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화창했다. 2010년 1월 23일 오전 10시, 시흥시 늠내길 제3코스 ‘옛길’ 개장식을 열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날이었다.
| ▲ '옛길' 출발지로 사람들 모여들다 © 최영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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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 장소인 '전통한옥추어탕'에 도착하니 이미 많은 사람이 모여 있었다. 참가자들은 시흥시 청년회의소에서 준비한 따뜻한 음료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거나 가벼운 체조로 몸을 풀며 출발을 기다렸다.
김윤식 시흥시장의 인사말과 함께 늠내길 제3코스 옛길 개장식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안내문에 명시된 공식 코스는 꼬꼬상회에서 출발하지만, 개장식 날은 행사의 편의를 위해 전통한옥추어탕에서 출발했다. 코스는 여우고개, 하우고개, 소내골, 계란마을 약수터, 소산서원, 청룡약수터, 소래산 마애불을 거쳐 꼬꼬상회까지 이어지는 총 11km 구간으로, 약 4시간이 소요된다.
| ▲ 참석자들과 '옛길'을 걷는 김윤식 시흥시장과 이무섭 과장 ©최영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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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흥시 늠내길은 제1코스 ‘늠내숲길’, 제2코스 ‘갯골길’에 이어 이번 제3코스 ‘옛길’을 개장하며 시민들의 호응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 이날 행사에는 시흥 시민뿐만 아니라 관광버스를 타고 온 외지인 등 350여 명이 참석했다. 김윤식 시장과 이무섭 공원관리과장 등 관계자들이 대열 앞단에서 길 안내를 맡았다.
옛길을 걷는 사람들의 행렬이 숲길을 따라 길게 늘어섰다.
맑은 하늘 아래 햇살이 눈부셨다. 소나무 숲으로 들어서자 청량한 공기가 온몸을 감싸는 듯 상쾌한 기분이 들었다.
이곳에서는 쓰러진 나무도 훌륭한 의자가 된다. 나무를 깎아 의자를 만들고 물이 빠질 수 있도록 홈을 판 세심함이 돋보였다. 지친 발걸음을 잠시 쉬어가기에 충분해 보여 자연을 영리하게 활용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옛길을 개장하며 세세한 부분까지 신경 쓴 흔적이 역력했다. 개울 위에는 정겨운 섶다리가 놓여 있었고, 다리를 건너는 시민들의 표정에는 즐거움이 가득했다.
서로 한담을 나누며 걷는 사람들의 발걸음은 급할 것 없이 여유로웠다.
길가에는 여전히 잔설과 얼음이 남아 있었다. 미끄러운 곳에는 미리 흙을 뿌려두어 걷는 이들의 안전을 배려한 점이 눈에 띄었다.
소래정에 도착하니 시흥시 체육회 주관으로 무사 산행을 기원하는 시산제가 열리고 있었다. 김윤식 시장이 첫 잔을 올리며 정중히 예를 갖췄다.
축문 낭독이 이어졌다. 옛길 걷기에 참여한 모든 이의 안전과 앞으로의 안녕을 기원하는 간절한 마음이 산속에 울려 퍼졌다.
시산제를 마친 뒤 시흥시의회 안시헌 의장을 비롯한 관계자들이 참가자들에게 따끈한 떡을 나누어 주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떡과 막걸리를 곁들이며 나누는 덕담 속에서 소래산은 시흥의 중심다운 웅장한 위용을 뽐내고 있었다.
시산제가 진행되는 동안 앞서 떠난 이들을 따라 서둘러 발걸음을 재촉했다.
출발할 때 모였던 인파는 이제 각자의 보폭에 맞춰 앞뒤로 흩어졌다. 길목마다 설치된 늠내길 표식과 리본 덕분에 길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이 길을 다듬고 안내 표시를 만든 이들의 노고가 고스란히 느껴졌다.
하우고개에 도착했다. 조선 말 장사꾼들이 도둑을 피해 급히 걷느라 숨이 턱에 차서 "하우 하우" 소리를 냈다 하여 이름 붙었다는 설과, 소가 누워 있는 형상인 '와우'에서 유래했다는 설, 또는 학(鶴)고개에서 명칭이 시작되었다는 설 등 다양한 이야기가 전해지는 곳이다. 설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후대 사람들이 상상하고 유추할 수 있는 이야기가 풍성하다는 증거이기도 할 것이다.
| ▲ '옛길'의 출발지 꼬꼬상회에 오다 © 최영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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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우고개 위에서 나는 소산서원으로 향하는 지름길을 택했다. 옛길을 완주하고 내려오는 사람들을 마주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늠내길 제3코스 ‘옛길’의 본래 출발점인 꼬꼬상회 인근으로 돌아왔다.
소래산 자락에 자리 잡은 하연(1376~1453) 선생의 묘역을 찾았다. 조선 전기 영의정을 지낸 하연 선생은 문신으로서 높은 덕망을 쌓은 인물이다. 그의 묘소는 풍수지리상 명당으로 알려져 있다.
묘역에서 바라본 시흥의 풍경은 가슴이 뻥 뚫릴 듯 시원했다. 왜 이곳이 명당인지 고개가 절로 끄덕여지는 풍광이었다.
하연 선생의 셋째 아들 하우명 선생이 부모님 사후에 묘막을 짓고 지극한 효성을 다했던 자리를 가늠해 보았다. 문인석과 석양(石羊)은 후대인의 궁금증 따위는 아랑곳없다는 듯 무심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하연 선생의 셋째 아들 하우명(1413~1495) 선생에 대해 《대동야승(大東野乘)》 중 〈해동잡록 5〉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전해진다.
“하우명은 본관이 진주이며, 영의정 하연의 아들이다. 인천 소래산 아래에 살았다. 어머니 이씨의 생전에는 성심을 다해 봉양하였고, 사후에는 묘막에서 나무를 하며 3년간 상식(上食, 묘소에 음식을 올림)을 올렸다. 이후 영당을 짓고 철마다 나는 음식을 먼저 제사 지냈다. 이 효행이 조정에 알려져 정문(旌門)이 세워지고 세금을 면제받았으며, 벼슬은 동지중추부사에 이르렀다.”
또한 〈정문기(旌門記)〉에는 그의 지극한 효성이 더욱 구체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지극한 효성으로 어머니를 섬기니, 물과 육지에서 나는 맛있는 음식 중 갖추지 않은 것이 없었다. 어머니가 원하는 것이 있으면 반드시 구해서 바쳤으며, 직접 그물과 덫을 치고 고기잡이와 사냥을 하는 일을 조금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특히 “어머니가 꿩의 간과 산새 구이를 좋아하시니, 숲에 그물을 치고 꿩을 몰아 잡아다가 올렸다”라는 기록은 그가 몸소 실천했던 지극한 정성을 짐작하게 한다.
하우명 효자정각은 지방관이 선생의 효행을 상신함에 따라 나라에서 정각을 건립하고 호역을 면제해 준 곳이다. 소산서원 입구의 하우명 효자정각은 관리 소홀과 비바람 등으로 원형이 훼손되자, 1988년 국비 388만 3,000원을 투입해 전면 보수하였고 1997년에 담장을 설치하였다. 정각 내 비각은 1700년대에 초건되었다.
| ▲ 하우명선생 묘의 문인석과 '옛길'을 걷는 사람들 © 최영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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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3시간의 옛길을 걸은 사람들이 소래산에서 하우명 선생 묘 옆으로 내려오는 것이 보였다. 홀을 들고 있는 문인석과 빨간 등산복을 입은 옛길 참가자의 모습은 500여 년의 세월을 훌쩍 넘겨 한 시대를 이루고 있었다.
혼자 또는 삼삼오오 출발할 때의 많은 인원은 아니지만, 각자의 발걸음에 맞춰 옛길을 걷는 사람들이 하우명의 묘소를 지나 다음 행선지로 걸어갔다.
“엄마와 옛길 걷기에 가지 않으면 용돈 없다.” 엄마의 은근한 협박에 친구들과 오게 됐다는 신천동 어린이는 친구들과 마냥 즐거운 표정이었다. 하우명의 묘를 보고는 “와, 이분도 좋은 분이겠지!” 하면서 까르르 웃는다. 조선 전기의 효자 하우명 선생의 묘만 보고도 그냥 좋은 분이라고 생각하는 긍정적인 아이의 말을 듣는데 순간 놀라웠다. 정말 예쁜 아이들이었다.
그러더니 순식간에 “야, 우리 한 번 구르자!” 하면서 녀석들이 와르르 구르기 시작했다. 그들을 지켜보던 엄마는 “얘들아, 그만둬!” 하고 다급하게 소리쳤다. 그러나 이미 막을 수 없게 굴러가는 아이들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녀석들의 천진한 웃음소리에 엄마는 그만 슬며시 웃고 계셨다.
500년 전의 효자 하우명 선생은 어머니가 좋아하시는 꿩의 간과 산새를 잡으려고 수림에 그물을 쳐서 잡아 올렸고, 500년 후 같은 소래산 자락에서 살고 있는 신천동 아이들은 엄마와 옛길을 걷고 마냥 즐겁게 노는 것으로 어미를 웃게 하고 있었다. 무덤 속의 하우명 선생도 “이놈들!” 하시려다, 불경스럽게 능위에서 노는 것도 아니고 옆선에서 한 번 굴러보는 아이들을 보시고는 500년 후 신천동 어머니의 웃음에 그저 지긋이 눈감으실 듯했다.
참, 아이들의 순간적이고 기발하며 도발적인 행동은 속수무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렇듯 주위를 살피지 않고 맘껏 놀던 어린 시절이 문득 그리워졌다.
전통한옥 추어탕 출발점에서 시작된 늠내길 제3코스 ‘옛길’은 소나무 숲을 지나고, 굴참나무 숲을 지나 이름도 다정한 ‘여우고개’, ‘하우고개’를 지났다. 조선 전기 영의정을 지내신 하연 선생 묘와 3남 하우명 선생의 묘까지 왔다.
‘옛길’ 걷기는 총연장 11km로, 소요 시간 4시간 구간과 2시간 30분의 하프 코스가 있었다. 선택의 여지가 있어서 좋았다. 소래산은 시흥 사람들에게 어머니와 같은 산이기에 이곳 지리에 익숙한 사람이 많다. 그래서 각자 스케줄에 맞춰 코스를 선택해 걷는 이들도 많은 듯했다.
앞으로 시흥의 늠내길은 7코스까지 만들 예정이라고 했다. 고마운 일이었다. 이렇게 시에서 앞장서서 옛길을 다시 만들고 찾아주는 것은 시흥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선택의 기회를 더 많이 주는 것이기에, 더욱 많은 길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옛길 개장식에는 관계자들의 세심한 배려가 엿보였다. 얼음이 있는 곳에는 흙을 덮고, 쓰러진 나무로 멋진 의자를 만들고, 섶다리를 놓아 걸으면서 가벼운 탄성을 짓게 했다. 길을 잃지 않게 늠내길 표지와 리본들이 말없이 안내해 주었다. 보이지 않는 곳까지 사람들의 손길이 세세히 닿아 있었다.
다음에 옛길을 찾을 때는 천천히 느긋하게 걷다가 멋진 의자에도 앉아보고, 섶다리도 다시 한번 건너고 멋진 하늘도 보면서 ‘느림의 미학’을 제대로 느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