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5월만 되면 가슴이 벌렁벌렁허요."

-5.18민주화운동 31주년 기념식을 다녀오다-

최영숙 | 기사입력 2011/05/22 [02:26]

"아직도 5월만 되면 가슴이 벌렁벌렁허요."

-5.18민주화운동 31주년 기념식을 다녀오다-

최영숙 | 입력 : 2011/05/22 [02:26]
▲ 5.18 유족의 슬픔     © 최영숙
 

  2011년 5월 18일 국립5.18민주묘지에서는 제 31주년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이 열렸다.
 
 
 

▲ 기념식장으로 들어서는 사람들     © 최영숙


 
  기념식장으로 참석자들이 들어섰다.
 
 
 

▲ 참석자     © 최영숙


 
  기념식장 밖에는 5.18을 주제로 한 시들이 적힌 걸개들이 있었다. 그 사이로 기념식에 참석하기 위해 참석자가 넘어 왔다.   5.18 민주화 운동을 한 눈에 말해주는 듯했다.
 
 

▲ 주먹밥을 나눠주다     © 최영숙


   31년 전  5.18일부터 27일까지 밥도 제대로 못 먹고 이리저리 쫓겨 다니는 시민과 학생들을 위해 내 자식을 먹이는 심정으로 어머니들이 만들어 주었던 주먹밥을 재현해서 나눠주었다.
 
 
 

▲ 리본을 달다     © 최영숙
 
 
"큰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5.18 민주 항쟁이 있기 때문에 지금의 저희들이 있습니다. 감사합니다."등 많은 글들이 적혀 있었다.
 
5.18유족회의 김형태 감사(65)는 '5.18 유족회에서 리본 글과 방명록 글에서 발췌해서 책들 만들 예정."이라고 했다.
 
 
 
▲ 일본인이 쓴 리본     © 최영숙
 
  리본에는 한글외에도 외국인들이 적은 글귀들도 있었다.
 
 
▲ 문성근 방명록에 기록하다     ©최영숙

 
  문성근이 방명록에 서명했다.
 
 
▲ 김문수 경기도지사     © 최영숙

 
▲ 김황식 국무총리     © 최영숙
▲ 손학규 민주당 총재     © 최영숙
 
  김문수 경기도지사. 김황식 국무총리, 손학규 민주당 총재등 내빈들이 기념식장으로 들어섰다.
 
 
▲ 5.18 추모관의 불빛     ©최영숙
 
 
  5.18추모관으로 들어섰다.
 
역사를 밝혀주는 불빛이 환하게 켜져 있었다.
 
 
 
▲ 5.18 추모관의 촛불     © 최영숙

  5.18 민주화운동은 1980년 5월 17일 비상계엄 전국 확대에 따라 취해진 전남. 광주지역 계엄군의 무력진압과 관련 1980년  5월 18일 0시부터 모든 정치활동의 옥내외 집회 시위를 금지하는 비상 계엄령을 내려 전남대 정문 앞에서 계엄군들이 학교 출입을 제지했고 항의하는 학생들이 가두시위를 하자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무차별 곤봉사례를 가했다.
 
20일 공수부대가 광주역 앞에서 시민을 향해 발포를 하면서 항쟁의 불길이 더욱 타올랐다.   5월 27일 무장한 특공대가 진압했다.  5.18민주화 운동은 광주시민과 학생들이 부당한 국가권력에 항거한 반독재 투쟁운동이었다. 
 
 
 
▲ 5.18 추모관에 전시된  유품들     ©최영숙
 
  멈춰진 시계, 피로 물든 태극기, 탄환등 5월의 그날을 말해주는 유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 유시민과 참석자들의 분향     ©최영숙


  이명박 대통령은 김황식 국무총리가 대독한 기념사에서 "31년 전 광주의 많은 희생양으로 민주화가 이 땅에 심어진 것이고, 자유와 민주를 향한 그날의 함성은 민주주의 토대를 튼튼히 닦았다. 앞으로 더 성숙한 민주주의를 위해 계속 노력해야한다."고 했다.
 
 
 기념식이 끝나고 분향을 했다.
 

▲ 이근례(74)님을 위로하는 손학규 민주당 총재     ©최영숙
 
 
 

  5.18 유족 이근례(74)님을  손학규 민주당 총재가 위로했다.
 
  이근례(74)님은 "31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5월만 되면 가슴이 벌렁벌렁 허요. 에미들이 불쌍허요.  햇수가 지나면서 예전만 못하고 대통령이 안 오는 것도 서운하다"고 했다.
 
 
▲ 국립 5.18 민주묘지     © 최영숙

 
  광주광역시 북구 민주로 136번지에 위치한 국립 5.18민주묘지는 93년 [5.13대통령 특별담화]로 모역조성이 발표되고 2006년 1월 30일 국립 5.18민주 묘지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2010년 약 70만 명이 찾았다. 5.18당시 218기를 포함해서 640기의 묘가 모셔져 있다.
 
▲ 5.18 묘역     © 최영숙

 
  5.18민주화운동 31주년을 맞아 많은 참배객들이 찾았다.
 
 
▲ 손미순(42)님의 눈물     © 최영숙

 
  손미순(42)님이 기억하는 어린 날의 5.18민주화운동은 가족에게는 커다란 고통이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가정이 풍지박산이 되었다. 공영터미널 앞에서 아버지가 계엄군에게 구타를 심하게 당하고 난 뒤 머리가 이상해지셨다. 그때부터 어머니를 때렸다. 고통 속에서 살았다. 엄마와 함께 아버지의  매가 무서워 도망쳤다가 아버지가 불쌍해서 돌아오곤 했다. 5.18은 부자는 아니었지만 평범하고 행복했던 소시민의 삶을 하루에 바꾸어 놓았다. 아버지는 간경화로 돌아가셨다.  아버지의 젊은 날을 바꾼 계엄군의 그 무지한 구타는 한 가정을 철저하게 불행하게 했다."고 했다.
 
 
▲ 이금순님 아들 묘 앞에 서다     ©최영숙
  어머니는 아들의 묘 앞에서 하염없이 울었다.
 
자식을 가슴에 묻은 어머니는 아들을 떠날 줄 몰랐다. 가슴이 먹먹해졌다.
 
▲ 5.18 묘지를 찾은 사람들     © 최영숙
 
  많은 참배객들이 인사를 했다.
 
 
▲ 리영희 선생 묘     © 최영숙
리영희 선생의 묘비에는 "이성의 붓으로 진실을 밝힌 겨레의 스승 여기 잠들다."라고 묘비명이 적혀 있었다.
 
 
▲ 영산재를 하다     © 최영숙
 
  돌아가신 영령들을 위로하는 추모제를 했다.
 
▲ 극락왕생을 빌다     © 최영숙

 
  가족들이 먼저 세상 떠난 이들의 극락왕생을 기원했다.
 
 
 
▲ 영산재를 하다     © 최영숙

 
 손미순(42)님은 " 행불자들에 대해 적극적으로 찾는 노력이 부족하다.  행불자 가족들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위로하기 위해서는 확인 과정의 어려움을 도와줘야 한다."고 했다.
 
  아직 아물지 않은 상처들이 묻어나는 듯했다.
 
  산자들이 도와줄 수 있는 일들은 적극 나서서 도와줘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오랜 세월 깊은 슬픔에 있는 여러 사람들의 아픈 소리가 들렸다. 
 
추모제는 계속되었다.
 
    
 모든 영령들이 영원한 안식을 얻기를 기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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