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코르왓을 다녀오다

최영숙의 발길 따라 가는 풍경

최영숙 | 기사입력 2012/03/07 [09:51]

앙코르왓을 다녀오다

최영숙의 발길 따라 가는 풍경

최영숙 | 입력 : 2012/03/07 [09:51]
▲ 앙코르왓 연못     © 최영숙

 
2012년 2월 1일부터 5일까지 캄보디아의 앙크르왓을 다녀왔다. 앙크로왓은 세계 7대 불가사의로 지칭되는 웅장, 화려하면서도 신비스럽다. 앙코르 왕국의 수리야 바르만 2세(1113-1150) 의 시기에 건립되었다. 도읍을 둘러싼 성벽은 한 변이 약 4km나 되었고, 서쪽과 남쪽에는 폭이 넓은 수로가 만들어졌다. 성의 북동쪽에는 길이 7Km, 너비 2Km의 '동바라이'라는 큰 저수지가 만들어졌다. 

이 사원은 12세기 전반에 수리아바르만 2세가 건립하였으며 힌두교의 비슈누 신과 일체화한 자신의 묘로 사용하기 위해 이 사원을 건립하였다. 앙코르왓은 힌두교의 신들과 그 대리인인 왕에게 바쳐진 장대한 건축물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곳에 있는 모든 건축물 하나하나에는 크메르인들의 독자적인 문화와 그들의 우주관 및 신앙관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또한, 그들이 건설한 세련되고 정교한 호수, 운하와 레삽으로부터 연결시킨 관개수로를 이용하여 부유하고 막강한 기반을 마련하였다.

▲ 물가의 어린이들     © 최영숙

 
앙코르왓 사원으로 가는 길에 어린이들을 만났다. 우리네 70년 대의 모습이었다. 어린 시절로 돌아간 듯 빙긋 미소가 머금어졌다. 신에게 제사를 드리기 위해 목욕재개를 했다고 한다.

▲ 앙코르와트 목욕탕     ©최영숙

 
이 깊은 목욕탕에 물을 채우는 것은 온전히 시녀와 시종들의 몫이었다. 이 넓은 목욕탕에 물을 길어다 채울 때 얼마나 암담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 임금이 오르는 계단     ©최영숙

 
비록 왕일지어도 신과 만나러 가는 길은 고개를 숙이고 오르라는 뜻으로 경사가 심하게 건축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뿐, 왕은 가마를 타고 올랐다고 한다. 막강한 권력은 조금의 수고도 하지 않으려 했던 것이다. 이 가파른 계단을 올랐을 시종들의 노고가 어땠을까 싶었다. 자칫 잘못하면 저 돌 계단 끝으로 함께 떨어졌을 텐데 가마를 타고 오른 왕의 믿음 또한 대단했다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 암코르와트 천상계에서 바라보다     ©최영숙

 
천상계에 올랐다. 2~3년 적에는 앙크로왓의 천상계에 올라갈 수 없었다고 한다. 좁은 계단을 오르내리던 관광객들 사고가 많았다고 한다. 현재는 관광객이 오를 수 있도록 나무계단을 설치했다. 지금도 보수 공사가 계속 되고 있었다. 그러함에도 천 년 가까이 앙크로왓이 유지된 것은 지반을 단단히 한 것과 배수 시설이 잘되어 있어서 우기 때의 그 많은 비도 단기간에 빠져 나가게 설계된 이곳의 시설들이라고 한다. 정말 대단한 민족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전투장면     ©최영숙

 
벽면에는 부조들이 새겨져 있었다. 적과 똑같은 위치와 상황에서 전투를 한다고 했다. 장군은 장군끼리, 말을 탄 병사는 말을 탄 병사끼리, 사병은 사병끼리 1:1로 전투를 벌이게 새겨졌다고 한다. 전쟁중임에도 정정당당함이 제 1의 원칙이었다. 꼼수를 부를 수 없게 만들었던 것이다.

▲ 햇살을 받다     ©최영숙

 
오후 햇살이 깊이 들어섰다. 크메르 여인들이 다시 살아나는 듯했다.

▲ 유적을 감싼 나무뿌리     ©최영숙

 
타프롬으로 왔다. 사원을 케이폭 나무가 휘감았다. 이 나무는 50미터까지 자랄 수 있다. 이 나무의 껍질은 은색으로 반짝이며 그 열매에서 케이폭 섬유를 얻는다. 

▲ 강인한 나무뿌리의 힘     ©최영숙

 
이 나무는 새가 떨어뜨린 씨앗에서 자라나며 그 뿌리가 땅에 닿을 때까지 틈새를 파고들어 돌을 부수어 버리지만 동시에 무너지지 않도록 붙잡아 두는 역할도 한다. 인간은 위대한 건축물은 케이폭 나무에게는 필요에 의해 지지대로 쓰일 뿐이었다.

▲ 사진을 담다     ©최영숙

 
자연의 흐름은 물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에는 공원관리소측에서 유적에서 이 나무들을 분리시키려고 했다. 그러나 나무를 분리하는 과정에서 유적의 파괴가 더 심하게 되었다. 또한 이 모습이 더욱 자연스럽고 더 큰 관광자원이기에 이대로 두기로 했다고 한다. 요즈음은 이 나무에게 잎이 무성하지 못하도록 약을 뿌린다고 했다. 어떤 특이함이 사람들 눈에 띄면 자연은 통제를 당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나무들도 자신의 생명을 위해 무너지지 않도록 유적들을 뿌리로 붙잡고 있는데 약을 뿌려서 자연의 흐름을 거스르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 바이욘 사원    ©최영숙

 
‘크메르의 미소’ 사원으로 유명한 바이욘 사원으로 왔다. 바이욘 사원은 우주의 중심을 상징적으로 표현한다. 이 때문에 바이욘은 두 개의 주요 도로가 교차하는 도시 중심에 위치했다. 이곳은 힌두교 전당이었을 것으로 생각했지만 1925년에 이르러서야 불교사원으로 밝혀졌다.

▲ 크메르 미소     ©최영숙

 
이 사원에는 불교 신 뿐 아니라 힌두교 신과 토착신도 포함되어 제국의 통합을 상징한다. 바이욘 사원의 얼굴은 자야바르만 7세의 특징을 본 따 만들어졌다.

바이욘 사원의 불상들이 짓고 있는 고요한 미소를 ‘크메르의 미소’라고 부른다. 정복왕 자야바르만 7세의 얼굴에서 자비의 보살 로케시바라와 깨달음을 얻은 붓다라자로의 모습을 보기 때문이다.

▲ 유적지의 사람들     ©최영숙

 
부처님의 가호 아래 관광객들은 쉬고 있었다.

▲ 코끼리 테라스와 연화대     ©최영숙

 
코끼리 테라스와 연화대가 보였다. 연화대에서는 화장을 했다고 한다.

▲ 사원의 어린이들     ©최영숙

 
어린이들이 사원의 창가에 앉아 있었다.

▲ 레드피아노     ©최영숙

 
앙크르왓 전역에서 안젤리나 졸리 주연의 '툼 레이더' 영화를 촬영했다. 촬영을 하는 동안 안젤리나 졸리가 레드 피아노 식당에 와서 식사와 차를 마시고 휴식을 취했다고 한다. 사장이 안젤리나 졸리와 함께 찍은 사진이 걸린 후, 이곳은 명소가 되었다고 한다. 이곳은 야간시장 근처에 있었다. 이곳에서 맥주를 마셨다. 금액은 생각보다 저렴했다. 여행객들은 연신 사진을 담았다. 같은 여행객이 풍경이 되는 곳이었다. 

▲ 시장풍경     ©최영숙

 
다음날 시장으로 왔다. 세상의 모든 시장 풍경은 활기가 넘친다.

▲ 탁발승     ©최영숙

 
탁발승을 만났다. 공양을 드리고 정성스럽게 인사를 했다. 보는 눈길이 편안해졌다. 

▲ 가족     ©최영숙

 
한 가족이 모두 시장을 나온듯했다. 단란한 가족의 모습이 보기 좋았다. 

▲ 하교길의 어린이와 오토바이족     ©최영숙

 
톤레삽호수의 수상가옥으로 왔다. 톤레삽 호수는 캄보디아 면적의 15%를 차지하면서 그 다양한 식물 및 어류를 통해 캄보디아인에게 60% 이상의 단백질을 제공하는 귀중한 호수라고 한다.

▲ 캄보디아 여인     ©최영숙

 
이곳에서 배는 어린이에서 어른까지 모두에게 신발과 같았다.

▲ 빨래하는 여인     ©최영숙

 
빨래 하는 여인을 보았다.

▲ 강가에서 물놀이를 하는 어린이들     ©최영숙

 
아이들이 노는 것은 어느곳이나 비슷하다.

▲ 베트남의 무덤     ©최영숙

 
강가에 무덤이 있었다. 불교국인 캄보디아인은 무덤이 없다고 한다. 베트남인들의 무덤이라고 했다.

▲ 꽃배     ©최영숙

 
꽃을 좋아하는 주인인 듯했다.

▲ 수상가옥 기름집     ©최영숙

 
기름집과 상점도 보았다. 강가의 교회까지 이곳은 ‘있을 것은 다 있고 없을 것은 없는’ 화개장터 같았다.
 

▲ 열기를 식히다     ©최영숙

 
날씨가 무더웠다. 소에게 물을 끼얹어 열기를 식혀주었다.

▲ 어린이     ©최영숙

 
하교하는 어린이를 만났다.

▲     ©최영숙

 
개구쟁이 소년들을 만났다. 환하게 웃으며 브이를 그렸다.

▲ 귀가 길의 어린이들     ©최영숙

 
이 어린이들을 보고 있으면 40여 년 전에 200만 명을 살육한 크메르루즈를 상상 할 수 없었다.

▲ 킬링필드 무덤     ©최영숙

 
사회주의 노선을 택했던 시아누크왕이 70년 프랑스에 가 있는 동안 정권을 잡은 사람이 미국의 지지를 받는 '론놀'이었다. 시아누크는 중국에 망명정부를 구성했다. 한편 국내에서는 폴포트가 이끄는 크메르루즈가 론롤에 대항하고 있었다. 크메르루즈는 농촌지역에서 지지를 얻었으며, 75년 미국이 베트남에서 철수하기 2년 전 프놈펜을 함락했다. 정권을 잡은 폴포트는 당시 인구 8백 만 명 중 2백 만 명을 살육했다. 76년 폴포트는 한때 크메르 왕국의 영토였던 베트남의 남부지방을 점령하기 위해 베트남과 전쟁을 감행하지만 79년 패배하여 정글로 쫒겨났다.

구금되었던 폴포트는 98년에 사망하고 크메르루즈는 해체됐다. 캄보디아에서 무려 30년 세월동안 전쟁의 포성이 멈출 날이 없었다.

크메르루즈 시절 숨진 희생자들의 유골이 탑처럼 쌓여 있었다. 가슴이 서늘해졌다. 얼마나 처절한 사연들을 이 유골 하나하나에는 깃들었을까 싶었기 때문이다. 명복을 빌었다.

▲ 킬링필드 속의 어머니     ©최영숙

 
크메르루즈 시절 이 여성은 장관의 부인이었다고 한다. 이 여인 앞에는 어린 자식이 있었다고 한다. 인간성을 잃은 크메르루즈 군사들은 자식이 보는 앞에서 머리 뒤로 있는 나사가 여인의 머리를 관통해서 처형했다고 한다. 어머니를 자식 앞에서 죽인 것이다. 킬링필드 시절의 공포가 아직도 남아 있다고 했다. 캄보디아를 다니면서 안경 낀 사람들을 거의 만날 수 없었다. 제일 먼저 처형한 사람들이 지식인 이었다고 한다. 손이 고와도 지식인이요. 안경을 껴도 공부 많이 해서 눈이 나빠서 썼다고 우선 처형했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도 사람들이 안경을 안 쓴다고 했다. 지식인들은 말만 많고 말을 잘 듣지 않는다고 의사, 선생님, 과학자등 처형했기 때문에 의사, 간호사들이 없어서 태국 의사들이 와서 진료하기 때문에 병원비가 너무 비싸서 갈 수가 없다고 했다. 교육은 백년대계인데 교육할 사람이 없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했다.

▲ 청소하는 승려들     ©최영숙

 
죽은자의 영원한 안식과 산자를 위안하는 사원은 고요했다. 저녁이 가까워지나 스님들이 나와서 사원을 청소하기 시작했다.

▲ 사원 승려들 청소를 하다     ©최영숙

 
청소 또한 수련의 한 과정이라고 했다.

▲ 어린이     ©최영숙

 
캄보디아의 속담에 "멀리 돌아가는 길을 택했다고 포기하지 마라, 바로 가는 길을 택하지 마라. 조상들이 지나신 길을 택하라." "당신의 국이 너무 짜지 않기를, 당신의 앉은 자리가 낮기를, 당신의 영혼이 현명하기를, 당신의 말이 고상하기를." "병들었을 때는 코끼리를 바치겠다고 약속하지만, 나은 후에는 계란 뿐이다." "부처를 버리고 우상을 숭배하는 것은 궁전을 버리고 수풀로 뒤덮인 무덤에서 사는 것이요. 현자의 말을 무시하고 무지를 따르는 것이다." 등 캄보디아인의 삶속에 녹아든 속담들이 많았다.

어린이가 환하게 웃었다. 캄보디아의 미래가 이렇듯 환하길 바랐다. 세계7대 불가사의인 앙코로왓을 세운 위대한 민족이기에 지금의 힘든 시기도 거뜬히 넘길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닉네임 패스워드 도배방지 숫자 입력
내용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을 사용하는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 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주간베스트 TOP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