사했다고 한다. 소년이 지나고 있었다.

 

▲ 원숭이와 코브라를 부리는 사람     ⓒ 최영숙

 

요새에 도착하니 날씨는 비가 올듯 잔뜩 흐렸다. 여행 첫날부터 감기 몰살로 식사를 제대로 할 수 없던 나는 점심을 포기하고  요새에 올랐다. 인적이 뜸한데 나를 보자 그는 반색을 했다. 슬그머니 바구니문을 열자 코브라 두 마리가 스멀스멀 기어 나왔다. 

▲ 관광지가 된 이곳에서는 이제는 관광객을 위해서 장대에 올라 하는 아한가마 낚시는 비가 내려서 인지 빈 장대만 있었다.     ⓒ 최영숙

 

▲ 비가 그치자 사람들이 요새에 오르다     ⓒ 최영숙

 

비가 그치자 사람들이 요새에 올랐다.

 

▲ 아훈갈라 해변     ⓒ 최영숙

 

스리랑카의 해변은 맑고 깨끗했다.

 

▲ 어부들이 고기를 잡는 모습     ⓒ 최영숙

 

마을주민들이 모두 모여 밧줄을 잡아 당겼다. 먼 바다를 나가는 것이 아니고 마을 앞에 그물을 치고 천천히 그물을 잡아 당겼다. 

▲ 차밭에서 사진을 담다     ⓒ 최영숙

 

5박 8일 동안 스리랑카 차 답사를 다녀오면서 가장 놀라웠던 것은 5박 8일 동안  하루에 거의 10여 시간이 넘게 버스로 이동했는데도 끊없이 이어지던 차밭이었다. 그 방대한 규모에 놀랐다.

 

▲ 마을 주민들     ⓒ 최영숙

 

또한 친절한 스리랑카 사람들이었다. 처음 보는 사람도 눈이 마주치면 환하게 웃어주던 사람들을 만나는 것은 또 다른 감사함이었다.

 

▲ 스리랑카 차밭     ⓒ 최영숙

 

다양한 모습을 볼 수 있었던 스리랑카는 오래도록 잊지 못할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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